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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tet telex

시나리오에 대한 질문을 오늘도 열번 이상 들었다.

그리고 촬영을 delay할것인지에 대해서도.

 

임신한 여자친구에게 '영수증 첨부해오면 절반만 줄께.'

자. 저 나무는 내가 6살때 자두 씨앗을 뱉어서 자란 나무란다.

오! 저 씨앗을 뱉을때 엄마한테 존나 다구리당했어.

라는 분절화된 커뮤니케이션만 존재하는 정겨운의 시나리오.

겨운이는 촬영 이틀을 남겨두고 (행색은 한 한달간 줄담배만 핀 꼴이다.)

이번에도 역시 정겨운이는 도저히 이상태로는 찍을 수 없다며, 다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인천에사는 극작과 출신의 조연출은 멍해진 얼굴로 1호선 지하철을 타러 갔을테고

누나, 난 사는게 싫다 라고 말한 나의 신민재는

학교 밖 어느 구석에서 응. 누나 나 학교 아니다. 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새삼 놀랄 일도, 딱히 해줄 수 있는 말도 전혀 없다. 당연히.

마찬가지로 촬영 이틀을 남겨둔 채, 무뇌아가 된듯한 김영제 감독의

스탭 회의를 끝마치고 총총, 저 알바가 있어서요.

돌곶이 역으로 MC몽의 되도 않는 힙합을 들으며 한참을 걸어갔다.

이 새끼는 힙합에 대한 개념 좀 탑재해야 해.

 

작년 10월, 밤새도록 촬영불가와 촬영지속을

2시간마다, 알려주는 정겨운이에게 뒷골목으로 끌고가

다시, 이런 개념없는 짓을 하면 상대하지 않겠다라고 엄포를 놓고

또 창원의 5월. 렉카차를 몰던 부산 싸나이의 어깨라인에 반한

조연출 정겨운이에게 신민재 영화를 이딴식으로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밤마다 엄포를 놓았다.

 

창원의 5월, 정겨운이에게는 매사 진지하고 건전한 28살 아가씨의 엄포와 협박 따위

는 결코 자기 세계안으로 편입될 수 없는 어떤 성질의 것이었다.

28살 아가씨가 pd_4를 매만지며

'정겨운이, 내가 원하는것은 콘티에 대한 세부적 설명이 아니라. 다음 컷이 two-shot인지, 단독shot인지, 대사의 진행방향은 어느인지에 대한 간결한 설명이야'라고

소리지르며 인상을 찌뿌리고 있어도 정겨운이는 결코 굴하지 않는다.

오히려 밀짚모자에 반바지를 입고 수동카메라를 든 정겨운이는

'언니. 나좀 봐봐. 나 360도 팬한다~'라며 렉카차 위에서 자신의 몸을 360도로 돌린다.  

PL필터로 빛나는 하늘아래서 밀짚모자를 쓴 그녀.   

 

12월 230에서의 내부시사.

나는 지금 너랑 자고 싶다. 이 한마디를 표현하지 못하는 5명의 바보들 앞에서

정겨운이의 영화는 자신의 성적욕구를 대사로, 콘티로, 빛으로, 그리고 편집포인트로

가장 뛰어나게 표현했다.

엿같은 내부시사가 끝난뒤, 더럽게 맛없었던 동동주 한잔 앞에서

정겨운이를 뺀 모두는 에릭 로메르와 홍상수를 비교분석했던

자신들의 입을 오로지 저주했다.

에릭 로메르를 논하기에는,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못한다는 병신들이라는 것을.

하필이면 2학년 2학기 말에 알게 되었다니.

 

정겨운아. 너는 정말 현장에 강하고 연출이 어떤 표지션인지 잘 이해하고 있단다.

모든 스탭들이 너를 미워하고 있을때, 밤을 새어가며 단 한컷을 찍을 수 있는

그 강인함. 이라며 그녀에게 해줬던 내말은.  

언니, 너무 외로와요. 신민재는 너무 냉정해요. 라고 울먹이던 정겨운이에게.

 

스무명 가량의 전 스탭들이 연출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그 끔찍함과

그 책임성. 약속에 대한 신실한 의지를 거듭 강조하는 나의 말은

정겨운의 세계에 편입되지 않는다.

 

그리고, 오빠. 난 도대체 이 앵글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라며

9시간동안 단 한컷을 찍은. 정겨운이에게

덕소 주변의 한적한 동네거리를 소개시켜주고

돌곶이 역으로 향하던 나는 그렇다.

시나리오는 벌써 일주일째 멈춰있고, 나는 절대로 촬영일정을 미루지 않는다.

 

땀에 젖은 등, 어느새 길어버린 머리카락.

편의점에서 산 500원짜리 갈색 머리끈으로 묶는다.

내가 가는 곳은 어디쯤인지.

내 성실함에 결코 닿을 수 없는 정겨운이의 영화가 무사히 끝나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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