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저도 처자식이 있는데

* 이 글은 자일리톨님의 [오늘 든 생각] 에 관련된 글입니다.

  며칠전에 사업장에서 한 젊은 남자가 조퇴를 하고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병원에 가는 것을 보았다. 오늘 그 사업장을 다시 가서 만났는데 그가 하는 말이,

 

" 작년 9월부터 아팠어요. 좀 쉬면 괜찮고... 일하다가 아프면 화장실에 가서 십분 정도 쉬거든요. 그럼 계속 일할 수 있어요 "



나 : " 먼저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겠어요. 같은 작업을 했던 ***씨는 무릎 연골에 손상이 있어서 수술을 했더군요. 단순히 인대가 늘어난 것인지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기 위해서 정밀검사를 받는 게 좋겠어요"

 

그 :(불안한 표정)" 많이 좋아졌는데...... 근데 이거 잔업해도 되나요?"

 

나 :(자신없는 목소리)" 잔업 안하는 게 좋겠지요"

 

그 :(눈을 크게 뜸) : "저도 처자식이 있는데 잔업안하고 어떻게 살아요?"

 

나 : (여전히 자신없는 목소리)

      "일단 정확한 진단을 받은 뒤에 치료방침을 정합시다.

      회사에서 빠른 시일내로 정형외과 전문의 진료를 받도록 조치할 겁니다.

      그때까진 아픈데 무리해서 일하지는 마세요.

      본인의사에 반해서 잔업을 강제로 금지시키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 "이젠 병원가는 거 좀 자제하려고요"

 

나 : "자제라고요?"

 

그 : " 그동안 너무 많이 빠져서...... "

 

   노동자들은 아파도 좀처럼 병원에 가지 않는다. 매일 2시간 잔업까지 하루 10시간 근무해야 겨우 한달 생활비를 댈 수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근무중에 치료받으러 보내고 치료비 부담하겠다고 해도 망설인다.  잔업을 못하게 할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아픈데 잔업은 꼬박꼬박 한다'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회사측과 '아파도 처자식을 먹여살리려면 잔업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노동자들의 입장사이에서 내 공식적인 의견은 이렇다. "안하는 게 회복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가 더 중요하다, 잔업을 못하게 되어 발생하는 문제들도 근골격계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그것이 반드시 건강이 아닐 수 있다. 의사의 역할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여 환자의 판단을 도움으로써 가장 좋은 치료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가부장적 온정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잔업을 하지 않더라도 통상임금을 보전해주어야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말은 할 수 있지만 이를 개별 사업주를 상대로 강력하게 주장할 수는 없다.  또 휘청휘청하는 중소기업에 가서 그런 소리를 한들 씨알이 먹힐 리가 없다. 개별 사업주가 전적으로 책임지기 어려운 현실이다. 산재보상제도가 바뀌어야 해결되는 문제.

 

  이 사업장의 경우 실제로는 환자들이 '근무중 치료'를 받게 되면 4시간정도는 치료받으러 다녀와야 하므로 잔업을 안하는 경우 하루 4시간, 하는 경우 6시간 작업이 될 것이다. 작업시간과 회복기간은 비례할 것이고 노사간의 힘의 관계속에서 작업시간이 결정될 것이다. 

 

  이번주에 이 사업장에서 67명의 근골격계 질환 의심자에 대한 일차 검진을 했는데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처자식이 있는데......" 였다. 깜짝놀라 명단에 적힌 나이를 보면 겨우 스물대여섯. 그 또래 대학생들은 영화도 보러다니고 여행도 다닐텐데 이들은 벌써부터 처자식 부양때문에 골병드는 것을 무릅쓴다.   심하게 아파서 반드시 작업을 중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잔업 안하면 감당할 수가 없어요", "산재하면 70%받아서 어떻게 먹고살아요?", "나하나만 쳐다보는 식구들이 몇 명인데"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대개 그들의 부인들은 어린 아이들을 맡기는 비용이 나가서 버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집에서 이런저런 부업을 해보려고 기를 쓰지만 별 뾰쪽한 수가 없을 것이다. 혹시 운이 좋아 취직을 하더라고 아이를 12시간이상 보육하는 곳을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

 

  우리나라 현실에선 공상처리를 산재은폐로 강력하게 감독하고 휴업급여를 적어도 100%보장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제 때 치료를 받을 수가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