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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성욕

연애를 한다는 건 카페, 레스토랑, 비디오방 아니면 모텔, 아니면 이 모든 것을 갖춘 맞춤형 모텔을 전전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없다! 다시 그 코스를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좀더 화려하고 넓은 유원지를 돌아다니거나. 말하자면 자본이 파 놓은 '홈 파인 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 말고 달리 대안이 없다. 한 후배의 증언처럼, "데이트를 하다 보면, 마치 돈을 들고 다니면서 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들을 잠깐씩 구매하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만이 아니다. 지방 소도시엘 가도 좀 잘나간다 싶으면 마을 전체가 쇼핑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가히 '쇼핑의 제국'이라 할 만하다. 자동차에 대한 맹목적 집착도 다름 아닌 이 제국의 산물이다. 미국이나 유럽, 남미처럼 나라가 큰 것도 아니고, 항공편에 고속버스, KTX에 이르기까지 각종 대중교통수단이 발전된 나라에서 전국민이 이토록 자동차에 집착한다는 건 참으로 불가사의한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자동차는 더 이상 이동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가 목적이다.

 

차가 없는 남자애는 피곤했다. 우선 폼이 안 났다. 대학교 3학년이나 된 이 나이에 아직도 강남역 뉴욕제과 앞, 압구정동 맥도널드 앞 같은 곳을 약속장소로 정한다는 건 쪽팔리는 일이었다.

제 아무리 의대생이라 해도 차가 없다는 건 심각한 감점 포인트에 해당했다. ...... 지방 캠퍼스에 다니는 데가 키스 하나 제대로 못하는 어리버리한 민석이를 몇달째 만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애의 스포츠카 때문이었다. 차창을 열고 아파트 단지가 붕붕 울리도록 커다란 음악을 틀어 놓은 채 나를 기다리는 은색차! 아파트 입구를 나와, 내가 타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자동차까지 가능한 한 천천히 걸어가 도어를 당길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13쪽)

 

지금 이 여성이 스포츠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그 자체로 '성욕'에 해당한다. 전통적인 속담은 이렇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을 한다. 하지만, 이제 반대다. 자동차가 고급이면, 좀 덜떨어진 남친도 섹시하게 보인다. <<동의보감>> 세미나에서 자동차와 성욕의 깊은 함수 관계에 대해 한창 썰을 풀었더니, 한 후배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남학생이 버스에서 청순가련해보이는 여학생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 슬쩍 다가가 어디서 내리냐고 물었다. 그때 여학생이 독백처럼 내뱉은 말, "버스 타고 다니는 주제에 어디서 작업이야? 재수없게!" 이렇듯 자동차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남근(혹은 우상)이다. 자동차의 생김새, 자동차의 속도, 자동차의 폐쇄성, 이 모든 것은 성욕의 쾌락적 배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이반 일리히의 책이 있다. 이걸 패러디해서 말해 보면, '성욕은 자동차와 함께 온다!"

 

그럼, 이 자가용이 제공하는 쾌락의 주 내용은? 역시 쇼핑이다. 자동차 자체가 쇼핑의 산물이지만, 자동차가 제공하는 것 역시 각종 쇼핑몰들을 전전하는 것. 이미 언급했듯이, 도시인들은 희노애락의 대부분을 쇼핑을 통해 느낀다. 쇼핑과 존재가 포개져버렸다고 해도 좋다. 그렇지 않고선 명품에 대한 그 집요한 욕망을 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돈과 상품과 쇼핑, 새로운 삼위일체의 탄생! 이 속에서 사람들은 성욕을 분비한다. 연애를 하기 위해 이런 과정을 밟는다기보다는 이 과정을 밟기 위해 연애라는 걸 한다고 봐야할 정도다. 완벽한 전도!

 

- 고미숙, <자동차와 성욕>, <<호모 에로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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