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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7/19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김형률을 기억하며...
    금금
  2. 2005/07/14
    2005년 7월 12일(화)
    금금
  3. 2005/06/22
    2005년 6월 21일(화)
    금금
  4. 2005/06/16
    2005년 6월 15일 (수)
    금금
  5. 2005/06/16
    2005년 6월 14일 (화)
    금금
  6. 2005/06/16
    2005년 6월 13일 (월)
    금금
  7. 2005/06/05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금금
  8. 2004/12/19
    코끼리를 쏘다(1)
    금금
  9. 2004/12/19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금금
  10. 2004/12/19
    행복한 날들
    금금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김형률을 기억하며...

알엠님의 [그가 남긴 선물] 에 관련된 글.

염치라는 것이 없어지는 나에게 염치를 알려준 사람.

 

'염치없이 살지마자' 다짐하며, 뚜벅뚜벅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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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2일(화)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예전에는 삼척탄좌의 직원 아파트였다. 6층 높이에 주공아파트가 8개동이 서있다. 산등성이 비탈진 곳에도 집을 지을 만큼 이곳 고한에서 집을 구하기란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떠나고 낡고 허름하게 변해지만, 이곳은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최고의 주거공간이었다.

방이 두 개에 거실과 화장실을 갖춘 이곳은 생활하기에 아무 불편이 없다. 다만 비가 오면 방에 물이 샌다. 3층인데....

지난 주말 서울에 다녀오니 비어있는 방이 연못으로 변해 있었다. 다행히 거실까지는 물이 넘치지 않았다. 주말 내내 걱정이 많았다. 물이 새지 않는 방 하나도 벽에 물이 스며들고 있다.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


이곳의 생활은 익숙한 것에 대한 시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수에 샤워를 하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 찬물에 씻는 다는 것이 처음에는 고역이었다.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 씻는 것이다. 송환에 보면 김선명 선생님이 씻는 장면이 나온다. 물을 조금씩 뿌려가면서....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감옥살이에서 건강을 유지하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겨울에 하는 냉수마찰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였다. 아주 적은 물을 받아서 수건에 물을 적신 다음, 계속 몸을 닦으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몸에서 열이 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내가 씻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먼저 머리를 감는다. 그리고 세수를 하면서 팔에 물을 묻힌다. 그리고 중요 부분을 씻고 발을 씻으면서 허벅지까지 물을 묻힌다. 그리고 다시 가슴에 물을 조금씩 뿌리면서 웃통을 씻고, 마지막으로 물을 온몸에 붓는다. 처음 머리를 감을 때가 제일 힘들지만, 40분 정도 걸리는 씻는 과정은 맨 마지막 온몸에 물을 붓는 데서 보상을 받는다. 뼛속 깊이 전해지는 상쾌함과 청량감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만큼 기분이 좋다.


냉장고를 언제부터 썼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였을 거다.

해발이 높은 이곳은 덥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있는 숙소는 습기가 많다. 자주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반찬 몇 가지가 있는데, 냉장고가 없다 보니 쉬이 상하는 반찬이 있다.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것은 간장에 넣어둔 마늘과 마늘 짱아지, 그리고 또 간장에 담근 고추가 있다. 종종 김과 계란을 사서 반찬을 하지만 두 끼 정도 먹을 양만 산다.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물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먹다 보니 그냥 물도 괜찮다. 처음에는 상희가 냉장고가 없는 것을 걱정했었다. 그러나 지내보니 처음에 조금 불편할 뿐이지 지금은 아무 불편이 없다.


우리는 주변에서 사용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돈을 주고 우리는 소위 생활에 편리한 것들을 산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불편하고 불행하다.

편리한 삶이 행복한 삶일까. 돈이 많은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주 많이 행복할까.

욕심 없이 행복할 수 있는 돈은 어는 정도일까.


처형과 상희가 드디어 책을 냈다.

아주 많이는 아니고 조금만, 상희가 돈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 정도는 팔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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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1일(화)

마음이 급해서인가, 시간은 가는데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풍경을 찍을 겸해서 만항재라는 고개를 찾았다.

 

고한에서 영월 방향으로 가다보면 말 그대로 구불구불한 길을 만나게 된다. 만항재를 가기위해 정암사를 지나 조금 가면 같은 이름의 만항이라는 조그만 마을이 나온다. 열 가구나 될까? 길가에는 외지사람들을 상대로하는 듯한 식당이 몇 개 있다. 이곳까지 사람들이 찾아오는 가 싶지만, 차가 늘어만 만큼 사람들은 어디든지 가지 싶다.

 

 만항에서 차를 몰아 얼마쯤 가면 만항재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정상에는 조그만 가게가 있는데 이곳에서 맛있는 냄새가 살살 풍겨져 온다. 감자전을 굽는 냄새다. 감자를 유독 싫어하는 입성을 가졌지만 이상하게 감자전은 입에 착착 감긴다. 먹거리의 유혹을 참아내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의 맛난 먹거리의 유혹을 그 누구 참을 수 있단 말인가?

 

1인분에 5천원인 감자전을 시켰다. 두 손을 합친 크기 만한 감자전이 두 장 나왔다. 옆에서는 부부인 듯한 남녀가 감자전과 묵을 먹으면서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고 있었다. 막걸리를 남기고 가려 하기에 한 잔 얻어먹고 싶었지만... 차마 입밖에 내지는 못했다.

 

한에 내려온 지 2주가 지났다. 그동안 동생과 아내가 다녀갔다.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외롭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혼자라는 것이 참 편하고 좋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까? 아직은 사람들과의 친분도 없고 겉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점차 나아질거라 믿는다.

 

오늘은 공추위라는 단체에 가서 여러 얘기를 듣고 왔다. 감사 직책을 갖고 있는 분이 방송국이나 프러덕션에서 영상물을 만들자고 여러 번 왔었다고, 소재를 잘 잡아야 할거라고 충고를 했다. 영상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지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송물이 많아서일까?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문제는 있지만 대안의 빈곤을 느낀다.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돈이 모든 것의 가치기준이 되는 것에 대해 아니다 라고 나는 얘기할 수 있을까?

 

언제나 가난했던 사람들에게 욕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지 않을까?

 

경제적 자립이 없는 지방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가?

 

수 십 년 탄광촌으로서의 보상이 카지노라면 그 카지노는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나?

 

카지노는 이곳 사람들의 희망일 수 있는가? 아니라면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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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5일 (수)

핸드폰이 울렸다. 아침 8시 30분! 서울에서는 한참 자고 있을 시간이다. 수도 공사 때문에 오신 분이 몇 번이나 전화를 했었단다. 이런! 간단하다고 한 공사가 오후 2시에야 겨우 끝이 났다. 벽에 구멍을 내고 수도관을 직접 연결하는 대공사(?)였다.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일을 거들었지만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어젯밤 오줌이 급해서 물을 내릴 수 없는 변기에 볼일을 봤다. 생각보다 냄새가 심하게 났다. 공사하러 오신 분이 변기에 수도관을 연결하느라 힘들게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미안한 마음에 담배 2갑을 사드렸다. 점심도...

 

공사가 끝나서 청소를 시작했다. 벽을 뚫어서 거실 바닥에 먼지가 그득했다. 쓸고, 닦고, 또 쓸고, 닦고... 싱크대를 제자리에 놓고, 물을 틀었다. 시원했다. 그런데 싱크대 아래에서 물이 나왔다. 싱크대 아래 문을 열어 보니 물이 빠지는 관이 빠져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물이 나오니 살 것 같았다.

 

짐을 풀었다. 쌀을 씻고, 밥을 했다. 준비해간 반찬 몇 가지를 놓고 밥을 먹었다.

'걸인의 찬, 황후의 밥상'(?)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적혀 있던 구절이 생각났다.

 

서울 생활은 늦은 기상에 밥을 거르기 일쑤였는데, 이곳에서는 밥 때를 챙기게 된다. 외로워서 그런가...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책을 읽게 된다. 불편하진 않다. 오히려 더 좋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온 건지, 신선놀음을 하러 온 건지...

 

푸른영상 사람들한테 쬐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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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4일 (화)

7시에 일어나 정암사까지 걸어갔다. 도로는 좁고, 화물차가 많이 다녀 좀 위험했다. 계곡 물은 탁했고, 돌은 누런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정암사 근처의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이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40분쯤 걸러 정암사에 도착했다. 기분이 맑고 상쾌했다. 산 중턱에 있는 수마노탑에 올라가 삼배를 하고 잠시 쉬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이상해 살펴보니 윗 부분이 모두 잘려 있었다. 아래에서 수마노탑이 잘 보이기 위해 나무를 자른 것 같았다. 부처는 만물에는 불성이 있다 했는데, 불성을 자르다니... 인간은 편하고 쉬운 것만 찾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청소도 해야하고, 이것저것 정리도 해야 하는데... 제일 불편한 것은 씻지 못하는 거다. 땀이 흘러 몸이 끈적끈적한 것이 영 기분이 안 좋다.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나는 불편을 느낀다. 예전에 탄광에 살던 광부 가족들은 물을 길러 다니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는데... 내일이나 되야 물이 나올 것 같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방이라 단단히 탈이 난 모양이다. 수도를 화장실로 직접 연결해서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서 쓰기로 했다. 보일러를 고치느라 돈도 들어갔는데, 결국 보일러는 쓸 수 없게 됐다. 액땜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하루정도 더 참을까 했지만, 영 찜찜해서 친구 집에 가서 씻었다. 기분이 너무 좋다. 사람이 물이 없다면 어떻게 살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너무 졸립다. 빨리 작업에 들어가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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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3일 (월)

이제 고한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빈집을 얻게 되어서 좋아했는데, 수도가 문제다. 앞집에 있는 사람이 아래층에 물이 샌다고 수도를 막아버렸다. 벌써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는데 걱정이다. 내 성격이 급한 것일까? 빨리 생활이 안정되어서 촬영을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96년 결혼 이후로 이렇게 혼자서 생활하기는 처음이다. 상희가 씩씩하게 웃으며 보내줬지만, 아마 눈물을 많이 흘릴 것이다. 착한 상희...... 책이 잘 돼야 할텐데. 몸이 끈적거려서 씻으면 좋겠는데......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했는데, 막상 씻지 않고 잠을 잘 생각을 하니 거시기하다. 공사를 해야 할 정도면 차라리 그냥 딴 집을 얻을 생각인데, 푸른영상에는 뭐라고 얘기하지. 에구! 머리 아프다. 3개월 내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자신감이 용솟음 치다가도 어느 순간 푹 꺼져 버린다.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고한과 카지노, 왕년의 운동가들의 이야기가 의미가 있을까? 고향의 발전에 대해 내가 딴지를 걸 자격이 있을까? <동강은 흐른다>처럼 잔잔하게 마음에 와 닿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데... 어찌됐든 최선을 다해야지. 일헌아! 힘내자! 너는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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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2005년 5월 30일.

여느 날처럼 화장실에 앉아서 담배를 물고 신문을 펼쳤다.

10여 분 뒤 1면에 난 기사에 나는 숨을 멈췄다.

(나는 신문이든 잡지든(책만 빼고) 일단 뒤에서 부터 읽는다.)

 

아는 얼굴이 신문 1면에 있었다. 부고 기사였다.

 

김형률.

 

나는 생전에 그를 두 번 만났다.

20004년 어느 여름, 그는 아버지와 함께 푸른영상을 찾았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의 막바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를 만났었다.

 

원폭2세환우회 회장인 그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했다.

원폭 피폭자의 2세로 태어나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어했다.

 

나는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권력과 자본의 영향을 받지않고, 공중파가 다루지 않는 이 세상 낮은 곳의 이야기,

그러나 꼭 필요한 이야기가 독립다큐멘터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전에 그는 여러 텔레비젼 보도프로에 출연하여 자신과 같은 원폭2세들의 문제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기를 주장했었다.

 

나는 푸른영상이란 곳에 있다. 독립다큐를 만드는 곳.

<상계동 올림픽>과 <송환>이란 다큐멘터리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곳.

 

어지간히도 더웠던 2004년의 여름. 푸른영상을 아버지와 함께 찾아던 그의 모습은

나를 흠칫하게 만들었다.

내 나이 또래로 보였던(나는 신문기사에서 그가 내 동생과 같은 나이란 걸 알게 됐다)

그는 애처로움을 느낄 정도로 말라있었다.

작은 키에 삐쩍 마른 그는 열심히, 정말 열심히 이야기했다.

부산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원폭2세의 문제에 대해 열심히, 정말 열심히 이야기했다.

 

2005년 5월 30일 저녁 11시, 나는 카메라를 들고 부산으로 가는 막차를 탔다.

31일 새벽 4시 11분 나는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대학병원 영안실 입구에는 수무개 남짓한 화한이 놓여져 있었다.

새벽 5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영안실에는 조문객들은 없었다.

유족들이 영안실에 잠들어 있기에 나는 잠시 밖에서 담배를 피면서 기다렸다.

어색했고, 불편했다.

30분쯤 영안실 밖에서 서성이던 나는 조문을 하러 영안실 안으로 들어갔다.

조문을 끝내고 아버님이 어디서 왔나고 묻기에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푸른영상에서 왔습니다.

아버님의 눈에 가득 물기가 고였다.

불편했다.

 

영안실을 나와 조문객들이 식사하는 곳에 잠시 앉아있었다.

나는 왜 카메라를 들고 왔는가?

 

잠시 후 아버님이 나오셔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생전에 형률이가 다큐멘터리를 꼭 만들어 싶어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무어라 답할 말이 없었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

 

장례식을 찍어도 되냐고 여쭸던것 같다.

늦었지만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 지는 모르겠지만......

죄의식일지도.....

 

아버님은 찍어도 된다고 말씀하셨고, 이른 아침이라 조문객들도 별로 없기에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영안실 밖에서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영안실 안의 그의 사진도 촬영했다. 사진 옆에는 한 구절의 글이 있었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숨이 막혀왔다. 카메라를 끄고 싶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일곱시가 가까워 오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방송국 카메라도 오고......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뒤에만 있었다.

발인이 시작되었다.

여러 단체 사람들, 방송국 사람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나는 여전히 뒤에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화장장으로 가는 버스 안.

열려진 창문으로 바다냄새가 들어왔다.

그와 나는 같은 차에 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더이상 열심히, 정말 열심히 말하지 않는다.

서른다섯. 그는 더이상 말이 없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던 것을.....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정말 열심히 이야기 했나 보다.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나는, 카메라를 든 나는,

내내 뒤에서만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찍었다.

부끄러웠다. 염치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열심히, 정말 열심히 이야기했는데.....

 

더이상 말이 없는 그를 찍는 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더이상 말이 없는 그를 찍는 다는 것이 염치없었다.

 

사람들 뒤에서만 카메라를 든 나.

 

나에게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전에 그가 준 책 두 권, 자료집 하나, 그리고 많은 메일이 남아있다.

유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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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는 너무나 유명하다. 특히 '동물 농장'이나 '1984년'은 제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영문학사적으로도 많이 거론이 되는 인물인데도 나는 이 사람을, 서른 여섯이라는 나이가 되어서야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그가 경찰 출신이라는 것(그것도 미얀마에서 근무한),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죽었다는 것,
처음 알았다, 이번을 계기로...

난 항상 이런 사람이 부러웠는데...
다른 일을 하다가 문득 작가가 되는 사람...
(다른 얘기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를 보다가 문득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어느 날 문득 나에게는 이런 행운이 안 올라나?)

두 달 전인가 먼저 '조지오웰'이라는 제목의 책을 샀다.
문득 그가 무정부주의자라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이 가서...

하지만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전에 먼저 접하기로 결심한 책이 산문집인 '코끼리를 쏘다'이다. 자신의 경험담이 주를 이루는 책이다. 특별한 메시지를 내세워 강조하지 않는 점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아무 생각없이, 머리를 텅 비우고 책을 읽어서 그런지 특별히 생각나는 내용은 없다.

그냥...
작가라는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구질구질할 수도 있는 경험을 같이 하고, 비판적인 시각이라기 보다는 무덤덤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가가 그냥 좋아졌다.

그리고 내가 관심 있는 서점에 대한 얘기도 좋았다.
헌책방 점원으로 일을 했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헌책을 찾고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의 이런저런 면모를 재미있게 풀어낸 이야기...
뭐 공감이 가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면... 쾌쾌한 헌책들의 냄새가 끔찍해졌다고 하는 내용이지만... 그런들 어떠랴! 그럴 수도 있지... 아직 나에게는 그런 책의 냄새가 좋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나의 꿈은 책방 주인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꿈을 꼭 이루고 싶지만... 오웰이 얘기한 것 처럼 책방 주인이 되어서 책이 싫어지면 어쩌나하는 생각도 든다. 좋다고 느끼지 않는 책도 좋다고 얘기하며 고객을 설득해야 하니깐...

근데... 책이라는 놈을 좋은 책, 나쁜 책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합당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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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그러고 보니 책 이야기를 쓴 지가 벌써 1년이 다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일 년 동안 읽은 책이 겨우 1권? 후후...
당연히 그건 아니다. 단지 글로 옮겨지지 않았을 뿐...

누군가 그런 얘기를 했다.
내가 읽은 책을, 나만이 느낀 감동을 왜 밖으로 드러내야 하냐고!
사실 맞는 얘기다.
책을 읽고 난 감상을 꼭 말로 표현해야 된다는, 나름대로 비평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우리는 깨어나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어제밤을 꼴딱 새우며 읽은 책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몇 달 전 금금이가 책을 한 권 읽어보라며 던져줬다.
책 제목은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뭔가 나와 통할만한 공통점이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몇 페이지 넘기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왜? 그냥...(이러면 너무 싱겁겠지?)
뭐라 그럴까... 읽기도 전에 책 제목만으로도 느껴지는 그 무엇, 내가 하고싶었던 일과 비슷한 일을 누군가 먼저 했다는 것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랄까? 그런 것이 왠지 가슴 한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접어두고 있었는데... 급기야 다시 손에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럴 이유가 생겼다.

이 책은 '수유 + 너머'라는 한 연구공동체집단에 관한 이야기다. 그 집단이 어떻게 탄생되었으며 지금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빚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주 내용이다. 그리고 순수한 사람들의 모습도 담겨 있다.
수유라고 하니까 퍼뜩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겠지만(나도 그랬다), 여기에서의 수유는 '수유리'를 뜻한다. 수유리 공부방에서 이 집단이 탄생되었기에...

이 책을 쓴 사람은 이 공동체를 기획한 고미숙 선생님이다.
고전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까지 받으셨다는데...
수많은 박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학교라는 공간 말고는 설 자리가 없는 이 현실 속에서 출구를 찾았다고 해야 할까?
나도 전적으로 공감하는 말이지만...
이 책의 저자는 '언제 어디서든 출구는 있다는 것. 조금 아주 조금만 발을 내디디면 문득 길이 열린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길은 반드시 걸음을 내딛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뭔가를 연구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리고 서로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배워가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하고, 주변에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기고, 세미나나 강좌를 통한 열혈 마니아들이 생기고... 그러면서 '수유 + 너머'라는 하나의 이상적인 문화 공간, 연구 공간이 탄생하고 자리를 잡게 되었다. 지금은 그곳에 연구자들 대부분이 좋은 책들도 많이 내고 일반에게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집단이 꿈꾸는 이 공간의 모습은...(저자가 코뮌의 공간이라 일컫는)
첫째가 일상의 공간이다. 일하고, 먹고, 놀고, 즐기는 공간...
둘째가 배움터이다. 삶과 굳게 결합되는 다양한 지식 활동...
셋째가 명상 센터이다. 삶과 지식을 국경을 넘어, 인간을 넘어, 우주 전체를 흘러 넘치게 하기 위한 구도의 장...

이 공간은 종묘공원 옆, 원남동에 자기잡고 있다.
종묘의 돌담과 붙어 있는 골목 안에...

뭔가 새로운 일을 꾸미고 움직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곳을 추천해 주고싶다. 살아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할 수 있을 듯.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처음에 책을 읽기 전에 느꼈던 내 감정에 플러스하여... 내 길을 만들어 가는 일에 나도 이제 한걸음을 내딛었으니 그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가리라는 다짐이 다시 한번 용솟음친다.
나의 삶이 온통 길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무지개 너머 나의 길을 찾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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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날들

장예모가 2000년에 만든 이 영화는 '따뜻하고, 슬프다'.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녀 '우'와 허풍만 세고 가난한 중년의 '자우'.
이 두사람이 보여주는 배려와 마음을 보면서 마음은 한없이 따뜻해진다.

'자우'와 그의 가난한 친구들이 '우'를 위해 벌이는 엉뚱한 행동들은
웃음을 주지만 돈이 최고가 되어가는 중국 사회에 대한 장예모의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쥐잡는 고양이도 중요하지만 인간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고양이도
필요하다.

<책상서랍 속의 동화>와 <집으로 가는 길>에서 장예모는 먹고 살기
가 팍팍했던 중국의 한 시절 그러나 인간이 있었던 그때를 그린다.

무엇이 행복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정답은 없다.

영화의 끝장면에서 희망을 느끼든 절망을 느끼든 그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다.

등소평은 가난한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말했다.
가난하지도 않고 인간이 존중 받는 사회주의는 가능한가?
지금의 중국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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