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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물건 중의 왕이고 첨단의 사물이다. 그것을 반복해 말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이 물건은 경제에서 담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행동방식으로 탁월하게 지배력을 행사한다. 교통은 사회적 기능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주차, 통로, 적당한 도로행정의 최우선 순위가 주어졌다. 이 '체계' 앞에서 도시는 자기 방어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가 존재했던 곳, 또는 도시가 살아남은 곳에서 사람들(기술관료들)은 도시를 파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철학적 합리적 여운을 갖는 한 단어, 즉 도시계획이라는 말로 극에 달한 일반교통의 결과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공간은 자동차의 강제에 의해서 개념이 정해진다. 운행이 거주의 개념을 대치했는데, 그것도 소위 기술적 합리성 속에서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그들의 '거주'의 한 부분이자, 실로 그 자신의 본질의 한 단편이기까지 하다. 흥미로운 몇 개의 사실들을 강조해도 괜찮겠다. 자동차의 운행 속에서 사람과 사물이 축적되고 서로 만남이 없이 한데 뒤섞인다. 각 부분이 자기 상자 속에 남아 있고 각자가 자기의 껍질 속에 갇힌 채 상호교환 없이 동시성을 이룬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것이 도시 생활을 타락시키고 운전자의 '심리학', 아니 차라리 정신병을 야기하는 것이다. 미미하지만 실제적인, 그리고 미리 수치가 정해져 있는 위험은 사람들이 '모험을 감행하는' 일을 별로 막아주지 못한다. 부상자와 사망자, 그리고 유혈이 낭자한 도로와 함께 자동차는 일상에 남겨진 모험의 한 잔재이고 감각적인 쾌감이며 일종의 놀이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이미 발견했던 유일한 전면적 체계, 즉 알리바이의 구조 속에서 자동차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에로티즘을 위한 알리바이이고, 모험을 위한 알리바이이며, '주거'와 도시적 사교성을 위한 알리바이이다. 자동차는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이 '체계'의 한 조각이다. 기능적 분석(빙글빙글 돌고 굴러가기 - 상당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사용하기 - 길을 비추기, 방향과 속도의 전환)과 비교적 단순한 구조적 분석(모터, 차체, 장비)으로 파악되는 빈약한 기술적 물체인 자동차는 그대로 사회에 대한 빈약하면서도 단순한 기능적 구조적 분석의 축소판이다. 자동차는 사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점점 더 우월한 지위를 확보해 가고 있다. 자동차는 하나의 실천을 (경제적, 심리적, 사회학적) 결정한다. 자동차는 스스로 전체적 물체가 되기를 원한다(사람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채' 그것을 원한다). 자동차는 (부조리한) 의미를 지닌다. 사실상 자동차가 정복하고 '구조화'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 일상이다. 자동차는 일상에게 자신의 법을 부과시킨다. 이것은 일상을 공고히 하며, 자신의 차원 위에 그것을 고정시키고, 또 그것을 계획화하는데 강력하게 기여한다. 오늘날 일상성은 크게 보아서 모터의 소음이고, 모터의 '합리적' 사용이며, 자동차의 생산 및 분배의 요구이다.
- 앙리 르페브르, <<현대세계의 일상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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