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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내 마음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내 마음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5/02/021003000200502150547051.html

 

 

‘노사정위 드림’을 깨라

민주노총 이갑용 전 위원장 기고… 노동계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놓고 대화하자 우기는가

▣ 이갑용/ 울산 동구청장·민주노총 전 위원장

민주노총은 지금 아프다. 기아자동차 노조간부의 비리에 이어 ‘사회적 교섭안’을 두고 벌어진 대의원대회의 충돌 사태를 두고 모든 언론이 민주노총을 사회적 패륜아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현상에는 본질이 있는 법이다. 비록 충돌은 조합원들 사이에 일어났지만 근본 원인은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신 때문이다. ‘사회적 교섭’, 이른바 ‘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 참여를 두고 벌어진 민주노총 내부의 첨예한 대립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내가 26일간 단식투쟁을 한 이유

1998년 2월,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법’을 합의했으나 조합원들의 반발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부결과 관계없이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수사를 두른 채 법안은 통과되었고, 결국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 당시 통과된 법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한번 죽였다면 이번에 입법을 예고하고 있는 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또 한번 죽이는 법이 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처지가 바뀐 노동자들에게 지금의 노사정위는 그야말로 노동자를 ‘두번 죽이는 기구’로 인식될 뿐이다. 그런데도 과연 ‘노사정위’는 민주노총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기구인가? 노사정위에 참여하면 민주노총의 사회적 왕따 현상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 지난해 6월 노·사·정 지도자회의에 참석한 이수영 경총회장,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왼쪽부터). 노동계는 노사정위의 태생적 한계와 구조적 모순을 비판한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그 대답은 노사정위라는 기구가 지닌 태생의 한계와 구조적 모순에서 찾아야 한다. 노사정위는 노동자들이 요구해서 만들어진 기구가 아니라 정부가 필요해서 만든 기구다.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한 일은 없다. 1998년 말 노사정위에 참여해보니 본회의에 ‘전교조 특별법안’이 상정되었다. 노동3권도 보장되지 않고 어떻게 개악될지 모르는 악법이었기에 민주노총의 위원장으로서 부결시켰다.

정부와 사쪽은 하나가 되어 특별법을 관철시키려 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98년 연말, 국회 앞에서 26일간 단식을 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찬 겨울 한달 동안을 굶고, 산별 연맹 위원장들의 동조단식과 전교조 조합원들의 투쟁이 있고 나서야 겨우 전교조 합법화 하나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게 당시 노사정위의 현실이었다. 노사정이 대등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각종 정책을 함께 만들어야 할 정부 부처들(재경부·산자부·노동부·복지부·기획예산처 등)은 모두 재계의 편이었지 노동계 편은 하나도 없었다. 시작부터 공정하지 않았던 노사정위에서의 ‘사회적 합의’란 말은 입체적으로 노동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또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결국 입법기관인 국회를 거쳐야 한다는 점은 결정적으로 노사정위를 불신하게 만들었다.

노사정위에서 합의하면 무조건 실행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한 그 합의는 무용지물이다. 실제 권한을 가진 기구를 만들자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노사정위 무용론이 제기되었고 1999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탈퇴를 결의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구조의 문제점과 함께 민주노총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동계 분열정책 때문이기도 하다. 권력의 촉수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넓게 노동계에 닿아 있다.

민주노총의 사무총장을 지낸 김아무개씨는 근로복지공단의 감사가 되었고, 98년 정리해고제에 합의해준 직무대행 역시 개혁당에 참여하더니 공기업의 감사가 되었다. 산재의료원의 감사인 심아무개씨, 청와대 노동담당으로 일하다 헬기 사태로 낙마한 박아무개씨, 전 한국방송 부사장을 지낸 이아무개씨도 모두 민주노총 산하의 연맹이나 노조위원장 출신들이다. 현 노사정위원장 역시 민주노총의 지도위원을 지냈고 노동 관련 연구소의 이사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 연구소는 지금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물론 대다수 산별 연맹 위원장들이 이사로 몸담고 있다.

‘옛 동지’들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노동계를 두고 막말을 일삼고 있는 김대환 노동부 장관 역시 이 연구소의 부소장을 맡아 활동했고 그 덕에 친노동계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노사정위 참여를 주장하거나 노동 관련 사안에 대해 친정부적인 행보를 꾸준히 보였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영달을 찾아 정부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노동계의 여러 인맥을 통해 정부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 1998년 연말에 노사정위에 상정된 ‘노사정위특별법안’을 거부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던 필자. 이 투쟁으로 ‘전교조 합법화’를 쟁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박승화 기자)

김금수 노사정위원장은 참여정부의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한 민주노총의 반대에 대해 “민주노총이 상관할 일도 대상도 아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가 하면,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민주노총의 조건부 (노사정위) 참여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옛 동지’들로 인해 노동계는 늘 배신감으로 더 분노해야 했고, 지금도 제2, 제3의 옛 동지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을 빼가서 뒤통수 치는 정부를 노동계가 과연 신뢰할 수 있겠는가?

민주노총은 2월22일 대의원대회에 다시 노사정위 참여 안건을 상정해놓았다. 지도부는 권위를 찾겠다고 한다. 권위는 아래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본질을 해결하지 않고 현상만 다스리려 하는 건 또 다른 파행을 부를 뿐이다. 노사정위 참여가 이토록 사회에 파장이 크고 조직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면 조합원 전체의 의사를 묻는 총투표를 권하고 싶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당’을 통해 노동계의 요구를 법제화하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는 10명의 의원을 보유한 노동자들의 정당, ‘민주노동당’이 있다. 노사정위에서 논의할 사회적 의제들은 결국 입법을 해야 하므로 여당과 야당, 민주노동당간에 협의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 해결,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사회적 의제는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공약이기도 하다. 정부가 진정 노동계와 대화를 원한다면 민주노동당이 발의한 법들만 통과시켜도 이같은 불신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무원특별법’ 같은 희대의 악법만 통과시켰다.

그만해라, 많이 먹었다!

아무리 소수정당이라 해도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민주노동당을 이토록 무시할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지금 정부와 언론은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불참으로 마치 노사정간 어떤 대화의 장도 없는 것처럼 몰아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민주노총은 노동부의 ‘최저임금 심의위원회’와 ‘고용정책 대책위원회’,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정책심의위원회’ 등 20여개의 각종 정책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재계 대표와 한국노총의 대표도 참여하고 있으므로 이미 노사정 대화는 어떤 형태로든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런 기구들에서 정부는 노동계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불신을 해결할 노력은 보이지 않으면서 마치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으면 모든 대화가 불가능한 양 민주노총만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를 종용하는 모든 언론과 정부에 묻고 싶다. 대화는 상대가 있는 법이다. 대화할 상대가 만신창이가 되어 몸도 못 가누고 있다면 적어도 몸은 추스르도록 기다려주는 게 예의 아닌가? 그런 최소한의 배려는커녕 ‘해체’니 ‘해산’이니 하는 말을 써가며 대결의 오기를 부추기는 게 진정 대화를 원하는 태도인가? 다 쓰러져 죽은 뒤에 누구와 사회적 교섭을 할 것인가? 제발 더 이상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지 말라. 이제 정말 그만하면 많이 먹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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