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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적,우편적.. 자끄 데리다에 대해서.. (032)

1-a 후기 데리다의 텍스트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89년부터 90년에 걸쳐 기록된 텍스트 ‘할례고백(割禮告白 Circonfession)에는,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일절이 있다. 만약 이제 와서 하나의 할례(Circonfession) [......]가 내 입술의 경계를 정하고 있다고 한다면, 만약 내 고백(Confession)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안심하게 하는 진리를 핥고 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속죄함 없이, 자신의 이 망연자실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기에, [......] 그렇다면 나는 이 過巻き를 벗어날 것이기에, 過巻き, 그것은 진실이라는 것과 더 이상 어떤 관계도 없는 한 고백의 경험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모든 형상과 모든 묘선(描線)이 부과하는 할례의 경험인 것이다, 고명(古名) 또는 남유(濫喩), 그러나 고백 혹은 할례라는 의식은 서로 닮았음이 분명하다, 가족에 속함으로써, 즉 장르=종에 속함으로써, 그리고 거기서 사람은 다음과 같이 자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 무엇과도 닮지 않았다, 정원 문턱 위 저 최초의 아침으로부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런 식으로 고백하고 싶었는데, 그리고 나의 할례고백은 시작한다, 매킨토시 셋 안에서 층화된 장소에서, 상기(想起)적으로 반복=복제 가능한 동시에 상처 입기 쉬운 구조, double-sided/double density, 양면 트랙의 플로피 디스크, [......] 그 어리석은 자들은 믿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는 에크리튀르를 쓸모없게 한다, ‘상사(원문은 曹長) 펜’ 을 가진 선량한 할머니를, 친적(親的)인 에크리튀르를, 내 아버지의 펜, 내 어머니의 펜을 쓸모없게 한다, 그리고 결국은 분신 혹은 아르시브(archive)의 문제를 규제한다,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이브함, 그것은 그들이 컴퓨터로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3) 이 텍스트는 91년, 제프리 베닝턴의 텍스트 ‘데리다베이스’와 같이, Seuil사의 ‘동시대인’ 시리즈 중 한권 ‘자끄 데리다’로서 출판된다. 동 시리즈는, 그 밖에도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피에르 크로소우스키(Pierre Klossowski)’ 등을 담은 사상가, 작가의 해설서 시리즈이고, 본래는 그 책에서도 데리다의 인생과 업적에 대한 손쉬운 해설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데리다와 베닝턴은, 다음과 같은 복잡한 전략을 세운다. 먼저 베닝턴의 텍스트는 어디까지나 교육적으로, 데리다의 작업을 가능한 만큼 도식화한다. 이것은 그의 전기적 정보를 전혀 포함하지 않고, '기호', '증여', '무의식'이라는 31개의 키워드를 제시한 장부터 무시간적으로 구성되고 있다.('데리다베이스'라는 타이틀은 '데이터베이스'와의 주락(酒落)이 되고 있다). 반면 데리다는 바로 그 도식을 해체하기 위해, 병행해서 기묘한 자전적 텍스트를 집필한다. 그 텍스트는 59개의 단장(斷章)으로 구성되고, 하나의 단장 안에서는 마침표 없이 문장이 이어진다. 베닝턴에 의한 키워드화에 저항하기 위해 여기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은유가 빈번하게 나오고, 복잡한 구문이 마련된다. 그리고 이들 두 텍스트는 같은 쪽에서, 위 3분의 2를 '데리다베이스'가, 아래 나머지를 '할례고백'이 차지하는 형태로 인쇄된다. 도식적인 사고와 은유적인 연상관계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병렬되고 있는 이 텍스트는, 이후 말하는 '탈구축'의 2가지 면의 관계를 응축하고 있다. 가운데 인용 부분은 번역이 좀 어색하니 이해하기 바랍니다. 프랑스어 원문을 번역하는 게 차라리 나을 듯..-_-; 그리고 過巻き는 적당한 말을 모르겠음.. 누가 알려줘~~ 3)“Circonfession" in Geoffrey Bennington et Jacques Derrida, Jacques Derrida, Seuil, 1991, pp.12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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