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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AR 현상에 대한 뒤늦은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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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에 '괴물'의 합동분향소는 없다.

 

디-워 현상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애국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이다. 한국에서 애국주의란 아주 오래된 습관이며, 언제나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새삼 여기서 문제가 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디-워의 엔딩 크레딧에 실린 심 감독의 '간증'을 듣고 불쾌해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애국주의'가 싫었다고 하는 점을 보면 오히려 애국주의는 적절하게 비판받고 있고, 이전보다 약화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자본주의이다. 사람들이 디-워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리고 쇼박스와 심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홍보한 내용은 바로 '성공 스토리'였다. 우리는 IMF이후 이 '성공 스토리'들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역경을 딛고 일어난 장애인, 노숙자가 되었다가 성공하여 CEO가 된 사람, 심지어 로또복권으로 횡재한 경우까지. 어려움과 무시를 딛고 (어떤 수단을 통해 되었든 간에) 성공해서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이 된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고, 이 이야기들은 비판받지 않은 채 우리의 자본주의적 감성을 자극한다.

이런 성공 스토리의 악람함은 그것이 낮는 소외에 있다. 왜 디-워와 심감독이 충무로와 언론-비평가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핍박을 뚫고 성공했다고 찬사를 보내는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충무로와 언론-비평가 권력을 그동안 비판하며, 이 권력 외부에서 열심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독립 영화인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지 않을까. 유능한 독립영화 감독 이송희일을 향하여 왜 그토록 섬뜩한 비난을 퍼부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충무로'의 거대 자본 중 하나인 쇼박스가 배급을 맡은 디-워를 애써 충무로 영화와 대립각을 새우는 건, 그래야 대중의 '성공스토리'에 심감독 스토리가 추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그들의 비판을 통해 자본-언론-비평가 동맹이 해체되고, 좀 더 자유롭고 활기찬 새로운 영화판이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이들 스스로가 성공 스토리의 참여자가 되어서 심 감독을 그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들은 이 '성공 스토리'를 통한 대리만족을 즐기면서 '자본주의에서도 계급이동이 가능하다'는 착각을 재생산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본주의는 강화된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 '성공 스토리'들로 인해 철저하게 소외된다. 장애인으로 남아 있는 장애인, 노숙자로 남아 있는 노숙자, 독립영화인으로 남아 있는 독립영화인들은 성공 스토리의 이면에서 더욱 소외된다. "넌 왜 그렇게 되지 못하니? 능력도 참 없구나." 만약 이들이 현재의 상태를 바꾸기 위해 투쟁으로 돌입한다면 비난은 더욱 거세진다. "못 배우고 능력 없는 것들이 역시 거칠군. 경찰은 뭐 하나~"

인터넷 세계는 결국 민주주의의 세계가 아니었다. 자본과 권력은 누구보다도 인터넷 세계의 대중들이 가진 박탈감과 분노를 효과적으로 조직하여 성공 스토리에 대한 찬사와 소수자에 대한 분노라는 동전의 양면같은 정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다음은 파시즘일까.

p.s. 나는 2002년의 '노무현 현상'도 결국 디-워 사태나 황우석 사태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떴던 건, 찬사를 받았던 건 노무현 뿐이었다. 그리고 이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대중들이, 혹은 네티즌들이 "늘어난 민주적 권리"를 향유하는 사이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은 가혹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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