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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끝나는가도 중요하다

  #. 계약해지의 행렬

 

 오늘 오가는 길에 함께 가던 간호사로부터 그동안 해지되었거나 예정인 사업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번 일본인이사의 자존심을 다쳤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한 세탁업체에 이어 알수 없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한 제빵업체, 비용절감을 위해 그만두는 식품제조업체, 작업환경측정 초과를 이유로 항목누락을 빌미로 해지공문을 보낸 인조피혁제조업체, 주기적으로 '협력업체'를 바꾸는 것이 회사관행임을 이유로 해지를 검토중이라고 알려온 깡통제조업체,...... 



  이유는 가지가지이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보건관리대행을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팀의 산업보건서비스의 질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지역사회의 다른 기관과 비교해볼 때 감히 우리가 제일 높은 수준의 질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이 블로그를 자주 찾아오는 모 선생님이 읽고 너잘났다 이렇게 느끼면 어떡하지? - -;;;)

  

  보통은 이런 경우에 팀장이 찾아가서 결정권이 있는 사측 담당자를 찾아가서 술을 사주고 무엇인가를 건네고 그 사업장 떨어져 나가면 내 목도 날라간다고 죽는 시늉들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산업보건 13년차이고 원칙주의자인 우리 팀장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가 이 업무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팀장이라면 해지공문을 받으면 일단 사업장을 방문해서 그동안 우리가 제공한 서비스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우리가 이렇게 개선할 수 있으니 다시 고려해달라고 당부하고 돌아올 것 같다. 그래도 해지해야겠다면 다른 기관에 잘 인수인계를 해주면 되는 것이다. 끝을 어떻게 맺느냐는 우리 측에나 사업장측에나 중요한 것이다. 내가 노력했는데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안되면 할 수 없지만 후회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내 일이 아니다. 내가 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팀장이 아닌 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팀장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과중한 업무부담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산업보건서비스에 대한 수가가 너무 낮기 때문에 일을 무지막지하게 해 보았자 겨우 본전을 맞추는 것이 현실이다.

 

 

  #. 재계약직전에 출산하는 간호사의 고용안정

 

    우리 팀의 계약직 간호사의 출산일을 한달남짓 앞두고 있다. 현재까지 과에서 논의된 바는 계약직 출산휴가는 절대인정할 수 없다는 병원측의 입장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일단 퇴사를 하고 석달뒤에 정규직 티오를 내서 다시 뽑자는 것이지만 어려워 보인다.

 

  그 선생이 입사할 때 병원 간호부장이 정규직 티오전환을 약속했고, 우리 과장도 노력하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계약직 간호사 채용 그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정규직 전환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감수하는 구직자를 채용하거나 우리 업무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사립병원에서 경력 간호사 신규채용이라는 전무후무한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병원의 요직에 있는 사람의 약속과 우리 과장의 기대가 현실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가 그 때 확고하게 반대를 해야 했을까?  

 

  그 선생과 함께 사업장에 나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이라 부드럽지는 않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줄 알고 일욕심도 많고 똑똑한 그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같이 출장을 다니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계약직 출산휴가에 관하여 여성노조같은데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조언을 했었는데 상담결과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정규직 채용의 실날같은 기대를 안고 중간에 그만두어 동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임신한 몸으로 하루에 수십킬로미터씩 운전을 하면서 사업장을 누비고 다니던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뭔가 하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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