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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너무 놀았던것같네요.

이번 챕터도 나눠서 올립니다.  너무 길어서 몇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수는 사랑의 설교자가 아니다


「기도」에 관한 예수의 발언중의 하나를 이야기한 것은, 그것이 예수라는 사나이가 유대교에 대하여 어떠한 반항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보여준 하나의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예수는 카디쉬를 공격대상에 올렸다. 그러한 방식으로 예수는 유대교의 기본적인 교조(敎條)의 하나를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유대교의 다른 기본적인 교조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비판을 퍼부었다. 쉐마앙고백에 대해서도, 모세의 십계에 대해서도 그랬던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인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또 내 몸같이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이 말은 예수가 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말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 말이야 말로 예수의 가르침의 근본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 말은 예수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논적(論敵)의 한 사람인 율법학자가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라는 사나이는, 이러한 종교적인 교조를 화려하게 입에 올리고 그것으로 다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단순한 사나이가 아니다. 본시 예수는 현대의 휴머니즘을 좋아하는 그리스도교도와 같이 무턱대고 사랑, 사랑하면서 그것을 내세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예수의 언동의 본질을 잘 추상하여 포착해 보면 사랑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지만, 예수 자신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알아 두는 게 좋겠다. 중학이나 고교의 시험에서 예수의 종교는 곧 사랑의 가르침이라고 연결하면 ○를 준다는 따위의 일은 이제는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본시 「예수의 종교」 따위는 없으며, 예수는 종교지배의 사회에 대해 반항한 사나이였다.

복음서에서 「사랑」 또는 「사랑한다」는 단어가 나오는 경우에 「귀여워한다」든가 「좋아한다」든가 하는 가벼운 뜻으로 사용된 두세 가지의 경우는 별도로 하고, 말하자면 방금의 예와, 그의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구절의 전후부분만이 예수의 발언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태오나 루가가 그 자료에다 덧붙여 쓴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사랑」종교라는 교의적(敎義的) 측면에서 예수의 말들이 해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 자신은 이와 같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두 군데만 하더라도 둘 다 당시의 유대교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논평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때 한 사람의 율법학자가 예수에게 와서 물었다.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마르코 12:28, 루가 10:25)

하나의 가치의 체계가 만들어졌을 때, 그 합리성의 기준을 지탱하는 기초적인 척도를 사람들은 반드시 구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모든 합리주의에 자연적으로 따라다니는 발상이다. 그리하여 고대사회에 있어서 합리주의의 전형의 하나인 유대교 법체계에 봉사하는 율법학자 사이에서는 율법의 계율 중에서 가치수준을 정리하여 「큰 계율」과 「작은 계율」로 분류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되어 있었다. 어느 것을 어떻게 세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의 유대교회당에서는 율법전체에는 613개의 계율이 있다는 식으로 배우고 있었다. 그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계율인가 하는 물음은 그들 사이에서는 종종 논의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그리고 결론도 어느 정도까지 공통적으로 되어 있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예수보다 2, 30년 전의 랍비에 관해서 전해지고 있다.

어느 이방인이 랍비 ․ 샴마이에게 와서 자기가 한쪽다리로 서 있을 동안에 율법전체를 얘기해준다면 유대교로 개종하겠다고 조롱하듯이 말했다. 샴마이는 몽둥이로 이자를 쫓아버렸다. 그래서 그는, 샴마이와 대립하는 또 한 사람의 랍비 ․ 히렐에게 가서 똑같이 물었다. 히렐은 대답했다. “자기가 싫어하는 일은 이웃에 대해서도 안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며, 다른 것은 모두가 그 해석에 불과하다. 가서 이것을 배워라”라고.

또 기원 후 2세기 초의 제 2차 유대독립전쟁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랍비 ․ 아키바도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자기 몸처럼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이야 말로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포괄적인 기본계율이다”

이와 같은 것이 말하자면 상식화되어 있는 세계에서 율법학자 한 사람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계율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예수가 아니더라도 그런 것은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고 싶을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때 율법학자가 예수에게 질문했을 때에는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계율인지 너 나름대로의 견식을 가지고 있겠지하는, 아니꼬운 생각이 이면에 감추어져 있었을 것이다. 루가 복음서의 저자는 율법학자가 「예수를 시험하여 말했다」고 되어있지만, 그 말이 맞지는 않더라도 동떨어지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질문에 방심하고 대답하게 되면, 개개의 율법조문에 대해서 아무리 비판해 보아도 유대교 법체계의 기초구조는 승인하고, 그 전제 위에서 사물을 생각하는 꼴이 되고 만다. 예수가 비판하려고 한 것은 바로 이 기초구조인 것이다.

그런 것은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을 듣고 율법학자는 옳다구나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자기가 선생에게서 배운 것을 늘어놓는다.


「그것은 물론,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앞에 말한 히렐이나 아키바의 발상과 닮은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여기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나란히 되어있는 점이 다르다고 생각된다. 히렐이나 아키바의 경우, 물론 그들도 당연히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강조하나, 이와 같이 이웃에의 사랑과 동시에 가지런히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를 들면, 예수당시의 유대교문학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색채가 있는 「12족장의 유언」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가운데 「잇사칼의 유언」이라는 장에서 “아들들아,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주와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식으로 율법을 중심으로 하여 이 두 가지를 나란히 하고 있고, 또 “나는 마음을 다하여 주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 왔다. 아들들아, 너희도 그와 같이 하라”라든가, 「단의 유언」에는 “생명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고, 또 성심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뒤에 기술하겠지만, 원시 그리스도교단 중에는 율법학자와 같은 수련을 겪은 자도 상당히 존재하고 있었고, 이런 자들이 교단의 이론가가 되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들이 사상적 계보의 하나로서 계승하고 있었던 것이 「12족장의 유언」이다. 여기서도 예수와 상관없이 유대교로부터 그리스도교로 계승되어 가는 요소의 하나가 있다. 이런 종류의 말투가 종교적 상식으로서 퍼져 있는 세계에 비판적인 쐐기를 박아간 예수인데도 그리스도교는 이와 같은 말을 자기들의 간판으로 채용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율법학자가 예수에게 답하면서 자기들의 유대교 신앙의 상식을 표현한데 불과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전승되는 동안에 어느새 질문한 자와 답한 자의 관계가 바뀌어버렸다. 즉, 율법학자에게 무엇이 중요한 계율인가라고 물은 예수가 자진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말한 것이 되어버렸다.(마르코 12:28 이하, 마태오도 같다. 이 점에서는 루가가 원래의 문답을 잘 전하고 있다.) 거기에다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토양을 떠나서 세계 종교로서의 독자적인 전통을 가지면서부터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의 사랑이야 말로 예수의 독특한 주장이고,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근본정신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사랑을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물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랑의 정신을 남에게서 배웠다면, 너무 자랑스럽게 이것이 우리의 독자적인 본질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말한다면 유대교도가 의외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들이 오랫동안 걸려 공통의 인식으로 만들어 낸 자세를 그리스도교도가 차용해 갔을 뿐 아니라, 마치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교의 전매특허인 것처럼 선전하니, 이렇게 되면 불평 한 두 마디는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예수는 어떠했는가. “당신이 그런 것쯤은 알지 않소”라는 말을 듣고 율법학자가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을 늘어놓은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좋지요. 당신같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구태여 나에게 질문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을 진심으로 실천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말을 한 예수는 복잡한 웃음을 뱃속에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대개 체제내적인 규범의 원칙은 그것을 진심으로 실행할 수 없을 때에만 무난한 간판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어떠한 대학에도 「영원한 진리를 탐구하며」 따위의 상투문구를 장식해 놓고 있는 것이며, 경찰은, 시민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고 법 앞에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좋지 않은가. 진심으로 실천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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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확실히 복음서 개개의 전승에서 그려진 장면은 전승자나 편집자의 주관이 그려낸 상(像)일뿐더러 대개의 경우(후술하는 바와 같이 마르코의 경우는 별도지만) 그들의 호교론적 의도에서 만들어 낸 상이니까, 그대로 신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발언이 역사적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행해졌을 리는 없는 일이니까, 개개의 장면이 정확하게 전해졌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삼는다면, 그러한 예수의 발언들이 역사적 상황속에서 이야기되었다고 하는 것은 확실하다. 어떠한 장면에서 이야기 되었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장면이 존재하지 않은 가운데 이야기된 것이라고 간주해 버린다면, 그것은 더욱 큰 잘못이 된다. 자그마한 장면들 즉 개개의 말이 누구를 상대로, 어느 도시에서, 또는 마을에서, 어떤 억양을 머금고 이야기한 것인가 등등은 대개의 경우 확실히 파악할 수 없다-단 상당히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해둘까-. 그러나 좀 큰 장면, 즉 전체의 역사적인 상황에 관해서는 우리가 또렷하게 알고 있다. 이른바 역사적 대상황은 물론이요, 좀 더 작은 상황도-예를 들면 앞서 거론한 「기도」에 관한 예수의 발언에 대해서 말한다면, 「기도」가 당시의 유대교사회에서 어떻게 올려지고, 어떠한 사회적 위치를 지니고 있었는가-하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다.

교회적인 설교속에서 이른바 주기도문이라는 데 대한 해설의 방식에 귀가 익은 사람이라면, 앞서 전개한 나의 설명에는 놀랄 것이 틀림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예컨대 카디쉬의 기도가, 아니 카디쉬만이 아니라 그것보다 몇 배 몇 십배 복잡기괴한 기도의 체계가 시민들의 생활을 짓누르고 있었던 1세기 당시 팔레스티나의 종교적 상황등은 거의 모르거나 무시해 버리고, 「주기도문」을 보편타당한 기도의 모범으로 해설해 버린다. 그러나 1972년 5월 현재 오끼나와 해방, 복귀반대를 외치면 누구도 이것이 역사적 조건을 모두 빼버린 오끼나와와 일본의 관계에 관한 발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므로, 당연히 일본 자민당 정부의 「오끼나와 반환」과 현재 오끼나와 지사인 야라(屋良)정권을 중심으로한 「오끼나와 복귀」의 흐름에 대한 자각적인 비판과 반격인 것으로 인식된다-1세기경 팔레스티나의 유대인이 그 말을 들었다면 당연히 예수는 카디쉬를 의식적으로 바꾸어 말하며 전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때문에 예수는 항상 경건하고 완고한 유대교도의 분격을 산 것이지, 보편타당한 기도의 모범만을 말한 정도라면 살해되기까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의 말이 나오게 된 개개의 장면을 엄밀하게 환원해서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더라도 그 말이 나오게 된 전체적인 상황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알 수가 있다면 개개의 장면에 대해서도 그것이 비꼬는 것이었는가, 분노를 폭발시킨 것인가, 분노를 참고한 것인가 등등을, 상상한 정도까지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을 향해서 튀어 나왔을 때는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행동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그리고 예수의 말을 행동의 한 단면으로서 포착하는 사람은 한 걸음 나아가 예수의 활동 전체도 그 역사적 상황에 대결하는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예수가 왜 살해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권력에 의해 체포되어 살해된 반역자였던 것이다. 권력자들 측에서 말한다면 아무래도 붙잡아서 죽여버리지 않으면 안 될 사나이였던 것이다. 그 삶과 활동은 부드럽게 설교하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에 관한 개개의 전승을 역사의 장에 되돌리면서 파악해 가야한다. 고기를 물에 되돌리는 것과 같이, 그것은 역사적 상상력의 문제이다. 그리고 명백하게 말해두지만, 역사적 상상력은 결코 역사가가 멋대로 주관을 도입하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역시 주관,객관이란 축으로는 건드릴 수 없는 과제, 곧 역사적 진실에 어떻게 육박 할 수 있는가 하는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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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번 챞터는 길어서 두개로 나누어 올립니다.

   

예수의 서술 방법


나는 여기에서 「주기도문」의 전승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예수가 「기도」라는 것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가를 해설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러한 곳에 예수의 발상의 하나의 특색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하고 소개했을 따름이다. 예수의 사상과 삶의 모습을 파악하려면 이와 같이 그가 살고 있는 장(場)에 뒤얽혀 있던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서 그를 파악하는 이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역사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귀착된다. 예를 들면 추상적인 말이라고 할지라도,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의 말을 포착하려고 하면 역사란 무엇이냐고 하는 물음에 귀착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예수의 그와 같은 활동을 그리려고 할 때 이 물음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 물음을 빼놓은 상태로 그린다면 존재의 극히 표층부분의 나열에 그칠 뿐이다. 그리고 표층을 나열하는데 만족할 수 있는 자는, 실제에 있어서 역사적 소재를 사용하여 그리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존재에서 스며나온 의식을 무자각적으로 과거에 투영했을 뿐인 것이다. 예수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그리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의 체제내적 의식을 나열할 뿐이며, 자기 자신의 의식은 어떤가 하면, 당초 역사를 묻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자신의 의식과 자기의 현재를 역사의 한 단계로서 파악할 수 있는 안목도 없다.

여기에 여태까지의 예수 연구의 애로가 있었다. 근대적인 문헌문학으로서는 성서학, 특히 복음서연구는 뛰어나게 정밀화 되어 있다. 사본도 많이 있고, 또 예수를 알기 위한 소재로서 세 가지의 복음서(마르코, 마태오, 루가)가 존재하니까, 비교연구도 여러 가지로 가능하다. (요한복음서는 간접적으로는 고려될 수 있겠지만 예수를 알기 위한 직접적인 자료로서는 곤란하다. 복음서라는 형식을 빌려서 저자가 자신의 상당히 특수한 종교사상을 전개한 책이기 때문이다.)거기에다 또 그것밖에 안 되는 좁은 영역에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많은 신약학자가 모여 일문일구마다 여러 개의 연구논문이 있을 정도로 파헤쳤으니까 정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근대성서학이 성취해온 복음서 전승의 비판은 현재에 있어서는 대단히 정밀도가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거기에 한해서는 상당히 신용할 만하다.

대강 요약한다면 예수의 사후, 아니 생전부터 예수에 관해 전해진 이야기는 구전전승으로서, 혹은 소문으로서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부분적으로 크게 개찬된 곳도 있고 전설적으로 창작된 부분도 많다. 그것이 예수의 사후 20년쯤 되어서 두 가지의 문서로 정리되었다. 하나는 마르코복음서인데, 이것은 한 사람의 저자가 의도적으로 만든 저작이다. 또 하나는 현재는 전해지고 있지 않지만 마태오와 루가가 공통으로 이용한 자료인데, 논어(論語)와 같은 형식으로 예수의 말만을 나열해 간 어록(통상 Q자료라고 부르고 있다. Q는 독일어의 「자료」라는 단어의 첫 글자)으로, 이것은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한 작품이 아니며 당초 하나의 완결된 문서라기보다는 차차 정비되어간 것인데, 문서가 되고 나서도 잇따라 예수의 「말씀」(로기아)이 첨가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것은 원시 그리스도교단의 교단체제가 만들어낸 문자 그대로 자료집이다.

마르코와 Q가 나온 후 다시 3,40년 뒤, 즉 1세기 말경에 마태오와 루가가 각각 복음서를 썼다. 둘 다 마르코와 Q를 자료로 입수하여 이 두 가지를 종합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 두 가지 자료 이외에도 상당한 양의 전승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것을 정리하여 발표하고 싶었던 것이 복음서를 쓰게 된 동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동기는 그 때까지 유일하게 정리된 예수에 관한 기록인 마르코복음서가 원시 그리스도교의 주류에 대하여 명백하게 비판적 관점을 드러내 놓고 있으므로, 그러한 복음서만으로는 정통적 교회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점이 많으니까 마태오와 루가가 각각 나름대로 좀 더 정통적인 권위를 가진 복음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데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중 루가쪽은 한 사람의 저자의 저술활동으로 된 것인데 바울로의 에피고넨(추종자, 아마 바울로 만년의 제자인 의사 루가)이 그 평범한 종교 의식(意識)의 관점에서 자료를 정리하여 이루어 놓은 작품이고, 마태오쪽은 한 사람이 쓴 작품이라기보다는 저자 마태오(예수의 제자라고 되어 있는 마태오와는 다른 사람)가 속해있던 그리스어를 말할 수 있는 유대인의 교회(아마 시리아지방인 듯) 지식인 그리스도교도가 일종의 학파적 작업으로서 자기를 교회의 정전(正典)적인 복음서를 만들려고 한 노력을 최후의 한 사람이 정리 편찬한 것이다.

복음서라는 것이 이상과 같은 것이니, 그것을 자료로 하여 예수를 묘사하려고 할 경우에는 하기 싫어도 전승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생긴다. 우선 복음서의 최후의 저자 단계에서의 윤색(潤色)을 제거하고, 다음으로 오랜 구전전승의 단계에서 이루어진 많은 윤색을 제거한다. 이런 식으로 소급에 소급을 거듭해서 걸러내고 신빙성이 있는 전승을 남겨두는 것이다. 이 작업은 방금 기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에는 비교적 확실하게 해낼 수 있다. 객관적으로 꽤 확실하게 예수의 발언을 확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선별방법에만 의존하고 있으면 객관성에 대한 맹신에 빠져 크게 실패한다. 대체로 역사 연구에 있어서의 객관성이란 하나의 한정된 방법론상의 문제인데, 객관적 정확성이라는 기준에만 의존하여 대상을 그리려고 하면 객관적이기는 커녕 극도로 왜소한 대상을 포착하는 것에 그치고 말게 된다. 여기서는 방법론의 문제를 상세하게 논하고 있을 여유는 없으나, 현대 신학자가 그리는 예수가 어느 것이나 극도로 추상적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선별연구방법이 지닌 최대 결점의 하나는 결국 예수가 발언 한 자구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실히 복음서의 전승 가운데는 상당히 정확한 것도 있으니까 일자일구(一字一句) 예수는 이와 같이 말했다라고 추정할 수는 있는 것도 있으며, 혹은 거기까지는 안 가더라도 상당정도 확실성을 가지고 추정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위에서 말한 「아버지의 이름을……」이라는 기도의 대사는 그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발언이 어떠한 장면에서 행해졌는가, 또는 발언의 기록이 아닌 경우에는 예수가 어떤 행동을 했는가라는 문제에 이르게 되면 전승자나 편집자가 자기의 주관을 불어 놓아서 그린 상(像)이지 객관적인 예수상은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확실히 그렇지만 「객관적」인 정확성에만 의존하게 되면, 말을 한 장면, 역사적 상황이 배제된 「예수의 말」만이 확실한 소재로서 남게 된다. 그 결과, 예수의 발언은 그 일체가 역사적 상황을 뺀 추상적인 가르침으로 환원되고 만다.

그렇다면 거기에서는 역사적 장면에서 추상화된 대사의 나열을 어떻게 하여 이론적으로 정리․통합하느냐, 거기에다 다시 추상에 추상을 거듭하여 예수의 가르침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을 어떻게 뽑아내느냐하는 작업이 된다. 이 경우 출발점의 소재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확실한 소재라고 할지라도 이미 추상화된 소재이다. 따라서 그것을 정리, 종합하는 이론은 신학자들 각자의 관념론적 전제에 불과하다. 가장 객관적인 예수상이라고 하는 것이 기만이 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현재 학자가 그리는 「예수」는 비교적 훌륭한 학자의 경우라도 어느 것이나 예수의 삶과 활동을 그리거나 예수의 사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역사적 인물의 사상을 그린다는 것은 곧 그 사상을 상황속에서 이해한다는 뜻이 되니까), 예수의 「가르침」의 해설에, 특히 추상적이고 신학론적인 해설에 그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인 것이다.《예-불트만, 야기 세이이찌(八木減一)》. 처음부터 예수를 영원불변의 진리의 권화로 만들어 놓고 있으니까, 그가 살고 간 역사적 상황속에서 예수를 파악한다는 의식은 털끝만치도 없다. 이른바 객관성으로는 역사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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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기도하나?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쨌든 강력한 종교지배하의 사회였으니까, 유대인은 모두 기도를 했다. 기도의 방법에 대해서도 상당히 시끄럽게 논의된 사회였다. 저녁기도를 서서하느냐, 누워서 하느냐는 것으로 신학적 측면에서 대논쟁이 있었고, 그것으로 율법학자의 분파가 식별될 수 있었던 사회에서의 이야기다. 매일 아침에도 기도하고 저녁에도 기도한다. 이 것은 구약서의 긴 인용구(引用句)를 연결시킨 것이 중심이며, 기도라기보다는 송경(誦經)의 일종이었다. 토요일의 안식일에는 회당에 모여서 예배를 보고 유대교의 율법에 대한 교육도 받는데, 예배의 도중에도 곧잘 기도를 드리곤 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기도가 정해지고 있었다.

예수가 그와 같은 활동을 하게 되면서, 당연한 일이지만, 유대교의 신성불가침의 전제까지도 비판의 도마 위에 얹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태도였으니까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문이 있었을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도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하느냐고 예수를 비판하는 종교세력측에서도 이러한 질문은 나왔을 것이고, 예수의 제자라고 자칭 혹은 타칭하는 자들로부터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하는 질문은 나왔을 것이다. 전자의 질문은 사회질서를 비판대에 올리는 자에 대해, 그렇다면 너는 어떠한 질서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고, 후자의 질문은 사회질서를 비판대에 올리는 자에게 얼마간 찬동은 해봤지만 역시 불안하니까 우리에게도 몸을 붙일 수 있는 질서를 부여해주십시오라고 하는 물음이다. 본질적으로 양자는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전자는 후자의 위에 서서 자기를 지탱하고, 후자는 전자를 보완한다. 또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예수쪽에서도 능동적으로 많은 기회에 「기도」라는 형식으로 설정된 유대교 지배의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짓궂은 비판을 퍼붓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냐고 하는 물음이 집요하게 달라붙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여러 가지 기회에 「기도」에 관해서 여러 가지 말을 하게 된 것이다.

복음서의 전승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예수의 발언들 중에서 같은 종류의 것은 통합정리하여 하나의 짧은 말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한 장면에서 얘기 된 것처럼 해서 결국 아주 짧은 단편전승으로 정리되어 전해진 것이다. 물론 전승을 정리하고 정비한 것은 그리스도교도들이니까 자연히 거기에는 여러 가지 호교론(護敎論)적인 의도나, 교조적인 선전이 가미되어 갔다. 그리고 각 복음서의 저자가 그것을 쓸 적에 자기의 사상적인 시점(視點)에서 내용을 첨삭했다. 대체로 하나로 통합정리하고, 짧게 정비한다는 일 자체가 이미 극도의 추상화작업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의 가지가지의 장면을 짧게 몇 줄의 글로 정리해서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쪽을 말하더라도 같은 취지의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 했을 것이니까, 그것이 하나로 통합 정리되어도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와 같은 활동을 하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질 것이니까, 이쪽에서도 같은 말을 싫증이 날 정도로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사회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공통성은 의외로 강도가 강한 법이다. 소관료적인 권력의 꼬리는 어디서 만나도 같은 꼴로, 같은 말을, 같은 억양으로 지껄인다. 잘 길들여진 민중도 역시 어디서나 같은 말을 하게끔 되어 있다. 고대사회라고 하지만, 1세기의 팔레스티나는 이미 각각의 크고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밀접하게 유대교회당과 연결되어 거기에서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주입작업이 국민교육식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니 예수도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들에게 예수가 「기도」에 관해서 발언한 것이 몇 가지 전해지고 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길다란 예복을 걸치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찾으며 잔칫집에 가면 제일 윗자리에 앉으려 한다. 또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오래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그만큼 더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마르코 1:38~40).


종교가가 고생하면서 사는 과부들을 등쳐먹고, 대학교수가 광장에서 인사받는 것을 좋아하는 일은 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변하지 않는 세태 중의 하나이지만 여기서 과부를 등쳐먹는다는 것은 좀 악랄한 짓이다. 유대교의 율법학자란 종교가로서 구약성서의 모세의 율법을 민중에게 가르치고, 그 까다로운 해석의 체계를 학파적으로 전승하는 일을 한다. 율법은-「율법(律法)」이라고 번역한 것이 애당초 잘못된 일이고, 정확한 의미로는 법률(法律)이지만-종교적인 규정인 동시에 사회윤리적으로도 민중의 생활을 규정한다. 「율법」에 쓰여진 「정의」가 민사적․형사적으로 재판을 시행하는 기준이 되었다. 따라서 율법학자는 동시에 민중의 재판관을 겸한다. 과부의 약점을 악용하여 강탈하는 자는 세상에 많다. 그래서 과부는 재판관에게 제소한다. 재판관에게 공평한 재판을 요구한다. 그러나 실태는 어떤가.

이런 이야기를 예수가 한 적이 있다.


어떤 도시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재판관이 있었다. 그 도시에는 어떤 과부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늘 그를 찾아가서 “저에게 억울한 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요”하고 졸라댔다. 오랫동안 그 여자의 청을 들어주지 않던 재판관도 결국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 과부가 너무도 성가시게구니 그 소원대로 판결해 주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꾸만 찾아와서 못 견디게 굴 것이 아닌가”(루가 18:1~8)


이것을 전한 루가복음서의 저자는 어처구니없게도 이 이야기를 「하느님에 대하여 밤낮으로 계속해서 기도드려야 함」을 가르친 설교로 해석해 버렸다. 그러나 이 이야기만 읽어보면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실제의 사회관계를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서, 재판관이 어리석어도 그런 자만이 있을 때는 달리 도리가 없으니까 이 쪽에서 악착같이 주장을 펴 나가야 한다는, 민중의 생활의 지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생활의 지혜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차근차근 설교하는 것과 권력에 매달려 있는 인간을 비웃으면서 얘기하는 것과는 방향이 다르다. 배가 튀어나온 사나이가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로소이다”라고 무대에서 자기소개를 한다면 시골 연극의 촌극으로서는 박수를 받고 웃음이 터져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생활에서는 율법학자의 대부분이 재판을 유리하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과부로부터 사례금을 약탈하여 꽤 수입을 올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예수는 한편에서는 꼬집어서 웃어넘기면서도, 때로는 날카롭게 비난한 것이다. 저 자들은 과부들을 등쳐먹고 있다고.

그러한 인간들이 올리는 기도는 대체 어떤 것일까. 무턱대고 길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떠들어댄다. 송경(誦經)의 대사를 쓴 양피지인가 뭔가를 넣은 상자를 팔이나 어깨의 끈으로 동여매고 기도를 드리는데, 보란 듯이 그 끈은 넓고 화려한 것으로 한다. 남에게 보이고 싶어서 못 견딜 지경이라. 회당에 사람들이 모이면 기도를 하고 싶어 하고, 기도의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가, 마침 광장을 지나가게 되면, 기도시간이 되었습니다라고 외기라도 하는 듯이 우뚝 서서 큰소리로 기도를 시작한다. 그렇게도 기도가 하고 싶으면 골방에라도 들어가서 조용히 하면 될 것 아닌가. 기도란 것은 하느님과의 대화인데 남에게 보일 필요는 없지 않는가. 대체로 당신들의 기도는 너무 길어요……(마태오 23:5이하, 6:5이하를 요약)

이런 말을 항상 하고 있으면,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기도하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때에 예수가 문득 생각한 것이 카디쉬(성스럽도다)의 기도다. 이것은 짧게 정리된 기도문, 기도문이라기 보다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문귀로서, 여러 가지 긴 기도나 송경의 도중에 약간 숨을 돌리기 위해 읊기도 하고 긴 기도나 송경의 마지막에 끝맺음으로서 읊기도 한다. 현대에서도 아직 유대교회당에서 쓰여지고 있지만, 그 기초적인 원형은 예수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이라면 짧아 좋다고 예수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 뜻대로 창조된 세계에서 거룩한 이름이 높여지옵시고, 신성해지옵소서. 그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들의 생애와 너희들의 시대에, 또 모든 이스라엘의 집들에 생명이 있는 동안에 한시라도 빨리 실현되게 하옵소서. (여기에 대해 사람들은) 아멘(이라고 제창한다)


이야기가 약간 옆길로 새는 기분이지만 「아멘」이라는 말이 나온김에 거기에 대해 설명을 한 마디 해야겠다. 이 말은 원래 히브리어로서 「참으로 그렇습니다」라는 종교의례적인 찬동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미 구약성서에는 옛날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그것이 유대교회당에서 하느님 예배에 쓰이게 되면서 종교가의 말에 대해 회중이 화창(和唱)할 때나 누군가가 대표로 기도했을 때 그에 찬동한다는 뜻으로 소리를 모아 「아멘」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교는 이 말을 그대로 이어받아, 2000년이 지난 동양의 교도들도 아멘, 아멘하고 있지만, 예수라는 사나이는 이런 때에도 엉뚱한 데가 있었던 모양이다. 대체로 아멘이라는 말은 이와 같이 예배같은 데서 다른 사람 말에 찬동하는 뜻으로 마지막에 화창하는 것인데, 예수는 이 통상적인 용례에 구애받지 않았다. 통상 이야기할 때에 자기 말에 대해 자기가 아멘이라고 하기도 하고, 보통 때는 발언의 마지막에 아멘이라고 하여 확인하는 것인데, 그는 말을 시작할 때에 자기말의 첫머리에서 아멘이라고 선언해 버린다. 유대교 랍비의 어록중에는 자기의 말에 자기가 스스로 아멘이라고 덧붙이는 것은 교양이 없는 증거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예수의 경우에는 교양이 없어 무의식중에 그렇게 말해버린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전통적인 아멘의 용법을 거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토론을 하고 있을 때 예수는 상대방에게 “아멘, 그렇다면 너희들에게 명백히 알린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상대로 좀 긴 연설을 할 때는 도중에서 한숨 돌리면서, “아멘, 나는 명백히 말한다”라고 자신감을 나타내 결정적인 말을 내뱉는다. 그것뿐인가. 불쑥 사람을 붙들고 “아멘, 당신에게 말한다”라고 말을 꺼내기도 한다.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 온 거대한 종교적 권위 앞에서 얌전히, 살짝, 뒤에서 소리를 모아 아멘하고 찬동하는, 그러한 언행에 예수는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는 말하고 싶은 것이 얼마든지 있었다. 절규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 사회체제 속에서 살고 있으면 절규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혹은 삶의 충실함에서 힘이 넘쳐나올 때 그것이 소리가 되어 튀어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럴 때에 어째서 권위에 뒷받침된 발언에 대해서만 조용히 소리를 모아 「아멘」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말이다. 그렇지는 않다. 나는 말하겠다. 아멘, 단호히 말하겠다.

그런데도 원시 그리스도교에서 시작하여 2천년간 이어져온 그리스도교는 구약․유대교의 종교의례의 아멘은 충실히 지켜 내려오면서, 예수의 외침, 숨이 막히는 권위에 역습해서 들이대는 그러한 태도는 계승하지 않았다.

카디쉬의 기도이야기로 돌아가자. 이것은 그 사람들의 기도로서는 짧고 선명하다. 그런데도 얼마나 신중하고 신학적인 배려가 되어 있는 것일까.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하느님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절대적 초월자(超越者)인 하느님에 대해서 입만 벌리면 우리에게 설교한다. 그런데도 모세의 10계명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는 말을 형식적으로는 엄격하게 준수해서 절대로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들먹이지 않고 우회적인 표현을 한다. 좀더 분명하게 부르면 좋지 않는가. 유대교 신학에서는 하느님을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라고 하게 되어 있다. 아버지라면 좀 더 또렷하게 「아버지」(아빠)라고 부르면 어떤가.

성스러운 히브리어가 아니고 아랍어의, 그것도 속어로 「아버지」라니 이게 웬 일인가.

그렇지만 당신들은 집에서 부친을 뭐라고 부르는지. 자기가 살고 있는 땅의 말을 정직하게 써야할 일이다. 게다가 하느님의 「이름」이라고 하면, 당황하여 「거룩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높여지옵시고, 신성해지옵시고」라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지 않아도 어느 쪽이든 한 쪽만으로 족한 것이 아닌가. 그 「이름」이 높여지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세상」이라고 하면 반드시 머리말로서 「그 뜻대로 창조하신」이라고 덧붙여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인가. 그러니까 카디쉬의 기도도 오히려 너무 긴 것이다.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소서」만으로 좋지 않을까.

다음 구절도 너무 길다. 하느님 나라가 참으로 오면 좋겠다고 한다면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라고 또렷하게 표현하면 되는 것이지, 이런데서 이스라엘 민족주의를 들고 나올 필요는 없다.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적 생명이 있는 동안에 하느님이여, 당신의 불가사의한 질서 속에서 이스라엘 민존을 세계의 으뜸가는 자로 하여 나라를 세우시옵소서 어쩌고 해서는 민족주의의 노골적인 소망을 말하고 있을 뿐이 아닌가. 거기에다 종교가들은 마치 하느님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느님에 대한 기도속에서도 우리들에 대해 “너희들, 너희들”하고 책망한다. 우리들이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것이라면 명백하게 「우리들」이라고 하면 될터인데 말이다.

이렇게 하여 예수는, “당신은 율법학자의 기도가 길다고 항상 불평을 하는데 당신 같으면 어떻게 기도합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예를 들면 카디쉬만 해도 나 같으면 이렇게 줄이겠소”라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옵소서」라는 두 구절로 끝내버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 놓고서 조금 있다가 살짝 한 마디 한 것일까, 카디쉬에는 없는 구절이 하나 보태졌다.

  “한 마디만 더 첨가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우리들이 매일 필요로 하는 빵을 주십사고.”

듣고 있던 자들은 아연했으리라. 거룩하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를 속어까지 섞어가면서 줄일대로 줄여놓고, 거기다가 「오늘 먹을 빵을 주십사」 따위를 덧붙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무엇에 대해 기도한다는 그 자체보다 당시의 민중에게 있어서는, 로마제국의 간접지배, 헤로데 왕가의 지배, 종교적 귀족층의 수탈과 이중 삼중의 수탈에 허덕이는 민중에게 있어서는, 무사히 그날 그날의 빵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보다 절실했을 것이다. 예수가 빵이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음은 분명하리라. 그러나 빵이 있으면 그만이라는 것과, 그날 먹을 빵이 틀림없이 매일 매일 있으면 좋겠다는 것 사이에는 무한대의 거리가 놓여져 있다.

「기도」에 관한 이와 같은 예수의 발언이 원시 그리스도교 가운데서 다시 한 번 정비되어, 「주기도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꾸며졌을 때(마태오 6:9이하, 루가11:1이하), 말씨는 거의 같아도 방향이 달라짐으로써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예수의 경우 「기도」라는 명칭아래 설정되는 유대교 전체의 양상에 대해, 또 거기에서 행해지는 실제의 기도에 대해 비꼬아서, 그리고 비판적으로 말을 내던지고 있다. 그것은 짓궂은 비판이면서 동시에 생활하는 자의 절규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어쨌든 결코 모범적인 기도의 형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카디쉬라는 하나의 모범적인 기도의 형에 대결하는 자세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원시 그리스도교는, 거기에서 대결의 요소를 지워버리고 다시 하나의 모범적인 기도로 꾸며버렸다. 예수가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바꾸어 말했을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꾸어 말한 것」이었을 뿐 머릿속에는 카디쉬의 대사가 가득했음이 틀림없다. 그것을 원시 그리스도교가 영원불변의 진리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이자마자 역사적인 장(場)에서의 생생한 돌진은 사라져버리게 되었다. 거기에서 역류(逆流)가 생기는 것은 쉬운 일이다. 루가의 경우는 아직 예수의 발언을 말로써는 거의 그대로 전하고 있지만, 마태오에 이르러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되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뒤에 그래서는 너무 짧아서 불만이었던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첨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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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라는 사나이-역설적 반항아의 삶과 죽음

 

                                                                                  田川建三

                                                                                 김명식 옮김



제 1장 역설적 반항아의 삶과 죽음


역사의 선구자


예수는 그리스도교의 선구자가 아니다. 역사의 선구자다.

역사 가운데는 항상 몇 사람의 선구자가 존재한다. 예수는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마 가장 철저한 선구자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선구자는 그 시대의, 또한 그 다음 시대의 역사에 의해 말살되어져왔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구자는 그 시대를 거부한다.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자각적으로, 직감적으로 앞서서 파악한다는 것은 당연히 역사의 현실을 거부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현상에 대한 준엄한 거부정신이 미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대의 또는 그에 이어지는 역사는 역사의 선구자를 우선 말살하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역사위에서 말살된 선구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단지 우리가 그 존재를 모를 뿐이지 그 숫자는 상당수에 이를 것이다. 말살되었으니까 역사의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다. 역사의 기록에 살아남은 자가 위대한 것은 아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 많은 사람들이야말로 역사의 본질을 짊어졌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용케 말살되어지지 않고 추억으로나마 남아있는 자들도 있다. 선구자로서의 그의 성격이 아주 강렬했다거나 우연이 그자의 기억을 후세에 남기게끔 작용한 경우에 그렇다.

그러나 이와 같이 역사가 선구자의 추억을 완전히 말살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거꾸로 역사가 그 선구자를 자기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그리스도교가 예수를 교조(敎祖)로 삼았다는 것은 그와 같은 경우이다. 예수는 살해된 사나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 명쾌하게 살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반역의 정신을 시대의 지배자는 죽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역사는 예수를 말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포섭해서 진수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단 성공했다. 체제에 대한 반역자가 암살되거나 억압에 의한 빈곤 속에서 죽어간 뒤에, 체제는 그 인물을 위인이라고 칭송함으로써 자신의 질서 속에 집어넣어 버린다. 마르크스가 사회과학 교과서에 실렸을 때 이미 그 마르크스는 본래의 마르크스가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하여 예수도 죽은 뒤에 교조가 된 것이다. 「말살」과 「포섭」은 본래 같은 뜻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말살을 계속하는 포섭일 뿐이지 결코 선구자 예수의 선구성을 성취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수는 여전히 성취되지 않고, 선구자로서 계속 남아있는 것이다.


예수의 출생


예수라는 사나이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는 모른다. 「나자렛사람 예수」라고 모두가 불렀으니까 갈릴리지방의 마을 나자렛 출신인 것만은 분명한듯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예수가 나자렛에서 나왔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느날 예수가 결심을 하고 나자렛마을을 나와 그와 같은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떻게해서 나왔는지, 그것을 확연하게 선을 그을 수는 없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수라는 사나이는 그와 같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식이리라. 아니 그것보다도 예수 자신으로 봐도, 살아가면서 이것저것 해나가는 가운데, 그와 같은 활동을 하는 것으로 되어버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당신은 어떤 동기로 이와 같은 활동을 하실 결심을 한 겁니까하고 묻는다고 해도 예수는 자신있게 대답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도대체 예수가 한 그만한 활동이 한 두 가지 결심이나 동기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라는 사나이의 삶의 귀결이며, 출발이며,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에 관해서 얘기를 할 때는 어느 부분에서부터건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같은 것이지만, 어느 한 대목을 얘기한다고 할 때 그 대목을 얘기하면서 예수의 삶 전체를 말해가는 방법으로 밖에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언급해 둔다면, 이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만 예수의 탄생에 관해 복음서에서 전해지는 얘기들은 어느 것이나 그가 죽은 뒤 반세기 가까이 지나고 나서 만들어진 전설이다. 즉, 예수를 그리스도교로 포섭해 들인 후대의 교회, 그것도 신약성서 중에서도 비교적 뒤의 시대에 속하는 교회의 소산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 나름대로 흥미롭다. 예수가 탄생했을 때에, 동방에서 3인의 박사가 와서 예배했다고 하는 이야기 같은 것은 권력숭배의 냄새가 풍긴다. 갈릴리의 시골뜨기를 왕자(王者)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꾸며낸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흔히 서양의 명화 등에 마구간에서 짚이 널려 있는 가운데 마리아에 안겨 있는 예수를 3인의 박사가 예배하고 있는 그림이 있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예수의 탄생을 왕자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꾸며낸 마태오복음서의 정신으로서는 마구간에서 난 성자(聖者)라는 발상은 나올 수 없다. 마구간에서 났다는 얘기는 마태오복음서와는 전연 다른 계보에 속한다. 이것은 루가복음서에서만 나온다. 서양 명화는 말하자면 각각 다른 두 사람의 작가가 창조한 두 개의 이질(異質)의 상(像)을 하나로 아울러 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 루가복음서가 그리는 예수상은 확실히 시적으로 아름답다. 밤에,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면서 노숙을 하고 있는 곳에, 천사가 나타나서 구주의 탄생을 알린다. 이때,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서 대합창을 우주에 울리게 한다.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세상의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을 해방 시켜줄 구제자가 이 밤 어딘가에서 탄생해주었으면 하고 희구한다. 그는 어른이어서는 안 된다. 갓난아기라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해방은 미래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꿈은 미래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이런 때에 하늘의 군대의 대합창이 울려 퍼진다면, 그것도 잠에 취해 있는 세상의 지겨운 자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만 살짝 들리는 대합창이라면, 우리는 그 꿈의 계시에 행복을 느끼고, 평생토록 고개 한 번 변변히 쳐들어보지 못한 밑바닥의 생활에서라도 꾸준히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힘이 다해 죽을 때까지.-예수 탄생의 이야기는 그와 같은 희구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러나 예수는 「구주(救主)」는 아니었다. 그렇다기 보다는, 어른 예수가 온갖 풍파 속에서 갖은 고난을 다 겪으면서 반역의 목소리를 외치고 지나가고, 그 사실이 폭력에 의해 단절된 지 반세기가 지난 뒤에야 영원히 미래인 아기 그리스도가 탄생한 것이다. 꿈은 시적(詩的)으로 얘기되어져야지 반역(反逆)으로 장식되어져서는 안 된다.-마구간 이야기도 루가복음서가 전하는 창작이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과 겸허를 로마제국 지배하의 식민지의 백성들에게 설교하는 상징인 것이다. 그러니까 왕궁에서 나기보다는 마구간에서 태야나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평화의 왕 그리스도는 누구에게나 봉사하는 하인입니다. 그리스도교도 제군은 얌전하게 법과 질서에 순종합시다…….” 이러한 설교만큼 권력자를 기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그러나 예수는 반역자였던 것이다. 반역자 예수가 국가권력에 의해서 학살된 지 반세기가 지나고 나서, 순종의 아기예수가 마구간에서 탄생했다.

처녀 마리아에게서 났다고 하는 것도, 예루살렘 근교의 베들레헴에서 났다는 것도, 같은 시기의 전설이다. 서기 50년대에, 즉, 예수의 사후 20년쯤 지나서 기록을 하고 있는 마르코나 바울로는 아직 이런 이야기를 몰랐다. 두 가지 다 서기 80년 무렵에 만들어진 전설인 것이다. 신성(神聖)의 이념이 처녀에 결부되는 이것은 사회사상의 문제일 것이다. 예수는 보통의 양친에게서 평범하게 태어난 사람의 아들에 불과하다. 베들레헴에서 탄생되었다는 전승(傳承)도 역시 왕자의 이념이 낳은 산물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왕 다윗은 천년전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왕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육체가 죽어 없어진지 반세기가 지나고 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되었다. 이처럼 예수탄생 이야기는 그리스도교가 그를 포섭하고 난 다음에 만들어진 전설일 뿐이다.

사실 나자렛 출신이라고 하니까 갈릴리의 나자렛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대체로 예수라는 이름은 흔해빠진 이름 중의 하나로 기원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歷史家)요세푸스의 저서중에는 20여명의 각각 다른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히브리어(語) 의 여호수와가 와음(訛音)되어 예수가 된 것인데, 아무데서나 흔히 있는 이름이기 때문에 출신지를 붙여서 구별하고 있었다. 나자렛의 예수라는 사나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그러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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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합니다.

'예수라는 사나이'란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다가와 겐조라는 일본인 성서 학자(?)의 책입니다. 이미 절판되었습니다. 전 운좋게 헌책방서 한권 구했지만 다른 분들은 대학도서관에나 가야 접하실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래서 직접 쳐서 올릴까 합니다. 최종적으론 pdf파일로 ebook을 만들어 두는게 목표입니다. 책도 낡았고, 산성지라 그리 오래 갈거 같지도 않고, 한울림이란 출판사도 이미 사라지고 없는것 같고, 이대로 묻혀지기엔 너무나 아까운 책이기도하고,  무엇보다도 더 많은 분들이 읽고 더 많은 얘기를 나눌수 있으면 좋을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기독교회들이 벌이게 될 뻘짓거리들 마다 일일이 갈구기도 귀찮고, 그냥 아예 기독교가 얼마나 우스운 짓거린지 명백하게 못박아 두는 편이 좋을것 같기도 하고...

성서는 거의 읽지 않고 몇구절 따와서 필요할때 자기 합리화나 하시는 '신자'분들은 이책 읽고나서 기독교를 못버리시겠다면 적어도 성서정도는 제대로 읽고나서 호교론을 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암튼 시작합니다.... 많은 덧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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