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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번역 합본

이 파일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대한 개인 번역본이다. 그동안 블로그에 연재했던 번역을 다시 읽어보며 여러 군데 수정을 거친 후 합본한 형태다. 수정된 부분은 다른 연재 글에도 모두 반영했다. 아무튼 즐거운 작업이었다.

 

 

[이방인 번역(141021).pdf (609.25 KB) 다운받기]

 

 

이하는 추후 수정 사항이다. 업로드된 파일과 블로그 연재글에는 모든 수정 사항이 반영되어 있다.

 

 

2014. 7. 24. 18:15

 

3페이지 '차례' 부분에서 쪽수 오기가 있어 '35'를 '38'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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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7. 00:48

 

69페이지 마지막 문단 12번째 줄에서 '모두 완결되도록'을 '이제 다 이루기 위해'로 수정.

 

원문 'Pour que tout soit consommé'는 요한의 복음서 19장 30절의 'tout est consommé(오늘날은 주로 'tout est accompli'로 번역)'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어 번역 역시 성경에 맞추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 하에, 공동번역 성경의 '이제 다 이루었다'를 인용해서 수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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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7. 12:21

 

69페이지 마지막 문단 12번째 줄에서 '이제 다 이루기 위해'를 '이제 다 이루어지도록'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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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3. 00:03

 

36페이지 5번째 문단 2번째 줄에서 '등을 기대고 두 손으로 목덜미를 받쳤다.'를 '등을 기댄 채 두 손으로 목덜미를 받치고 있었다.'로 수정,

 

36페이지 마지막 문단 첫째 줄에서 '당연히 나도 재킷 주머니에 든 레몽 권총을 쥐었다. 그러자 아랍인은 도로 누웠는데, 주머니에서 손을 빼진 않았다. 나는 그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를 '나는 당연히도 재킷 주머니에 든 레몽 권총을 쥐었다. 한편 아랍인은 도로 누웠는데, 주머니에서 손을 빼진 않았다. 그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로 수정,

 

36페이지 마지막 문단 3번째 줄에서 '반쯤 잠긴 아랍인의 눈꺼풀 사이로 그의 시선을 잠깐씩 느꼈다. 그보단 아랍인의 모습이 타오르는 대기에 휩싸여 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를 '반쯤 감긴 아랍인의 눈꺼풀 사이로 그의 시선이 잠깐씩 느껴졌다. 하지만 대체로 그의 모습은 타오르는 대기에 휩싸여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로 수정,

 

36페이지 마지막 문단 6번째 줄에서 '아까와 같은 태양과, 조금 전에 밟았던 모래를 내리치는 아까와 같은 빛이 여기까지 이어졌다.'를 '여전한 모래를 내리치는 여전한 빛과, 여전한 태양이 여기까지 이어졌다.'로 수정,

 

36페이지 마지막 문단 7번째 줄에서 '두 시간 째 끓는 쇳물 같은 대양에 닻을 내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를 '두 시간 째 끓는 금속 대양에 닻을 내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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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7. 01:52

 

69페이지 1번째 문단 6번째 줄에서 '진정시키더니'를 '진정시키고'로 수정,

 

69페이지 1번째 문단 7번째 줄에서 '떠났다.'를 '가버렸다.'로 수정,

 

69페이지 2번째 문단 6번째 줄에서 '거기'를 '거기, 거기서도'로 수정,

 

69페이지 2번째 문단 7번째 줄에서 '주위'를 '주변'으로 수정,

 

69페이지 2번째 문단 8번째 줄에서 '엄마를'를 '엄마를 두고'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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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1. 02:52

 

27페이지 마지막 문단 마지막 줄에서 '집으로'를 '나를'로 수정,

 

40페이지 마지막 문단 첫째 줄에서 '오후 두 시였다. 천 커튼 너머로'를 '오후 두 시였다. 이번에는 천 커튼 너머로'로 수정,

 

67페이지 5번째 문단 3번째 줄에서 '이 고통에 절은 돌덩이'를 '땀에 전 이 돌덩이'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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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번역 2-5 (2) [완결]

이 번역은 1942년 갈리마르에서 출간된 L'étranger를 원본으로 삼으며, 때로 이휘영, 김화영, 이기언, 김예령, 이정서 번역을 참고한다.

 

한국에서 L'étranger 원본의 저작권은 소멸했다. 이 번역본은 무료로 배포 가능하다. 단, 영리 목적 사용은 불가능하며, 일부나 전부를 어떠한 형태로도 가공 내지 수정할 수 없다. 어차피 카뮈의 간결함을 한국어로 살려본답시고 내 멋대로 의역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게까지 신뢰할 만하진 않다.

 

 

제2부

 

V (계속)

 

그즈음 부속 사제 방문을 또다시 거절했다. 누운 채 금빛 감돌기 시작한 하늘을 보며, 여름 저녁이겠구나 싶었다. 막 상고를 포기한 참이었다. 몸을 규칙적으로 순환하며 일렁이는 피가 느껴졌다. 사제를 만날 필요는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처음으로 마리를 생각했다. 편지를 못 받은 지 꽤 오래됐다. 그날 저녁, 곰곰이 생각해봤다. 마리도 사형수의 정부로 살아가기 지쳤겠지. 아프거나 죽은 걸 수도 있고. 모르는 일이지. 이제 갈라진 우리 몸 이외엔 우리를 연결하거나 연상시키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때부턴 마리가 떠올라도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마리가 죽었다면 더 이상 내 알 바 아니었다. 당연했다. 내가 죽고 나면 다들 날 잊을 테니까. 죽은 이상 난 그들과 무관했다. 그렇게 생각한들 마음이 아프지조차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부속 사제가 들어왔다. 사제를 보니 몸이 조금 떨렸다. 사제는 눈치를 채곤 겁먹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보통 다른 시간에 오지 않느냐고 했다. 사제는 그저 우정어린 방문일 뿐이라며 내 상고에 대해선 알지도 못하고 아무 관련도 없다고 대답했다. 침상에 앉더니 가까이 오길 권했다. 나는 거절했다. 그래도 무척 온화해 보였다.

 

 

부속 사제는 팔뚝을 무릎에 괴고, 고개를 숙여 두 손을 바라보며 한동안 앉아 있었다. 가늘고 근육 잡힌 손이었다. 민첩한 두 마리 짐승 같았다. 사제는 두 손을 천천히 비볐다. 그러고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어찌나 오래 그 자세로 있었는지 순간 사제의 존재를 망각할 뻔했다.

 

 

그런데 사제는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왜 제 방문을 거절하셨나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확실한지 물었다. 굳이 자문해볼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중요하지 않은 질문 같았다. 그러자 사제는 몸을 뒤로 젖히더니 벽에 등을 기대고, 손을 펴서 허벅지 위에 올렸다. 사제는 마치 혼잣말하듯이, 때로 무언가를 확신한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사제는 나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럴 수도 있겠다고 대답했다. 어쨌든 내가 무엇에 진정 관심이 있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었지만, 무엇에 관심이 없는지는 정말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마침 사제가 말하는 거엔 관심이 없었다.

 

 

사제는 시선을 돌리고선,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절망에 빠져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닌지 물었다. 절망하지 않았다고 설명해줬다. 겁이 났을 뿐이었다. 당연히 겁이 났다. 사제가 말했다. “주님이 도우실 겁니다. 제가 만난 사형수들은 모두 주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그야 그들 마음이라고 대답했다. 게다가 그들에게 시간이 충분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면 나는 도움의 손길을 바라지 않았고, 관심 없는 일에 관심을 두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 순간 사제는 짜증이 난다는 듯한 손짓을 했다. 하지만 사제는 몸을 바로 세우고 사제복 주름을 매만졌다. 마치고 나서 나를 ‘동지’라 부르며 말을 걸었다. 내가 사형수라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란다. 자기가 보기엔 우리 모두 사형수나 다름없다며. 그런데 나는 사제 말을 끊고 그건 같지 않다고, 더구나 전혀 위로가 돼주지 못한다고 했다. 사제도 인정했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오늘이 아니어도 언젠간 죽음을 직면하게 되실 겁니다. 그때도 같은 질문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 끔찍한 관문을 어떻게 맞이하실 겁니까?” 그때 가서도 딱 지금처럼 맞이할 거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더니 사제는 일어서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익숙한 놀이었다. 에마뉘엘과 셀레스트와도 자주 즐겼던 놀이다. 보통 그들이 눈을 돌리고 말았다. 사제도 제법이었다.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역시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정녕 희망을 품지 않으십니까? 온 존재가 소멸하리란 생각으로 살아가십니까?” “네.”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사제는 고개를 숙이고 도로 앉았다. 나한테 연민을 느낀단다. 사제는 그렇게 버티며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사제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내가 몸을 돌려 천창 아래로 갔다. 어깨를 벽에 기댔다. 사제 말을 흘려들었다. 또 질문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사제가 다급하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흥분해 보이길래 주의를 기울였다.

 

 

상고야 받아들여지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죄악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단다. 주님께 지은 그 죄악을 떨쳐내야 한다고. 인간의 정의는 하느님의 정의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나는 그래도 전자가 내게 형벌을 부과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사제는 그걸로는 죄악을 씻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죄악이란 게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단지 내가 유죄 판결을 받았을 뿐이다. 나는 유죄였고, 그 대가를 치르면 그만이었다. 내게 뭘 더 요구할 순 없었다. 그러자 사제가 다시 일어났다. 감방이 하도 좁아서 몸을 움직이려면 별다른 대안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앉거나 일어서야 한다.

 

 

내 시선을 바닥에 고정했다. 사제는 내 쪽으로 한 발짝 다가오고선 멈췄다. 감히 더 가까이 올 수 없다는 듯이. 사제는 창살 너머 하늘을 바라봤다. “그건 오해입니다, 신자님.” 사제가 말했다. “더 많은 걸 요구받으실 수도 있어요. 실제로 요구받으실 겁니다.” “뭘요?” “대면하셔야 합니다.” “뭘 대면해요?”

 

 

사제는 사방을 둘러보더니 어느덧 몹시 지쳐 보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돌덩이들은 고통에 절어 있군요. 돌덩이들을 볼 때마다 번민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 깊숙이 알고 있어요.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였던 사형수들조차 어둠 속에서 나타난 신성한 얼굴을 보았답니다. 바로 그 얼굴과 대면하셔야 합니다.”

 

 

나는 조금 흥분했다. 몇 달째 이 성벽을 보고 있었다. 내겐 세계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벽이 더 친숙했다. 오래전, 벽에서 얼굴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욕망을 불태우는, 태양 빛 얼굴을. 마리 얼굴을 찾으려 했다. 부질없었다. 이젠 그만뒀다. 어쨌든 땀에 전 이 돌덩이에서 무언가 솟아오르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부속 사제는 슬프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완전히 벽에 등을 기댔다. 햇빛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사제가 급하게 몇 마디를 했지만 제대로 못 들었다. 그러더니 나를 껴안아도 될지 물었다. “안 됩니다.” 나는 대답했다. 사제는 몸을 돌리더니, 벽 쪽으로 걸어가 손으로 벽을 훑었다. “그토록 지상을 사랑하신단 말씀이십니까?” 사제는 중얼거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제는 등을 돌린 채 한동안 있었다. 사제를 보고 있자니 괴로웠고 귀찮았다. 인제 그만 나를 놔두고 가라고 말하려던 참에 사제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갑자기 폭발하듯 외쳤다. “차마 못 믿겠습니다. 분명 내세를 바라신 적이 있을 거예요.” 당연히 있지만 그건 부자이길 바라거나, 더 빨리 헤엄치길 바라거나, 더 나은 입 모양새를 바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사제가 내 말을 끊고는 내세가 어때 보이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소리쳤다. “지금 삶을 회상할 수 있는 삶이겠죠!” 그리고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바로 덧붙였다. 사제는 다시 하느님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내가 사제에게 다가가 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마지막으로 설명해줬다. 하느님 이야기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사제는 주제를 바꿔보려고 했다. 왜 자기를 ‘신부님’이라고 부르지 않는지 물었다. 듣자하니 화가 났다. 우리가 부자 관계는 아니지 않으냐고, 당신은 다른 사람들 편이라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신자님.” 사제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저는 신자님 편입니다. 마음의 눈이 멀어 모르실 뿐입니다. 신자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러자,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 터져버렸다. 나는 목청껏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욕을 퍼부었고, 기도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사제복 깃을 부여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마음에 담았던 말을 전부 쏟아냈다. 사제는 확신에 넘쳐 보였지? 그렇지? 그래 봤자 여성의 머리카락 한 올 값어치조차 없는 확신이었을 뿐이야. 자기가 살아있긴 한지도 확실히 몰랐을걸? 산송장처럼 지냈잖아.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보여? 그래도 난 내게 확신했어. 모든 것에 확신했지. 적어도 저 사제보단 말이야. 내 삶을 확신했고, 다가올 죽음도 확신했어. 그래, 그것밖에 없었어. 그래도 적어도 그 진실을 붙들었어. 진실이 나를 붙든 거 못지 않게. 내가 옳았지, 지금도 옳아. 언제나 옳단 말이야. 난 이런 식으로 살았고, 다른 식으로도 살 수 있었어. 이걸 했고 저걸 하지 않았어. 그런 건 하지 않았고 대신 다른 걸 했어. 그다음엔? 마치 내 존재가 증명될 순간을, 그 첫새벽을 평생 기다려왔달까? 무엇도,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어. 난 왜 그런지 알고 있었지. 사제도 알고 있었어. 내 미래 깊숙이, 내가 겪은 이 부조리한 삶 내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월을 가로질러 어두운 숨결이 불어왔어. 그런데 그 숨결이,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현실감 없는 세월 동안 내가 겪은 모든 일을 균등하게 만들었다고. 다른 사람들이 죽은들 어떻고, 어머니의 사랑이 어떤지 알 게 뭐야. 하느님이 나와 무슨 상관인지, 우리가 선택하는 삶도, 간택하는 운명도 다 뭔 상관인지. 어차피 하나의 운명만이 날 간택하잖아. 다른 사람들도 죄다 간택될 특권을 누리겠지. 그러곤 사제가 그러듯이 나를 형제라고 불러대고 말이야. 사제는 이걸 이해할까? 정말? 어차피 누구나 특권을 누릴 뿐이야. 누구든 언젠간 사형 선고를 받게 돼. 사제도 사형 선고받게 될걸? 살인으로 기소됐다가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고 사형을 선고받은들 무슨 상관이야? 살라마노 개는 그 아내만큼이나 의미 있었어. 자동인형 같은 작은 여성은 마송이 결혼한 파리 여성만큼이나, 나랑 결혼하길 바랐던 마리만큼이나 유죄였고. 셀레스트보다 못난 레몽이 그 못지않은 내 친구라 한들 뭐 어때? 마리가 오늘 다른 뫼르소와 키스한들 뭔 상관이야? 저 사형수가 이걸 이해할까? 그리고 내 미래 깊숙이… 숨 막혀 하면서도 이 모든 걸 말했다. 그런데 벌써 사제를 내 손에서 빼냈다. 교도관들은 내게 경고했다. 한편, 사제는 교도관들을 진정시키고 나를 잠깐 말없이 바라봤다. 사제는 눈물로 가득했다. 뒤돌아서더니 가버렸다.

 

 

사제가 떠나고, 나는 평온을 되찾았다. 지쳐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잠이 든 것 같다. 일어나자 별빛이 얼굴을 밝혀줬으니. 들판 소리가 여기까지 올라왔다. 밤 냄새, 흙냄새, 소금 냄새가 관자놀이를 식혔다. 잠든 여름이 선사하는 경이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내 안에서 차올랐다. 그 순간, 밤이 끝날 무렵,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와는 이제 영원히 무관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렸다. 참 오랜만에 처음으로 엄마를 생각했다. 왜 삶을 마치실 무렵 ‘약혼자’를 두셨는지, 왜 다시 시작해보려고 하셨는지 이해가 갔다. 거기, 거기서도, 생명이 꺼져가는 양로원 주변에서도 저녁은 쓸쓸한 휴식 같았다. 죽음이 임박하자, 엄마는 이제 자유로워졌다고, 모든 걸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됐다고 느끼셨다. 누구도, 그 누구도 엄마를 두고 슬퍼할 권리가 없다. 나도 모든 걸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된 기분이었다. 마치 이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씻겨내고 희망을 비워냈다는 듯, 징조와 별로 가득한 밤 앞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 나와 그토록 닮았다니, 형제나 다름없다니, 나는 행복했고, 또 행복하구나. 이제 다 이루어지도록, 덜 외롭도록, 사형 집행일에 많은 관중이 몰려와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이해주길 바랄 뿐.

 
 

Deuxième partie

 

V (continue)

 

C'est à un semblable moment que j'ai refusé une fois de plus de recevoir l'aumônier. J'étais étendu et je devinais l'approche du soir d'été à une certaine blondeur du ciel. Je venais de rejeter mon pourvoi et je pouvais sentir les ondes de mon sang circuler régulièrement en moi. Je n'avais pas besoin de voir l'aumônier.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j'ai pensé à Marie. Il y avait de longs jours qu'elle ne m'écrivait plus. Ce soir-là, j'ai réfléchi et je me suis dit qu'elle s'était peut-être fatiguée d'être la maîtresse d'un condamné à mort. L'idée m'est venue aussi qu'elle était peut-être malade ou morte. C'était dans l'ordre des choses. Comment l'aurais-je su puisqu'en dehors de nos deux corps maintenant séparés, rien ne nous liait et ne nous rappelait l'un à l'autre. À partir de ce moment, d'ailleurs, le souvenir de Marie m'aurait été indifférent. Morte, elle ne m'intéressait plus. Je trouvais cela normal comme je comprenais très bien que les gens m'oublient après ma mort. Ils n'avaient plus rien à faire avec moi. Je ne pouvais même pas dire que cela était dur à penser.

 

 

C'est à ce moment précis que l'aumônier est entré. Quand je l'ai vu, j'ai eu un petit tremblement. Il s'en est aperçu et m'a dit de ne pas avoir peur. Je lui ai dit qu'il venait d'habitude à un autre moment. Il m'a répondu que c'était une visite tout amicale qui n'avait rien à voir avec mon pourvoi dont il ne savait rien. Il s'est assis sur ma couchette et m'a invité à me mettre près de lui. J'ai refusé. Je lui trouvais tout de même un air très doux.

 

 

Il est resté un moment assis, les avant-bras sur les genoux, la tête baissée, à regarder ses mains. Elles étaient fines et musclées, elles me faisaient penser à deux bêtes agiles. Il les a frottées lentement l'une contre l'autre. Puis il est resté ainsi, la tête toujours baissée, pendant si longtemps que j'ai eu l'impression, un instant, que je l'avais oublié.

 

 

Mais il a relevé brusquement la tête et m'a regardé en face : « Pourquoi, m'a-t-il dit, refusez-vous mes visites ? » J'ai répondu que je ne croyais pas en Dieu. Il a voulu savoir si j'en étais bien sûr et j'ai dit que je n'avais pas à me le demander : cela me paraissait une question sans importance. Il s'est alors renversé en arrière et s'est adossé au mur, les mains à plat sur les cuisses. Presque sans avoir l'air de me parler, il a observé qu'on se croyait sûr, quelquefois, et, en réalité, on ne l'était pas. Je ne disais rien. Il m'a regardé et m'a interrogé : « Qu'en pensez-vous ? » J'ai répondu que c'était possible. En tout cas, je n'étais peut-être pas sûr de ce qui m'intéressait réellement, mais j'étais tout à fait sur de ce qui ne m'intéressait pas. Et justement, ce dont il me parlait ne m'intéressait pas.

 

 

Il a détourné les yeux et, toujours sans changer de position, m'a demandé si je ne parlais pas ainsi par excès de désespoir. Je lui ai expliqué que je n'étais pas désespéré. J'avais seulement peur, c'était bien naturel. « Dieu vous aiderait alors, a-t-il remarqué. Tous ceux que j'ai connus dans votre cas se retournaient vers lui. » J'ai reconnu que c'était leur droit. Cela prouvait aussi qu'ils en avaient le temps. Quant à moi, je ne voulais pas qu'on m'aidât et justement le temps me manquait pour m'intéresser à ce qui ne m'intéressait pas.

 

 

À ce moment, ses mains ont eu un geste d'agacement, mais il s'est redressé et a arrangé les plis de sa robe. Quand il a eu fini, il s'est adressé à moi en m'appelant « mon ami » : s'il me parlait ainsi ce n'était pas parce que j'étais condamné à mort ; à son avis, nous étions tous condamnés à mort. Mais je l'ai interrompu en lui disant que ce n'était pas la même chose et que, d'ailleurs, ce ne pouvait être, en aucun cas, une consolation. « Certes, a-t-il approuvé. Mais vous mourrez plus tard si vous ne mourez pas aujourd'hui. La même question se posera alors. Comment aborderez-vous cette terrible épreuve ? » J'ai répondu que je l'aborderais exactement comme je l'abordais en ce moment.

 

 

Il s'est levé a ce mot et m'a regardé droit dans les yeux. C'est un jeu que je connaissais bien. Je m'en amusais souvent avec Emmanuel ou Céleste et, en général, ils détournaient leurs yeux. L'aumônier aussi connaissait bien ce jeu, je l'ai tout de suite compris : son regard ne tremblait pas. Et sa voix non plus n'a pas tremblé quand il m'a dit : « N'avez-vous donc aucun espoir et vivez-vous avec la pensée que vous allez mourir tout entier ? - Oui », ai-je répondu.

 

 

Alors, il a baissé la tête et s'est rassis. Il m'a dit qu'il me plaignait. Il jugeait cela impossible à supporter pour un homme. Moi, j'ai seulement senti qu'il commençait à m'ennuyer. Je me suis détourné à mon tour et je suis allé sous la lucarne. Je m'appuyais de l'épaule contre le mur. Sans bien le suivre, j'ai entendu qu'il recommençait à m'interroger. Il parlait d'une voix inquiète et pressante. J'ai compris qu'il était ému et je l'ai mieux écouté.

 

 

Il me disait sa certitude que mon pourvoi serait accepté, mais je portais le poids d'un péché dont il fallait me débarrasser. Selon lui, la justice des hommes n'était rien et la justice de Dieu tout. J'ai remarqué que c'était la première qui m'avait condamné. Il m'a répondu qu'elle n'avait pas, pour autant, lavé mon pêche. Je lui ai dit que je ne savais pas ce qu'était un péché. On m'avait seulement appris que j'étais un coupable. J'étais coupable, je payais, on ne pouvait rien me demander de plus. À ce moment, il s'est levé à nouveau et j'ai pensé que dans cette cellule si étroite, s'il voulait remuer, il n'avait pas le choix. Il fallait s'asseoir ou se lever.

 

 

J'avais les yeux fixés au sol. Il a fait un pas vers moi et s'est arrêté, comme s'il n'osait avancer. Il regardait le ciel à travers les barreaux. « Vous vous trompez, mon fils, m'a-t-il dit, on pourrait vous demander plus. On vous le demandera peut-être. -Et quoi donc ? - On pourrait vous demander de voir. - Voir quoi ? »

 

 

Le prêtre a regardé tout autour de lui et il a répondu d'une voix que j'ai trouvée soudain très lasse : « Toutes ces pierres suent la douleur, je le sais. Je ne les ai jamais regardées sans angoisse. Mais, du fond du cœur, je sais que les plus misérables d'entre vous ont vu sortir de leur obscurité un visage divin. C'est ce visage qu'on vous demande de voir. »

 

 

Je me suis un peu animé. J'ai dit qu'il y avait des mois que je regardais ces murailles. Il n'y avait rien ni personne que je connusse mieux au monde. Peut-être, il y a bien longtemps, y avais-je cherché un visage. Mais ce visage avait la couleur du soleil et la flamme du désir : c'était celui de Marie. Je l'avais cherché en vain. Maintenant, c'était fini. Et dans tous les cas, je n'avais rien vu surgir de cette sueur de pierre.

 

 

L'aumônier m'a regardé avec une sorte de tristesse. J'étais maintenant complètement adossé à la muraille et le jour me coulait sur le front. Il a dit quelques mots que je n'ai pas entendus et m'a demandé très vite si je lui permettais de m'embrasser : « Non », ai-je répondu. Il s'est retourné et a marché vers le mur sur lequel il a passé sa main lentement : « Aimez-vous donc cette terre à ce point ? » a-t-il murmuré. Je n'ai rien répondu.

 

 

Il est resté assez longtemps détournée. Sa présence me pesait et m'agaçait. J'allais lui dire de partir, de me laisser, quand il s'est écrié tout d'un coup avec une sorte d'éclat, en se retournant vers moi : « Non, je ne peux pas vous croire. Je suis sûr qu'il vous est arrivé de souhaiter une autre vie. » Je lui ai répondu que naturellement, mais cela n'avait pas plus d'importance que de souhaiter d'être riche, de nager très vite ou d'avoir une bouche mieux faite. C'était du même ordre. Mais lui m'a arrêté et il voulait savoir comment je voyais cette autre vie. Alors, je lui ai crié : « Une vie où je pourrais me souvenir de celle-ci », et aussitôt je lui ai dit que j'en avais assez. Il voulait encore me parler de Dieu, mais je me suis avancé vers lui et j'ai tenté de lui expliquer une dernière fois qu'il me restait peu de temps. Je ne voulais pas le perdre avec Dieu. Il a essayé de changer de sujet en me demandant pourquoi je l'appelais « monsieur » et non pas « mon père ». Cela m'a énervée je lui ai répondu qu'il n'était pas mon père : il était avec les autres.

 

 

- Non, mon. fils, a-t-il dit en mettant la main sur mon épaule. Je suis avec vous. Mais vous ne pouvez pas le savoir parce que vous avez un cœur aveugle. Je prierai pour vous.

 

 

Alors, je ne sais pas pourquoi, il y a quelque chose qui a crevé en moi. Je me suis mis à crier à plein gosier et je l'ai insulté et je lui ai dit de ne pas prier. Je l'avais pris par le collet de sa soutane. Je déversais sur lui tout le fond de mon cœur avec des bondissements mêlés de joie et de colère. Il avait l'air si certain, n'est-ce pas ? Pourtant, aucune de ses certitudes ne valait un cheveu de femme. Il n'était même pas sûr d'être en vie puisqu'il vivait comme un mort. Moi, j'avais l'air d'avoir les mains vides. Mais j'étais sûr de moi, sûr de tout, plus sûr que lui, sur de ma vie et de cette mort qui allait venir. Oui, je n'avais que cela. Mais du moins, je tenais cette vérité autant qu'elle me tenait. J'avais eu raison, j'avais encore raison, j'avais toujours raison. J'avais vécu de telle façon et j'aurais pu vivre de telle autre. J'avais fait ceci et je n'avais pas fait cela. Je n'avais pas fait telle chose alors que j'avais fait cette autre. Et après ? C'était comme si j'avais attendu pendant tout le temps cette minute et cette petite aube où je serais justifié. Rien, rien n'avait d'importance et je savais bien pourquoi. Lui aussi savait pourquoi. Du fond de mon avenir, pendant toute cette vie absurde que j'avais menée, un souffle obscur remontait vers moi à travers des années qui n'étaient pas encore venues et ce souffle égalisait sur son passage tout ce qu'on me proposait alors dans les années pas plus réelles que je vivais. Que m'importaient la mort des autres, l'amour d'une mère, que m'importaient son Dieu, les vies qu'on choisit, les destins qu'on élit, puisqu'un seul destin devait m'élire moi-même et avec moi des milliards de privilégiés qui, comme lui, se disaient mes frères. Comprenait-il, comprenait-il donc ? Tout le monde était privilégié. Il n'y avait que des privilégiés. Les autres aussi, on les condamnerait un jour. Lui aussi, on le condamnerait. Qu'importait si, accusé de meurtre, il était exécuté pour n'avoir pas pleuré à l'enterrement de sa mère ? Le chien de Salamano valait autant que sa femme. La petite femme automatique était aussi coupable que la Parisienne que Masson avait épousée ou que Marie qui avait envie que je l'épouse. Qu'importait que Raymond fût mon copain autant que Céleste qui valait mieux que lui ? Qu'importait que Marie donnât aujourd'hui sa bouche à un nouveau Meursault ? Comprenait-il donc, ce condamné, et que du fond de mon avenir... J'étouffais en criant tout ceci. Mais, déjà, on m'arrachait l'aumônier des mains et les gardiens me menaçaient. Lui, cependant, les a calmés et m'a regardé un moment en silence. Il avait les yeux pleins de larmes. Il s'est détourné et il a disparu.

 

 

Lui parti, j'ai retrouvé le calme. J'étais épuisé et je me suis jeté sur ma couchette. Je crois que j'ai dormi parce que je me suis réveillé avec des étoiles sur le visage. Des bruits de campagne montaient jusqu'à moi. Des odeurs de nuit, de terre et de sel rafraîchissaient mes tempes. La merveilleuse paix de cet été endormi entrait en moi comme une marée. À ce moment, et à la limite de la nuit, des sirènes ont hurlé. Elles annonçaient des départs pour un monde qui maintenant m'était à jamais indifférent.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j'ai pensé à maman. Il m'a semblé que je comprenais pourquoi à la fin d'une vie elle avait pris un « fiancé », pourquoi elle avait joué à recommencer. Là-bas, là-bas aussi, autour de cet asile où des vies s'éteignaient, le soir était comme une trêve mélancolique. Si près de la mort, maman devait s'y sentir libérée et prête à tout revivre. Personne, personne n'avait le droit de pleurer sur elle. Et moi aussi, je me suis senti prêt à tout revivre. Comme si cette grande colère m'avait purgé du mal, vidé d'espoir, devant cette nuit chargée de signes et d'étoiles, je m'ouvrais pour la première fois à la tendre indifférence du monde. De l'éprouver si pareil à moi, si fraternel enfin, j'ai senti que j'avais été heureux, et que je l'étais encore. Pour que tout soit consommé, pour que je me sente moins seul, il me restait à souhaiter qu'il y ait beaucoup de spectateurs le jour de mon exécution et qu'ils m'accueillent avec des cris de haine.

 

* * *

 

간단한 노트. 끝났다! 당분간 자체적으로 교정 및 편집을 거친 뒤 합본을 만들 예정이다. 그때까진 여기저기 수정될 수 있으니, 이 번역본을 사용할 경우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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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번역 2-5 (1)

이 번역은 1942년 갈리마르에서 출간된 L'étranger를 원본으로 삼으며, 때로 이휘영, 김화영, 이기언, 김예령, 이정서 번역을 참고한다.

 

한국에서 L'étranger 원본의 저작권은 소멸했다. 이 번역본은 무료로 배포 가능하다. 단, 영리 목적 사용은 불가능하며, 일부나 전부를 어떠한 형태로도 가공 내지 수정할 수 없다. 어차피 카뮈의 간결함을 한국어로 살려본답시고 내 멋대로 의역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게까지 신뢰할 만하진 않다.

 

 

제2부

 

V

 

부속 사제 방문을 거절했다. 세 번째 거절이었다. 할 말도 없고, 이야기 나누고 싶지도 않고. 어차피 조만간 보게 되리라. 요즘 내 관심은 어떻게 저 기계장치를 모면할지에 쏠려 있다. 불가피한 일에도 빠져나갈 길이 있을지. 감방을 옮겼다. 여기서 누우면 하늘이 보인다. 하늘만 보인다. 매일 같이 하늘의 얼굴빛이 낮에서 밤으로 기울기만 종일 바라본다. 누운 채, 머릿밑에 두 손을 괴고, 기다린다. 사형수 중에 저 냉혹한 장치를 모면한 사람이, 집행 전에 사라진 사람이, 경찰 경계선을 끊어낸 사람이 과연 있을지 얼마나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사형 집행에 관한 이야기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후회됐다. 그런 문제엔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엇이 닥쳐올지 결코 알 수 없다. 나도 신문에 실린 관련 기사는 더러 읽었다. 하지만 내가 호기심이 강하지 않아서 그렇지, 분명 전문 서적도 있을 테다. 전문 서적에는 탈출 사례가 소개됐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 번쯤은 바퀴가 멈춰 서지 않았을까? 이 불가항력의 계획이 진행되던 와중에, 우연과 운이 따라, 딱 한 번이라도 무언가 바뀌었을 지도. 단 한 번! 어쩌면 그 한 번이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내 마음이 알아서 하리라. 신문은 사회에 진 빚을 자주 언급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 빚을 갚아야 했다. 그런데 그건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했다. 중요한 건 탈출 가능성이었다. 냉혹한 의식을 뛰어넘는 도약, 희망할 기회를 활짝 열어주는 광란의 질주. 물론 희망이라고 해봤자, 달려가던 중 대뜸 총을 맞아 골목에서 쓰러지는 것이겠지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사치를 누릴 수 없었다. 완전히 금지당했다. 기계장치가 나를 도로 붙잡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무례한 확신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확신의 근간이 된 판결과, 판결이 선고된 때부터 흔들리지 않고 계속된 전개 사이에 터무니없는 불균형이 있었던 까닭이다. 판결문을 오후 다섯 시가 아닌 저녁 여덟 시에 낭독했다는 점이나, 완전히 다른 내용의 판결일 수 있었다는 점이나, 내의를 갈아입어야 하는 사람들이 판단했다는 점이나, 프랑스 인민(아니면 독일 인민, 중국 인민)이라는 모호한 관념에 기대어 판결을 내렸다는 점을 모두 감안하면, 그토록 중요한 결정인데도 진지함이 많이 날아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럼에도 일단 내려지고 나면, 그 순간부터 판결은 내가 온몸을 짓눌러대는 이 벽의 존재만큼이나 명백하고 진지한 효력을 지녔다.

 

 

그러다 엄마가 해주시던 아버지 이야기가 하나 생각났다. 아버지와는 안면부지였다. 내가 아는 거라곤 엄마가 들려주신 이야기밖에 없었다. 그는 살인자 사형 집행을 보러 갔다. 갈 생각을 하니 속이 메스꺼웠단다. 그래도 보러 갔었고, 돌아오는 길에 토했다. 아침이었는데 한참 토한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조금 역겨웠다. 이제는 이해가 갔다. 그게 참 당연했다. 사형 집행만큼 중요한 건 없고, 결국 사람이 진정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라곤 사형 집행밖에 없다는 걸 왜 여태 깨닫지 못했을까! 만에 하나 교도소에서 나가게 된다면, 사형 집행은 모조리 보러 다니리라. 나갈 가능성을 고려하다니, 실수였다. 어느 이른 아침 경찰 경계선을 넘어서게 된다고, 그러니까 반대편으로 나가게 된다고 생각만 해도, 내가 사형 집행을 구경하러 왔다가 나중에 토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만 해도 독을 탄 기쁨의 물결이 마음에 차올랐으니까. 그런데 이건 이성적이지 않았다. 이런 가설을 세우도록 나 자신을 가만 놔둔 건 실수였다. 곧이어 지독할 만큼 추웠으니. 담요 밑으로 움츠러들어야 했다. 덜덜 떨리는 이를 멈출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언제나 이성적일 수는 없다. 예컨대 나는 가끔 법안을 만들어보곤 했다. 형벌 제도를 수정했다. 사형수에게 기회를 주는 게 핵심이었다. 천 분의 일 확률이면 문제를 개선하는 데 충분했다. 환자(나는 사형수가 ‘환자’1라고 생각했다)를 열에 아홉 죽일 수 있는 화학 약품을 만들면 될 것처럼 보였다. 환자도 그걸 안다는 게 조건이었다. 한 번 꼼꼼하고 차분하게 검토해보자. 날을 떨어뜨리는 방식은 어떠한 기회도, 그 어떠한 기회도 주지 않는다는 결함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가. 재고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환자의 죽음을 결정했다. 종결된 사건, 확고한 결합, 돌이킬 수 없는 합의였다. 만약 놀랍게도 날이 빗나가면, 다시 시작할 뿐이었다. 그러면 상황이 조금 난처해지겠지. 사형수는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길 바라게 될 테니까. 이게 바로 단두대의 결함이었다. 어떤 관점에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게 바로 좋은 조직의 비결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형수도 결국 정신적으로 협력해야 했다. 그도 모든 일이 사고 없이 진행되길 바라게 됐다.

 

 

게다가 나는 이 문제들에 관해 여태 부정확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두대 앞에 서기 위해서는 단으로 된 사형대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계단을 딛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 1789년 혁명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이 문제에 관해 지금껏 배우거나 본 모든 것들 때문에.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크게 화제가 됐던 어떤 사형 집행 당시 신문에 실렸던 사진 한 장이 기억났다. 사실 기계는 땅바닥에 그대로 놓였다. 그보다 간단할 순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좁았다. 더 일찍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이상할 정도였다. 사진에 실린 기계는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깔끔하고, 번쩍거렸다. 인상적이었다. 우린 언제나 모르는 걸 과장해서 생각한다. 모든 것은 오히려 간단했다. 기계는 다가오는 사람과 같은 높이에 있다. 사형수는 마치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가듯 기계에 다가선다. 역시 난처한 상황이었다. 사형대를 오르고, 광활한 하늘을 향해 상승한다면 상상력이 매달릴 수라도 있었다. 한편, 여기선 기계장치가 또다시 모든 걸 짓눌렀다. 조심스럽게, 약간 수치스럽게, 무척 정교하게 죽임을 당했다.

 

 

늘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하며 지냈다. 새벽과 상고. 그래도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거기에 정신을 쏟고자 애썼다. 하늘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저녁이었다. 다시 생각의 흐름을 돌려보려고 했다. 내 심장에 귀를 기울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해온 이 소리가 언젠간 멈출 수 있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제대로 상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심장 박동이 머리에까지 미치지 않을 찰나를 떠올려보려고 시도했다. 헛수고였다. 새벽이나 상고가 여전히 머리에 맴돌았다.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가장 이성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새벽에 온다. 결국 그 새벽을 기다리며 밤을 보냈다. 갑작스레 놀라는 건 질색이었다. 무언가가 닥칠 때 맨정신인 게 낫다. 그러다 보니 낮에만 잠깐 눈을 붙였고, 밤은 지새웠다. 하늘에 난 창으로 빛이 태동하기만을 끈기 있게 기다렸다. 그들이 으레 작업을 치르는 시간 즈음이 가장 힘들었다. 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렸고, 동정을 살폈다. 내 귀가 이토록 많은 소리를 감지한 적은 없었다. 그토록 작은 소리를 분간한 적도. 게다가 어떤 면에선 나는 그 기간 내내 운이 좋았던 셈이다. 발걸음 소리를 들은 적은 없으니. 엄마는 우리가 전적으로 불행해지지는 않는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다채롭게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과 감방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보며, 감방에 앉은 채, 엄마 말씀에 수긍했다. 얼마든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수도 있었다. 내 심장이 터져버렸을지도 모른다. 비록 자그만 기척에도 문가로 달려갔지만, 비록 귀를 나무에 갖다 댄 채 내 숨소리가 들리기를 실성한 듯이 기다렸지만, 숨소리가 흡사 개 헐떡이듯 쉬어버려 놀랐지만, 심장은 결국 터지지 않았다. 또 스물네 시간을 벌게 됐다.

 

 

낮에는 종일 상고를 생각했다.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생각을 뽑아낸 것 같다. 제각각 어떤 효과가 있는지 따졌고, 가장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 항상 최악을 가정했다. 상고 기각. “그럼 죽는 거지, 뭐.” 다른 사람들보단 먼저 죽겠지. 분명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 사실 서른에 죽든 일흔에 죽든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당연하다. 어찌 됐든 다른 남성이나 여성이 살아갈 테니까. 수천 년 동안 그런 식일 것이다. 결국 이보다 명백한 건 없었다. 지금 죽든 20년 후에 죽든, 죽는 건 여전히 나였다. 그 순간, 20년을 더 살아간다는 생각에서 끔찍한 비약을 느껴 사유가 조금 방해됐다. 20년 뒤 내가 이 상황에 봉착하게 됐을 때 무슨 생각을 할지 상상해보며 비약을 메꿨다. 일단 죽는다 치면, 언제 어떻게 죽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확실했다. 그러므로(이 ‘그러므로’가 사유에서 표상하는 모든 걸 놓치지 않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므로 상고 기각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순간, 오로지 그 순간, 나한테 일종의 권리가 주어졌다. 두 번째 가설을 다뤄도 된다고 스스로 허락한 셈이었다. 감면. 피와 몸이 솟구치며 터질 듯한 기쁨으로 눈을 따갑게 했다. 가라앉히느라 귀찮았다. 이 외침을 진정시키고 누그러뜨려야 했다. 태연하게 두 번째 가설을 다뤄야 했다. 그래야 어차피 첫 번째 가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보다 잘 수긍할 수 있었다. 마음이 진정되면 한 시간 정도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그거라도 어딘가 싶었다.

 
 

Deuxième partie

 

V

 

Pour la troisième fois, j'ai refusé de recevoir l'aumônier. Je n'ai rien à lui dire, je n'ai pas envie de parler, je le verrai bien assez tôt. Ce qui m'intéresse en ce moment, c'est d'échapper à la mécanique, de savoir si l'inévitable peut avoir une issue. On m'a changé de cellule. De celle-ci, lorsque je suis allongé, je vois le ciel et je ne vois que lui. Toutes mes journées se passent à regarder sur son visage le déclin des couleurs qui conduit le jour à la nuit. Couché, je passe les mains sous ma tête et j'attends. Je ne sais combien de fois je me suis demandé s'il y avait des exemples de condamnés à mort qui eussent échappé au mécanisme implacable, disparu avant l'exécution, rompu les cordons d'agents. Je me reprochais alors de n'avoir pas prêté assez d'attention aux récits d'exécution. On devrait toujours s'intéresser à ces questions. On ne sait jamais ce qui peut arriver. Comme tout le monde, j'avais lu des comptes rendus dans les journaux. Mais il y avait certainement des ouvrages spéciaux que le n'avais jamais eu la curiosité de consulter. Là, peut-être, j'aurais trouvé des récits d'évasion. J'aurais appris que dans un cas au moins la roue s'était arrêtée, que dans cette préméditation irrésistible, le hasard et la chance, une fois seulement, avaient changé quelque chose. Une fois ! Dans un sens, je crois que cela m'aurait suffi. Mon cœur aurait fait le reste. Les journaux parlaient souvent d'une dette qui était due à la société. Il fallait, selon eux, la payer. Mais cela ne parle pas à l'imagination. Ce qui comptait, c'était une possibilité d'évasion, un saut hors du rite implacable, une course à la folie qui offrit toutes les chances de l'espoir. Naturellement, l'espoir, c'était d'être abattu au coin d'une rue, en pleine course, et d'une balle à la volée. Mais, tout bien considéré, rien ne me permettait ce luxe, tout me l'interdisait, la mécanique me reprenait.

 

 

Malgré ma bonne volonté, je ne pouvais pas accepter cette certitude insolente. Car enfin, il y avait une disproportion ridicule entre le jugement qui l'avait fondée et son déroulement imperturbable à partir du moment où ce jugement avait été prononcé. Le fait que la sentence avait été lue à vingt heures plutôt qu'à dix-sept, le fait qu'elle aurait pu être tout autre, qu'elle avait été prise par des hommes qui changent de linge, qu'elle avait été portée au crédit d'une notion aussi imprécise que le peuple français (ou allemand, ou chinois), il me semblait bien que tout cela enlevait beaucoup de sérieux à une telle décision. Pourtant, j'étais obligé de reconnaître que dès la seconde où elle avait été prise, ses effets devenaient aussi certains, aussi sérieux, que la présence de ce mur tout le long duquel j'écrasais mon corps.

 

 

Je me suis souvenu dans ces moments d'une histoire que maman me racontait à propos de mon père. Je ne l'avais pas connu. Tout ce que je connaissais de précis sur cet homme, c'était peut-être ce que m'en disait alors maman : il était allé voir exécuter un assassin. Il était malade à l'idée d'y aller. Il l'avait fait cependant et au retour il avait vomi une partie de la matinée. Mon père me dégoûtait un peu alors. Maintenant, je comprenais, c'était si naturel. Comment n'avais-je pas vu que rien n'était plus important qu'une exécution capitale et que, en somme, c'était la seule chose vraiment intéressante pour un homme ! Si jamais je sortais de cette prison, j'irais voir toutes les exécutions capitales. J'avais tort, je crois, de penser à cette possibilité. Car à l'idée de me voir libre par un petit matin derrière un cordon d'agents, de l'autre côté en quelque sorte, à l'idée d'être le spectateur qui vient voir et qui pourra vomir après, un flot de joie empoisonnée me montait au cœur. Mais ce n'était pas raisonnable. J'avais tort de me laisser aller à ces suppositions parce que, l'instant d'après, j'avais si affreusement froid que je me recroquevillais sous ma couverture. le claquais des dents sans pouvoir me retenir.

 

 

Mais, naturellement, on ne peut pas être toujours raisonnable. D'autres fois, par exemple, je faisais des projets de loi. Je réformais les pénalités. J'avais remarqué que l'essentiel était de donner une chance au condamné. Une seule sur mille, cela suffisait pour arranger bien des choses. Ainsi, il me semblait qu'on pouvait trouver une combinaison chimique dont l'absorption tuerait le patient (je pensais : le patient) neuf fois sur dix. Lui le saurait, c'était la condition. Car en réfléchissant bien, en considérant les choses avec calme, je constatais que ce qui était défectueux avec le couperet, c'est qu'il n'y avait aucune chance, absolument aucune. Une fois pour toutes, en somme, la mort du patient avait été décidée. C'était une affaire classée, une combinaison bien arrêtée, un accord entendu et sur lequel il n'était pas question de revenir. Si le coup ratait, par extraordinaire, on recommençait. Par suite, ce qu'il y avait d'ennuyeux, c'est qu'il fallait que le condamné souhaitât le bon fonctionnement de la machine. Je dis que c'est le côté défectueux. Cela est vrai, dans un sens. Mais, dans un autre sens, j'étais obligé de reconnaître que tout le secret d'une bonne organisation était là. En somme, le condamné était obligé de collaborer moralement. C'était son intérêt que tout marchât sans accroc.

 

 

J'étais obligé de constater aussi que jusqu'ici j'avais eu sur ces questions des idées qui n'étaient pas justes. J'ai cru longtemps - et je ne sais pas pourquoi - que pour aller à la guillotine, il fallait monter sur un échafaud, gravir des marches. Je crois que c'était à cause de la Révolution de 1789, je veux dire à cause de tout ce qu'on m'avait appris ou fait voir sur ces questions. Mais un matin, je me suis souvenu d'une photographie publiée par les journaux à l'occasion d'une exécution retentissante. En réalité, la machine était posée à même le sol, le plus simplement du monde. Elle était beaucoup plus étroite que je ne le pensais. C'était assez drôle que je ne m'en fusse pas avisé plus tôt. Cette machine sur le cliché m'avait frappé par son aspect d'ouvrage de précision, fini et étincelant. On se fait toujours des idées exagérées de ce qu'on ne connaît pas. Je devais constater au contraire que tout était simple : la machine est au même niveau que l'homme qui marche vers elle. Il la rejoint comme on marche à la rencontre d'une personne. Cela aussi était ennuyeux. La montée vers l'échafaud, l'ascension en plein ciel, l'imagination pouvait s'y raccrocher. Tandis que, la encore, la mécanique écrasait tout : on était tué discrètement, avec un peu de honte et beaucoup de précision.

 

 

Il y avait aussi deux choses à quoi je réfléchissais tout le temps : l'aube et mon pourvoi. Je me raisonnais cependant et j'essayais de n'y plus penser. Je m'étendais, je regardais le ciel, je m'efforçais de m'y intéresser. Il devenait vert, c'était le soir. Je faisais encore un effort pour détourner le cours de mes pensées. J'écoutais mon cœur. Je ne pouvais imaginer que ce bruit qui m'accompagnait depuis si longtemps put jamais cesser. Je n'ai jamais eu de véritable imagination. J'essayais pourtant de me représenter une certaine seconde où le battement de ce cœur ne se prolongerait plus dans ma tête. Mais en vain. L'aube ou mon pourvoi étaient là. Je finissais par me dire que le plus raisonnable était de ne pas me contraindre.

 

 

C'est à l'aube qu'ils venaient, je le savais. En somme, j'ai occupé mes nuits à attendre cette aube. Je n'ai jamais aimé être surpris. Quand il m'arrive quelque chose, je préfère être là. C'est pourquoi j'ai fini par ne plus dormir qu'un peu dans mes journées et, tout le long de mes nuits, j'ai attendu patiemment que la lumière naisse sur la vitre du ciel. Le plus difficile, c'était l'heure douteuse où je savais qu'ils opéraient d'habitude. Passé minuit, j'attendais et je guettais. Jamais mon oreille n'avait perçu tant de bruits, distingué de sons si tenus. Je peux dire, d'ailleurs, que d'une certaine façon j'ai eu de la chance pendant toute cette période, puisque je n'ai jamais entendu de pas. Maman disait souvent qu'on n'est jamais tout à fait malheureux. Je l'approuvais dans ma prison, quand le ciel se colorait et qu'un nouveau jour glissait dans ma cellule. Parce qu'aussi bien, j'aurais pu entendre des pas et mon cœur aurait pu éclater. Même si le moindre glissement me jetait à la porte, même si, l'oreille collée au bois, j'attendais éperdument jusqu'à ce que j'entende ma propre respiration, effrayé de la trouver rauque et si pareille au râle d'un chien, au bout du compte mon cœur n'éclatait pas et j'avais encore gagné vingt-quatre heures.

 

 

Pendant tout le jour, il y avait mon pourvoi. Je crois que j'ai tiré le meilleur parti de cette idée. Je calculais mes effets et j'obtenais de mes réflexions le meilleur rendement. Je prenais toujours la plus mauvaise supposition : mon pourvoi était rejeté. « Eh bien, je mourrai donc. » Plus tôt que d'autres, c'était évident. Mais tout le monde sait que la vie ne vaut pas la peine d'être vécue. Dans le fond, je n'ignorais pas que mourir à trente ans ou à soixante-dix ans importe peu puisque, naturellement, dans les deux cas, d'autres hommes et d'autres femmes vivront, et cela pendant des milliers d'années. Rien n'était plus clair, en somme. C'était toujours moi qui mourrais, que ce soit maintenant ou dans vingt ans. À ce moment, ce qui me gênait un peu dans mon raisonnement, c'était ce bond terrible que je sentais en moi à la pensée de vingt ans de vie à venir. Mais je n'avais qu'à l'étouffer en imaginant ce que seraient mes pensées dans vingt ans quand il me faudrait quand même en venir là. Du moment qu'on meurt, comment et quand, cela n'importe pas, c'était évident. Donc (et le difficile c'était de ne pas perdre de vue tout ce que ce « donc » représentait de raisonnements), donc, je devais accepter le rejet de mon pourvoi.

 

 

À ce moment, à ce moment seulement, j'avais pour ainsi dire le droit, je me donnais en quelque sorte la permission d'aborder la deuxième hypothèse : j'étais gracié. L'ennuyeux, c'est qu'il fallait rendre moins fougueux cet élan du sang et du corps qui me piquait les yeux d'une joie insensée. Il fallait que je m'applique à réduire ce cri, à le raisonner. Il fallait que je sois naturel même dans cette hypothèse, pour rendre plus plausible ma résignation dans la première. Quand j'avais réussi, j'avais gagné une heure de calme. Cela, tout de même, était à considérer.

 

 

* * *

 

간단한 노트. 거의 끝나간다! 'patient'을 일단 '환자'라고 옮겨놓긴 했는데 아마 각주가 필요한 번역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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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뫼르소는 사형수를 ‘patient’으로 지칭한다. 오늘날 ‘환자’라는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지만, 간혹 ‘수형자’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patient’이 ‘고통받는 자’, ‘감내하는 자’라는 라틴어인 ‘patiens’에서 파생된 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뫼르소가 사형수더러 ‘patient’이라고 할 때는, 사형수가 마치 환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수형자로서 성질도 드러내고, 사형수가 고통받고, 감내하는 자라는 점 또한 은연중에 드러낸다.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