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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오타쿠로부터 본 일본사회(015)

8. 해리적(解離的) 인간 웰 메이드적인 이야기에 대한 욕망의 고양 그러나 오오사와도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들은 더 이상 ‘허구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시니시즘=스노비즘의 정신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일본적으로도 유효성을 잃고, 이제는 새로운 주체형성의 모델이 태두하고 있다. 이런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보면, 전절까지 검토해 왔던 이야기 소비로부터 데이터베이스 소비로 가는 이동 또한, 단순히 서브 컬처 내부에서의 모드 변경이 아니라, 보다 큰 움직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배후에, 도대체 어떤 모델을 짐작할 수 있는가. 그것을 생각하는 위에 주목해야할 것은, 최근 10년간, 오타쿠계 문화에서는, 큰 이야기의 조락과 반비례하는 것처럼, 작품 내의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져 왔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이제 오타쿠계 문화에 있어서 큰 이야기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논해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에반게리온’ 이후, 노벨즈의 붐이나 코믹의 이야기 회귀로 보이는 것처럼, 독자나 시청자를 일정시간 질리지 않고, 적당히 감동시키며, 적당히 생각하게 하는 웰 메이드적인 이야기에 대한 욕구는 오히려 높아져간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필자의 생각으로는, 바로 이 모순이야말로, 데이터베이스 소비를 담당하는 주체의 성질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읽는' 게임이 오타쿠계 문화의 중심으로 구체적인 예를 따라 검토해 가자. 1990년대 오타쿠계 문화에서는, ‘갸루 게(girl game)’ 혹은 ‘미소녀 게임’라고 불리는 컴퓨터 게임이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이 장르는 82년에 태어나, 90년대 전반에 다양화하고, 9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맞았다고 한다.(주44) 갸루 게는 기본적으로 성인 지향의 게임이고, 컨슈머기(패미콤이나 플레이스테이션)가 아닌, 주로 Windows기에서 플레이된다. 그 기본적인 형식은, 플레이어가 복수로 준비된 여성 캐릭터를 이런저런 시스템을 통해서 ‘공략’하고, 보수로서 주어지는 포르노 그래픽적인 일러스트를 감상하는 매우 단순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오히려 몇 개쯤인가의 흥미로운 시도를 낳아 왔다. 그 중에서도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90년대 후반의 갸루 게의 융성을 유지하고, 대량의 2차창작과 관련상품을 만들어 낸, ‘에반게리온’ 이후 오타쿠계 문화의 중심을 담당했다고 일컬어지는 ‘노벨 게임’이라고 불리는 서브 컬쳐이다. 노벨 게임이라고 함은 일반적으로는, 일찍이 게임 북 따위에서 시도되었던 멀티 스토리· 멀티 엔딩의 소설을, 컴퓨터 스크린 상에 화상이나 음악과 함께 ‘읽는’ 게임을 의미한다. 그 기본적인 화면은, 두루마리 그림이나 그림 연극을 상상하면 알기 쉽다. 이 시스템은 90년대 초에 슈퍼 패미콤용 게임 ‘제절초(弟切草)’에서 확립되었지만, 96년에 만들어진 ‘雫(시즈쿠)’를 계기로 갸루 게의 세계에 도입된다. ‘시즈쿠’는, 제2세대의 오타쿠들이 중심이 된 제작회사 Leaf의 손에 만들어져, 계속 제작된 ‘痕(키즈아토)’, ‘To Heart’와 더불어 지금까지도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노벨 게임의 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텍스트를 읽고, 준비된 선택기를 고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 자유도는 액션 게임이나 롤플레잉 게임과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낮고, 또한 동화나 리얼타임 3D화상이 사용될 여지도 거의 없다. 따라서 컨슈머기의 기술적인 진보는 노벨게임에서는 역풍이 되었지만, 저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성인 지향 컴퓨터 게임 세계에서는, 거꾸로 그 빈약함이 이점이 되었다. 이하에서 ‘노벨 게임’이라는 것은, 특히 언급하지 않는한, 이 후자 세계에서의 노벨 게임(갸루 게 중에서의 노벨 게임)을 의미한다. 어차피, 최근에, 컨슈머기에서 발매되는 노벨게임의 다수는 갸루 게로부터의 이식작이다. 노벨 게임의 플레이어는, 다른 많은 게임과는 달리 압도적으로 수동적이다. 플레이 시간의 대부분에서, 플레이어는 단지 텍스트를 읽고, 일러스트를 볼 뿐이다. 확실히 최근에는, BGM을 충실하게 하고, 대사에 유명한 성우를 넣고, 동화를 삽입하고 있는 게임도 많으며, 그중에서는 흥미로운 시도도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중심이 텍스트와 일러스트라는 점은 역시 변하지 않는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데이터량이 많은 음성이나 동화를 가정용 컴퓨터로 처리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그것들을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런 제한 때문에, 노벨 게임의 진보는, 반은 필연적으로, 효율적으로 감동할 수 있는(울게 만드는) 텍스트와 효율적으로 감정 이입이 가능한(반하게 되는[萌えられる]) 일러스트의 추구에 집중하게 되었다. 멀티 스토리· 멀티 엔딩의 구조도 이 경향을 뒷받침했다. 스토리가 복수이고, 엔딩이 복수(공략할 수 있는 여성이 복수 준비되어 있는)라는 것은, 가능한 많은 이야기와 가능한 많은 캐릭터를, 필요한 모듈의 조합에 의해서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하드웨어를 이용하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으며, 성인 지향이므로 불필요한 문학성이나 예술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노벨 게임은,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오타쿠들의 모에 요소에 대한 정열을 가장 효율적으로 반영한 독특한 장르로 성장해 갔던 것이다. 따라서, 최근 수년의 오타쿠계 문화에서 노벨 게임이 하고 있는 역할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에반게리온’ 이후, 남성 오타쿠들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캐릭터는, 코믹이나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이 아닌, 아마도 ‘To Heart'의 멀티(マルチ)일 것이다(그림 15). 주44) 갸루 게의 역사를 대충 파악하기 위해서는, ‘パソコン美少女ゲーム歷史大全(퍼스컴 미소녀 게임 역사대전)’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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