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학회참가기

 학회가 제주도에서 있었다.  전날 휴가를 내고 붕어랑 조카랑 데리고 비오는 한라산에 올랐다.  성판악으로 올라서 관음사로 내려왔다.  아침 10시 출발. 저녁 6시 끝.  일행이 두 명 더 있었는데, 낙타와 꼬마낙타.   낙타가 내가 기획한 심포지움의 발제자였는데, 발제문을 보내면서 산에 한 번 가고 싶다고 불쌍한 어조(?)로 편지를 보내와 구제해주는 셈 치고 같이 가게 되었다.  낙타는 처음에 유부남 유부녀가 둘만 산에 가도 되겠냐고 했었다. ㅋ.  중간에 아들과 조카가 합류하게 되었고, 그 집 둘째인 꼬마 낙타도  함께 했다. 꼬마낙타는 붕어랑 학년이 같았다.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12시까지 진달래밭, 1시반까지 백록담에 올라야 해서 쉬지도 않고 올라갔다.  떠날 때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붕어는 진달래밭을 지나 1.5Km지점에서 급기야 눈물을 훔치며 하산하자고 했는데, 그걸 달래서 꼬셔서 결국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부터 붕어는 기분 만땅이 되어 룰루루 랄라 잘 내려왔는데 2Km을 남겨놓고 다리가 풀려서 대피소 수송용 차량을 타고 먼저 내려갔다.  아이들을 먼저 내려보내고 둘이서 내려가다가 중간에 낙타더러 얼른 가서 아이들 챙기라 하고 나 혼자 아무도 없는 산의 어두운 길을 1Km 정도 걸었다.  다리는 아팠지만 기분은 좋았다.   내려와서 제주도에 사는 지인들과 맛난 돼지고기도 구워먹고, 호텔에 돌아와 더 놀고 싶어 안달인 두 꼬마를 달래서 간신히 재웠다. 

 

  둘쨋날, 아침 느즈막히 룸서비스를 불러 아점을 먹고, 11시에 있는 평의회참석, 낙타와 나는 세월을 탓하며 절뚝절뚝 걸어야 했다.   아이들은 사우나에 넣어놓고 이어서 심포지움을 들었는데, 앞의 두 심포지움은 내용이 그저그랬고, 마지막 심포지움은 꽤 괜찮았다. 히, 사실은 내가 기획한 꼭지였당.  발표자나 토론자가 초절정 고수라 참가자들이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고들 해서 기분이 좋았다.  낙타는 그 심포지움의 첫번 째  발제자였기에, 호텔방에서 콕 박혀 닌텐도에 열중하던 아이들을 불러 구경하라고 했는데, 십분도 못 버티고 다시 올라가버렸다.

 

  그거 끝나고 낙타랑 세 아이는 학회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  나는 멀리서 온 토론자들 접대하느라 따로 밥을 먹었는데 밤까지 조카가 꼬맹이 둘을 잘 돌보아주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형이 없는 두 꼬마, 동생이 없는 형아 셋이서 어찌나 쿵짝이 잘 맞는지, 쉼없이 까르륵 까르륵이다.  꼬마 낙타 애비와 붕어 에미가 정신없이 바쁜 사이 아이들은 관광도 마다하고 텔레비젼에 닌텐도에 각종 수다에... 원없이 게으름을 피우며 놀았다.

 

  세쨋날 아침 7시. 드디어 내 발표시간.  삼일을 걸려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었다.  등록은 70명이 했다는데, 전날 화려한 밤을 보냈을 전공의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학회 원로들께서는 맨 앞에 앉아계셨다. 아침잠이 많아 한번도 조찬세미나에 참석해본 적이 없었던 뻐꾸기, 그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이거 아침 잠 없는 원로들을 위한 행사였어?

 

   끝날 무렵엔 오십명 정도 있었는데, 청중의 반응도 좋고 좋은 질문도 나왔고, 행사 마치고 나오는데 나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좀 있어서 어깨가 살짝 으쓱했다.  아참, 제목은 '산업보건연구에서의 성인지적 관점' 이었다.

 

   내 발표 끝나고 부랴 부랴 짐챙기고 아이 셋을 챙겨서 비행기를 탔다. 갈 때는 아이가 둘이었는데, 올 때는 셋이 되었다.  꼬마낙타가 따라 붙었기 때문이다. 얘는 낼 저녁에 서울가는 버스편으로 부치기로 했다.  꼬마 낙타는 혼자서 학회에 남지 않게 되어 신이 났다.  각각 수다쟁이 엄마 아빠를 둔 아이들답게 쉬지도 않고 온 세상의 모든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라.  보물찾기시리즈의 팡이를 좋아하는가 아닌가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 붕어도 만만치 않은 아이인데, 아무래도 내가 낙타의 포스는 따라갈 수 없나 보다.  꼬막 낙타는 그야말로 청출어람이었다!

 

  비행기표가 없어 일찍 와야 해서 끝까지 참여하지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오랜만에 그럭저럭 재미있었던 학회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