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21

from 분류없음 2013/02/22 00:47

문득 김현식을 듣고 싶었다. 한참 가요 듣기에 빠져 지내던 80년대 후반, 용돈을 모아 샀던 테이프는 아마 그의 3집이었을텐데. 유투브를 뒤지니 누군가 앨범 전체를 이어 들을 수 있도록 올려두었다. 남들 들으라고 이렇게 올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신기한 일.

 

3집이 1986년에 나온 거구나. 중학교 1, 2학년 시절에 들었으니 제법 따끈할 때 들었구나.

 

오랜만에 들으니, 아, 녹음이 아쉽다. 목소리와 악기가 서로 엉겨들지 못하고 겉도는구나. 그랬구나. 그때는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아마 이 음반에서 '눈내리던 겨울밤'과 '비처럼 음악처럼'이 유난히 귀에 들어왔던 것도 바로 이렇게 녹음이 겉돌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드럼 기타 베이스 건반, 이렇게 기본 악기들이, 그저 기본에 충실하게 매우 예상가능한 코드와 아주 단조로운 리듬으로 흘러가고, 그 대신 서걱이는 김현식의 목소리 하나로 아름답디 아름다운 가락에 집중하게 해주는 노래들.

 

그럼에도 3집을 듣는 내내 아쉬움이 멎질 않는다. 무대가 좁아서 마음껏 춤추지 못하는 무용수처럼. 새장이 좁아서 날개를 펼치지 못하는 새처럼. 김현식이 놀기에는 녹음실이 너무 작았다. 네 활개를 펼치고 놀아야 하는데, 그저 어깨만 들썩이고 발만 꿈적이다 만다. 이 사람의 라이브를 딱 한번, 그것도 다른 이의 공연에서 잠시 게스트로 만났던 건 참 아쉽다. 그것도 너무 어릴 적에, 그것도 내 인생 최초의 콘서트에서.

 

유투브에 올린 이가 친절하게 노래마다 작사 작곡가를 적어주어 새삼 들여다본 3집의 작곡가들은 유재하, 장기호, 박성식, 김종진이다. 그러고보니 국민학교를 졸업하면서 이선희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이문세, 들국화, 그리고 이들 동아기획 가수들을 찾아듣기 시작했더랬구나.

 

그땐 딱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유재하는 가리워진 길을, 김종진은 쓸쓸한 오후를 나중에 다시 직접 불렀다. 그리고 나는 김현식 3집과 저 노래들이 담긴 각자의 앨범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머리 속에 저장된 이십년전의 테이프들을 돌려보니, 가리워진 길은 가창력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재하 음반이 압승이다. 유재하는 자기 음반을 만들면서 비로소 자기 곡들이 어떻게 편곡되어야 하는지를 깨달았거나, 비로소 자기가 본래 입히고 싶었던 색을 입힐 기회를 잡은 건지도 모르겠다. 쓸쓸한 오후는, 연주야 당연히 봄여름가을겨울 음반이 훨씬 좋고, 노래야 김현식이 훨씬 잘 불렀지만, 당시 김종진이 그 특유의 우물거리는 소리로 만들어낸 독특함은 또 그 나름의 멋이 있었던 듯.

 

오늘밤, 적적한 보고서 작업에 한때 귓전에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노래들을 유투브에 물어물어 초대해야겠다.

일단 참 사랑스러웠던 봄여름가을겨울 1, 2집의 연주곡들부터... 찾아보니 다 있구나! ㅎㅎ

 

거리의 악사 , 가볍고 예뻐서 내가 만들던 수요일 방송 "우리들의 소리터" 오프닝으로 썼던 곡.

 

못다한 내 마음을, 뭔가 가사를 붙여 노래가 만들어지기 직전의 상태 같으면서도, 묘하게 기타의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는. 연주곡 입문용 곡 같은.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빰빠빠빠 빠~ 그 대목에서 절로 노래하게 하는. 중간중간 기타와 드럼의 깨작거림이 즐거운. 만일 김종진이 (어차피 잘 안되는) 가창을 과감히 포기하고, 전태관과 꾸준히 연주곡의 여러 실험을 해나갔더라면 어드랬을까. 풋풋하던 저 패기가 이십년을 잘 여물었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음악을 즐길 수 있었을까...(아 그들은 그러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ㅎㅎㅎ)

 

근데, 평소 바빠서 안하던 블질도 이렇게 보고서를 쓰느라 밤을 불태우다보면 꼭 한번 하게되는 건,

그거슨 설명할 수 없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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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2 00:47 2013/02/22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