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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

 

블로그를 다시 찾게 되었다.

한 9개월 만인가?

지난 주말에 남해를 다녀왔다.

크... 날씨가 좋아서 진짜 이번 봄 들어서 화창한 날씨는 이게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가천 다랭이 마을에서 하루 , 독일 마을 근처에서 하루 이렇게 묵었는데

다랭이 마을 민박이 참 좋았다.

새벽 네시에 깨서 아침 먹을때까지 무척 긴 시간, 긴 배고픔이었지만...

동네 한 바퀴 돌고 내려가면  바위들 따라 바닷가 까지 내려 갈 수 있다.

바닷가라기 보다 바위 밑에 뚝 물이 있어서 낚시꾼의 천국인듯.

6시에 숙소에서 나와서 혼자 거기 까지 갔는데

내가 내려가야 할 길 끝에서 군대 물정 모르는 내 보기에 완전무장을 한 것 같은

군인 여섯명이 올라와서 쪼금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

체면만 아니면 그냥 뒤로 돌아 마을 쪽으로 막 달려가고 싶었다.

근데 가까이 오면서 잘 보니 어리디 어린 얼굴에,

뚤레 뚤레 하는 것이 근처 전복집에 들어가서 따뜻한 죽 한 그릇에 커피 한잔 하고프다는

얼굴들이라 (대한민국 해군을 무시하는건 아니고...) 무섭게 느낀게 주책스러웠다.

 다 지나갈때 까지 딴청 하느라 한 십분 거기 멈춰있었나,

저 위에서 '엄마!' 부르는 소리가 나서 보니 아직 자고 있어야 할 파랑이가 제 아빠랑

나와 있었다. 반가워서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군인들 때문이 아니라...

여행 오기 전날 일터에서 기분이 있는대로 상해서

왜 이렇게 기분이 상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하루 지나서도 그러니, 이번엔 내 소중한 여행을 망친다는 생각에

더 기분이 상하고 뭐, 그랬기 때문이다.

잠의 기능 중에 낮동안의 감정을 해소하고 잊게하는 기능이 있다던데

잠을 설쳐서 어제가 계속 이어지는 듯 했다.

그날 오후에 훠이 훠이 부른배를 안고 보리암을 올라가면서야

몸이 지쳐서 적당히 수면 아래로 넣을 수가 있었는데

어수선한 감정이 수면 아래 들어 가니 비로소 떠오르는 건,

내가 그 동료를 미워한다는 것이다.

뭐, 사람이 미운게 아니라 그 동료의 사고방식을 미워한다. 

고민을 중간에 그만둬버리고 자기가 미리 정해둔 도덕적 지향으로 건너가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 증거들을 대충 뭉개고 가는 방식을 미워한다.

여행 오기  바로 전에는 내가 한 일처리를  오해하고 쫒아와서 은근히 따지는 것에, 

 나중에 오해라는 걸 안 후에는 자신의 지향과 다른 의견을 예비안으로 적어놓은걸

질타하는 분위기에 기분이 상하기 시작한 것이고.

일터에서 한 목소리로 이메가 욕하고 딴나라당에 우웩하고 천암함을 북한탓으로 모는

음모에 같이 넌덜머리를 치지만 그 사람이 생각하기를 멈추는 그 방식,

아예 대화를 시도하지도 않는 다른 일터 동료들보다 진정 힘빠지게 하고

밉다.

이해하려고 내 뇌속을 파헤쳤을때는 답답하던 마음 속이

이해하기를 그치고 왜 싫어하는가 물어보니까 풀리는 것 같다.

그런 방식을 미워할 순 있다지만 왜 이렇게 그 동료한테

격렬한 감정이 생겨나는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그 동료와는 전공 이야기도 서먹해서 안 하게 된 것 같다.

처음 와서는 자주 하려고 (생각해보니까 그 사람이 자꾸 시도했던 것 같은데 )

했었는데 하면서 늘 뭔가 찜찜한 감정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일해본

경험이 좀 있는데 그럴때는 못 느꼈던 감정, 그니까 내 학문은 이런것이다, 이런 에고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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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어제 파랑이가 뭔가 물어보는 말에 다시 기록을 하자 생각이 들었다.

지난 어린이날 어떤 삼촌을 만났다고 자꾸 그러는데 이번 어린이날 뭘하고 지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 무렵 날씨라든지 기분이라든지 내가 바빴는지 한가했는지를

잡아내려고 해도 완전 공백이었다.

 

파랑이는 이제 만 네살 하고도 일주일이 되었다.

별 말을 다 할 줄 알고 한글을 완전히 안다.

이 아이가 하는 말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대화가 아니라

그냥 생각나는 말을 아무거나 하는 것 같아서 집중해서

들어주기가 힘들다.

 

오늘 아침에는 나하고 파랑이하고 나갈 채비를 해야 하는데

밥을 모셔두고 또 이말 저말 계속 하는 것이다.

어금니는 어디있어? 송곳니는 어디 있어?

점점 짜증이 올라오면서 얼굴이 굳어졌나 보다.

파랑이 하는 말

" 엄마, 지금 내 혀에 아무것도 없거든? 그런데 왜 계속 화를 내고 있어?"

약간 속을 들킨 것 같아서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 부엌을 이리 저리 치우고 있었더니

또 하는 말

" 엄마, 나 좀 봐~"

그제서야 파랑이를 제대로 쳐다 봐 주면서  웃음이 나왔다.

"어, 그래 엄마가 파랑이 볼께"

네돌된 아이한테 이런 웃음이 나올 줄 몰랐다. 딱 1초 동안 친구한테

멋적어서 웃는 기분이었다.

내가 화가 나면 얼굴이 굳어지면서 화를 일으킨 사람 얼굴을 외면하곤 하는데

파랑이가 그걸 알고 있는것 같았다. 몇번이나 보았나 보다.

"엄마가 어제 잠을 잘 못 잤거든. 엄마는 그러면 화가 잘나."

사실이다.  잠을 설쳐서 참을성이 금방 바닥나고 조바심이 나는 상태였지만

그보다 어떤 몸 상태였든지 육아를 할때 내가 잘 못하고 힘들어 하는 부분이

이런것이다. 빨리 밥 먹이고 조금 빨리 어린이 집 데려다 주고 학교 조금 일찍 가서

뭘 하려고? 이런 시간이 쌓여서 긴 나날이 된다지만 사실 월요일만 이렇게 둘이서

보내니까 더 느긋해져도 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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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은 나의 적

 

한의사가 나더러 태음인이라며 태음인은 눈 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등등 지침이 담긴 인쇄물을 한장 주더라니.

 

학회는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에서 있다.

일단 밴쿠버 옆에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주도인건 알았다.

그런데 왜 밴쿠버까지만 항공권을 끊어 놓고 그 뒤 여정에 대해선

머릿속에 백지로 남겨두었을까?

진짜 이해가 안간다.

아마 이래서 계속 학회가 가기 싫었나 보다.

당연하지, 길을 한도막 잘라놓고 해외 미아 될건데  무고한 뇌가 얼마나  불안했을까.

 

이번 주 토요일에 길을 떠나야 되는데

그저께 밤에야 이 미싱 링크를 채우면서 욕은 또 엄청 했다.

선택지가 여러개다. 에어 캐나다로 공항에서 바로 가는거,

헬기 타고 빅토리아 항으로 가는거,

페리타고 가는거.

헬기는 비행기만큼 비싸고 페리는 공항에서 또 배타는데 까지 가야하니 비행기로 가기로 했다.

에어 캐나다만 간다는데 원래 항공사랑 연계가 안되니 표를 따로 끊어야 했고

뒤늦게 끊어야 하니 비싸기도 많이 비쌌다.

이걸 처리해야 발 뻗고 잘 것 같은데 마스터 카드로 사려니

무슨 코드가 계속 틀리다고 흐미...

난리 굿을 치다가 결국 법인카드로 샀다.

항공권을 법인 카드로 샀다고 그 다음날 한소리 들었고.

 

내 돈은 아니지만 항공권 사는데 돈이 쓸데없이 많이 나가서

세금을 이렇게 썼다는것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이 마구 밀려왔다.

(그러니까 진작 했어야지, 이 인간아)

오늘 학교 와서 갈 길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다 보니

오오! 페리는 비행기의 1/10 가격이고 또 공항이나 대학에서 페리 타는데까지

버스 노선이 왕 친절하게 잘 나와 있는게 아닌가.

시간이 넉넉하니까, 오케이, 배로 들어 가자.

해서 버스 노선이랑 배 시간표랑 인쇄해서 열공 후 에어캐나다 홈페이지 가서

표를 취소 했다.

그런데...

그제서야 뇌리에 박히는 문장이 있었으니

Non-refundable 이라고.

엉? 카드 구매 철회되는거 아니었어? 다시 룰을 보니 이미 멜로 받은 전자티켓에도

선명히 박혀 있는 문장이었다.

또 그걸 처음 봤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만 매우 주관적인 뇌에서

'이렇게 제 돈 다 주고 산 표가 환불이 안 될리가 있어?

다  잘 되야지, 고럼 고럼.' 이랬던 것이다.

법인 카드로 구매했으니 어째야쓰냐, 이 사태를.

깨알 같은 글씨들을 해독해보니 돈으로는 안 돌려주지만

일년내에 다른 표를 살 수는 있다는데 웹상으론 안되고

직접 문의하라고 한다.

그러니까 난 취소한 바로 그 표를 다시 사야 한다.

한국 에어캐나다 사무소에 전화 돌리기를 삼십분 했더니

거기 언니가 상큼하게 '그건 본사로 직접... 콜 센터는 24시간 열려 있어...' 하신다.

 

잠시 얼어 붙어 있다가

차범근 광고가 생각나서 00700-1-880-xxxx-xxxx로 전화를 돌리길 십여분,

캐나다 총각이 받았다.

의사소통... 한 쪽의 의지가 강력하면 되긴 되더군.

이거 제대로 처리 된건가 긴가 민가 했지만 할말 다 한거 같아서

끊고 이메일 확인하니 새로운 영수증이 도착해있었다.

 

 

어디 보자.

우선 나는 밴쿠버-빅토리아 간 여정을 메꾸질 않고 계속 불안한 상태로 한달 있었다.

(솔직히 이부분이 제일 이해가 안 간다. )

두어 시간 허비하여 결국 비행기표를 샀다.

두어 시간 웹 서핑을 하며 그 표를 취소했다.

패닉 일보전이 되어 국제 전화까지 하여 취소한 표를 다시 샀다.

일이 처리(아니지, 원상복귀. 참 무위가 젤로 좋단 장자님 말씀이 이런건가...)

되고 나서도 심장이 다다다다 뛰고 있다. 불로그에 올릴만치.

 

소탐대실은 나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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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시립 도서관 아동열람실에 영어책이 꽤 많다.

다 손 때가 묻어 있고  백프로 부록(테이프) 파손이라고 쓰여있다.

거기 있는 책을 다 볼 생각이다. 

엊그제는 리틀 베어 동화책 두권을 보았는데 그, 무슨 재질이라고 하지?

삽화가 칼라이긴 한데 보통 아이들 책처럼 반들거리는 재질이 아니고

또 하드커버가 아니라서 담백하니 좋았다. 아무튼 그림을 모리스 샌닥이

그렸는데 집에 있는 다른 그림책과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 좀 놀랐다.

(오전에 즐겨 가는 커뮤니티에서 이 분이 여든 훌쩍 넘겨서 커밍아웃 했단걸 알게 됐다.

몇십년 같이 살던 파트너가 죽고 나서 하신건데 커밍 아웃이란  정말 힘든가 보다.)

 

 

영어.

어릴때 중학교 교사이던 아빠가 억지로 무슨 영어 테이프를 사서 방학마다

외우게 하고 나중엔 영어 교과서를 외우게 해서 완전 방학이 악몽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 그런 방법이  아이한테 영어를

기피하게 하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에 손꼽히는 방법이란걸 알게 됐다.

그 시절의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지, 난 영어가 싫고 정이 안가고, 영어 뿐 아니라

영어말 하는 사람들도 관심없고 영어 비디오니, 노래는 딱 싫고 그렇게 됐다.

그런데... 논문을 쓴다는게 프리프린트나 저널에 실은 논문만 접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그걸 만드는 사람들하고 접하고 이야기하고 해야 한다는게 문제다.

즉, 학회에 가서 이야기하고 물어볼거 있으면 물어보고 하면서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아주... 처음엔 공항으로  발걸음이 안 떨어지고

또 학회장 다과 시간엔 입이 안 떨어진다.

나 같은 사람일수록 발표를 하는게 좋다, 오히려.

그러면 따로 내 소개를 안 해도 되고

자연스럽게 다가와 인사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런데 뭔가 새로운걸 접하고 싶어서 가는 학회라면

내쪽에서 발표할건 없으니까 역시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면서

먼저 다가가야 하니까 말이다.

모든 학자들이 다 블라 블라 외향적이진 않을거다, 암.

한국에서 열린 학회에 임하는 내 모습만 봐도.

그래도 말이 자유로운데 안하고 있는거하고 무지 불편한 마음으로

얼어 있는거하곤 다르잖아.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거 나한테 편안한 수준으로 읽고 말할 수 있도록 애쓸까 한다.

육백만 단어 읽기. 이 방법이 딱인것 같다.  그냥 죽죽 읽으면 된단다.

단, 쾌적한 속도로 읽을 수 있는 책부터 시작해서.

리틀 베어처럼 쉬운 책부터 시작해서 모, 어릴적 재미나게 보았던

클라우디아의 비밀이나 요새 뜬다는  홀도 보고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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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9

 

서울대 오랜만에 왔는데 방학이 시작되어 한가하네.
SH 생각도 나더라. 아이는 잘 나았는지, 주로 환차익 거래로 돈을 굴리던 남편은
요번 경제 위기에서 오히려 이익을 보았는지,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는지.
학교에서 우연히 만났으면 담담하게 말걸것 같은데 메일을 보낸다거나 전화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
일대일로 대하기가 어색해서 그런가 봐.
한편 오랫동안 알아오고 젊은 시절의 상처를 누구보다 많이 얘기 나누던 사람을 이렇게 내 삶에서
밀어내려는데에는 어떤 무의식적인 기제가 작동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잘은 모르겠어.
이제와서,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일까? 과거의 나와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구별짓기 위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어쩐지 체온을 느끼기 힘든 비현실적인 관계였던걸까.
다시 만나게 되면 뭔가 같이 뛰어 놀면서 다시 사귀어야 할 것 같다...
 
어제 오후엔 여성oo회가 열린 예전에 근무하던 연구소에 갔어.
실제 발표들은 오늘 있을거라 주로 시니어 선생님들이 많아서
내 자리 아닌곳에 왔군, 싶더라. 그래도 오랜만에 홍릉에 가보고 싶어서 갔지.
발표는 과학기술계에서 학계나 기업에서 여성의 위상 전반적인 내용이었어.
메디슨에서 온 여교수와 마이크로 소프트 연구 책임자인
미국 발표자들의 발표는 자신의 경험이나 폭넓은 통계 자료를 보여주면서,
장담은 못하고 지금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런 방향성이 맞지 않겠나 하는 거였고
뒤에 한국측 발표자들은 상대적으로 덜 세련된 통계치
(예를 들어 전자는, UC 대학원에서 남/여성이 애초에 목표로 하던  커리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비율, 그리고 애초에 연구직을 희망하다가 전향한 경우 어떤 요인 때문인지 등등을 보여주었는데
후자는 고등학교, 대학의 문/이과 성비, 포닥과 전임 교수에서 성비 이런거였음)
를 제시하면서 기본 전제나 결론은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올라가야 한다,' 여서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더라구.
어쩌면 영어 구사력 때문에 내용이 단순해진 면도 있지만
음.... 미국에 비해 진짜 연구에 종사하는 시니어 여성이 (비율상으로도) 매우 적어서 그런 것 같아.
솔직히 옆에 앉아 있는 시니어 선생님들이 다양성이 궁극적으로 (그니까 결과론적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별거 아닌데 희한하게 많은 선생님들이 원피스를 입고 오셨더라.
치마야 미국인 발표자도 입었고 (그 사람은 히피 엄마 분위기...) 당연히 문제 없는데 선생님들의 드레스 코드가 너무나 한국사회의 보수적이고 참한 이미지에 딱 맞다고 느꼈어.
나만 해도 그런 연구 결과들 (예를 들어 노약자 친화적인 사회가
결국 지속가능하다거나 여성친화적인 랩이나 기업, 혹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나 기업이
좋은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결과도 우수하다거나 )을 종종 신문이나 책에서 보면서
더 설득력있는 논지를 갖게 되는 것 같거든. 이러 이러 하다니까 우리도 한번 실현해 보면 어떨까, 이렇게.
그리고 이미 차별을 오랫동안 받아온 집단이라면 그러니까 더더욱 비분강개는 실익이 없는것 같아.
후후 나중  토의시간엔 배고파서 언제 끝나나 하고 있다가 너한테 써보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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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블로그

를 열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불로그를 생각없이 원래 오프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일러 주었더니

어떨때는 그들이 의식되어 글을 올리고 싶을때 결국 안 쓴 적이 몇번 생겨 났다.

다른 곳에 블로그를 만들까(티스토리나 구글 같은곳에) 하는 생각도 여전히 있지만

여기 와서 다른이들이 글쓴것 보면서 생각할 기회도 얻고 그런게 역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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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괜찮은데

시립 도서관엘 가서 책을 빌리고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가족 카드를 만들었지만 그건 ZL이 가지고 있고

하도 여기 저기 주민번호를 요구하니까 에라, 그냥 하나로 다 되니까 쓰자.

이미 노출된 정보 어쩔...

이런 마음?

그치만 대출대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점잖게 뭐라고 했다.

'왜 카드 안 가지고 다니세요?'

'사진만 한 장 가져오면 가족수대로 카드 만들어 드리는데.'

'주민등록증 내면 우리가 다 정보를 보게 되잖아요. 그러면 안 좋지요?'

 

 아, 그러네요, 정말, 다음에 꼭 사진 가져올께요,

기분 좋게 야단을 맞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좋았던 것은 대출대 옆에

' 평화 인권 영화제' 를 한다고, 시간표랑 장소를 인쇄한 명함 크기의 안내쪽지가 있었다.

근처 세군데 지역에서 다음주 수, 목, 금요일에 그 곳 중학교 시청각실에서

상영하는건데 내가 사는 곳에선 '내 마음은 지지 않았다' 가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날은 '길', 그 전날은 '어느날 길 위에서' 를 한다.

금요일은 다음날 출장 때문에 짐을 싸야 하니 못 가겠고

목요일엔 꼭 가서 봐야겠다. 

여기선 이렇게 하루에 한편, 장소도 마땅치 않아 중학교 시청각실에서 하는구나.

그것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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