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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19
    게바라의 초상이 걸린 자리를 보며(2)
    Navyblue
  2. 2005/08/07
    새 집에 이사온 지 한 달
    Navyblue
  3. 2005/06/29
    짐을 버리며(2)
    Navyblue
  4. 2005/06/29
    오랫만에 사람을 만나서(1)
    Navyblue
  5. 2005/06/19
    노동계급에게 역사란
    Navyblue
  6. 2005/06/08
    [펌]bella ciao(안녕 내 사랑) - 이태리 빨치산 민요
    Navyblue
  7. 2005/06/08
    [펌]적군 합창단 구 소련 국가와 가사 해설
    Navyblue
  8. 2005/06/07
    뒤척뒤척....
    Navyblue
  9. 2005/06/04
    첨밀밀을 다시보다 -2
    Navyblue
  10. 2005/06/02
    첨밀밀을 다시보다 -1
    Navyblue

게바라의 초상이 걸린 자리를 보며

지난 금요일 뭘 좀 빌릴 게 있어서 예전에 일하던 회사를 찾아갔다. 사람 사는 곳이 늘 그렇듯 그 사이 그 곳도 변화가 있었고 이러저러한 뒷말들이 무성하게 흘러다니고 있었다. 오랫만에 놀러온(?) 날 붙잡고 내 머릿 속의 가쉽란을 메꿔주려는 듯 여러 사람이 내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대는데 비식비식하는 웃음 밖에 나올게 없었다. 일단 예의바른 모습으로 위기는 모면. 내 스스로가 화제에 오르는 일은 극력 피하기 위해 여러가지 술수를 발휘.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칸막이를 지나가는데 우연히 눈에 띈 체게바라 초상에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걸린 자리의 주인이 주인이었던 만큼.... 내가 그 회사를 다니는 동안 노조를 결성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직원이라곤 40명 밖에 안되는 작은 회사지만 그나마 탄탄한 축에 속하는 편이었는데 문제는 이게 신문사였다는 것이다. 노조를 만들려고 했던 그룹은 기자들. 내가 속한 부서는 전산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까지 이 정보가 오기는 꽤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자기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듯. 아마도 나머지 부서는 자기들이 하자는대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마침 사장이 한국으로 출장을 간 사이 편집국이 움직여 노조라는 걸 만들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참하라고 했다. 그 얼굴들에 침을 뱉어주고 싶었다. 그 자만심과 뻔뻔스러움에도... 시간은 흐르고 사장이 귀국하고 회사측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연히 '저 새끼들 지들끼리 한 거니까 지들끼리 책임지라'는 것이 모두의 중론. 그 와중에 위원장 감으로 떠올랐고 스스로 비슷하게 행동하던 사람이 있었다. 과거 학생운동의 경력이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 인간이었다. 사장 귀국 뒤 이틀. 인사발령이 났다. 평기자에서 간부로 승진. 그는 미련없이 사람들을 떠났고, 회의에서 대책을 말했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회사를 떠났다. 자의반 타의반. 모든 것은 지리멸렬. 하지만 이곳의 시스템 때문에 노조 자체를 없앨 수는 없었다. 나도 곧 회사를 떠났고, 몇 년이 지나 놀러와 보니 그의 자리엔 체게바라의 커다란 초상이 걸려 있었다. 아마도 쿠바의 관광지에서나 구했을 법한 그런 그림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게바라를 보면 무얼 생각할까? 젊은 날의 추억이라도 곱씹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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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에 이사온 지 한 달

벌써 새 집으로 이사온 지 한 달이다. 유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자취 전용 집인지라 가끔 술자리 때문에 시끄러운 때를 빼고는 만족이다. 게다가 요즘은 휴가철인지라 이 유학생들도 이리저리 놀러갔는지 코빼기도 보기 힘들다. 1층에 몇 명인가가 살고, 2, 3층엔 나까지 네 명, 그리고 지붕에는 중캐만한 너구리 네마리 한가족이 살고 있다. 조용하고 편안하고 한가한 삶이다. 그 와중에 멀리 갔다 온 친구 하나가 손님으로 머물고 있는데 도무지 같이 놀아줄 시간이 없어서 미안하기 그지 없다. 자기 혼자서도 잘 노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여유가 좀 더 있어서 이리저리 같이 다니며 놀면 좋을텐데... 천상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일단은 이 편안한 상태를 좀 더 번잡하게 만들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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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버리며

이사를 준비해야 한다. 그 덕에 그나마 쌓여 있는 짐을 배낭 두 개로 줄이기로 결심했다. 좀 더 '도'에 이르르면 배낭 한 개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하며... 작은 방에 널려 있는 물건 중 버릴 것들을 고르며, 뭐 참 별 게 다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내 맘도 지저분해 있었으리란 생각도 했다. 짐을 버리는 김에 근심도, 걱정도 다 버리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확 다 버려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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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사람을 만나서

떠나와 산 지 6년이 되어간다. 그간 참 많은 사람을 낯선 땅에서 만났고, 헤어졌고, 부대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살기 힘들고 고달픈 이 즈음에 그나마 먼 곳에서 벗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좋은 사람을 소개로 새로 만나기도 해서 즐겁다. 건조하고 메마른 삶에 도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말 통하는 사람과 만나 되지도 않은 수다라도 모국어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긴장하지 않고, 감추지 않아도 되고, 드러내고 말하기 참 오랫만이다. 즐거웠던 주말이었다. 바쁜 사람 붙잡고 귀찮게 하지 않았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좀 있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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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에게 역사란

Historical information about employers is non-value-added information so we destroy it. - A General Motors manager When you come right down to it, history is the only teacher workers have. - David Montgomery This is my faith. For all these years we have advanced because we, the people, do learn. - George Burt The Canadian Autoworker - birth and transformation of a union 의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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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bella ciao(안녕 내 사랑) - 이태리 빨치산 민요

/* 요 며칠간 지금은 남미에 가 있는 후배의 블로그 글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 글들을 읽으며 다들 참 다양한 고민과 관심꺼리들을 갖고 있구나, 그리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결론을 만들어내고 있구나 하고 감탄하는 중이다. 워낙에 빠릿빠릿한 인간이 못되었던 나는 진보넷에 들리면서, 또 사람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참 난 심심하게 살아왔지 않은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다들 다양한 분야들에 관심을 갖고 있고, 또 관심을 가진 분야를 집요하게들 파헤치는 것 같다. 특히 음악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음악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앨범이 끝이었으니까. 그  뒤론 거침없이 뒤로 회귀... 아저씨 취향으로 가고 있다. 김추자의 노래들이나, '봄날은 간다' 등등...

 

  다시 원래로 돌아와서, 최 모군의, 아니 이제는 최 모 아저씨라고 불러야 할 그 친구의 블로그 글들을 살피다가 "The bells 그리스 레지스탕스 군가_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빌려온 글 2004년 07월 28일 20:42 "라는 글을 발견하고 문제의 링크 고니소리로 이동.

  이 분의 글을 살피던 중,  예전에 영어버전의 인터내셔날을 배워볼려고 찾아다니다 발견한 싸이트에서 인상깊게 들었던 노래 - bella ciao에 대한  해설과 다양한 버전의 같은 노래들이 있어 옮겨 적어둔다. */

 

/** 원래 인상깊게 들었던 이 노래의 다른 버전은 여기서 찾아 들을 수 있다. 아래 링크된 노래는 무언가 열린음악회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듣는 듯한 분위기가 나지만 내가 찾아낸 노래는 마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같은 프로그램에서 어느 산골 할머니의 구전 민요를 채록해 들려주는 듯한 분위기(?)가 난다. ^^; 시간이 난다면 모두 한 번 들어보고 비교해 보시길... **/

 

/*** 링크된 노래를 다 들어보았다. 맙소사! 아랑이 도대체 누구야!!! ***/



♪ 러시아 사이트에서 찾아낸 같은 노래 ♪

 

Bella Ciao (안녕 내사랑)  끝나지 않은 노래 http://blog.naver.com/gonysori/60000973160

  2' 35"


 

 

악보보기

 

 

Bella Ciao 안녕 내사랑

-이탈리아빨치산민요-

 

Una mattina mi son svegliata
O bella ciao, o bella ciao, o bella ciao ciao ciao
Una mattina mi son svegliata

Eo ho trovato l'invasor

 

O partigiano porta mi via 

O bella ciao, o bella ciao, o bella ciao ciao ciao
 O partigiano porta mi via
Che mi sento di morir

 

E se io muoio da partigiano

O bella ciao, o bella ciao, o bella ciao ciao ciao
E se io muoio da partigiano

Tu mi devi seppellir


 

Mi seppellirai lassu in montagna

O bella ciao, o bella ciao, o bella ciao ciao ciao
Mi seppellirai lassu in montagna
Sotto l'ombra di un bel fior

 

Cosi le genti che passeranno

O bella ciao, o bella ciao, o bella ciao ciao ciao
Cosi le genti che passeranno

Mi diranno che bel fior


 

E questo e il fiore del partigiano
O bella ciao, o bella ciao, o bella ciao ciao ciao
E questo e il fiore del partigiano

Morto per la liberta.

 

이 아침 나는 일어나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이 아침 나는 일어나 침략하는 적을 맞으러 가야한다네
오 빨치산이 나를 멀리 데려가네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내가 빨치산과 함께 죽거든 그대 나를 묻어주오
아름다운 꽃 그늘이 진 산악지대에 그대 나를 묻어주오
지나가는 이들이 말하겠지
오 아름다운 꽃이여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붉은 꽃이여

 

 

: 현재 전세계 신자유주의반대운동, 반전평화운동의 집회장에서 대표적으로 불리우는 노래입니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이브몽땅, 칠레의 깐시온 폴클로레 낄라빠윤, 독일의 포크가수 하네스 베이더, 한국의 아랑등 각국의 노래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위에 흐르는 노래는 그리스의 국민가수 마리아 파란투리의 애절한 음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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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적군 합창단 구 소련 국가와 가사 해설

/* 자주 가는 사이트 중 하나가 kpug.net인데 오래 전 올라온 자료실 내용 중에 지금도 즐겨듣는 Red Army Choir의 구소련 국가에 대한 소개글과 mp3파일이 있었다.

   웹서핑 중 문득 생각이 나서 잊어버리기 전에 옮겨 적어 놓으려고 한다. 가끔씩 전혀 관련이 없을 듯한 곳에서 이런 것들을 만나게 되면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을 뭐라 해야 할까? 참 러시아 적군 합창단의 노래들은 p2p를 통해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여러가지 버전을 접해본 결과 'best of red army choir라고 돌아다니는 zip 파일이 가장 들을 만 했다.

   개인적으로 이 사람들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건 카츄샤, 아무르 빨치산의 노래, 러시아 군 행진곡이다. 물론 가사를 알리야 없지만 듣는 것 만으로도 어떤 기분을 만들어 낸다.

 */

 

 

 김영진 ( 2005-04-24 23:15:41 , Hit : 596
 http://yachess.com
 Russian_Red_Army_Choir___Soviet_National_Anthem.mp3 (3.32 MB), Download : 254
 Russian_Red_Army_Choir_Hunt_For_Red_October.mp3 (4.67 MB), Download : 194
 [MP3] 붉은군대 합창단 곡들

첫번째는 소비에트연합시대의 국가입니다.
두번째는 영화 '붉은 10월'의 주제가입니다. 아마 원래는 군대의 합창곡인 듯 합니다.

현재 가사는 완전히 다르게 개작되었습니다. 93년에 옐친이 다른 곡으로 완전히 국가를 교체하였으나, 이 명곡의 반도 따라오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았고, 푸틴이 집권하자, 2001년 똑같은 곡을 공산주의가사를 바꿔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곡의 가사는 가장 오랜기간 사랑받은 가사이며 현재도 이렇게 부르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가사는
http://www.funet.fi/pub/culture/russian/html_pages/soviet.html 이곳에 44년 원곡, 77년가사 (스탈린 격하운동으로 2절부분에서 스탈린 이름이 사라짐) 2001년 가사가 있습니다.  (러시아어는 브로우저를 KOI인코딩으로 전환해 보세요.)  올려진 곡은 77년 가사입니다.

저도 몰랐는데, 바로 원곡을 작사한 사람이 바로 "시베리아에서 사랑을" (원제:시베리아의 이발사)을 을 감독한 니키타 미칼코프의 아버지(시인)더군요.  


원문과 1절만 번역

Союз нерушимый республик свободных  
사유즈 네루쉬믜 레스뿌브맄 스바보드니흐
    -자유공화국들의 깰수없는 결속
Сплотила навеки Великая русь  
스쁘라찌라 나베끼 벨리까야 루스
    -굳건하고 영원한 위대한 러시아
Да здравствует созданный волей народов
다 즈드라스트부옛 사즈다늬 볼레이 나로답
    -영원하라! 인민의 투쟁으로 세워진
Единый, могучий Советский Союз!
예디느이 마구치이 사벳스키이 사유즈!
    -가를 수 없는 강한 소비에트 연맹!

        Славься, Отечество наше свободное,
        스랍샤, 아톄-체스트바 나셰 스바보드나예
                -찬양하라, 우리의 자유의 땅을,
        Дружбы народов надёжный оплот!
        드르쥐븨 나로답 나됴즈늬 아쁘롯!
                -형제애로 뭉친 인민들의 듬직한 요새!
        Партия Ленина - сила народная
          빠르찌야 레니나 - 실라 나로드나야
                 -레닌의 당 - 인민의 저력
        Нас к торжеству коммунизма ведет!
        나스 끄 또르줴스트부 꼼뮤니즈마 베둇!
                 -공산주의의 성공으로 약진하자!

Сквозь грозы сияло нам солнце свободы,
스끄보즈 그로즤 시얄라 남 손쩨 스바보듸,
    -폭풍을 헤치고 우리에게 자유의 햇살이 비췄네.
И Ленин великий нам путь озарил:
이 레닌 벨리끼이 남 뿟 아자릴:
    -위대한 레닌이 우리의 길을 밝혔네
На правое дело он поднял народы,
나 쁘라바에 젤라 온 뽀드냘 나로듸,
    -그는 인민들을 진리로 깨우쳤네.
на труд и на подвиги нас вдохновил!
나 뜨루드 이 나 뽀드비기 나스 브다흐나빌!
    -성실과 용맹으로 우리에게 영감을 줬네.
    
         (후렴같음)
        Славься, Отечество наше свободное,
        Дружбы народов надежный оплот!
        Партия Ленина - сила народная
         нас к торжеству коммунизма ведет!


В победе бессмертных идеи коммунизма
프 뽀베뎨 베스스메르뜨늬흐 이뎨이 꼼뮤니즈마
     -공산주의의 승리는 불멸의 이상
Мы видим грядущее нашей страны,
믜이 비딤 그랴두셰에 나셰이 스뜨라늬,
     -우리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네
И красному знамени славной Отчизны
이 끄라스노무 즈나메니 스라브나이 앗치즈늬
     -영광의 나라의 펄럭이는 붉은 깃발
Мы будем всегда беззаветно верны!
믜이 부뎸 프시그다 베즈자베뜨나 베르늬!
    -그를 위해 진실로 혼신을 다할 것이다!
        (후렴같음)
        Славься, Отечество наше свободное,
        Дружбы народов надежный оплот!
        Партия Ленина - сила народная
         нас к торжеству коммунизма ведет!

-------------
영문 가사,

The Hymn of the Soviet Union

Unbreakable Union of freeborn Republics,
Great Russia has welded forever to stand.
Created in struggle by will of the people,
United and mighty, our Soviet land!

        Sing to the Motherland, home of the free,
        Bulwark of peoples in brotherhood strong.
        O Party of Lenin, the strength of the people,
        To Communism's triumph lead us on!

Through tempests the sunrays of freedom have cheered us,
Along the new path where great Lenin did lead.
To a righteous cause he raised up the peoples,
Inspired them to labor and valorous deed.
[Or, the old way:
Be true to the people, thus Stalin has reared us,
Inspire us to labor and valorous deed!]

        Sing to the Motherland, home of the free,
        Bulwark of peoples in brotherhood strong.
        O Party of Lenin, the strength of the people,
        To Communism's triumph lead us on!

In the vict'ry of Communism's deathless ideal,
We see the future of our dear land.
And to her fluttering scarlet banner,
Selflessly true we always shall 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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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척뒤척....

잘 나가던 일을 때려치고, 공장으로 간 지 두 달여... 복귀를 위한 전초전이라 생각은 하지만 몸이 힘든 건 사실이다. 벌써 바지들이 한단계씩 늘어나 버렸다. 몸이 줄어들었다는 소리지 뭐. 일하는 와중에 보게 되는 온갖 종류의 인종들은 아직까지도 신기하다. 늙어가는 탓인지 새치는 머리에 가득해져서 모자로 감추고 다니고 있는 중이고, 밤잠도 줄어 곧 일 나갈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뒤굴거리며 인터넷에 매달려 있다. 이러다 오늘 죽지... 어쨌건 그러던 와중에 오래 전 알고 지내던 후배가 블로그를 개설하려 하는 움직임을 포착, 독촉하는 메일도 하나 보내고 그 친구의 그림도 뒤적여 찾아내 보고는 푸하하하 하고 웃었다. 맞아 맞아... 음식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유난히 열을 냈었지 하며... 아직 30이 되기 전이었던가 아님 조금 아주 조금 넘었을 때 였던가... 아 자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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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을 다시보다 -2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오래 전 한국에 있을 때 보았던 감상을 지금은 떠올릴 수가 없다. 어떤 느낌이었는지. 하지만 이제는 영화에 배어있는 배우들의 시선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가 가슴을 찌를 듯하다. 수없이 많은 중국인 불법 체류자들. 먹고 살 길을 찾아서, 새로운 삶을 찾아서 신세계로 온 그들의 첫번째 단계는 같은 민족들에게 착취 당하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상의 제약 - 물론 여기선 미국의 이민국처럼 나서서 불법 이민자를 잡으러 다니는 사람도,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사람도 없다. 여태 그런 경우를 당했다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에다가, 영어가 전혀 안된다는 점은 그들을 자기 민족의 커뮤니티에서 먹고 살 길을 찾게 만든다. 그 결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라는 전형적인 착취 구조에 자신들의 목을 집어넣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아예 캐나다에 밀입국할 때 부터 밀입국에 필요했던 돈을 다 갚을 때 까지 노예노동을 강요당하는 경우도 수두룩 하다고 한다. 최저 임금 시간당 7.45불, 중국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받는 돈, 시간당 3-4불, 물론 잠자리와 먹을 것은 합숙으로 해결한다. 이 합숙소가 한 번은 캐나다 경찰에 적발되어 신문에 난 적이 있었다. 구로동 쪽방과 별 다를 것 없는 형태지만 이 나라 인간들에겐 적잖이 충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하튼 내일은 오늘보다, 어제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라는 미신에 속아가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희망에 부풀어 홍콩의 거리를 달리는 여명의 모습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이곳에선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모습들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를 내일에 대한 기대는 합법적 신분으로 희망의 나라에서 풍요를 누리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은 때로는 비굴하게 때로는 야비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자본주의란 경쟁을 기본 원리 중의 하나로 하는 사회. 여기서 밀리면 갈 곳없이 죽는다는 비장함은 무슨 일이든 서슴치 않게끔 만든다. 어디 하나 등기댈 곳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인 것이다. 물론 이들과는 다른 소위 부르조아의 모습을 한 이민자들이라면 단연 한국인과 대만, 홍콩인들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나처럼 가난한 인간들도 분명 있을테지만 대부분은 적어도 1억 이상의 현금을 들고 이곳에 이민와 처음에는 취직을 노려보다, 결국은 소규모 사업에 종사하게 되는 계층이다. 캐나다에 와서 음식점에서, 구멍가게에서, 기타 작은 각종 가게들에서 마주치게 되는 동양인들이 이 부류들이다. 정말 부자들, 이 사람들은 평일날 골프장에 가면 잔뜩 만날 수 있다. 들은 말로는 특히 밴쿠버가 이곳 토론토 보다 심하다고 한다. 나머지 하나는 소위 잘나가는 아시아의 나라에서 왔지만 돈 없고, 취직이 않된 사람들이다. 이들이 밟아가는 길은 각종 현금박치기 일에 종사하다가 결국 들고온 쥐꼬리만한 돈이 떨어져 갈수록 눈높이를 낮추고 마지막에는 공장으로 가게 되는 사람들이다. 좀 정리를 해보고 이들의 이야기를 써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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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을 다시보다 -1

6시 45분 이른 아침에 불현듯 눈을 뜨고는 어딘가에선가 받아온 첨밀밀 파일을 열었다. 꽤 오랫만에 보게 되는 것 같다. 왜 이걸 열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냥 돌아가는 동영상 파일을 멍청히 보는 와중에 머릿 속으로는 쉴새없이 여러가지 생각이 지나간다. 이제 이민 6년차. 부푼 희망을 안고 캐나다 땅에 도착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저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것 중의 하나가 이민이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이민이란게 그렇게 문턱이 높지 않았었고, 운동이라고 할 적에 익혔던 서류위조기술(?) 덕분에 대학교 중퇴, 곧 고졸의 학력으로 무리없이 영주권을 따내고, 바닥에서 익혔던 기술 덕분에 쉽사리 취직을 하고 먹고 살게 되었다. 97년 운동판에서 건강을 이유로 한 발 물러서게 됐을 땐 이렇게 살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아뭏튼 그 때 가장 당혹스러워던건 20대를 운동판에서 보낸 30대 초반의 고졸 남자가(경력도, 사회에서 인정해 줄 수 있는 경력말이다)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우습게 살아왔었던가를 잘 알 수 있었다. 그간 단 한 번도 보통 사람들처럼 돈 벌어 밥먹고 사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30대 초반이 되도록 남이 먹고 사는 문제로 싸워온 인간이 자신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선 거의 백지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물론 일용직으로 일을 하려면야 자리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도 나이가 걸리는 곳이 많았다. 어중간 했다는 것이다. 40을 넘기지도, 20대인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 그야 말로 최악이었다.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하든 활동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만 하면 되는, 생존에 필요한 기본만을 만들어내면 되는 문제였지만 이젠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벌거벗겨져 광장 한 복판에 내동댕이 쳐진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돈 없는 문제야 우리 집안이나, 일가친척이 엇비슷한 문제였고, 고장난 몸이 어느 정도 수리가 되자 먹을 걸 만들어 내야만 했다. 어찌어찌 일을 구하고 살기 1년여만에 이민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뭐 특별히 뭔가를 할 수 있다거나 공부를 해야겠다거나 하는게 아니라 한국에서 도저히 살아나가기 힘들었던 것, 또 당시 마누라 또한 활동가 출신으로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편입되기 어려운 조건에 있었다는 점도 뭔가 획기적으로 먹고 살 길을 마련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99년 캐나다에 랜딩, 직장을 잡고, 먹고 사는 일을 보통 사람들처럼 위장한 채 살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마누라는 ex-wife가 되었고, 난 또 한 번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두어달 전 두 명의 활동가가 안식년 기간 동안에 나 사는 곳에 들렀다 갔고, 지난 주에는 베네주엘라로 떠나는 후배가 한 명 머물다 갔다. 수많은 생각들이 여전히 머릿 속에서 웅웅거리는 동안에 난 첨밀밀을 이른 새벽에 다시 보고 있다. 그들의 희망과 절망을 눈 앞으로 스쳐보내며 내 인생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제 나갈 시간! 저녁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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