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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지지 않았니. 옛날엔 대통령 지나가면 온동네 사람들 나 나와서 깃발 흔들고 그랬다."
오늘 아버지와 식사하다가 G20 동원령의 촌스러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아버지가 툭 던진 말이다. 이 한 마디 속에 우리가 왜 '진보'라는 상징을 가지고 체제와 맞설 수 없는지가 다 들어 있다. 역사의 진보는 좌파의 편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였으며, 노동계급이 '진보'를 자신의 역사관으로 받아들일 때, 자본주의의 종말은 끝없이 연기되고 만다. 국가 동원체제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도록 만든 것은 사실 좌파의 운동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보'의 역사관 속으로 들어갈 때 우파는 성공적으로 그 투쟁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전치시킬 수 있다. "야 봐라.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니? 근데도 아직 촌스럽게 투쟁을 해?"
그래서 벤야민은 혁명이 역사의 기관차가 아니라, 역사의 기관차를 멈추는 비상브레이크라고 한 것이다. 진보는 좌파의 편이 아니다.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단지 구원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구원은 "억압받는 이들" 속에서만 나온다. "민주시민" 따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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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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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어제 g20반대 집회 때는, 뭐 김강님도 참가하셨다니 들으셨겠지만, 선무방송하는 분께서 '이명박은 반애국자'란 뉘앙스를 흘리면서 참여한 시위 대중을 '애국시민'이라고 호명하려 들더만요. 거따가 대고 하려거든 님이 다 하세요 애국시민, 할 수도 없고..ㅋ확실히, 19세기 말~20세기 이 동네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지체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바퀴가 달린 '진보'의 수레라는 은유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설명, 서술할 수 있는 이야기가 (20세기 근대동아시아 민중사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이러지 않고서는, 설령 국적별/직종별 구성이 아무리 다채로워진다 해도 실질적 연대 움직임에 탄력이 생기기는 더 힘들잖겠나. '진보'사관에 투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되려 그 반대인 탓에 향후 정치적으로 더 긴요해지고 유효해져야 할 국내외적인 연대는 '선택사양'으로 오그라들어 있겠다고 할까요.
그간 명명돼온 "민주화"가 더군다나 국민/민족주의적 발전주의와 결합한 반공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겨냥하고 말 뿐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양심적 지식인/역사학자'들이 1990년대 이후 다시 혹은 함께 썼다는 20세기 근현대사 책들을 봐도, 결국 권역화된 시장이나 "광역국가"로의 '진보'만 염두에 두고 있자나요. '국사'의 틀로는 다룰 수 없는 동아시아 권역의 역사적 사건들을 국경별로 쪼개져 있는 각국 주민들의 시각에서 어떻게 서술할지에 대해선 사실상 관심이 없는 거죠. 이렇듯 "도래할 민중"은 지워진 채로 광역화된 자유민주적 시장경제를 바라는 "시민들"한테나 맞춤한 역사서술이니, 그런 서술로 형성된 시민들의 교류가 이번 g20회의 과정이 보여주듯, 갈수록 국가의 조폭화를 동반하는 '유한계급만의 리그'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데 대해선 아예 무관심하거나 진보 와중에 으레히 따르는 진통쯤으로 치부하고 말라나요.
뭐, 상당한 반발을 부를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공산주의 선언>에서 근대(민족)부르주아지의 '진보성'을 묘파한 맑스 아저씨의 서술에 대해서도 비판적 토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롤레타리아트 세계 혁명의 역사적 필연 내지 정치적 불가피성을 갈파했다는 점 외에도 여러 성취들을 보여준 문헌으로 사랑받고 있다곤 하지만, 사실은 그에 못잖게 1980년대 말 이후 좌파를 자처했던 상당수 사람들에게 체제순응(혹은 체제에 대한 '공세적 적응'ㅎ)의 알리바이 또한 제공했던 것 아닐까... 근까, 1980년대 말 소위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했던 고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아예 무망하거나 적어도 난망해졌다면, 차라리 스스로 진보적 부르주아지가 되거나 이런 이들의 '자유'를 강화하는 쪽이 '한국적 진보'의 일환이겠다는 식으로 말예요. 물론 이게 '1980년대 그 많던 좌파들은 다 얼루 갔냐'는 물음에 대한 유일한 답일 리야 없겠지만, 수용한 쪽에서 얄팍하게 읽거나 잘못 읽은 탓이라고 치부해서도 곤란한 대목이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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