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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바라의 초상이 걸린 자리를 보며

지난 금요일 뭘 좀 빌릴 게 있어서 예전에 일하던 회사를 찾아갔다. 사람 사는 곳이 늘 그렇듯 그 사이 그 곳도 변화가 있었고 이러저러한 뒷말들이 무성하게 흘러다니고 있었다. 오랫만에 놀러온(?) 날 붙잡고 내 머릿 속의 가쉽란을 메꿔주려는 듯 여러 사람이 내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대는데 비식비식하는 웃음 밖에 나올게 없었다. 일단 예의바른 모습으로 위기는 모면. 내 스스로가 화제에 오르는 일은 극력 피하기 위해 여러가지 술수를 발휘.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칸막이를 지나가는데 우연히 눈에 띈 체게바라 초상에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걸린 자리의 주인이 주인이었던 만큼.... 내가 그 회사를 다니는 동안 노조를 결성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직원이라곤 40명 밖에 안되는 작은 회사지만 그나마 탄탄한 축에 속하는 편이었는데 문제는 이게 신문사였다는 것이다. 노조를 만들려고 했던 그룹은 기자들. 내가 속한 부서는 전산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까지 이 정보가 오기는 꽤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자기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듯. 아마도 나머지 부서는 자기들이 하자는대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마침 사장이 한국으로 출장을 간 사이 편집국이 움직여 노조라는 걸 만들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참하라고 했다. 그 얼굴들에 침을 뱉어주고 싶었다. 그 자만심과 뻔뻔스러움에도... 시간은 흐르고 사장이 귀국하고 회사측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연히 '저 새끼들 지들끼리 한 거니까 지들끼리 책임지라'는 것이 모두의 중론. 그 와중에 위원장 감으로 떠올랐고 스스로 비슷하게 행동하던 사람이 있었다. 과거 학생운동의 경력이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 인간이었다. 사장 귀국 뒤 이틀. 인사발령이 났다. 평기자에서 간부로 승진. 그는 미련없이 사람들을 떠났고, 회의에서 대책을 말했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회사를 떠났다. 자의반 타의반. 모든 것은 지리멸렬. 하지만 이곳의 시스템 때문에 노조 자체를 없앨 수는 없었다. 나도 곧 회사를 떠났고, 몇 년이 지나 놀러와 보니 그의 자리엔 체게바라의 커다란 초상이 걸려 있었다. 아마도 쿠바의 관광지에서나 구했을 법한 그런 그림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게바라를 보면 무얼 생각할까? 젊은 날의 추억이라도 곱씹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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