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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조절

   #1. 4일에 걸쳐 하루에 약 백명씩 특검을 하는 회사가 있는데 오늘이 그 세 번째 날이다. 올해부터 내가 특검을 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럼 이제 병원내에 있겠네, 좀 편해지겠네'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소위 출장 검진이라는 것을 한다. 사업주들은 라인을 세우지 않고 노동자에겐 검진을 위한 휴가가 없기 때문이다. 

 



   현장 관리자들로부터 검진 빨리 안 끝난다고 독촉이 오기 마련이다.  일년에 한 번 검진하는 날 평상시와 같은 생산량을 맞추겠다고 하는 걸 보면 출장검진 자체를 확 없애버려야 한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병원으로 오라면 올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지.

 

  마음같아서는 의사랑 별로 할 이야기 없는 사람들은 그냥 가라고 하고 싶다. 나도 같은 이야기 반복해서 하는 게 목 아프고 지겹다. 그런데 그냥 하는 이유는 그러다보면 의사와 이야기하겠다고 남는 사람들한테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문진표만 확인하고 10초안에 보내고 필요한 사람만 문진과 이학적 검사를 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결론은 하나다. 생산량을 그대로 둔 채 검진을 하는 한 현장 관리자들의 불만은 줄어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속도조절은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니고 사업주가 해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2. 한편으로 검진을 너무 자주 많이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회사는 돈 좀 있다고 별의별 검진을 다 한다. 소음 수준도 별로 높지 않은데 청력검사를 6개월 주기로 하고 송기식 호흡용 보호구 착용 적합성 평가를 위해 일년에 한 번씩 폐기능 검사를 해당자 전원에 대해서 한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매년 수백만명이 검진을 받는 나라는 우리나라나 일본 뿐이다. 

 

  질병이 생기지 않게 건강을 지원하는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데는 무심하고(일차예방),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데 치중하는 데(이차예방) 회의가 든다. 보건관리자 말을 들어보면 이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돈을 많이 주기 때문에 웬만한 건 돈으로 해결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 같다.    

 

  조직적 수준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도무지 절제란 것을 모르고 자신이 할 것은 다 하면서 건강을 끔찍히도 생각해서 매년 값비싼 종합검진을 받은 뒤 나더러 같은 설명을 반복해달라고 할 때 정말 입을 열기가 싫어진다.

 

  검진은 빠르고 단순하다. 건강을 지원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느리고 복잡하다. 개인수준에서도 엄청난 자기 절제와 노력이 필요하고 조직적으로도 여러 부문의 논의와 조정이 필요하다.

 

  검진 짬짬이 읽으려고 꺼낸 책의 제목이 이반 일리히의 '그림자노동'인데, 서론과 첫장을 읽어보니 그런 회의가 더 증폭된다. 아 책 다 읽으면 전업해야 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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