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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알기쉬운 노동법교육을 마치며....

  • 등록일
    2008/11/16 00:02
  • 수정일
    2008/11/16 00:02

 
1박 2일간의 강의.... 토요일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작업이 끝나지 않아 일자리를 잡지 못한 네팔 이주노동자들 몇명이 강의실에서 우두커니 앉아 병점고 자원봉사자들과 강의를 위한 준비작업을 하였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원래 계획하였던 시간보다 2시간을 늦게 잡아놓고 강의를 진행하였다.
 
처음 맞이하는 강의 한신대 조성은 교수의 강의에서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현실을 다시금 직시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사회보장에서 이주노동자는 제외의 대상이다. 그나마 지켜지고 있는 것은 합법이라는 신분하에서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뿐이다. 여전히 이주노동자 그/녀들은 이방인 아니 이땅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야할 사람으로 여겨지는 현실이 야박하게 느껴졌다.
 
두번째 강의 인권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한 권리행사이지만 이 권리는 현행 법이라는 테두리에서 결코 인권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현실... 작업장에서의 열악한 환경이 이주노동자 그/녀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스스로 말하는 그 목소리에서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울분을 다시금 상기하게 하였다.
 
그리고 첫째날의 강의를 마치고, 조촐한 뒷풀이 자리....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네팔 이주노동자 그리고 준비하는 우리들이 한신대 앞 호프집에서 간만에 모두가 함께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참 소박한 것인데... 늘 큰 것만을 찾는 것 같다는 미련함을 다시금 일깨우는 자리였다.
 
잠자리를 찾기 위해 모텔을 찾아보았지만 토요일 저녁 휴식을 취할 장소를 찾기는 어려웠다. 잠자리를 센터로 와서 하루일과를 마치고 다음날 강의를 기약하였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서로가 이주노동조합활동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하고 나누는 자리였다.
 
이틀날 조금 게으름을 부려 약속한 강의시간을 약간 벗어나 아침을 급하게 먹고 예정보다 1시간 늦은 9시 30분에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예방교육을 진행하였다.
근로기준법은 존재하나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낮설고 어려운 것들이다. 늘 체불임금과 퇴직금 미지급으로 고생을 당하거나 아니면 이를 받기위해 기다리다가 출입국관리소의 강제단속으로 출국당하여 떠나야 할 그/녀들에게 노동법은 여전히 높은 벽이었다. 언어적 전달이 잘 되었는지 강사는 연실 걱정을 하면서 강의에 대해 다음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락을 주라고 신신당부하는 말속에서 작게나마 이주노동자와의 연대를 꿈꿔보았다. 그리고 산업안전예방교육에서는 산업재해가 아닌 노동재해라는 테마를 이야기 하며, 노동자는 산업시설의 부속이 아닌 노동자는 노동을 생산하는 주체임을 역설하는 강사의 힘있는 발언에서... 노동자란 무엇인가? 다시금 되새겨 보게 하였다.
 
이주노동자들 또한 산업시설의 부속품이 아닌 노동자이고, 생산물을 통해 만들어가는 주체적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늘 알 것 같지만 모르는 다양한 정보들을 제약된 시간에서 강의를 통해 알려나가려는 강사의 말 속에서 노동법이라는 것이 노동자의 목소리들이 힘이 하나둘 모여 여전히 바꿔야 할 법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성폭력 예방 교육... 비정규직 여성이라는 테마를 주제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비교하여 진행된 영화감상 프로그램.... 여성이기에 당해야 할 차별... 성폭력이라는 것은 결코 물리력을 수반한 폭력만이 아닌 다양한 폭력임을 강사의 말속에서 배울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들 또한 이 강의에서 여성이라는 주체적 인간을 만났고, 이 속에서 기존 가부장적 권위라는 것의 파생된 현상과 남성중심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하나둘 알아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강사는 각 나라별 남성 이주노동자들에게 질문을 통해 각 나라별 여성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에 맞게 강의를 쉽게 하면서 성 담론과 성폭력에 대한 강의를 잘 전달해 주었다.
 
마지막 강의는 일상 센터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상담활동에서 체불임금과 퇴직금 미지급 건에 대한 급여 계산과 산정 방법 그리고 휴식 휴게시간의 개념들을 조목조목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쉽게 사업주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할 주의점들을 강사는 새롭게 준비한 강의 자료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잘 전달해 주었다.
 
이렇게 1박 2일 짧지만 긴 시간을 이주노동자 노동법 교육을 진행하였다. 첫  수강생들의 반응은 알 수 없었지만 전체가 모르던 사실을 알고, 자신들의 지켜야 할 권리 알아야 할 지식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바램한다. 함께 다나라 이주노동자들이 숙박을 하면서 결속과 노동교육을 통해 알아나갈 수 있었던 자리였기에 의미가 크다.
 
향후 조금 먼 공간에서 강의와 쉼의 기회를 제공하여 함께 모두가 강의만이 아닌 결속과 단결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준비를 기약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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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구조공단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듣다.

  • 등록일
    2008/11/16 00:01
  • 수정일
    2008/11/16 00:01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가니미아씨가 체불임금 상담을 접수받고 꼭 1년 2개월이 지났다.

처음와서 방글라데시로 가고 싶은데... 기간 일하던 회사에서 임금을 체불받아 출국할 수 없다고 하며, 상담을 신청하러 왔다. 그래서 상담을 위해 상담카드를 작성하는데 체불임금 액수와 기간이 생각하였던 일반 체불임금 상담과 달랐다.

회사에서 1년 1개월을 근무하였는데, 고작 사장으로 부터 받은 돈이 식사비와 치비조로 200만원 정도를 드문드문 받고, 이외에 임금은 받지 못하였다.

상담카드에 평균임금과 기간을 합산하니 무려 체불임금 액수가 1,360만원이 되었다. 사업장이 5인 이하 사업장이라 퇴직금을 지급받을 수 없는 것을 빼면 상담한 액수의 임금이 체불되었다.

 

이에 노동부 전자민원실에 들어가 임금체불 진정서를 인터넷으로 접수하였다. 그리고 3회에 걸친 출석요구.... 그러나 사장은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출석요구서가 나와 출석하였는데 사장이 나와 있었다.

 

사장은 온갖 험담(미아씨의 형이 원래 이 사업장에서 근무하였고, 형이 방글라데시로 귀국하여 동생을 부탁한다며 채용을 하였는데 일을 게을리하고, 말을 잘 듣지 않았다고 한다.)을 하며,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회피하고자 한다.

 

사장은 회사가 망해가는데도 온갖 이야기로 회사회생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미아씨가 돈을 달랜 다며 되려 성깔을 내며 돈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우리도 체불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니, 형사처벌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체불임금 확인서를 뛰었다. 그리고 곧장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에 가서 가니미아 체불임금건과 관련한 민사소송을 접수 시켰다.

 

그리고 3개월.... 오늘 법률구조공단에서 사장 유체동산에 대한 가압류 승인(주식회사의 경우 사장 개인재산을 법원의 가압류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면 유체동산 가압류가 진행되지 않는다.)이 떨어져서 미아씨가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주말이면 형님 언제 돈을 받나요. 돈은 받을 수 있는 건가요. 초조해 하며 말을 하였다.

일단 회사 사장의 주택을 가압류와 처분을 할 수 있게 되어, 미아씨에게 미안함을 덜 수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민사소송을 진행하다. 출입국관리소의 강제단속으로 인하여 소송을 취하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법원에서 판결문이 나와.... 미아씨에게 좀 기간이 걸리지만 체불임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주말 천안에서 일하는 미아씨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이렇게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고통당하거나 아니면 임금체불로 돈을 떼이거나 언제 모를 단속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지금 화성보호소에 있는 이슬람씨 또한 미아씨 처럼 빨리 법원의 판결문이 나와 노동의 댓가를 지불 받고 고단한 한국의 삶을 정리하고 방글라데시로 빨리 출국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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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라디오방송국은 사랑방으로 가꾸고자 합니다.

  • 등록일
    2008/11/16 00:00
  • 수정일
    2008/11/16 00:00


이주노동자들이 자국어로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보다 많은 다나라 이주노동자들이 공유하였으면 하는 막연한 바램을 하던 차에.... 영상미디어센터 Mediact에서 공동체라디오방송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주노동자 인터넷 라디오방송국을 하였으면 한다는 내용을 갖고 무작정 Mediact에게 부탁을 하여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교육을 받게 되었다.

시작은 보잘것 없다. 공동체라디오방송이라는 거창함도 없이 이주노동자들이 자국어로 소통하고, 자국의 음악, 사회상황들을 소통하고 함께 어울렸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소박하게 생각하여 출발하였다.

관악FM에서 교육을 맞으면서 라디오방송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좀 욕심이 났다. 보다 이주노동자 그리고 이주여성의 상황을 함께 공유하였으면 하는 욕심이 났다. 그래서 오산센터에 관계하고 있는 6개국(네팔, 스리랑카, 필리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중국) 이주노동자들의 자국어 라디오 방송국을 진행하였으면 하여 한글교실을 받고 있는 학생들을 꼬셔서 인터넷라디오방송국 교육을 받으라고 강압에 가깝게 닥달을 하였다.

한글을 배워야 한다며 머슥하게 웃음을 지우다가.... 인터넷라디오 방송교육을 받더니 한글교육 안받고 라디오교육할레요 하는 스리랑카 자나드씨가 말한다. 이 일로 한글교실 자원봉사 선생님에게 무진장 혼이 났지만 그래도 센터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자나드씨는 이 작은 교육을 받더니 스리랑카에 가면 꼭 이러한 방송국을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내년에도 교육해줘요.... 부탁을 한다.

그리고 라디오방송을 진행하다. 수업을 끝마치지 못하고 간 스리랑카 수산드, 네팔 라주씨... 여전히 단속추방은 이주노동자들을 내쫓고 있음을 교육을 하면서 잊고 있었다. 사진을 보면서 수산드, 라주씨도 인터넷라디오방송국을 함께 만들었는데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오산라디오


방송국의 포부는 당차지는 않다.
소박한 방송국이다. 거창하게 안산처럼 지역공동체라디오라는 포부도 없다.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들이 사랑방처럼 즐겁게 웃도 자신의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들을 잡담하는 수다방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러한 수다방이 진정한 소통과 나눔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주노동자들이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한국사회와 소통하고 지역에 퍼져 있는 각 나라별 이주노동자들과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매체가 되었으면 한다. 조금 욕심을 낸다면 이주노동자들이 라디오방송국을 통하여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 강화를 위한 이주노동자 교육매체로 거듭났으면 하는 고민을 가져본다.

즐겁게 소통하고 함께 어울리며 오산이주노동자센터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과  어울렁더울렁 더불어 살아가는 방송국을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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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MTU) 출범은 이주운동의 새로운 도약이다.

  • 등록일
    2008/11/15 23:59
  • 수정일
    2008/11/15 23:59

*** 질라라비(해방자)에 쓴 원고 글을 옮겨 본다. 거의 정신없이 써서 내용이 부실한 글이다.

 

고용허가제 폐지와 노동비자 쟁취! 단속추방 반대를 외치며 명동성당에서 모였던 이주노동자 동지들이 지난한 투쟁을 끝낸 후 긴 동면에 잠에서 깨어나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출범을 통해 이주노동자 권리 투쟁에 나섰다. 이 처럼 MTU 출범은 이주노동자 주체 스스로가 노동자로 당당히 서기 위한 선언이며,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 노동운동세력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선택이기도 하다.

 

기계로 살아가야 하는 이주노동자 현실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은 빛 좋은 개살구다. 연수생으로 들어와 고용주에 의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다 못해 회사를 박차고 나와 스스로 미등록이주노동자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연수생으로 들어왔을 당시를 회상하면 눈가에 눈물을 글썽인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온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보다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한국인의 편협 된 시선이라 말한다. 그/녀들은 장시간 저임금과 노동 기본권 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주야 2대교에 하루에 12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으로 살아가고 있다.

 

기계가 아니고서야 결코 할 수 없는 일하기 힘든 작업장에서 이주노동자 그/녀들은 작업을 하고 있다. 주 8시간 노동은커녕 잔업수당 또한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대부분 총액임금에 임금을 계약하거나 이도 여의치 않아 체불퇴거나 퇴직금 떼이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땅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들은 기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기계로서 대접받고 있다.

 

한달에 2번 쉬는 것이 소원이라는 이주노동자 그/녀들 이야기 속에서 중소영세사업장 현실 단면을 살펴 볼 수 있다. 산재, 폭행, 그리고 부당노동행위가 판쳐도 연수생보다 났다고 미소를 지으며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미소에서 과거 우리 노동 형제의 구릿빛 얼굴이 떠올려 본다.  그러나 지금 이주노동자 그/녀들에게 있어서 잘못된 시선 오로지 돈을 벌어 자신의 고국에 돌아가 부귀영화를 꿈꾸며 살아가겠지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녀들 삶의 단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녹녹치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들 살기위해 왔다고 하소연 하는 모습이 이와 대조적이다. 이들은 불안정한 자국의 노동시장으로 인해 자국에서 또한 내몰린 노동자의 절규이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우리는 기계로서 한국의 3D 현장으로 내몰리는 상황 그리고 노동자로서 인정받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그/녀들은 지난 3년간의 투쟁을 통해서 기계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당당한 선언이 작지만 크게 한국사회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이주노동자 인권을 넘어 이주노동자 권리투쟁으로....
이주노동자 인권을 시작으로 이 땅에 이주노동자 지원단체가 출범하였다.
IMF금융위기가 한창인 시기 이주노동자들 또한 한국으로 대거 이주해온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급기야 민주당은 고용허가제 입법을 시도한다. 이로 인해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이하 외노협)에서 불협화음을 통한 이주운동의 골간이라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이라 판단한 외노협 몇 명의 상근활동가들은 이주투쟁본부를 결성한다. 이를 통해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고용허가제 문제를 지적함과 더불어 이주노동자 운동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이를 통해 인권을 넘어 이주노동자 투쟁을 위한 한국인과의 연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주투쟁본부는 외국인이라는 차별적 언어를 철폐하고, 이주노동자(Migrant Workers')라는 용어를 통해 이주노동자 권리에 있어서 그/녀들 사회적 지위를 한 단계 끌어올림과 동시에 그/녀들 투쟁의 중요성을 한국 노동운동가들에게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는 평등노조 이주지부의 출범을 통해 독자적 노조는 아니더라도 이주노동자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민주노총 내에서 끌어가고자 하는 노력을 시도하였고, 이를 통한 다양한 이주운동연대단위들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차차 이주노동자 중심의 평등노조 이주지부가 안착되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이주노동자 투쟁의 서막이 시작이 되었다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 운동이 초기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그들에 대한 지원과 수혜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던 투쟁이 이주노동운동을 한국의 이주노동운동 활동가와 이주노동자들이 만나 이주노동운동의 굳건한 연대로 이주노동자 운동의 지난 3년간 투쟁들을 만들어 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이주노동자 운동을 인권이 아닌 노동운동임을 명확히 하였고, 명동성당 투쟁이 비록 승리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이 땅에서 스스로 주체로 서기 위한 지난하지만 값진 시간들이었다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 이주노동자운동은 주요한 사회적 화두로 던져졌고, 많은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아직은 공감 가지는 않겠지만 노동운동 범위로 이주노동자들 스스로가 다가와 있다는 사실은 그 지난한 투쟁성과의 한 측면이 아니었는지 판단을 가져본다. 현재 비록 이주노동자 운동의 주요한 의제로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지는 못하고 있으나 이주노동자 권리투쟁의 메아리는 한국사회에서 작지만 소중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이주노동자 독자노동조합 설립의 의의
이주노동자 운동은 아직은 미약하지만 그 기간의 활동을 보았을 때 지난한 과정 속에서 한국 활동가들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하면서 만들어낸 중요한 운동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 문제에 있어서 한국 학생활동가들에게 있어 “차이와 차별을 넘어선 연대”라는 말이 2000년대 초반 이주노동자 연대활동의 주요한 모토였다. 그러나 이 차이와 차별을 넘어선 연대는 이제 직접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라는 용어로 일축되어진 것을 보더라도 상황은 급반적 되었다 할 수 있다. 또한 명동성당 투쟁을 통해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당당한 주장이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비자 쟁취, 단속추방반대를 내걸고 투쟁하면서 스스로 노동자임을 각인하면서 맞이하였을 소중한 경험들.... 그리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35명이라는 열사들을 배출해내면서 굳건하게 노동자로서 투쟁의지를 불태웠고, 서로가 동지임을 확인한 그 지루하였지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명동투쟁에서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조직주체로 섰다.

 

이 결과 올해 MTU 출범을 통한 이주노동자 스스로의 독자적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계기점이다. 이 땅에서 정부에 대한 투쟁을 할 것임을 천명하고, 스스로가 주체로서 한국동지들과 연대를 하기 위한 힘찬 선언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 독자노동조합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져본다.

 

이주운동에 있어서 이주노동자들 스스로가 주축이 되어 한국 노동운동가들에게 이주노동자의 시선으로 이주노동자의 현실에서 이주노동자 투쟁을 함께 연대하고, 투쟁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였다. 비록 언어적 소통의 문제 다 나라 사람들이기에 소통의 어려움은 있지만 투쟁이라는 당위 속에서 소소한 문제는 극복될 것이다. 그리고 이주노동자 운동에 있어서 이주활동가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점차 전국적 이주노동자 단일노조 건설의 기치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명동성당 투쟁에서 보여준 대구 성서공단, 부산, 창원 이주노동자들의 연대에서 이주노동자 전국 단일노조 건설의 기운을 이주노동자 동지들은 보았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주요하게 바라봐야 할 지점이 있다. 이주노동자 운동에 있어서 현실 노동계와 다른 특수한 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단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있어 한국노동자들과 다른 차이점은 이들에게 노동3권이 보장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며, 단속추방으로 인해 불투명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한국노동자들이 투쟁의 경우 단위사업장 중심의 파업투쟁 또는 단체교섭투쟁 그리고 대정부 투쟁의 수순을 밟고 투쟁을 전개하지만, 이주노동자 투쟁 자체부터가 정부의 탄압에 의한 투쟁이기에 직간접적으로 사측에 대한 투쟁을 통한 압박이기 보다는 정부의 정책에 의한 일방적 탄압에 대한 대정부투쟁임을 우리는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이주노동자 출범은 정부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선포이며, 끝까지 투쟁하여 단속추방 반대,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전면 합법화라는 요구안을 제시하고 투쟁의 선포라 의미라 할 수 있다. 이제 이주노동자 출범에 따른 지역 차원에 있어 이주노동자 주도와 중심으로 이주운동 지역별 단위 형성과 조직보위와 확대를 위한 지원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MTU 활동을 통한 아시아 노동연대를 위한 모색 및 한국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약이다.
MTU 활동은 아시아 전체 노동자 민중과 함께하고자 하는 연대이며, 투쟁이기도 하다. 현 시기 노동자투쟁을 통한 전지구적 연대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MTU 활동은 한국노동운동이 지구적 시야를 확보하고 전체 아시아 노동자 민중과의 발걸음을 공동으로 하기 위한 시작이기도 하다.

 

전지구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운동이 복무할 지점이 있고, 한국운동이 아시아와 태평양 노동운동에 대해 이해하고 연대할 측면이 있다. 이 시작의 첫 단추가 MTU를 통한 아시아 연대가 단초가 되지 않을까? 판단을 가져본다. ‘MTU 활동은 비록 지금 시작은 미약하지만 한국노동운동진영에 머무른 운동이 아니라 각 아시아 그리고 태평양 노동자 민중과의 공동으로 활동을 하기 위한 주요한 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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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사랑....

  • 등록일
    2008/11/15 23:58
  • 수정일
    2008/11/15 23:58

미디어 교육에서 아이에 대한 부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듣고 눈가에 물이 맺히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의 깊이를 느꼈다.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 이야기 필리핀 언어로 시작되는 말이지만 숨소리와 말의 높낮이에서 그리움이 진하게 배겨난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주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낀다. 눈물을 흘리며 그리움과 아이에 대한 안부를 전하는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이야기.... 고국에 있었으면 사랑을 듬뿍받고 자라날 아이에게 부부는 사랑을 이내 주고 있지 못함이 미안스러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심정에 마음 한편 뭉클해지고 눈가에 물기가 저절로 배긴다.

 

늘 가슴저미는 그/녀들의 삶에서 난 늘 편안하게 살고 있음을 직시한다. 그 삶이 내가 여기 있는 동안은 계속 될 것이다. 함꼐 그 서러운 것 차별이라는 억압과 착취 그리고 단속추방을 통한 불안함이 조속히 사라지기를 바램해 본다. 그렇다고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삶에 동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이 마음 아파해 줄 소양은 없지만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삶에서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고, 단속추방이라는 공포가 사라지고 자유롭게 한국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기를 염원해 본다.

 

그리운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함께 하면서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리고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눈가에서 눈물이 사라질 수 있는 사회가 조속히 도래하였으면 하는 바램 또한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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