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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됨, 선생노릇

  #1. 원래 지난 주에 있었던 의대 풍물패 여름 전수에 내내 결합할 생각이었으나 급하게 시작된 미군기지 주변지역 주민건강조사 준비때문에 그냥 하루 저녁만 같이 지냈다. '교양'시간에 한마디 하라길래 무상의료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더니 대부분이 1,2학년인 학생들은 생경해한다. 



   공연은 딱 한 번 잠깐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좀 실망했던 게 사실이다.  텔레비젼 코메디물의 말장난같은 것이 이어지는데 까르르 까르르 웃는 학생들 틈에서 혼자 갸우뚱했었다.

   이번에 가까이서 지켜보니 그 때와 느낌이 다르다.  벽에 붙여놓는 종이에 모두가 나누어 해야 할 일과 생활수칙이 적혀있었는데  '먼저 웃으면서 말걸기' 가 기억에 남는다. 그외에도 진솔한 수칙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까먹었다. 보안동지(마니또의 우리말이라 하더군요)를 정하고 그날 하루 서로를 얼마나 배려했는가를 확인하면서 웃으며 건배하기도 하고 반성하면서 벌주를 마시기도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사물과 현상이 '관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선생됨'도 '관계'속에서 변화발전하는 것이다. 가을 공연은  보러가게 될 것 같다.  물론 누리와 붕어도 함께. 이번 여행은 누리와 붕어도 함께 했고 공연때 만나기로 약속했거든요^^. 

 

  #2. 어제는 미군기지 주변 주민건강조사 첫 날이었다. 어제의 과제는 마을별로 주민건강조사를 홍보, 참여를 유도하고 모집단을 파악하는 것이었는데 천안에서 아침 5시 50분에 출발했다. 참가자는 연구원 둘, 전공의 하나, 학생조사원 다섯, 나.

    사실 나는 학생조사원을 참여시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학생들을 데리고 이런 조사에 나오면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당연히 느끼는 데 이 조사가 워낙 촉박하게 이루어지고 실무적으로 챙길 게 많아서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변명을 하나 더 하자면 꼭 해야 하는 일 아니면 피하는 것은 가정과 직장의 이중부담이 버거운 나의 불가피한 생존기술이다. 하지만 학생교육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연구책임자가 강력히 주장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학생조사원들을 첫 대면했을 때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것을 보고 '농촌이라 보수적일 텐데 저런 차림으로 다녀도 괜찮을까?'하는 걱정을 했다. 한편 평소 감각있게 옷을 입고 다니던 90년대 중반 학번의 연구원, 타마라는 이 조사를 위해 수수한 모양의 남방을 사 입고 왔다.    

    학생조사원들은 지난 번 고성 폐탄광 주변 주민건강조사 때도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고 알고보니 전현직 학생회 간부들이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집단이 학생인데, 얼마남지 않는 방학에 다른 할 일도 많은데, 땡볕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조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기특하고 또 기특하다. 

 

#3. 주민건강조사에 참여하기로 하여 석사급 연구원 두 명이 천안에 와 있다. 학부에서 약학을 하고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타마라는 깔끔하게 일처리를 잘 해주어서 너무너무 고맙다. 보건사회학을 계속 공부하겠다는 타마라에게 이 경험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내가 어떤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가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여의사 취업차별 철폐를 위한 모임, 난킴스에서 만나 몇년째 함께 세미나도 하고 놀기도 했던 레드는 요즘 진로문제로 풀이 많이 죽어 있는데 이 조사연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힘을 얻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 두 사람이 여기서 실무적인 일만 잔뜩 하고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나한테 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들의 취미가 공부이다. ㅋㅋㅋ

 

#4. 일년차 전공의 선생한테는 주로 야단을 치게 된다. 일부러 험상궂게 이야기 하기도 하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그를 대할 때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잘못된 점은 분명하고 간결하게 지적하고 칭찬과 격려를 하는 게 참 어렵다. 그래서 최소한 내가 짜증나고 화가 나서 야단치는 일은 없도록 주의하고 있다.

   내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할 것. 네이버나 유비통신 수준의 레퍼런스 말고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말하는 습관을 기를 것.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사전에 의논해서 조정할 것.

   전공의에 대해서 세 번 이야기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항상 옳다는 법도 없고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배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내가 투여할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이기도 하다.  

   어제 일년차 전공의가 내 한계를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내 마음도 많이 다쳤다. 내 마음이 회복되어서 알량한 의무감을 가지고 다시 잔소리꾼으로 나서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5.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교육에 관한 토론을 하는데 한 사회학자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내가 경험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새겨두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들한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려는 순간 나를 긴장하게 하고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해주는 말이다. 어쩌다가 선생이 되고 나서 괴로울 때마다 그 말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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