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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 건강'에 대한 관심

   '여성, 노동, 건강'에 대한 관심은 한 전화국 여성 전화교환원을 대상으로 한 근골격계 예방 관리 프로그램에서 시작되었다.  3주에 한 번 산업의학과와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방문해서 진료후 물리치료에 대한 처방을 하면 근무시간중에 사내의 자가물리치료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연구자들이 참여자들에 대해서 비난하는 모습을 꽤 자주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집안일때문에 아픈 것을 회사에 와서 해결해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40대 여성들이 10년이상 일한 작업장에서 연봉 4000만원을 받는 것이 문제처럼 거론되기도 했다. 그들이 50분 일하고 10분이상 휴식하면서 아프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도덕적 해이를 논하고 '그 정도 일하고 아프다고 하면 집에 가서 놀아야지'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때 나는 전공의 일년차였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그런 이야기에 동의하긴 어려웠다. 잘은 모르지만 비난의 근거들은 그들이 여성이라는 데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졌던 의문은 다음과 같다. 한 여성이 집안일와 회사일의 이중부담때문에 많이 아프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공기업에 다니는 숙련된 여성 노동자가 연봉 4000만원을 받는 것을 문제시하는 데에는 여성의 일은 보잘 것없다는 생각이 숨어있는 것 아닌가?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팔자좋은 여자들이 왜 아플까?

 

  그 뒤로 몇년동안 내가 알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그 여성 전화교환원들은 그 때 하루 8시간 작업하는 동안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휴식도 없이 170Cm, 70Kg 남성을 표준으로 설계된 작업대에서 컴퓨터 단말기 작업을 10년이상 한 결과, 신종 직업병이라 불리우던 경견완장애가 집단 발생하여 수백명이 산재요양을 했다(아래 사진은 한국통신(현 KT)노동조합 홈피에서 퍼온  114 분사 저지 투쟁 모습- 그런데 왜 하필 114가 분사의 대상이 되었을까?)

 

 

  일단 10년동안 만성화된 통증은 그 어떤 치료에도 좋아지지 않았다.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민해 보였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은 고객상담작업의 높은 직무스트레스와 만성화된 통증의 결과인 것 같았다. 논란이 되었던 가사노동은 발병당시에는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판단하기 어려우나 적어도 환자가 된 이후에는 가사노동을 거의 할 수가 없게 되어 가사관리인이나 가족인 노인 여성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앞에서 죄인처럼 쩔쩔 맸고 어떤 사람들은 화를 내기도 했다. 의사를 만나러 오는 것은 치료에 대한 기대때문이 아니라  작업중에 한시간이라도 쉴 수 있도록 물리치료처방전을 받는 데 있는 것 같았다.  

 

  일하는 여성의 건강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두 아이의 출산경험과 관계가 깊다. 임신기간과 수유기에는 태아의 건강뿐 아니라 일하는 여성의 건강보호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수많은 자료를 찾아 읽었고 그 결과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적대적인 것이 도가 지나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낳고 나서 설명할 수 없이 몸이 많이 아팠고, 가정과 일의 이중부담은 내 정신을 황폐하게 했다.

 

  그 무렵 읽은 책이 카렌 메씽의 One Eyed Science: Occupational Health and Women Workers.이다.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만 하는 카렌 메씽을 보면서 "그래, 바로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야" 하고 결정해버렸다(메씽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아래 사진 클릭하세요). 

 

 

  그렇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은 별로 좋지 못했다. 아이들도 자주 아팠고 병원일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박사학위논문은 이런 사정으로 지연되었다. 몇번이나 그만두려고 했는데 잘 하든 잘 못하든 그것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한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하느라 진 빚을 갚기 위해서는 계속 일을 해야했고 육아와 병행가능한 다른 일자리를 집근처에서 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냥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그러다가 2002년 스톡홀름에서 세계 여성 건강 학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떠났다. 거기서 카렌 메싱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탈리아 여성 연구자들이 의욕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건강에 대한 여성주의적 실천에 대해서 소개를 했을 때 카렌 메씽은 이렇게 질문했다. "그 프로젝트에 필요한 시간과 돈은 어떻게 마련합니까?". 사실 나는 그 발표를 들으면서 '저 사람들은 아이가 없나 보네, 아무리 보육제도가 잘 되어 있어도 저런 일을 하려면 저녁 시간을 내야 해야 할텐데 말이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러워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여성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을 쥐어짜서 이루어진다는 답변을 듣고 카렌 메씽이 한 말은 " 그것은 삼중 부담이므로 바람직하지 않고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였다. 쥐어짜면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생활에 찌든 나에게 복음과 같은 말이었다. 

 

  나는 이년전에 이 경험을 정리해서 박사논문을 썼다. 내가 가졌던 의문과 그에 대한 답을 담아보고 싶었지만 학문적으로 괜찮은 논문은 아닌 것 같다. 여러가지 이유로 논문에 전념할 수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 하지만 쥐어짜면서 살아가는 것에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으리라. 지난 몇 달 동안 그 논문을 학회지에 싣기 위해(이제야!) 수정작업을 해 왔다. 오늘 일차 사독 회신을 보내는데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눈에 띄어 어디에 숨겨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년전보다 내 조건은 많이 좋아졌는데, 특히 요즘들어 좀처럼 집중해서 일하지 못하고 있다. 관심만 가지고 있을 뿐 여성 노동 건강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와 실천은 그다지 이루어 진 것이 없다. 조건이 조금 좋아지니 절박함이 줄어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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