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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07 삶의 무늬 그리고 사랑
  2. 2020/04/24 All Is True
  3. 2020/03/15 (전쟁과 사랑) 신이여 한 잔 드소서
  4. 2020/01/28 (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5. 2019/10/07 (분노와 사랑) 사랑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1)
  6. 2019/09/18 (마광수) 청춘
  7. 2019/09/18 세가지 사랑의 형태
  8. 2019/09/17 (마광수) 황혼
  9. 2019/09/17 (마광수) 사랑의 슬픔
  10. 2018/07/13 [다니자키 준이치로] 미친사랑
  11. 2018/07/13 마광수..
  12. 2018/07/13 [EBS] 죽음
  13. 2015/04/04 수술, 다이빙 그리고 Ju suis à paris
  14. 2014/01/05 [자크 아탈리, 등대] 이븐 루슈드_지성의 환희
  15. 2012/04/03 [박노자] 우리들의 인생은 짧지만 저항의 역사는 길게길게 흘러갑니다.
  16. 2012/04/03 마흔의 과제
  17. 2012/03/24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아는 사람을 본다는 것
  18. 2012/03/18 [칙센트미하이] Flow
  19. 2012/01/14 [리영희] 대화
  20. 2011/10/13 [니체]에너지로 충만할 때 우리는 괴로움을 기꺼이 껴안아 이를 극복하고 삶을 긍정할 수 있다
  21. 2011/09/29 [조지 오웰]당신은 혁명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밥만 축냈습니다'
  22. 2011/09/29 이 사건 처분은 위법 부당하다.
  23. 2011/09/26 [청전스님] 죽음도 생도 없으면 두려움도 없는 것이지
  24. 2011/08/17 타인의 아픔
  25. 2011/07/28 [김진숙] 흔들리지 않는 85호 크레인 나무
  26. 2011/07/27 [김연수] 질투, 여자, 본다는 것...
  27. 2011/07/16 아프고 나서... (2)
  28. 2011/07/08 [박노자] 김진숙 선생님, 그리고 "지식"의 한계
  29. 2011/06/30 [지식메일] 파시즘
  30. 2011/06/16 [박노자] 사랑이란 무엇인가?

삶의 무늬 그리고 사랑

2020/05/07 23:38

삶의 무늬 그리고 사랑

 

 

1.

최근에야 나는, 나의 '삶의 무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살아온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기쁨과 슬픔이 있었고 많은 회한도 있었다. 지나온 삶의 어떤 순간에는 더없는 부끄러움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시류에 따라 움직였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시대 상황과 나의 경제적 조건, 그리고 주로 만나는 사람들의 말과 자주 읽는 글에 따라 행동한 사람. 나는 나의 소심한 성격과 함께 어떤 때는 당돌한 선택을 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시절의 학생운동과 그 후 노동운동, 그에 따른 조직활동도 경험하였다. 대학원을 마치고 공직생활을 하고, 중소기업을 다니면서, 이제 다시, 사춘기처럼 나에 대해 묻고 있다. 

 

이런 내 물음의 기저에는 어떤 것에 끄달리거나 기대는 나의 삶의 역린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어떤 것에 기대는 나의 생활이 편할 때와 불편할 때를 나눠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 생각들의 마지막에는 가서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이념이나 제도, 질서 등에도 기대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그 스스로의 오랜 생각에 따라 마음을 결정하고 행동하면서 자기 삶를 사는 것! 나의 삶의 무늬를 직접 그리는 것!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다.

 

 

2.

그런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삶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자들도 있을 것이다.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제강점기 의열단원들의 삶. 그들의 삶의 모양과 무늬는 어떠했을까.


의열단은 1919년에 만주 지린(吉林)에서 조직된 반일 비밀결사 조직이었다. 일정한 소재지가 없이 일본의 요인 및 그 주구를 암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의열단원들은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생명이 지속되는 한 마음껏 생활하였고 기막히게 멋진 친구들이었다'고 한다. 항상 그들은 '스포티한 멋진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백할 정도로 말쑥하게 차려입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마치 특별한 신도처럼 생활하였고, 수영, 테니스, 그 밖의 운동을 통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였으며, 그들의 생활은 '명료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사랑을 하였다. 그들의 사랑은 누구보다도 강렬했다. '모든 조선 아가씨들은 의열단원을 동경하였으므로 수많은 연애사건'이 있었고, 그들이 사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아가씨들은 러시아인과 조선인의 혼혈이었는데 매우 아름답고 지적'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이 아가씨들과의 연애는 짧으면서도 열렬했다'고 한다.

 

그들은 스스로 시대의 지식인이라고 생각하였다. 의열단원인 김산은 '육체는 빵으로 살찌지만, 정신은 기아와 고통으로 살찐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만 비로소 지식인은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3.
그들은 자기 삶의 무늬를 그리면서, 인간의 삶을 지도하는 삶과 추종하는 삶으로 구분한 것 같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안락이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지도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따라갈 것이다. 추종하는 자들에게는 단 하나의 길밖에 없다. 지도하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추종하는 자는 자유롭지만 지도하는 자는 그렇지 못하다. 추종하는 자는 책임없이 행동할 수 있지만 지도하는 자는 역사적 결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중략)...추종자였을 때가 더 행복하기는 했다...(중략)...나 또한 죽을 때까지 창조적 역활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추종하는 삶의 안락함보다 스스로 창조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그런 삶, 자기 자신의 삶이 결국 행복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의열단원인 김산에 따르면,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하여-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인간정신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비극은 인생의 한 부분'이고 '억압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한 인간의 영광'이며, '굴복하는 것은 한 인간의 수치'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믿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다 죽는 것은 행복한 죽음'이라고 말했다.***

 


4.
행복한 죽음이라?...자기 자신의 삶을 산 자의 죽음, 종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의 죽음은 어떤 것일까. 철학자 스피노자는,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도 그 무엇도 두렵지 않네, 물방울이 바다에 떨어지기를 두려워하던가?'****라고 소리쳤다.

 


5.
종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사실 이런 현실의 굴레를 끊으면서 삶의 무늬를 그리는 사람은 여성들일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여성'이라는 종속적인 사회적인 존재 조건 때문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들의 그 자유로운 삶의 처음과 끝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2016, 윌리엄 올드로이스 감독)를 보면, 17살에 돈 몇 푼에 팔려 결혼한 여성이 모든 금기를 깨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자신의 삶을 살 것을 결심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휘두르거나 개입한 남성들-시아버지와 남편, 애인을 살해하고, 넓고 높으며 고요한 저택의 한가운데 앉아서 세상의 정면을 바라보는 삶을 선택한다.

 


6.
그녀들은 인류가 겪은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이념이나 제도 그리고 국가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삶과 사랑을 선택하기도 한다. 전쟁에 참여한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따르면, 아수라장인 전쟁통에서 그녀들은 '단지 전쟁만이 아니라 그녀들의 젊음과 첫사랑'*****을 시작하거나 만끽하였다. 그녀들은 당시의 사회적 환경이나 거대한 담론보다는 본래 지니고 있는 인간의 모양를 그리고 있었다.

 

이에 더하여, 그녀들은 일상의 관습적이고 제도적인 사랑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전쟁 중에 가지기도 하였다. 영화 '스윗 프랑세즈' (2014, 솔 디브 감독)를 보면, 적군인 독일군 장교를 사랑하는 그녀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두 번 만난 남자랑 결혼해 놓고, 그게 사랑이었다고 스스로를 속여 왔어요. 내 마음이 죽어 있었던 거죠"

 


7.
자신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 시대적 담론이나 도덕, 사회적 환경이나 조건, 이런 것들은 사실 시대에 따른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어떤 것들이다. 인간의 삶이, 이런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어떤 것들에 따라, 줄에 묶인 개처럼 시대의 사슬에 매여 있으면****** 서글프지 않을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선택하는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시대와 사회적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자기 삶의 본래 무늬를 그려야 한다. 그래야 내가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것 같다.

 

 

* 님 웨일즈, 김산, 2013, [(조선인 혁명가의 불꽃같은 삶) 아리랑], 동녁, 165~166쪽
** 같은 책, 404쪽
*** 같은 책, 464쪽, 467~468쪽, 471~472쪽
**** 스피노자, 야론 베이커스 Jaron Beekes, [스피노자 : 그래픽평전), 2014, 푸른지식, 142~145쪽
***** 스베나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2015,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 34쪽
****** "우리의 기억은 결코 이상적인 도구가 아니다. 기억은 제멋대로 인데다 변덕스럽다. 게다가 기억은 줄에 묶인 개처럼 시간이라는 사슬에 매여 있다."(스베나틀라나 알렉시예비치, 2015,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 33쪽)는 문장을 참고하여 필자가 변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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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s True

2020/04/24 13:48

- 비결이 뭡니까? 어떻게 아세요?

 

(셰익스피어)
내가 아는 것? 내가 아는 건...뭐, 다 알진 못하지만,
전부 상상했네

 

- 열네 살에 학교를 그만두셨다면서요, 여행도 안 해봤고요..상상의 원천이 뭐죠?

 

(셰익스피어)
나 자신

 

- 자신요?

 

(셰익스피어)
내가 한 모든 행동이나 내가 본 모든 것
내가 읽은 모든 책, 내가 나눈 모든 대화
이 대화도 포함되지
......
작가가 되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고
다른 사람 생각을 얘기해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얘기해
그 안에서 찾는거야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면 돼
자네의 인간성 말이야
스스로에게 솔직하다면 무슨 이야기를 쓰든
모두 진실이지

 

 

- 넷플릭스 ['올 이즈 트루(All Is True, 2018)', 케네스 브래너 감독]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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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랑) 신이여 한 잔 드소서

2020/03/15 14:05

신이여
한 잔 드소서
함께 마시지 않은 지 오래됐죠

 

신이시여,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사랑과 명예가 이젠 없어요

 

천사들과 대천사들

 

이 땅에서 더 무서운 건
봄일까요, 겨울일까요?

 

신이시여
뭘 하고 계신지 보십시오

 

사람들을 광기 어린 늑대로 만들지 마세요

 

백군도 속은 적군이고
적군도 겉은 백군입니다

 

천사들과 대천사들

 

이 땅에서 더 무서운 건
봄일까요, 겨울일까요?

 

 

- (넷플릭스) 전쟁과 사랑 시즌1 '8화' [원작 "고뇌 속을 가다"(알렉세이 니꼴라예비치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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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2020/01/28 12:42

인문적 통찰은...인간이 그리는 무늬, 인간이 그리는 결,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에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맨 얼굴로 대면하는 순간,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는 힘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더 자유로워졌습니까?

여러분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더 행복해졌습니까?

여러분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더 유연해졌습니까?

여러분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더 관용적인 사람이 되었습니까?

여러분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가족이나 이웃들과 더 잘 지내게 되었습니까?

여러분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 눈매가 더 그윽해졌습니까?

여러분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더 생기발랄해졌습니까?

여러분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상상력과 창의성이 더불어 늘어났습니까?

 

여러분이 지식과 이념과 신념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짓눌려 있던 자기의 욕망을 정면으로 이끌어 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모르는 곳까지 건너갈 수 있는 힘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 발췌 : 최진석, 2013, [인간이 그리는 무늬(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소나무, 156~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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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2000년부터, 아마 그 쯤부터 '분노로 시작하는 또는 조직하는 (어떤 변화를 위한) 집단적인 저항이나 투쟁은 실패한다.'고 말했다. 분노는 사람들을 쉽게 모이게 한다. 분노를 기반으로 하는 선동이나 말하기, 글쓰기는 어렵지 않다. 분노는, 온 힘을 다하여 크게 말하고 때로는 육신을 동원하여 악을 쓰며 울먹이듯 표현하면 된다. 분노는 본래 파괴적인 충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상대나 타자를 무너뜨리고자 할 때는 분노가 매우 적절하다.

그러나 분노라는 정서적 분위기와 감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분노는 사실 인간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감정이다. 분노는 그 에너지의 소모량이 많아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한다. 그렇게 지쳐서 사라진 '분노'의 자리에는 허무함이 등장한다. 이 허무한 정서적 공백은 곧 사람에 대한 질투와 시샘이 끼여들어 분탕질을 한다. 질투와 시샘은 저항이 아니다. 질투와 시샘은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수 없다.

 

2.
분노가 아니면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는가? 나는 '사랑'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은 인류가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가슴 속에 지니고 내려온 소중한 삶의 목적이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저항과 투쟁을 시작한다면...죽음이나 분노가 아닌 사랑!! 

 

3. 
(사랑은 집단적이지 않다. 집단적인 사랑은 파시즘을 동반한다.)

사랑은 개별적이고 독자적이며 은밀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각각 개별적이고 너무나 구체적이며, 그 독자적인 사랑의 질감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사랑하는 방법과 내용과 강도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과 같은가? 다른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매번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 내가 저번에 했던 사랑과 이번에 하고 있는 사랑이, 그리고 또 앞으로 하고 싶은 사랑이 같은가? 다르다. 각각의 '존재'가 모두 다르고 독자적이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마광수는 사랑은 반드시 권태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영원한 것이 되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여자가 늙어갈수록 남자는 권태와 환멸을 느끼게 되고, 여자 자신도 젊은 시절의 정초한 아름다움보다는 질투심과 심통만 늘어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랑이 갖는 원초적 비극성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작가 김훈도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은 곧 지겨워질 수 있으니 연민이 작동해야 사랑이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불같은 사랑, 마그마 같은 열정은 오래 못 간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대개 이기심이 섞이기 마련이고 뜨거운 열정은 그 안에 지겨움이 들어 있어서 쉽게 물린다. 연민은 서로를 가없이 여기는 마음이다. 연민에는 이기심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랑이 식은 자리를 연민으로 메우면, 긴 앞날을 살아갈 수 있다. 사랑은 단거리이고 연민은 장거리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5.
권태나 연민은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 마광수, 2013,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읽기>, 책읽는 귀족, 81쪽
** 김훈, 2019, <연필로 쓰기>, 문학동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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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청춘

2019/09/18 22:19
나는 천당 가기 싫어
천당은 너무 밝대
빛밖에 없대
밤이 없대
그러면 달도 없을 거고
달밤의 낭만도 없을 거고
달밤의 사랑도 없겠지
나는 천당 가기 싫어
(112쪽)
 
 
살아있는 독수리는 무섭지만
박제된 독수리는 멋이 있다.
 
살아있는 호랑이는 무섭지만
박제된 호랑이는 멋이 있다.
 
살아 있는 사랑은 무섭지만
박제된 사랑은 멋이 있다.
 
우리들의 삶은 '죽고 싶다'와 '죽기는 싫다' 사이에 있다.
우리들의 사랑은 '자유롭고 싶다'와 '자유가 두렵다'사이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삶은
마치 박제된 독수리와도 같은
감미로운 가사상태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랑도
박제된 독수리와 같은
가사상태이다.
 
죽어가는 생명은 애처롭지만
박제된 생명은
멋이 있다.
(112~114쪽)
 
 
자살자(自殺者)를 위하여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마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마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마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마라
 
바람이 부는 것은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닷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마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마라
그는 가장 솔질한 자
그는 가장 용기 있는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
(178~179쪽)
 
 
자살에 대하여
 
예술가가 자살을 하면 멋있고
승려가 분실자살을 하면 소신공양(燒身供養)이고
혁명가가 자살을 하면 열사(烈士)가 된다
이건 참 우습다
자살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활고에 의한 자살은 비겁한 것이고
치정 사건에 의한 자살은 병신 짓이고
예술가의 자살은 근사한 것이라는
편견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자살이나 자연사나 병사(病死)나 무엇이 다른가?
죽는다는 것은 다 같은 것이다
개의 죽음이나 소의 죽음이나
파리의 죽음이나 인간의 죽음이나
다 같은 거지 무엇이 다른단 말이냐
(198쪽)
 

['마광수, 2013, <청춘>, 책읽는귀족'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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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사랑의 형태

2019/09/18 16:37

1. 에로스(Eros) :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사랑

- (플라톤) ‘인간의 마음속에서 홀연히 정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불가항력적으로 인간을 엄습하는 본능적 사랑’, 에로스적 정열의 주된 대상은 ‘아름다움’ -> 에로스적 사랑은 남녀, 성숙한 남자와 젊은 청년, 스승과 제자 사이의 정신적 일체감에서부터 남자끼리 육체적 애정 표현을 추구하는 남색까지도 에로스 안에 포함

- ‘에로스’는 ‘성애적 사랑’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사랑’까지도 포함, 다만 에로스가 정신적 사랑으로까지 승화될 수 있는 근거는 ‘육체적 아름다움’에 있음 ; 인간 육신의 아름다움이 지식과 덕의 아름다움으로까지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이 플라폰을 위시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공통된 생각

* (에로스 안이 이미 필리아나 아카페적인 요소가 함께 포함되어 있음) 육체적 아름다움에 바탕한 ‘미적 숭경’이 바로 동성간이든 이성간이든, 그리고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든 다 똑같이 적용되는 사랑의 본질

 

2. 필리아(Philia) :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사랑(우애적인 사랑)

- 그리스어 ‘필로스(Philos)’에서 유래, 필로스는 친구라는 뜻으로 필리아는 ‘우애’를 가르키는 말 -> 좁은 의미에서의 우정보다는 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의 우정, 즉 우리가 감각만으로는 감지해낼 수 없는 정신적인고 인격적인 사랑

- 필리아는 짐승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인간의 ‘인격’안에서만 계발될 수 있는 사랑 -> 단순한 동성끼리의 우정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가족애(부모와 자식, 형제애), 부부애 등을 포함

***(필리아는 에로스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음)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라는 것이 정신적 우애에 바탕을 둔 아름다운 미소년과의 동성애적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때, 필리아 자체가 따로 독립해서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것 -> 아무리 부모자식간이나 형제간이라고 해도, 언제나 사랑의 바탕이 되는 것은 ‘육체적 아름다움’일 수 밖에 없음

 

3. 아가페(Agape) : 성스럽고 은총이 가득 사랑

- (주로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 신이 인간에게 베풀어 주는 한없는 은총 -> 인간 사이에서 아가페적 사랑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무조건 주는 사랑’이거나 ‘헌신적인 사랑’ 정도의 의미

**(아가페적인 사랑이 아무리 숭고하고 정신적인 차원의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종교예술을 통해서 아가페 안에 내포된 ‘미적 요소’를 많이 발견함) 불교의 관세음보살상의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의 모습, 성모마리아의 초상이나 예수그리스도의 초상을 될 수 있는 한 아름답게 그려내려고 함 -> 절이나 교회에 나가서 마음의 위안을 받게 되는 것은, 아카페적 사랑 그 자체 만으로써가 아니라 에로스적 사랑이 더불어 충족되기 때문(교회에 젊은 여자들이 많이 나가는 것은 이성으로서의 예수가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 예수는 33세에 죽었기 때문에 ‘영원히 늙지 않는 미남 청년’, 석가모니는 여든 살에 죽었지만 석굴암을 비롯한 곳곳의 부처님상은 가장 건장하고 원숙한 육체미를 보여줌)

 

=> 그러므로 사랑에는 에로스밖에 없고, 필리아나 아가페는 인간이 에로스적 사랑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그 대용물로 취하게 되는 자위적 성격의 사랑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마광수, 2013, <청춘>, 책읽는귀족, 48~54쪽에서 발췌하여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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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황혼

2019/09/17 18:03

황혼

 

스러져가는 것은 아름답다

나는 황혼을 바라보며 내 삶을 반추하고 있다

 

무엇이 그리 그리워 헐레벌떡 달려왔던가

무엇이 그리 보람돼 열심히 살아왔던가

 

어차피 이 나라에서의

인생엔 기대를 걸지 말았어야 할 것을

 

어치피 이 나라에서의

자유엔 희망을 두지 말았어야 할 것을

 

아니 어느 나라든 인생은 그저 먹고 자고의 반복인 것을

아니 어느 별이든 생명은 그 자체가 이미 슬픈 것을

 

자식을 낳기 싫으면 사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죽은 뒤의 일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면

글조차 쓰지 말았어야 할 것을

 

황혼처럼 활활 불타게 세상에 불이나 지르고 죽을까

황혼처럼 멋지게 놈들을 타당탕 쏘아 죽이고 죽을까

 

아아 그래봤자 어차피 세상은 징그럽게 거듭될 것을

그래봤자 어차피 놈들도 징그럽게 되살아날 것을

 

스러져가는 것은 아름답다

나는 황혼을 바라보며

어떻게 스러져가야 아름다울지 생각하고 있다

 

 

- 마광수, 2016, <섭세론>, '비관적인 인생관을 갖고 살면 마음이 편해진다', 철학과현실사, 120~121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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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사랑의 슬픔

2019/09/17 13:59

사랑의 슬픔

 

오 내 사랑, 넌 내가 팔베게 해주는 걸 좋아했지

내 팔에 안겨 새근새근 잠들곤 했지

 

처음에 난 그저 행복하기만 했어

곱게 잠든 네 얼굴에 키스하며 온밤을 새웠어

 

오 내 사랑, 제발 기억해 다오

내가 아픔을 참고 매일 밤 팔베개를 해줬다는 걸

 

하지만 난 결국 팔에 신경통이 생겨

더 이상 팔베개를 해 줄 수가 없었지 정말 아팠어

 

오 내 사랑, 그러자 넌 내 곁을 떠났다

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나는 팔이 아파 너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다만 애원하며 설득했을 뿐, 이것이 사랑의 실존이라고

 

오 내 사랑, 그래도 넌 내 곁은 떠났다

팔베개 하나 못해 주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립다 내 사랑, 제발 기억해 다오

내가 매일 밤 팔베개로 널 재웠다는 걸

 

돌아와라 내 사랑,

이젠 팔이 다 나았으니

 

 

(마광수, 2016, <섭세론 涉世論>, 철학과 현실사, 44~45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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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 준이치로] 미친사랑

2018/07/13 15:40

 

나오미는 아침마다 11시가 지나도록, 자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부자리 속에서 깜빡깜빡 졸면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신문을 읽기도 합니다..(326쪽)

 

그녀는 세수를 하기 전에 침대에서 홍차와 우유를 마십니다. 그러는 동안 몸종이 목욕물을 준비합니다.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목욕을 하고, 욕탕에서 나오면 잠시 누워서 마사지를 시킵니다. 그런 다음 머리를 묶고 손 톱을 다듬고...식당에 나오는 것이 대개 1시 반쯤입니다. (326~327쪽)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까지 거의 할 일이 없습니다. 밤에는 초대를 받거나 또는 손님을 초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호텔로 댄스를 하러 가거나, 어쨋든 뭔가를 하지 않을 때가 없으니까 그때가 되면 그녀는 다시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나오미의 친구들은 자주 바뀌었습니다..(327쪽)


사람은 한 번 호된 꼴을 당하면 그게 강박관념이 되어 언제까지나 머리에 남아 있는 듯, 나는 아직도 전에 나오미가 나가버렸을 때의 무서운 경험을 잊을 수 가 없습니다...그녀의 바람기와 방자함은 옛날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고, 그 결점을 없애버리면 그녀의 가치도 없어져버립니다.

바람기가 있는 계집이다, 제멋대로 하는 방자한 계집이다,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귀여워져 그녀의 함정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나는 화를 내면 낼수록 내가 지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328쪽)

 

 

- "다니자키 준이치로, 김석희 옮김, 2013, <미친 사랑>(원제목(일어)은 ‘치인의 사랑’), 시공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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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2018/07/13 15:19

2018년 4월..마광수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1. "마광수, 2011, <마광수의 뇌 구조>, 오늘의책"에서 발췌

 

지금은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돼도 괜찮은 시대가 아니라 소수의 돌출된 창의성을 위해 다수가 너그러워져야 하는 시대이다.(75쪽)

 

천재적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광기'는 작가의 본능적 의지와 위선적이고 억압적인 왜곡된 현실 사이에서 빚어지는 마찰에서 나온다. 작가 또는 민중들의 본능적 배설욕구들이 이념의 틀로써 부정되거나 흑백논리에 의해 매도당하지 않는 풍토, 그것이 바로 문화의 민주화...(중략)

 

...이 세상의 악과 불행은 이상의 결핍 때문에 비롯되지 않는다.
되레 모든 악과 불행은 잘못된 이상, 잘못된 신념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18쪽)

 

 

2.

행복한 자살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
아무렇지도 않게 섹스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질 수 있는
그런 여자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어

아무런 부담없이 햝고
아무런 부담없이 빨고
아무런 부담없이 박고
아무런 부담없이 빼고......

아아 그런 사랑이 내게 찾아온다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자살할 수 있을 것 같아

천국도 지옥도 없는 텅 빈 무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윤회하지 않을 것 같아

 

- 마광수, 2013, <2013 즐거운 사라>, 책읽는귀족, 186~187쪽.

 

 

3.

사라의 법정

 

검사는 사라가 자위행위를 할 때
왜 땅콩을 보지 속에 집어 넣었냐고 다그치며

 

미풍양속을 해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고

 

재판장은 근엄한 표정을 지어내려고 애쓰며
피고에게 딸이 있으면 이 소설을 읽힐 수 있겠냐고 따진다

 

내가 ‘가능성’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을까
또 왜 아들 걱정은 안 하고 딸 걱정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왼쪽 배석판사는 노골적으로 하품을 하고 있고
오른쪽 배석판사는 재밌다는 듯 사디스틱하게 웃고 있다


포승줄에 묶인 내 몸의 우스꽝스러움이여
한국에 태어난 죄로 겪어야 하는 이 희극이여

 

- 마광수, 2013, <2013 즐거운 사라>, 책읽는귀족, 190~191쪽.

 

 

4.

업(業)

 

개를 한 마리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식 낳고 싶은 생각이 더 없어져 버렸다
기르고 싶어서 기르지도 않은 개
어쩌다 굴러들어온 개 한 마리를 향해 쏟는
이 정성, 이 사랑이 나는 싫다.
그러나 개는 더욱 예뻐만 보이고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계속 솟구쳐나오는 이 동정, 이 애착은 뭐냐
한 생명에 대한 이 집착은 뭐냐
개 한 마리에 쏟는 사랑이 이리도 큰데
내 피를 타고난 자식에겐 얼마나 더할까
그 관계, 그 인연에 대한 연연함으로 하여
한 목숨을 내질러 논 죄로 하여
나는 또 얼마나 평범하게 늙어갈 것인가
하루 종일 나만을 기다리며 권태롭게 지내던 개가
어쩌다 집 안의 쥐라도 잡는 스포츠를 벌이면 나는 기뻐진다
내 개가 심심함을 달랠 것 같아서 기뻐진다
피 흘리며 죽어 가는 불쌍한 쥐새끼보다도
나는 그 개가 내 개이기 때문에, 어쨌든
나와 인연을 맺은 생명이기 때문에
더 사랑스럽다
하긴 소가 제일 불쌍한 짐승이라지만
내 개에게 쇠고기라도 줄 수 있는 날은 참 기쁘다
그러니 이 사랑, 이 애착이 내 자식 새끼에겐 오죽 더해질까
자식은 낳지 말아야지, 자신 없는 다짐일지는 모르지만
정말 자식은 낳지 말아야지
모든 사랑, 모든 인연, 모든 관계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되도록
이를 악물어 봐야지
적어도, 나 때문에, 내 성욕 때문에
내 고독 때문에, 내 무료함 때문에
한 생명을 이 땅 위에 떨어뜨려 놓지는 말아야지

(1979 년 作)

 

 

5. "마광수, 2016, <인간에 대하여>, 어문학사"에서 발췌

 

‘민주화’...‘정신과 육체가 두루 억압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는 상태’를 가르키는 개념...

육체의 솔직한 욕구를 은폐하지도 않고 왜곡하지도 않는 사회, 그런 사회야말로 정신도 솔직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115~116쪽)

 

인간과 동물이 같다는 생각은 인간과 관련된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 나아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보지 않고 ‘윤리라는 쇠사슬로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결박해 버린 불쌍한 동물’로 볼 수 있을 때, 인간은 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210쪽)


표현의 영역은 말이나 글의 범주를 뛰어넘어, 인간의 유한한 표면의식이 접근하지 못한 육감적 심층의식의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언어적 문자적 표현의 불완전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가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전신적 감각의 세계 안에 간직돼 있기 때문이다.(242쪽)

 

문자적표현의 불확실성 문제는 기호와 상징 그리고 문장론의 문제와 결부되면서 인간의 본질을 밝히는 데 있어 다른 사안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된다 특히 우주적 실상을 문자적 상징으로 표현하는 데 따른 무지의 가속화 문제는 초지각적직관의 실체를 규명하는 문제와 함께 새로운 연구과제..(242쪽)

 

섹스를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고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326쪽)

 

인류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이성 위주의 ‘어른스런 사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동물적 놀이본능’에 의해서 가능한지도 모른다.(328쪽)


...섹스 역시 놀이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인간은 자기파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인간 실존의 본질인 ‘고독’과 ‘불안’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오직 ‘놀이’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29쪽)


참된 에로티시즘은 ‘사정’이 아니라 ‘발기’에 있다. 긴 손톱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언제나 나의 ‘상상적 발기’를 오랫동안 지속시켜 주었다. 다시 말해서 오르가슴의 순간을 기대하는 시간을 한없이 기분 좋게 연장시켜 주었다. (361쪽)


나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동양의 실용주의적 가치관과 일원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는 ‘육체주의 문화’에 ‘고도의 과학문명’이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인간의 쾌락 또는 복지를 극대화시키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401쪽)


...미래의 신세계 실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적인 힘은 ‘절대적 평화주의’이다. 그리고 그것이 확립되도록 도와주는 역활을 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포기’와 ‘위선적 도덕의 포기’를 전제로 하는 ‘쾌락지상주의와 복지지상주의의 범인류적 수용’이다. (403쪽)


무엇보다도 섹스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일이 시급하다. 앞으로 우리가 살 세상은 식욕이 아니라 성욕 중심의 시대이며, 섹스가 주는 욕망의 카타르시스가 즐거운 놀이이자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생존권으로 자리 잡을 시대이기 때문이다.(442쪽)

 

 

6. "마광수, 2017, <추억마져 지우랴>, 어문학사"에서 발췌

 

우리가 계속 그 지겹고도 상투적인 인터코스만 되풀이했더라면...섹스의 묘미는 ‘사정과 수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능적 상상력을 통한 성희로부터..개성적이고 창조적인 변태 게임으로부터 우러나온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92쪽)

 

나는 수음을 하고 싶은 미칠 듯한 충동을 느꼈다...(중략)...순간적인 배설은 나를 긴장감으로부터 급격히 이완시켜 나의 온몸을 나른하게 했고 머릿속을 텅 비게, 정말 깨끗하게 비어 있는 공백 상태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127쪽)


“아 쓰발, 더러운 세상 잘 떠났다.”

......

“마 교수님은 지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

“역시 지옥에 오길 잘했어. 천국을 갔으면 맨날 찬송가만 부르고 있었겠구만.”

(151~156쪽)

 

공자나 석가 같은 이들이...애초에 주장한 것은 ‘육체의 행복”이었지 정신 일변도의 행복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사악한 장사꾼들은 권력자와 결탁하여 민중들에게 자꾸 정신의 중요성만을 주입시켰지요. 민중들이 육체적 행복 또는 쾌락에 눈을 뜨면 통치하는 데 애를 먹게 되니까요..(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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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죽음

2018/07/13 14:46

특정 문화는 그 문화적 가치 기준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호해 준다.
무엇보다 문화는, ‘이 세상은 좋은 사람들에게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공정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또한, 종교적인 의미 등으로 상징적인 불멸성을 부여해 줌으로써 문화적 가치 기준을 지키는 사람들의 안전을 약속해 준다.
이렇게 문화적 가치 기준을 지키는 것은 개인이 스스로를 자신이 속한 세상의 가치 있는 구성원으로 인식하게 하고, 이는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27쪽)


인간은 성적 자극을 느끼면서 자신들이 육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인지하게 되고, 결국 언젠가는 죽게 될 육체를 지닌 자신들의 운명을 연상하게 되므로 성은 강한 쾌락과 동시에 강한 불안을 동반하는 것이다.(38쪽)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죽음의 이미지 바꾸어 보기..)

 

사고나 재난에 의한 끔찍한 죽음은 이성에 대한 평가를 저하시키고, 소비를 늘리고, 내가 속한 집단을 무조건 옹호하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69쪽)

 

사회적으로 어떤 죽음의 이미지를 형성해 나가느냐 또는 상기시켰느냐에 따라 그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이나 또는 그들이 보이는 양상들이 달라진다..
결국 죽음을 바라보는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죽음의 실체는 죽음에 대한 어떠한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 자신인 것이다. (89쪽)


...죽음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여 부풀려진 공포를 깨서...(중략)...죽음을 알아가려는 시도는 삶의 모습을 바꾸는 반환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죽음을 삶의 뒤에 숨겨 놓지 말고, 삶의 옆으로 끄집어내서 자세히 살펴보고, 탐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207쪽)

 

- 출처 : "EBS <데스> 제작팀, 2014,<죽음>,책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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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다이빙 그리고 Ju suis à paris

2015/04/04 03:36

나는 2014년 6월 어느날, 퇴근 후 직장동료들과 오돌뼈에 소주를 한잔 마시다가 응급실에 갔다. 뱃속이 쓰라렸고 급체한 듯 속이 답답했다. 알 수 없는 뱃속은 너무 답답하고 아팠다. 이틀을 참고 내과 진료를 다시 받았다. 의사는 6. 11 담낭절제수술을 하였다. 수술을 받기 위해 그리고 수술 후 회복을 위해 2주간을 입원했다. 그때 나는 병상에서 내가 왜 아팠는지 알게 되었다. 아픔의 원인은 육체가 아니었다.

수술로 꿰맨 상처가 아물어지자 스킨스쿠버 강습을 받았다. 2014. 10. 9 남해 바다에서 첫다이빙을 하고 Open Water Diver 자격증을 받았다.

12. 31 수요일, 나는 그간 다니던 직장생활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2015년 다시 길을 찾기 위해.

 

1. 1 목요일, 

필리핀 샤방으로 다이빙 여행을 갔다. 바닷속은 깊고 푸르렀다. 나는 30미터 깊이까지 내려갔다. 위를 보면 수면이 보이지 않아 두려웠고 위를 보지 않으면 편안했다. 육체는 두려웠고, 눈은 경이로웠다. 바다는 나에게 신세계를 보게 해주었다. 3일 동안 여덟번 물에 들어갔다. 다이빙을 위해 모터 보트가 바다를 달릴 때는 즐거웠고, 입수를 위해 공기통을 멜 때는 긴장하였다. 바닷속에 가라앉을 때는 입으로 숨만 내쉬었다. 바닷속에서는 숨이 편안하고 눈 앞에 보여지는 광경은 아늑하고 신기했다.(1. 1 ~ 1. 5)

 

3. 26 목요일,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왔다. 파리는 아직 춥고 흐리다...(3. 2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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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루슈드_지성의 환희]
"신이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파악하면서 겪는 즐거움이, 우리의 지성이 신의 고유한 본질을 파악하는 순간에, 즉 지성이 자신의 힘을 포기하는 순간에, 우리 자신이 발견케 되는 즐거움과 같다면, 우리를 위해서는 짧은 순간 존재하는 것이 신을 위해서는 영원히 존재한다."

-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2013, [등대 Phares], '이븐 루슈드_지성의 환희', 청림출판, 189~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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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인생은 짧지만 저항의 역사는 길게길게 흘러갑니다.

우리는 사적인 기업왕국인 재벌과 무권리의 비정규직 노동자, "예외 없는 징병제", 악덕기업처럼 학생들을 등쳐먹는 대학기업들과 그들과 똑같이 돼가는 의료기업인 사립병원들이 없는, 복지와 공공성 위주의 한국을 보지 못한다 해도, 그 운동을 또 누군가가 이어가서 어차피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좌파정치라는 이름의 저항을, 꼭 "이기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답게 살다 죽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현실에서 아무리 져도, 결국 역사의 심판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 박노자의 글방(2012/03/30)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43063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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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과제

2012/04/03 21:58

[고도원의 아침편지] 마흔의 과제

 

마흔의 과제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소망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스스로 내린 어떤 선택의 결과라도 기꺼이 껴안고 갈 수 있다면,

그래서 멀리서 보기에 푸르러만 보이는 남의 잔디밭이 아니라 내 잔디밭을 열심히 가꾸어 나가기만 한다면,

실패한 삶이란 없다.

그 때는 정해진 소명의 길 따위는 없고

자신이 선택한 모든 길이 저절로 제 소명의 길이 되는 것이다.

 

- 하이힐과 고무장갑의[마흔, 시간은 갈수록 내 편이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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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읽기가 쉽지 않다.

 

'아는 사람을 본다'고 하는 단순한 행위마저 어는 정도는 지적 행위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인간의 외모에, 그 인간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관념을 채워넣는다. 그리하여 전체 모습을 마음속으로 보았을 때 그 대부분은 역시 이러한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러한 관념이 그 인간의 뺨을 부풀리고, 콧날을 또렷하게 그려내며, 목소리 울림이 하나의 투명한 껍질에 지나지 않는 듯이 그 안에 들어가 울림에 뉘앙스를 섞으므로 실제로 우리가 그 인간의 얼굴을 보고 듣고 할 때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은 결국 이러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Marcel Proust, 민희식 옮김, 201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동서문화사,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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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센트미하이] Flow

2012/03/18 14:02

다음 세대에서의 인간의 임무는 개발되지 않은 정신적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환경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듯이, 이제 우리는 어렵게 얻은 우리의 개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 주변의 존재들과 우리 자신을 재통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미래의 가장 유망한 신념은, 우주 전체가 불문율에 의해서 서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를 고려하지 않고 우리의 꿈과 열망을 자연에 강제하려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깨달음에 기초한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의 의지의 한계를 인식하고, 우주 속에서 지배적이기보다는 협조적인 역활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는 마침내 고향에 돌아가게 된 유랑자의 안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 개인의 목적이 우주적 플로우에 융합되면서 의미를 찾는 문제도 더불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 2004, 최인수 옮김, [Flow], 한울림, 435쪽에서 발췌)

 

* 플로우(Flow)는 즐거움이나 행복감 같은 것으로, 어떤 일에 집중할 때 발생하는 느낌이나 정서, 또는 몰입(상태)으로 이해하면 된다. '플로우는 단순한 기쁨이나 열중할 때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완벽한 심리적 몰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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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대화

2012/01/14 00:09

발췌 : 2005, 리영희·임헌영, [대화], 한길사. : ( )는 쪽수

 

[한국전쟁은]

1. 인민군 전력이 남한군 전력에 비해서 월등했고

2. 남한에 제일 가까운 일본에 주둔한 미군 전력을 사실상 치안유지 수준으로 감축돼 있었고,

3. 인민군 전력에 대항할 만한 전력 투입에는 본토전력의 이동과 전쟁장비 준비에 시간이 걸리고

4. 소련, 중공과의 전쟁 가능성을 포함한 전지구적 수준의 전략평가의 복잡한 협의·조절 단계를 거쳐야 하고

5. 대규모 상륙작전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같은 물적·인적·과학 및 기술적 사전조사, 예측작업이 앞서야 하고

6. 한국전 참전 10여국 정부와의 정책·군사적 협의가 수반되어야 하며

7.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경우와 다름없이, 만약 작전이 실패할 경우의 광범위한 긴급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며

8. 유엔 국제정치장에서의 정치·외교적 대책을 연합국 정부들과 협의해야 하는 등등의 문제가 앞뒤로 따르는 거예요.

전쟁과 군사는 그렇게 낭만적인 것이 아니에요. (117)

 

[군대 1 : 초기 국군]

첫째, 대한민국 군대는 일본제국주의의 천황군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군대였어요. 소수의 독립군 출신들이 있기는 했지만, 국군의 상층과 중층 지휘관들은 거의가 일본 천황에 충성을 맹세했던 장교들과, 제 발로 걸어가서 총을 메고 일본군이 되었던 지원하사관들 출신이었어요. 이들이 지난날 목숨으로 충성했던 그 야만적인 일본 군대의 사상과 폭력주의를 그래도 새 나라의 군대여야 할 남한의 소위 ‘국군’ 속에서 재현하고 있었던 거야. 걸핏하면 중위가 소위를 패고, 소위가 상사를 패고, 상사는 하사관을 매질하고, 하사관은 사병들을 개 패듯이 패는 일이 다반사였어. 그냥 매질을 하고 고통을 줌으로써 쾌락을 만끽하는 사디즘의 집단이었어. 그 사디즘 체계의 말단, 밑바닥에 위치한 대한민국 국군의 사병들은 그야말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오.

둘째, 위관급 장교들이나 하사관 또는 사병들 속에는 이와는 다른 성격의 군인들이 있었어. 이들은 해방 이후 6·25전쟁이 발생하는 1950년 6월까지의 사이에, 전국 각지에서 새로 의식화되고 사회개혁 운동에 뛰어들었던 개혁사상·공산주의·사회주의 경향의 사람들, 다시 말하면 좌익활동을 하던 사람들이지요. 미군 점령시의 미군정과 군정을 승계한 거나 다름없는 이승만 정권의 탄압과 추격을 피해서 군대를 피난처로 지망한 사람들이었지. 군대를 보신책으로 택한 사람들이예요. 그 당시 군대는 유일하게 경찰과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수많은 우익 폭력단체들 위에 군림할 수 있었던 또 다른 폭력집단이었어. 그러니까 전국에서 경찰과 우익 폭력집단들의 박해를 받거나 쫒기던 젊은이들이 그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군대에 들어오기도 했어.

셋째는 무식·무학하고, 사회적으로 하층에 속했던 도시빈민과 농촌의 무위도식하거나 잉여적 존재이던 청년들이 호구지책으로 찾아오기도 했지. 군복과 계급장으로 장식된 외모에다가 총을 메고 있는 ‘권력’ 표지에 유혹되거나, ‘재수가 좋으면 한자리할 수 있겠지’하는 몽상으로 모여든 인간들, 이런 것이 당시 국군의 구성요소였어요. (122-123)

 

[군대 2 : 전쟁과 인간]

직업군인들, 자기 발로 걸어들어갔건 기어들어갔건, 좋아서 군인이 된 사람은 즐겁기도 하고 유리하기도 했겠지. 전쟁을 몸소 치른 지식인들이 거의 반전평화주의자가 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오. 오히려 민간인이었던 지식인이 군복을 입고 군대라는 특수 집단의 집단적 생활양식 속에 들어와 전쟁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힘의 논리, 권력의 숭배자, 일사불란한 통제하의 집단적 삶, 그리고 개개인의 자율적 사고와 자유보다도 규율을 숭상하는 반인격·반자율·반자유의 인간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지요. 그 실례로서 나치 체제하의 독일 지식인의 경우나 무솔리니 파시스트 체제하의 이탈리아 지식인들이 그랬고, 프랑코 장군의 독재지배 체제하의 스페인과 스탈린 공산주의 체제하의 소련 지식인들도 그랬어요.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일본 천황군국주의 군인지배 체제였던 일제시대의 지식인들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북한도 그 범주에 속하겠지요. 요컨대, 같은 환경 속에서 같은 역사적 체험과 인간적 삶을 경험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개인적 반응 양식은 천차만별이라구요. 인간이란 그렇게 전쟁을 경험하고 나서 반드시 반전평화주의자가 되는 것도 아니에요. 다 각기 개인의 주체적 의식의 문제라고 해야겠지. (162-163)

 

[군사독재 시절의 ‘자살’]

난 박정희정권 말기와 특히 1980년의 전두환 집단의 광주 대학살이 있었던 그 시기에는 수사학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생리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고 질실할 것만 같았어. 그리고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오늘보다 더 암담해질 내일을 견디어야 할 절망적 상태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삶을 마감해야 하는 하는가 하는 그런 중압감에 시달렸어요. 그때 나는 ‘사람은 자살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 했어. 세계의 유명한 사상가나 예술가나 그 밖의 지식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생애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마감할 때, 그들의 내면적 갈등과 고뇌에 탈출구가 엇는 철저한 절망감을 겪은 실존적 경지를 공감할 수 있었어요. ‘자살’이 유일한 구원으로 다가온 군인정권 30년을 살아온 결과지. (148-149)

 

[케네디와 5·16이후 박정희]

(1961년 11월 케네디와 박정희 정상회담) 케네디는 박정희에 대해서

1. 조속한 시일 내에 공정한 선거를 통한 민정으로 이양할 것

2. 민정이양에 앞서는 군의 정치관여 금지와 원대복귀

3. 그때까지 모든 경제원조의 집행 연기

4. 군사원조의 잠정적 동결

5. 박정희가 제1차 경제계획으로 요구한 공업화계획 자원 23억 달러 요구의 백지화

6. 조속한 한일회담 재개를 통하여 단시일 내의 한일국교정상화 실현

7. 베트남 사태에 대한 남한의 협력 등을 요구한 거예요. 그 중에서도 조속한 민정이양, 군의 원대복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서 한일회담 재개를 통한 조속한 한일국교 정상화 실현이었어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해서는, 한국은 그런 자본집약적 경제계획은 불가능하니 대신 실업자 구제를 위주로 하는 노동집약적 경제계획으로 개편할 것, 그러기 위해서 미국의 경제조사단을 보내겠다는 애기였어. 탱크니 비행기니 하는 무기나 군사원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없었어. 이와 같은 내용의 나의 기사가 합동통신사를 통해서 전국의 신문, 방송으로 보도되니까 동아일보와 조신일보의 특파원 기사로 한숨만 쉬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의 얼굴에 다시 희색이 감돌게 된 거야. 이것이 나의 특종의 내용이었어요. (276-277)

 

[한일교섭]

나는 한일회담에 앞서서 이미 일본이 1950년대에 과거 일본이 점령통치했던 베트남·버마(현재의 미얀마)·필리핀이 재산청구권을 행사한 데 대해 배상을 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이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규정된 일본의 의무였지. 그래서 일본 외교문서에서 이 세 나라에 대한 배상의 전모를 찾고, 그 밖의 관련 정보를 수집했어.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거요. 무언인가 하면, 현금상환은 전혀 없고, 개개인에 대한 상환 형식은 취해지지 않았다는 거요. 더 자세히 말하면,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배상 의무는 다음과 같아요.

1.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일본외상 비밀합의(소위 김-오히라 메모)에 따라서 일종의 대한민국 ‘독립축하금’이라는 이름으로 제공된다.

2. 그 금액은 원권리자인 개인이나 기업이나 법인에게 직접 현금으로 상환되는 것이 아니라 일·한 양국 정부가 합의하는 한국의 경제계획의 자금으로서 제공된다.

3. 그 경제계획 사업은 일본정부의 최종 동의를 전제로 하고, 구체적인 계획 취지는 일본측이 지명하는 사업체들이 담당·감독한다.

4. 일본측의 한국에 대한 ‘축하금’은 한국의 경제계획에 소요되는 일본내 생산품으로서 시설의 구매, 인건비 등 용역(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데 충당된다. (317-318)

 

[베트남 전쟁의 원인]

미국의 패권주의 전쟁으로 시작해서 한국군까지 개입하게 되는 소위 베트남전쟁이라는 것은, 그 원인과 역사적인 배경이 굉장히 복잡합니다. 한국인들이 그 전모를 이해하기란 참 어려워요. 그래도 굳이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불란서와 베트남 인민의 전쟁이었던 1946년부터 56년까지의 ‘제1차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면서 제네바 휴전협정이 체결돼요. 그 뒤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해서 확대된 전쟁이 말하자면 ‘제2차 베트남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요. 54년 휴전협정은 북위 17도를 군사분계선으로 정하고, 남북 베트남으로 잠정적 행정 관할구역을 정한 뒤에, 2년 후인 1956년에 남북 베트남을 통틀어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수립한다. 이것이 1954년 정전협정합의의 핵심이었어요. 그런데 휴전성립 1년이 지난 1955년에 미국이 총선거를 거부한 것이 제2차 베트남전쟁의 결정적인 원인이에요. (341)

 

[베트남의 교훈]

로마제국도 그렇고, 심지어 개인의 경우도 힘에 도취되면 그 주체는 이성을 상실하게 돼요. 폭력의 전능성에 대해서 자기도취가 된 나머지, 미국이 자기비판을 할 이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 거지요...(중략)...베트남전쟁을 이끌었던 미국정부의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 국방장관은 베트남전쟁에서 패망한 20주년에 해당하는 1995년에 자기반성을 겸한 회고록을 출판했어요. (과거를 돌아보며: 베트남전쟁의 비극과 교훈 In Retrospect : The Tragedy and Lessons of Vietnam)...(중략)...특히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어째서 미국이 원시적 농업부족 집단과 같았던 베트남 인민들에게 패배했냐 하는 14가지 항목의 자기비판을 열거한 장아 ‘제11장 베트남의 교훈’이에요. 이것을 요약해서 한 마디씩 줄이면 다음과 같아요.

1. 전쟁 상대방의 성격과 능력에 대한 중대한 오판

2. 소위 베트공과 월맹의 지도자와 세력에 대한 인식 부족

3. 지나친 미국이익을 추구한 정책의 오류

4. 미국이 지원한 ‘반공적’ 사이공정권 지도자들의 반민중성

5. 오랜 식민지 지배에 시달린 베트남 인민의 외세에 대한 반감과 해방 독립을 위한 강력한 의지에 대한 몰지각

6. 베트남 민족의 역사·문화·종교·정치·생활·관습 등에 대한 무지

7. 미국식 자본주의와 정치제도를 유일무이한 인류적 생존 양식으로 착각한 미국의 오만과 무지

8. 현대적 무기와 군사력 등 물질적 전쟁수단에 대한 과신

9. 무지하지만 자주독립의 민족적 미래에 대해서 ‘의식화된 인민의 원초적 역량’을 과소평가

10. 세계 인민들과 국제적 협조·호응을 획득하는 데 실패한 고립된 전쟁

11. 미국 국민에게조차 베트남전쟁의 의의와 필요성과 정당성을 이해시킬 수 없었던 정책적 실패

12. 미국정부와 군부, 각 분야의 지도자들의 전지전능을 과신

13. 전쟁수행 예측이 빗나갔을 때에 정부 내 각 분야의 협동 능력의 상실과 정책적 혼동

14. 미국 건국 이후 불패의 군사적 역사에 도취하여 그 밖의 모든 요소들을 무시했던 힘의 오만 (352-354)

 

[종교]

나의 종교관을 말하자면, ‘신’이라는 것은 대자연이 인간의 인식 능력을 초월한 온갖 형태의 변화를 발동하는데 공포감을 느낀 원시인간들이 그 공포심으로 말미암아 발상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이 현실의 생존 조건에서 겪는 생로병사의 고통과 좌절, 슬픔, 그리운 이와의 영원한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과 어디선가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의 간절함 등을 인간적 운명의 한계를 넘은 어딘가에서 위로와 보상받고, 괴로움과 쓰라림의 상처를 치유받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에서 ‘신’이라는 기능적 존재를 상정했다고 생각해요. 요컨대 나에게 신이란 것은, 원시시대 인간의 ‘자연에 대한 공포감’과 시간을 초월해서 영원히 살고자 하는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인 가질 수밖에 없는 생존의 공포심, ‘인간적 한계를 충족해줄’ 어떤 존재로서 신을 창조했고 또 ‘신을 필요로 했다’고 생각하는 거요.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의 필요 때문에 신을 ‘창조’했다고 나는 믿고 있어. (507-508)

 

[자유와 평등]

우리가 경험했고, 또 경험하고 있는 온갖 성격과 형태의 사회에서, 오랜 체험과 그것으로 얻어진 예지로써 이제 내릴 수 있는 한 가지 결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유와 평등은 동등하고 동격의 가치를 지닌 요소이지만, 집단적 인간의 행복 추구의 실천적 순서로서는 ‘자유’가 ‘평등’ 앞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까이 인류의 근현대사에 점철된 수많은 봉기·민란·폭동·혁명·민족 해방 전쟁 등에서 우리는 목표 추구의 질적 무게는 같지만, 목적 달성의 선후 또는 완급에서는 ‘자유’가 평등보다 앞섰다는 많은 실례를 정확히 평가하고 인식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자유는 ‘인간’ 생명체의 원초적 본성이고, 평등은 개개인의 집단적 생존이 형성된 뒤에 생명이 요구하는 ‘추후적·사회적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임형이 고민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구만. 현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패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진정한 평등으로만 가능하지만, 현실적·사회적 생존차원에서는 개개인에게 가치 있는 것은 자유가 먼저이고 다음에 평등을 욕망하게 되니까요. (523)

 

[중국 모택동에 대한 개인숭배]

그것이 서양 사람들이 늘 제기하는 문제지요. ‘김일성 숭배’하고는 성격이 달라요. 북한의 역사서술에서 대부분의 현대사가 김일성 한 사람만의 것이고 통일민족해방 행위를 한 사람도 그 한 사람이지만, 중국의 혁명운동 관계문헌이나 기록에는 모택동 이외에 나올 사람은 다 나와요. 모택동의 역할이 다른 사람들이 마땅히 받을 평가보다 높은 비중으로 묘사된 것은 사실이지. 분량에서나 빈도에서나. 그러나 모택동 숭배사상은 김일성 숭배하고는 달라. 상당히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택동 자신이 “이런 식으로 기술하지 말라”라고 분명히 훈시하기도 했고, 본인이 ‘역겹다’고 공식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니까요. 김일성 숭배하고는 많이 달라보여. 다만, 최후기인 ‘홍위병’ 시기는 숭배적으로 묘사된 것이 사실이지. 모택동도 인생 말기에는 정신이상 상태였으니까. (584)

 

[지식인으로서의 기본철학과 정신]

나는 1977년에 출판된 저서 [우상과 이성](한길사)의 서문에서 나의 지식으로서의 기본철학과 정신을 다음과 같이 천명한 바 있어.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손에서 펜을 놓는 날까지 이 정신으로 탐구하고 쓰고, 세상에 알릴 결심이에요. (675)

 

[자기희생적인 이른바 ‘사회주의적 인간이 왜 안 됐느냐?]

생물학적 인간의 속성에 착안했어요. 결국 나는 인간은 원래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지만, 차원 높은 공동선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속성인 ‘이기심’을 극복하거나 적어도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문화혁명을 통해서도 또 사회주의 제도로도, 그리고 비록 사이비과학으로 파탄났지만 소련 심리학자 파블로프가 짐승을 이용해 시도한 ‘조건반사’적 반복 훈련을 통해서도, 인간의 속성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어요. 다 실패로 돌아갔지.

나의 결론은, 인간의 이기심은 인간이라는 종(種)의 생물적 속성 그 자체이며, 그런 속성을 제도나 교양교육을 통해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영구한 속성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었어.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기어다니는 갓난아이를 가만히 관찰하고 있으면, 한번 쥔 것은 절대로 놓지 않고, 다른 아기와 나누려 하지 않아요. 어쩌면 이것이 인간종의 정신작용의 원초형태가 아닐까? 욕망의 충족 뒤에는 나눔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 한, 자기만이 소유해야 한다는 욕심, 배타적 소유욕, 그리고 이기심이 원초적 인간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본주의는 인간의 속성인 ‘이기심’에 호소하는 방법과 제도로, ‘물질적’ 생산을 극대화시켰고 그것으로 승리했다고 본 것예요. 그러나 인간과 인류의 진정한 승리는 그것과 다른 의미의 절반의 승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지요. (682-684)

 

[자본주의, 사회주의]

사회주의는 지금의 시점에서 자본주의에게 일단 열세에 있다고 해야 하겠지요. 자본주의는 원리적으로도 그렇고 실제 운용의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도 그렇고, 개인의 사리사욕과 이기심과 끝없는 소유욕을 인간 행위의 원동력으로 삼고, 그것을 제도화하고 법적으로 보호함으로써 성립되지요. 심지어는 자기가 소유한 것으로 남을 죽이든지, 남을 죽이는 독약을 만들어서 돈을 벌든지, 또는 범죄 행위를 해서 돈을 획득하든지 간에, 일단 사유재산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념이 앞서는 사회주의보다는 인간 본능을 그대로 개방해서 그것을 물적 획득과 생산을 위한 인센티브의 에너지로 동원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인간중심적 생산방식이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략)...

자본주의의 발전원리는 ‘인간의 가치’를 무시하고, 소유의 ‘물신 숭배’ 신앙으로 물적 생산과 낭비와 파괴를 인간 행복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어요. 그 대신 물질적 획득과 소유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적 요소들은 손상되고 무시되고 파괴되는 위험도 정비례적으로 커집니다. 자본주의사회 어디서나 그렇고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지요. 법률이나 종교가 아무리 해도 인간의 소유욕을 다스릴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결국 나의 결론은 인간은 물질적 요소로 존재하는 동물이니까 자본주의적 요소로 말미암은 필연저기 인간화적 결과를 5할 정도의 선에서 인정하고,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인간성 파괴의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게마인샤프트적 사회주의적 요소를 5할 정도 융합하는 방식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체제가 현실적으로 결함과 약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사회의 현 발전단계에서는 가장 낫고, 사회주의 없는 미국식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해요.

유럽의 사회체제는 소련의 체제보다 훨씬 나은데다, 미국사회의 속성인 이기주의·폭력주의·극심한 빈부격차·범죄·타락을 상당한 정도까지 극복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희구해도 이미 먼 옛날에 인류의 사회적 형태로 지나온 ‘게마인샤프트’(물질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인간적 유대가 기본원리인 공동체)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게젤샤프트’(서로의 이해관계의 계산을 매개로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와 적절히 배합된 인간 생활형태를 미래의 상으로 그려볼 수밖에 없겠어요. (685-687)

 

[체제수렴적 통일론]

전통적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은 현대적 시장처리를 능률적으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말이지. 문제는, 그렇게 전적으로 시장화하면 인간복지·인간가치적 기능은 사회주의의 인간우선적 철학과 정책으로 보완·확보해야 할 필요가 생겨요. 이 기능을 이론적·경험적으로 적절히 배합하는 게 유럽 사회민주주의(또는 민주사회주의) 제도라는 데는 현재 거의 누구나가 동의하고 있지요. 그러기에 ‘사회주의가 패배했다’는 미국의 사이비 자본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소위 ‘역사의 종언’은 그의 주장이 나옴과 동시에 자기부정을 당한 셈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남북한도 시장경제와 사회주의를 절반씩 도입해서 비슷한 경제·문화가 되어야 각기 국민(인민)의 행복이 증진할 수 있어요. 그렇게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절반씩 가미한 제도의 국가는 통합되기가 쉽지. 이 방식이 내가 주장하는 ‘체제수렴적 통일론’이에요. (694-695)

 

[서해 북방한계선]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휴전협정을 조속히 체결하여 미군을 그 가족에게 돌려보낸다는 공약으로 당선됐으니까 빨리 휴전협정을 체결하려고 전력을 다했지. 이승만 대통령이 계속 분쟁을 일으키고, 휴전이 성립된 뒤에도 계속 그것을 깨려고 하니까 화가 났어요. 정전협정 체결 뒤에도 계속 그러니까,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을 체포해 대한민국 정부를 해체하고, 백선엽 육군참모총장으로 하여금 군정을 선포케 하고, 이승만정권을 완전히 붕괴시켜 휴전협정을 준수하는 새 정부를 내세우기 위한 쿠데타 준비까지 다 했거든요. 한국 해군이 다시는 황해도를 침공할 수 없게 유엔사령부가 남한의 군함이 북한의 황해도 해안까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한다는 하나의 선을 그은 겁니다. 그것이 소위 ‘서해 북방한계선’이라는 거예요. 그것은 정전협정으로 금지된 선이지만 미국은 그것을 북한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한국(남한) 해군의 ‘출입금지선’으로 유엔군사령부 내부 규정으로 한국정부와 한국군에 실시한 거요. (718)

 

[읽는 이를 위하여]

이 긴 시간에 걸친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自由)와 ‘책임’(責任)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건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棄權)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背信)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중략)...

마지막으로 덧붙일 청이 있다. 이제는 거의 지나가버린 그 시대를 인간적 고통과 분노, 상처투성이의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온 기성세대나, 앞 세대들이 심고 가꾼 열매를 권리처럼 여기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맛보고 있는 지금의 행복한 세대의 독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고민하고 자신이 그 상황에 직면했거나 처했다면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가치판단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 보기를. 그럼으로써 이 자서전의 당사자와 대담자가 책 속에서 진행한 것과 같은 자기비판적 대화의 기회로 삼기를.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나와도 비판적 대화도 가질 수 있기를.

2005년 2월 군포시 산본 수리산 밑에서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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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메일] 니체가 꿈꾼 그리스 비극의 재탄생

 

음악에 심취한 많은 학자와 명사가 있지만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만 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어릴 적부터 직접 작곡을 했던 그의 삶은 누구보다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다수의 음악회를 들락거리며 바그너 등 실제 음악가들과 친분도 쌓고 당대 음악계의 정보에도 밝았던 니체 - 음악의 본질에 대한 그의 관심과 견해는 사상 정립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니체 철학에 영감을 받은 후대의 음악가들이 이를 다시 그들의 음악으로 승화함으로써 음악이 확장되고 발전하는데 기여했다. 심지어 음악은 니체의 문체에도 영향을 끼쳤으니, 그 스스로 자신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1885)를 한편의 음악으로 표현했을 정도이다. 모든 예술 중에서 음악이야말로 인간의 형이상학적 심연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던 니체! 그의 눈을 통해 음악을 느껴보자.


니체 『비극의 탄생』: 디오니소스적 가치 VS 아폴론적 가치 
니체의 음악 예찬은 그의 처녀작 『(음악의 정신에서의)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odie aus dem Geiste der Musik, 1872)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 그는 25세 때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가 될 만큼 철학보다 먼저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학에 정통했다. 이러한 전문가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 그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라는 상반되는 두 축을 독자적으로 제시하고 그 차이를 통해 그리스 비극과 예술의 핵심을 소개하였다.

 

디오니소스[Dionysos]가 누구인가? 바로 포도주의 신이자 광기에 휩싸인 여신도들이 환각 속에서 살아 있는 가축을 물어뜯는 사육제를 주관하는 신이다. 반면, 아폴론[Apollon]은 정적인 균제미와 웅장함을 자랑하는 예지의 신이자 엄격한 태양의 신이다. 디오니소스가 역동성과 내면의 불같은 열정, 충동, 혼을 빼앗긴 매혹과 도취를 상징한다면, 아폴론은 차가움과 균형, 절제와 관조로 이루어진 분별과 질서를 나타낸다. 전자가 파토스(Pathos, 정념)라면 후자는 로고스(logos, 이성)이며, 전자의 예술이 음악과 서정문학으로 대표된다면 후자는 좀 더 객관적인 조각(조형예술)과 서사문학에 해당한다.


최고의 예술, 그리스 비극 
2,000년 이상, 역사는 서구 철학이 이룩한 합리적 질서를 추앙해 마지않았지만 놀랍게도 니체는 퇴폐적이라며 천시받아 온 디오니소스적인 원리야말로 인간 내면의 원형이자 생의 원초적인 힘이라 보았다. 인간은 도덕이나 종교가 아닌, 꿈틀거리며 솟구쳐 오르는 몰입된 힘 혹은 힘에의 의지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디오니소스적인 무아경의 환희를 직접적으로 나타내주는 음악이야말로 최상의 인간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결되어 치솟으면서 투쟁과 화해를 통해 발전하였다. 물론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기반이긴 하지만 둘 중 어느 쪽도 그 자체만으론 온전한 예술일 수 없다. 아폴론적인 가치가 예술의 형식이자 틀이라면, 디오니소스적인 가치는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내면적 표현의지이기 때문이다. 형식이 강조되면 작품은 메마른 것이 되나 열정이 지나치면 과잉으로 쇠락해 버리듯, 둘은 조화가 필요하다. 니체는 이 두 가지가 조화의 정점을 이룬 최고의 예술로 그리스 비극을 꼽았다. 그러나 이 황홀한 균형 상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소크라테스 이후 로고스 중심주의와 낙관주의가 강화되면서 정신과 육체가 온통 환락으로 들뜬 디오니소스적 세계는 설 자리를 잃고 그리스 비극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으므로.


비극의 재탄생: 음악을 하는 소크라테스 
감성(파토스)과 이성(로고스)이 서로를 강화시켜 나가는 가운데 미적 경지를 이룬 그리스 비극 - 오늘날과 같은 지성주의 시대에 그러한 예술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형태로? '비극의 재탄생'을 꿈꿨던 니체는 청년 시절, 바그너의 극에서 그 가능성을 엿보았지만 나중에는 잘 알려진 대로 그를 강력히 비판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과연 '음악(디오니소스적 원리)'을 하는 '소크라테스(아폴론적 원리)'는 다시금 우리 시대에 도래할 수 있을까?

 

확실히 디오니소스적 가치는 오랫동안 저급 혹은 비도덕적 산물로 밀봉되어 왔다. 그러나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 생의 본질은 결코 논리적이라거나 합리적일 수 없다고. 그것은 오히려 충동이며 도취라고 말이다. 가득한 생명력 속에서만이 고통마저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다. 에너지로 충만할 때 우리는 괴로움을 기꺼이 껴안아 이를 극복하고 삶을 긍정할 수 있지만, 불안하고 두려울 때는 마음의 도피처를 찾는 소심한 낙천주의자가 될 뿐이다. 요컨대 그리스 비극은 기쁨과 활력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때문에 니체는 단순한 니힐리즘[nihilism, 허무주의]가 아닌 삶을 긍정한, 생을 음악이 울려 퍼지는 축복으로 받아들인 '니힐리즘 극복'의 철학자이다. 자연과 합일되길 원하는 본능적인 힘, 근원적인 일자로 향하는 충만한 기운에 전율하며 음악에 귀 기울여 보자.
  
    
참고문헌 『비극의 탄생』 (니체, 박찬국역, 아카넷, 2007)
『철학 속의 음악』 (오희숙, 심설당, 2009) 
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 출처 :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http://www.artnstudy.com/sub/community/minerva.asp?cli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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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메일] 오 카탈루냐

 

1903년 인도에서 대영제국 식민 관료의 아들로 태어난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는 고교 졸업 후 그의 부친처럼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버마의 식민지 경찰이 된다. 그러나 이내 제국주의에 환멸을 느껴 사직한 후 노숙 생활과 접시닦이 같은 밑바닥 생활을 견디며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한다. 바로 파시즘과 공산당 모두를 비판한 정치 우화 <동물농장> (1945)과 감시와 통제의 거대 시스템을 그린 묵시록적 소설 <1984>(1949)로 유명한 조지 오웰(필명)[George Orwell, 1903~1950]의 얘기다. 실천하는 '참여 지식인'이었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개인의 삶과 행복을 짓밟는 전체주의를 고발하는 작품을 주로 썼는데, 르포르타주의 걸작으로 꼽히는 <카탈루냐 찬가> (Homage To Catalonia, 1938) 역시 그 중 하나다.

 

1936년 카탈루냐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20세기에 아나키즘[anarchism, 무정부주의]이 일시적이나마 정권을 잡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 놀라운 사건은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북동부에 위치한 카탈루냐 지역에서 일어났다. 오랜 기간 왕당파와 부패한 교권정치로 힘든 시기를 보낸 스페인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염원했고 그 지지를 바탕으로 수립된 좌파 인민전선 정부가 토지개혁과 교권분리 등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자 귀족과 대지주, 가톨릭 교회과 같은 기득권층이 프랑코의 지휘아래 모로코에서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내전이 시작된다. 이에 공산당부터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심지어 중산층 자본가까지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집단이 파시스트 반란군을 막겠다는 하나의 목표아래 집결하였다. 또한 전 세계에서 양심적인 지식인과 청년들이 의용군에 합류하고자 몰려들었다. 특히 카탈루냐에선 일반 시민들이 '무정부주의 시민군'을 형성하여 공산당인 '통일노동당'과 협력, 혁명 정부를 지켜내기 위해 혈전을 벌리고 있었다.

 

양심적 지식인 조지 오웰과 오합지졸 의용군 

혁명에 깊게 경도된 조지 오웰은 자원 입대하기 위해 결혼한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신혼의 아내와 함께 스페인에 입국한다. 카탈루냐의 주도 바르셀로나에 입성했을 때 그가 목격한 것은 거리 곳곳에서 평화와 자유 그리고 희망의 열기가 넘쳐나는 광경이었다. 부자, 거지, 심지어 팁이나 존칭어도 사라지고 도처에서 붉고 검은 깃발이 펄럭이는 믿음 충만한 그곳에서 혁명이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영국독립노동자당이 발급한 여권을 가졌다는 이유로 통일노동당 소속 '카탈루냐 29 사단'에 배속된 오웰. 군기가 아닌 동료애와 충성심을 기반으로 운영되던 이 부대는 군사 계급이나 직위가 없었으며 모두 동등한 음식과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생필품과 무기가 턱없이 부족하고 훈련다운 훈련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어린 대원들은 부대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서툴렀으며, 애초의 결의와 달리 총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무기력한 교착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를 군더더기 없이 묘사한 오웰식 유머는 폭소를 자아낸다. 적이 투하한 폭탄이 터지지 않는 고물인데 아군 대포 규격에 맞아 그것을 되돌려 사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수 차례 터지지 않아 아예 별명이 붙은 것도 있었다는 사실, 손잡이도 없는 삽으로 진척인 땅을 파는데 삽이 너무 형편없어 양철 스푼처럼 잘 휘었다거나, 소총을 든 소년단원 20명 정도면(아니 빨래방망이를 든 소녀단원 이라도!) 자신의 부대를 쓸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걱정, 스페인 입성 시 보았던 포스터에 쓰여진 문구, '당신은 혁명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를 떠올리며 속으로 '밥만 축냈습니다'라던 대답, 스페인 내전에서의 실질적인 무기는 소총이 아닌 확성기라는 것 -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적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으므로. 그 중 '파시스타스-마르코네스!'(파시스트-호모)는 압권이다.

 

적은 파시스트가 아니라 공화군 내부에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받은 프랑코 군대와 달리, 의용군은 주로 가난한 서민이거나 노동자였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불가침조약을 근거로 중립을 지키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해 수세에 몰리게 된다. 사실 스페인이 온통 혁명으로 들끓고 있는데도 서방 언론은 잠잠했다. 혹은 내전을 단순히 '파시스트 VS 민주주의'로 소개할 뿐이었다. 어떤 자본주의 국가도 무정부주의 노동자 집단인 공화군을 지원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적은 파시스트가 아니라, 다양한 당파와 소속이 '동상이몽'으로 결집되어 있었던 그들 내부에 있었다. 자본가들이 공화군에 가담한 것은 봉건제로 회귀하려던 프랑코를 막기 위한 일시적인 타협일 뿐, 그들은 토지, 교통기관, 건물을 집산시켜 급진적인 혁명을 꾀하려던 무정부주의자들과 결코 함께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소련은 공화군을 돕기는커녕 우익화하고자 애썼다. 오웰은 이를 혁명과정에서 스페인령 모로코가 해방되면 이에 자극 받은 자국의 식민지들이 독립운동을 벌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프랑스와의 동맹관계 때문이라 분석한다. 그로 인한 이익을 중시했던 스탈린은 갑자기 '자본주의 수호자'가 되어 혁명 방해공작을 펼치기 시작했으니, 덕분에 공산당은 우익과 결탁한 '통일사회당'과 혁명을 이어나가고자 했던 '통일노동당'(오웰이 속해 있었던)으로 분열되고 만다. 결국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통일사회당이 증거를 날조해 통일노동당을 불법화했고, 이 과정에서 목숨 걸고 싸운 수많은 애국자들이 누명을 쓰고 투옥되거나 사살되었다. 이렇게 자가 분열한 결과, 공화군은 패했고 희망과 자유를 상징하던 무정부주의 혁명 정부는 프랑코의 36년 독재로 대체되고 말았다.

 

인간 품위에 대한 믿음은 더욱 공고히

목에 총상을 입은 오웰은 자신이 속해있던 당마저 불법화되자 아내와 야간열차를 타고 탈출한 후 <카탈루냐 찬가>를 썼다. 선뜻 출간하려는 곳이 없었던 이 작품은 출간 이후에도 판매율도 극히 저조한 등 한동안 외면 받았다. 그러나 이는 현재 스페인 내전을 생동감 있게 잘 묘사한 걸작이자, 이후 오웰이 두 명작 <동물농장> <1984>를 집필하는데 강한 자극을 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희망을 안고 참전했으나 온몸으로 좌절을 맛보고 돌아온 오웰 - 그럼에도 그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평등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이 투쟁'이 진정 경험해 볼 가치가 있었다고 말한다. 인간 품위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커졌다고 말이다. 사실 스스로 '오합지졸'이라고 묘사한 의용군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시종 따뜻하다. 그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어느 정당보다 덜 교조적이고 순수하며, 그들의 자율적 방식이 장기적으로 훨씬 효과적인 것임을 믿었다. 티없는 그들을 연결해 주었던 보이지 않는 끈은 자유와 평등, 불의에의 대항 그리고 휴머니즘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민음사)   

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 출처 :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http://www.artnstudy.com/sub/community/minerva.asp?clip=C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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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처분은 위법 부당하다.

2011/09/29 10:18

참 힘든 여름이 지나갔다...

나의 일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면 나는 행복하다.

모두의 평온과 행복을 기원하며...

 

1. 사건명 : 국가유공자유족 등록거부처분 취소청구

 

2. 사건개요

고인은 육군에 입대(방위병)하여 군 복무 중 구타와 비인간적 취급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핍박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이유로 서울지방보훈청에 국가유공자유족 등록신청을 하였으나, 서울지방보훈청장은 고인의 사망이 '자해행위'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처분을 하였다.

 

3. 청구인 주장 : [생 략]

 

4. 관계 법령 : [생략]

 

5. 인정사실

가. 고인은 육군에 입대하여 군 복무 중 사망하였다.

나. 국가유공자유족 등록신청

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규명결정' 결정서

라 . 육군참모총장이 발급한 국가유공자요건관련사실확인서

마. 보훈심사위원회 심의의결서

 

6.  이 사건 처분의 위법 부당 여부

가. 관계법령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제1항제5호, 제6항제4호 및 동법 시행령 제3조 및 별표 1의 규정에 의하면, 군인 또는 경찰공무원으로서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 중 사망한 자(공무상의 질병으로 사망한 자를 포함한다)를 순직군경으로 규정하고 있고, 동법 제4조제6항제4호에 의하면, '자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에는 순직군경으로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다만, 극히 예외적으로 군공무 중의 구타나 가혹행위 등 본인에게 귀책사유가 없고 감내할 수 없는 사유로 인하여 극도의 절망감 내지 좌절감을 느껴 자살에 이르는 경우에 까지 이 규정이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입법취지를 넘어선 해석이라 할 것이므로 '자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는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기하여 의식적으로 행한 행위, 즉 자유로운 의지에 의하여 자살에 이른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라 할 것이다.

 

나. 판단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내용 등을 보면,

1)고인의 소속부대는 현역병에 비해 고인을 포함한 방위병에 대한 일상적인 구타와 차별, 가혹행위, 부당한 근무지시 등이 상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점,

2)고인은 다른 동료들과 달리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정도가 병역면제 또는 감면을 받을 정도로 심하여 부대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상급자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하여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자신의 손목을 담뱃불로 지지는 등의 인격장애가 발병하였고, 그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나 보호 또는 관리를 받지 못한 점,

3)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심리부검자문소위원회에서 '고인은 ...(생략)...일상화된 폭력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극도의 절망감 내지 심신상실의 상태에서 자살을 결행하게 되었다고 인정한다'고 기재되어 있는 점,

4)특히 고인은 사망 당일 상급자의 불법적인 술 심부름을 하였고, 구타를 당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어 자기 손상감과 심리적 고통이 심하여 극단적인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5)고인은 청각장애인으로 소위 '고문관'으로 불리는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데, 상급자의 구타 등 가혹행위와 그로 인한 피해는 일반 사회보다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다고 볼 수 있는 점,

6)고인이 입대하기 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등 자살을 결행할 만한 다른 뚜렷한 이유가 없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고인의 자살은 상급자의 구타 및 가혹행위로 인하여 극도의 절망감 및 우울증상으로 발생한 것으로서 고인에게 행하여진 구타 등의 가혹행위와 자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이며, 또한 이 건 자해행위는 고인의 정상적이고 자유로운 의지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고인의 자살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제6항제4호의 '자해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할 것이어서, 고인이 순직군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서울지방보훈청장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 부당하다.

 

- 2011. 8. 30.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청구인 주장을 받아들여  '인용' 재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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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늙는다는 것에 대해 예전에는 몰랐던 두려움이 생긴다.

 

"그게 무지와 무명에서 오는 거다. 기자님의 나이가 만약 쉰이라면 그동안 살면서 근 2만번쯤은 죽었어. 잠자는 동안 의식이 떠났다는 점에서 잠과 죽음은 같아. 그걸 이해 못하니 두려워. 그럼 의식은 뭐냐? 자기 의식을 자기가 알 때이지. 죽음도 생도 없으면 두려움도 없는 것이지."

 

- 보통사람에게는 어려운 경지다.

 

"티베트 수행법 중에 드림요가란 게 있다. 수면수행법. 인간이 일생을 살면서 가장 편한 잠은 어린 시절 어머니 무릎을 베고 잘 때이지. 아이가 어머니에게 100%의존한 상태이니 어느 최상급 호텔이 이보다 안락한가? 그래서 지금 내가 기대고 있는 것을 부처님 무릎이라고 생각하라. 그런 식으로 유도를 해. 그러면 꿈이 좋아지고 꿈을 꾸면서 수행을 하는 거지. 참 멋있지 않나? 절대 의존."

 

 

= 한겨레신문 2011. 9.26.자(월) 29면, [한겨레가 만난 사람] '히말라야에서 온 수행승 청전스님'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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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아픔

2011/08/17 20:24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 억울함을 듣고 헤아리는 나의 직업이, 나는 아프다. 과거사위가 그렇고 국민권익위원회 행정심판이 그렇다. 나는 어설프게 술로 간신히 버틴다. 이것이 나의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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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고단하게 살아서 그랬을까요. 다음엔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고 싶습니다.
지금은… 새가 되고 싶습니다. 훨훨~
주익 씨도… 새가 되었을 거예요. 훨훨~

 

짧은 잠을 자며, 똑같은 꿈을 두 번 꿨습니다.
시장 구경도 하며 돌아다니는데 어딜 가나 크레인이 보였습니다. 85호….
곁에 있는 사람은 이것저것 물건도 만져보고, 웃기도 하고, 천진스러운데,
저는 크레인을 바라보며 저길 올라가야 하는데,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올라가야 하는데, 꿈에서도 애가 탔습니다.

 

한 번은 또 다른 꿈이었습니다.
아마도 뻣뻣한 철구조물 위에서 200여 일을 보내다 보니 부드러운 것들이 그리웠나 봅니다.
뙤약볕에 용광로 속처럼 달구어지는 운전실에서 시들시들해져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나 봅니다. 하루는 꿈에 85호 크레인에 파란 싹이 돋기 시작하더니, 점차 무성해지더니 안전계단의 손잡이들이, 붐대의 철근들이 구불구불 나무줄기로 변하더니, 아, 몇천 년은 자랐을 법한 거대한 나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원한 나무그늘이 생기더니, 운전실이 예쁜 원두막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00일. 200일. 그건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이 생의 결단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내려가면 오히려 못살 거라는 거. 그게 더 중요해요. 제게는.
김주익, 곽재규, 두 사람 한꺼번에 묻고 8년을 허깨비처럼 살았으니까요.
먹는 거, 입는 거, 쓰는 거, 따뜻한 거, 시원한 거, 다 미안했으니까요.
밤새 잠 못 들다 새벽이면 미친 듯이 산으로 뛰어가곤 했으니까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숲에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작은 자리 하나 차지하고 소박하게 살아보고도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단 한 번도 정주할 수 없는 숨 가쁜 날들이었습니다.
열다섯에 집을 나와 아이스크림 가방을 메고 돌던 무더운 해운대 백사장, 땅콩을 팔러 돌아니던 낯선 골목들, 오라이요! 오라이요! 내달리던 화진여객 122번 버스, 발바닥에 땀방울이 나도록 밟던 미싱 페달, 잠깐이라도 시간을 줄여 눈붙이려고 총총히 식당으로 향하던 21살, 22살, 23살. 25살에 해고되고 하루도 빼지 않고 나가던 새벽 출근투쟁길, 얻어맞으며 끌려가던 숱한 길. 길게 집을 떠나 있어야 했던 두 번의 징역살이, 노동자의 삶과 꿈을 얘기하러 혼자 전국을 떠돌던 일들. 그리곤 지난 1월 6일 새벽, 혼자 오르던 85호 크레인의 차가운 난간.

 

외롭기도 했던 날들, 하지만 이제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꿈조차 제 것이 아니었던, 미래 역시 제 몫이 아니었던 우리들이 모여 이제야 비로소 하나의 꿈을 꾸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어떤 이웃도 함부로 잘리지 않는 세상, 비정규직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 기업이 사장 개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 모두의 것이 되는 세상을 향해 달리는 버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그렇게 함께 꾸는 꿈이 희망 버스에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리운 평지로 내려가 여러분들과 함께 그 희망의 버스, 연대의 버스, 응원의 버스를 타고 다시 지금도 1300일째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비정규직과 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직 누이들을 찾아,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난쟁이들처럼 살아가는, 그러나 마음만은 늘 밝고 거대한 발레오 동지들을 찾아, 여리고 순박하면서도 심지가 기타줄마냥 질긴 우리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찾아가는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도 밤에는 잠 좀 자자고, 야간노동 이제 그만 없애자고 했다고 백주대낮에 용역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아 병원엘 가야 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찾아, 희망의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준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을 찾아, 15명의 동료들을 잃은 우리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들을 찾아, 노동자들을 넘어 모든 가난하고 소외받는 우리 이웃들을 찾아가는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올라와 85호 크레인을 지켜주는 박성호와 우리 동지들과 함께. 저 담장 너머에서 날마다 노숙을 하며 나를 지켜주는 저 눈물겨운 우리 한진 노동자들과 함께 말입니다.

 

더 이상 패배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절망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울지 않기 위해.
이 모든 행복한 꿈이, 암흑 속에 앉아 새벽처럼 밝아오는 여러분들을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즐겁게! 의연하게! 담대하게!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흔들리지 않는 85호 크레인 나무가 되어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눈물겹도록 감사합니다.

 

 

출처 : 2011. 7. 28.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727205923&section=03 

[김진숙 기고] 타워크레인에서 3차 희망버스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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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질투, 여자, 본다는 것...

2011/07/27 00:07

나는 여름감기로 한참을 고생하고 나서 며칠동안 사무실에서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
과장이 여름휴가를 간 덕분에 나의 나태함이 되살아 났다.
그러나 밀려있는 사건 때문에 마음의 조급함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나의 업무가 지루하고 형편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행정심판은 참으로 무미건조한 일이다.
연민이나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인정사실'과 '판단'을 쓰지 못하고 사건은 뒤죽박죽 된다.
무미건조함과 냉정함이 같은 뜻일까.
아직 나는 나의 일에 보람이나 긍지 따위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제 밤에 나는 동료들과 잔득 술을 먹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친구에게 전화해서 한참을 울었다.
나의 삶이 부끄럽다고 말한 것 같다. 나의 모습에 내가 서러웠나 보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지각을 면하기 위해 급하게 걸아가다가 안경이 뿌옇게 흐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흘린 눈물의 흔적이었다.

 

요즘 하루키의 소설을 대충 마무리하고 후배의 추천으로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있다.


닭고기와 여자

- 너는 닭고기하고 여자 중에 뭐가 더 좋냐?
- 당연히 여자가 좋지, 임마.
-그럼 어떻게 한 여자보다 닭고기에 대한 사랑이 더 오래가냐? 난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김연수, 2003,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51쪽)

 

남자의 질투(...이거 생각보다 무섭다.)

광수의 얼굴이 금방 확 달아올랐다. 원래 술이 약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토마토보다도 더 시뻘개진 그 얼굴을 설명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았다. 그건 아름다운 여자를 자신만이 소유했다고 믿는 모든 남자들이 두툼한 지갑과 함께 늘 지니고 다녀야만 하는 감정인, 질투심 때문이었다.
(김연수, 2003,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74쪽)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질투란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13세기 사람 앙드레 르 샤플랭은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 자신들의 사랑을 충분히 확인한 사람들 중에는 급기야 질투로 사랑을 확인하려는 욕망을 느끼는 부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기보다 잘생긴 사람을 만나서 질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를 위해서는 시기심이라는 단어가 준비돼 있다. 그런 점에서 어휘력이 부족하면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곤란이 따른다.
(김연수, 2003,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103-104쪽)

 

쓰여지지 않는 책

얼마 전에 녹음한 책에 보니까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이 한 명 죽을 때마다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썼습디다.
 (김연수, 2009, ' 달로 간 코미디언', [세계의 끝 여자친구], 문학동네, 268쪽)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내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마주 앉아 있어도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한법은 몹시 추운 겨울날 목도리를 두르고 밖에 나간 적이 있어요. 내가 지팡이을 두들기고 지나가니까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죠.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어대던지. 그때 어떤 아줌마가 나한테 '어차피 앞도 안 보이는데 그냥 목도리로 얼굴을 다 감아버리지, 왜 목만 가리느냐'고 묻습디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나는 앞을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어차피 남들이 나를 볼 수 없으니까, 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내 존재 자체가 사려져요. 시각장애의 핵심은 내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보여져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연수, 2009, ' 달로 간 코미디언', [세계의 끝 여자친구], 문학동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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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나서...

2011/07/16 00:26
나는 나의 자유가 좋다. 무한한 자유는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고 즐기는 자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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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선생님, 그리고 "지식"의 한계 
 

출처 : [박노자의 글방] 만감: 일기장 2011/07/07 10:28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36038 
 
 

이제 곧 200일을 맞을지도 모를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고공농성을 지켜보면서 늘 드는 생각 하나 있습니다. 생각이나 정서를 십분 공유해도 “행동”을 김진숙 선생님처럼 하지 못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은 과연 의미 있는 생을 사는가 라는 부분에 대한 회의입니다.
 
저의 조상 대다수를 길러낸 유대교의 문화도 그렇고 한반도 문화도 그렇지만 대개 “배움”에 대한 거의 절대적이다 싶은 가치를 둡니다. 1970년대의 동일방직 여공들의 외침을 기억합니까? “우리는 배우지 못했지만,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지 못했지만”이라는 전제입니다. 개인 의지의 문제도 아니고 엄격히 사회적 환경의 문제일 뿐이지만, “배우지 못한 사람”이 애당초부터 한 수를 접고 “배운 사람들”이 지배하는 이 사회를 대하게 돼 있습니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고급 관료, 기업 소유주와 임원들의 대다수는 국내외 “명문대”의 화려한 학위를 지니고 있으며, 그들을 지성적으로 뒷받침해주고 보필해주는 전임직 교수 집단 중에서는 역시 약 40%가 화려한 “외국산 학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배자들이 가장 기대는 SKY의 상경, 사회 계열의 교수 집단 같으면 “명문 중 명문”의 미국 대학에서 “간판”을 따고 유창한 내지어로 무장한 사람들의 비율은 아예 80-90%입니다 (예컨대 서울대 경영대는 89% 정도 됩니다). 개화기나 박정희 시대의 구호대로 “지식은 국력”이라면, 한국은 벌써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될 만도 합니다. 식민지 모국의 “인증서”가 붙은 지식의 보유와 지배/통치 관계가 정확하게 겹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상전들이 “검증된” 지식을 확고한 지배 명분이자 매우 유용한 지배 도구로 삼지만, 백성들도 이 체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려고 빚을 내서라도 아이들에게 절망적으로 내지어를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일제말기에는 조선인 중에서는 그 당시의 내지어이었던 일본어의 능통자는 약 15%이었지만, 지금 같아도 직접적 식민 통치없이도, “간접 통치”의 상황에서도 거의 그 정도로 새로운 내지어인 영어의 능통자가 늘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지배체제가 요구하는) 지식으로 살고 죽고 생사를 가리는 이 대한민국은 과연 덜 폭력적인 사회가 돼갑니까? 최근 경찰이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을 대하는 방법만 봐도 그게 전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유성기업의 경우도 그렇고 한진중공업의 경우도 그렇지만 자본에 “감히” 행동적으로 권리주장하는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1990년대처럼 원천봉쇄, 묻지마 연행, 초강경 진압, 살인적 손배 소송, 그리고 용역의 무지막지한 폭력입니다. 1980년대와 비교해도, 고문이 없어진 것 빼고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지식으로 가득 찬, 지식이 인제 거의 “잉여”가 될 정도로 지식에 의존하는 사회인데도, 그 폭력성의 수준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식 그 자체만이 사회를 개선시킬 수는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회의 차원도 그렇지만, 개인 차원에서도 지식 그 자체만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체제에 잘 편입되기만 하면, 그 체제가 아무리 악질적이라 해도 “고급 지식”의 보유자들은 대개 군대 졸병 이상으로 잘 순치됩니다. 세계체제 주변부 파시즘의 전형에 가까운 유신 체제 하에서는 송기숙 교수 등 일부 “제도권 지식인”들은 민중의 편에 섰지만 대체로 저항을 주도한 것은 함석헌처럼 “지식” 그 자체보다 독특한 종교적 사고를 지닌, 그리고 “지식 인증서”가 잘 없는 야생마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저항에 가담한 교수들보다 “교수평가단”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던 교수들은 몇 배 많았습니다. 박정희가 어렸을 때부터 흠모했던 히틀러의 치하에서는 과연 달랐을까요? 지식인의 꽃이라고 할 의료권력자, 즉 의사의 약 절반이 나치 당의 당원이었다는 곳은 파쇼 독일의 실정이었습니다 (http://fcit.usf.edu/holocaust/Resource/REVIEWS/Aly.HTM ). 반전 운동을 시발점으로 해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시작한 촘스키교수는, 월남전쟁 한참이었던 1960년대 말만 해도, 미국 대학 교수의 약 7할이 전쟁을 지지했거나 무관심했다고 회고합니다. 미국 대학과 군수복합체의 밀접한 관계까지 생각한다면 결코 놀랄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식 그 자체가 인간을 구제할 수 없다는 걸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뇌 속에서 축적된 지식은 그저 컴퓨터의 파일처럼 “삭제”되고 맙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지식인이라는 것은 너무나 “유한”한 것이죠. 사회화된 지식, 즉 책 등의 형태로 공동체 전체의 재산이 된 지식은 그것보다 오래 살아도,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고 나면 오늘날 우리의 지식은 그저 역사학자들에게만 관심사가 될 뿐이죠. 지식도 “유효기간”이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어도 “삭제”되지 않고 수 백년, 수만 년이 지나도 빛 바래지 않는 것은 김진숙 선생님이 지금 보여주시고 계시는 “동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동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하면 괜스레 종교적 냄새가 느껴지지만, 사실 노동운동판에서 김진숙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실천은 제게 어느 종교가의 실천보다도 더 고귀하게 보입니다. 종교의 “이웃사랑”에 늘 권위주의적 상하관계가 내재돼 있습니다. 예수는 단순히 한 명의 씨알이 아닌 “주님의 아들”로 기억되고, 부처는 설법을 들으러 온 사람이 그 발에 입을 맞추어야 하는 “세존님”, 절대적 권위의 보유자로 기억됩니다. 종교계에서는 “이웃사랑”은 권위 관계의 밑천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김진숙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동류 사랑”에는 사랑만 있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군림하려는 뜻은 없습니다. 김진숙 선생님도 제도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지식인”이 되고, 자도 애독하는 <소금꽃나무>의 저자이기도 하지만, 이 지식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고 “동류 사랑”의 실천 수단이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지식의 유일한 올바른 쓰임 방법일 것입니다. 지식이란 일종의 칼입니다. 누구의 손에 잡히는가에 따라서 해방의 도구도 학살의 도구도 다 됩니다. 그런데 칼을 절대시하는 문화는 “해방”보다 “학살”에 더 가까운 것처럼, “지식”을 절대시하는 문화도 전혀 해방적이지 않습니다.
 
행동하지 못하고 체제에 편입된 지식은 그저 악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김진숙 선생님을 보면서 저 같은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김진숙 선생님처럼 행동하지 못하면 결국 지배자 무리에 포섭돼 이 지옥을 관리하는 악마들의 유순한 도구가 될 확률은 너무 높습니다. 저도 그렇고 저의 동료인 “직업적 체제내 지식인”들도 그렇지만, 다 살얼음판을 걸어 다니는 것입니다. 김진숙 선생님을 보면서 “인간 해방을 향한 지식 축적”은 무엇인지 매일매일 배워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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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메일] 파시즘

2011/06/30 13:04

* 출처 :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http://www.artnstudy.com/sub/community/minerva.asp?clip=C

 

개인은 없다.

 

2차 대전을 일으켜 지구를 피로 물들인 공포의 이름, 나치즘[Nazism]과 파시즘[Fascism]-놀랍게도 이 잔인한 분파는 그들의 당수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죽고 추축국이 패전한 다음에도 스페인의 프랑코와 아르헨티나의 페론을 통해 살아남았으며, 지금도 정치, 경제 상황이 불안한 사회에서 언제든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있는'현재진행형' 우익 집단이다. 그들은 인류의 공존을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극단적인 배타성을 띤다. 너무 자주 들어 지겹지만, 자칫 방심했다간 큰일을 저지를지 모를 이 음흉한 세력은 누구인가?

 

같으면서 다른 얼굴, 나치즘과 파시즘

 

나치즘와 파시즘은 '동일한 하나'의 두 측면이다. 그만큼 둘은 서로 닮았다.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위대한 이탈리아' 건설을 최대 목표로 삼았으며, 독일의 나치즘은 '위대한 독일' 건설을 절대 과제로 두었으니, 이들은 강력한 '국가' 건설을 위해 필연적으로 민족 유대를 강조하고 영토 확장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나치의 깃발바탕이 '민족, 피'를 상징하는 붉은 색인 것과 무솔리니의 깃발 중앙에 고대 로마 군인들이 행군 때 사용했던 '파쇼(fascio)'('단결'을 뜻하는 이 단어에서 파시즘이란 명칭이 유래했다고 한다.) 가 그려져 있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대 로마의 재건을 꿈꿨던 이탈리아가 '국가'라는 시스템을 강조한 반면, 나치는 자신들의 게르만 '혈통'을 지나치게 부각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는 여러 인종의 집합소였던 로마 제국을 모델로 삼았기에 반유태주의 성향이 크지 않았지만, 나치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타난 가설, '종 간에는 생존 투쟁이 벌어지며, 환경에 더욱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를 '인간 사회'에 그대로 적용했다. 게르만 족은 역사적으로 다른 인종을 지배해 온 우월한 종이기에 열등한 종을 지배하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생존 투쟁에서 진 인종이 제거되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라는 인종주의(racism) 앞에서 천부인권은 무용지물이다. 만약 열등 인자가 살아남고 싶다면, 우월 인자의 지배를 받아들여 허드렛일이나 하며 겨우 목숨을 유지해야 할 뿐이다.

 

나치의 우생학[eugenics]과 인종 개량 'T-4 작전'

 

나치는 유대인만 학살한 것이 아니었다. 우생학에 뿌리를 둔 인종 개량 프로그램인 T-4 작전을 발동시켜, '게르만의 우월성에 흠집을 내고 국가 예산을 좀먹는' 동족의 장애인, 정신병자를 어른, 어린이 할 거 없이 안락사시켰다. 추후 그 대상은 노인 및 전쟁 중 부상을 입은 참전 용사에게까지 확대되어 총 사상자가 20만 명에 이르렀다.

또한, 우월한 자손을 양성한다는 명목으로 알코올 중독자나 45세 이상의 여성, 신체적 결함이 있는 사람 등 40만 명을 강제로 불임 수술 시켰으며, 반대로 건강한 신체와 높은 지능을 가졌다고 판단되는 남녀를 모아 혼인을 장려하거나 동침하도록 강요했다. 그렇게 탄생한 아이들이 패전 후 비난과 멸시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지 쉽게 유추할 수 있으리라.

 

비합리성의 극대화

 

당신은 타당한 근거를 중시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인가, 아니면 신화와 웅변 혹은 유행에 크게 영향받는 감정적인 사람인가? 라이프니츠, 피히테, 헤겔, 니체, 하이데거 등 수많은 철학자를 배출한 냉철하고 논리적인 독일인이 어떻게 잔혹한 히틀러에 그토록 열광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 그 원리는 간단하다. 나치는 무기력하고 불안할 때 자신보다 강한 힘에 쉽게 휘말리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십분 이용한 것이다. 그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위태롭던 당시의 자국민에게 풍족하게 살게 해준다는 공략과 '선민사상'을 선물했다. 다른 인종을 밟고 올라섬으로써 불만과 열등감은 극복되고 민족의 일체감은 커졌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비합리성'은 이렇게 극대화되었다.

 

나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유사 파시즘'

 

나치와 파시즘을 가장 단순하고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용어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 혹은 '국가 우선주의(statism)'일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없다. 국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며 민족의 양심과 문화를 대변하는 거대한 힘이자, 독자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실재이기에 언제나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숭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인간은 각자의 개성과 차이조차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보잘것없다.

무서운 일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행위가 '그것이 등장할 필요가 없는' 영역에서 의도적으로 공공연히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별다른 검열 없이 보다 다양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국익이 강조된다. 나에게서 충성심과 감동 심지어 비장함을 끌어 낸 몇 가지 사례가 실은 '유사 파시즘'은 아니었을까? 민족주의가 심해지면, 더 이상 개인은 없다.

  
  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참고문헌 『역사의 이해와 해석』(이주영, 건국대 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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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사랑이란 무엇인가?

2011/06/16 16:44

사랑이란 무엇인가? 

 

[출처 : 박노자의 만감: 일기장 2011/06/14 20:44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35697

 
저는 지금 이례적으로 노동시간임에도 집에 앉아 있으면서 저희 동네 치과에서의 약속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연히 치통의 기습 (?)을 받아, 거의 책읽기가 불편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플 때에 저로서 최고의 진통제는 글쓰기입니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을 글로 정리해놓으면 왠지 아픔이 조금 물러갑니다. "작문요법"이라고나 할까요? 오늘의 주제는, 제가 사춘기 때부터 고심해온 주제인지라, 아무래도 거의 20여년 간의 고민을 정리해놓으면 이 무서운 치통이 조금 덜어질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올리고 치과에 가려 합니다.
 
저는 지금도 1991년 여름에 열차를 타고 흑해안 휴양지에서 레닌그라드로 돌아가는 3일을 아주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게 쏘련의 마지막 여름이었다는 사실, 이 후로는 저희와 같은 일선 지식일꾼들이 흑해안 휴양지에 대한 꿈을 완전히 버려야 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불과 1년 후에 가스총을 휴대하지 않고 집을 떠나기가 무서운 준(準)내전적 상황들이 도래할 사실 - 이 모든 사실들을 저는 그 때에 알 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열차여행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는, 가스총 없이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마지막 쏘련식 여행이라서는 아닙니다. 흑해북안을 떠났을 때에 어떤 이름모를 우크라이나의 철도역에서 우연히 신문가판대에서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운좋게 사서, 레닌그라드 도착까지 그 책을 열독해 거의 외울 정도가 되어서, 지금도 그 여행을 "프롬과의 만남'으로 기억합니다. 신문가판대에는 황색신문과 에로잡지 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늘날 러시아를 염두에 둔다면 20여년 전의 쏘련에서 신문가판대에서 사르트르나 일본 단가집, 도덕경의 러역, 아니면 프롬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은 거의 믿어지지 않는데, 엄연히 사실이었습니다.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인지라, 냉전기간에 외국사상에 접근 제한 당해왔던 인민들은, 그 때에 "외국 진보 사상"이나 "외국 고전"에 대한 매우 뜨거운 열기를 보였습니다. 참, 프롬의 이 책은 기쁘게도 번안 식의 국역본도 있는데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19623) 국내에서 얼마나 읽혀지는지 저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좌우간, 그 때에 불편한 열차 침대에서 그 책을 읽고 얻은 깨달음을, 그 후로 20년 동안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인본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프롬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소유욕"의 정반대로 정의했습니다. "소유욕"이라는 것은 자아 본위적인, 자아 지향적인, 그리고 본질적으로 타자에 대해 배타적인 욕망입니다. 효도를 함으로써 효자/효녀 소리 듣고 싶은 욕망, 자식에의 "투자'를 함으로서 노후에 자식으로부터 "모심"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 "나의 여자/남자"가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기를 바라는 욕망 - 이는 이 사회에서 "사랑"으로 오해 받는 각종 "소유욕"의 종류들입니다. 그 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독신 (瀆神)적인 것은, 불전 (佛錢) 헌납이나 교회 출석, 수천배 (數千拜) 올리기 등등을 통해서 "나"나 ("나"의 연속으로 인식되어지는) 부모/친지를 위해 천당/서방정토에서 "한 자리"를 마련하려는 욕망입니다. 정말이지, 부처님/하나님 사랑의 이름으로 신과의 "자아 본위의" 거래를 시도하는 사람보다 차라리 살인의 악업을 지어 지옥에 갈 각오로 억압자를 상대로 수류탄을 투척하는 정의의 테러리스트가 천당/서방정토에 가는 게 더 순리일 것 같습니다. 그는 악업을 짓는다 해도, 적어도 자기자신을 위한 악업이 아니고 타자의 공통적인 업(業)을 향상시키기 위한, 자기 희생적인 악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타자의 입장에 서서 타자에 대한 자신의 배타적인 욕망을 버리고, 타자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타자의 욕망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혼적이 없을수록 사랑의 순도가 높아지게 돼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은 바로 그럴 것입니다. 신이 우리에게 "나를 모시라", "나에게 예배하라"라고 욕망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타자와의 관게망 속에서 남의 행복을 건설해주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도 행복해지기를 신은 그저 바랄 뿐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신의 사랑만큼 "무아적" (無我的)이지 못하지만, 일단 이 방향으로 계속 시도하는 것은 우리 존재의 진짜 의미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제 장자 유리군(君)을, 그 녀석이 19세 (노르웨이에서의 성인 연령)가 되는 그 순간 바로 "방생" (?)하려고 합니다. 본인이 이제 클 만큼 컸으니까 알아서 살아라 하고, 그 인생에 대한 일체 간섭을 절대 안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가 제게 지원이나 상담 등을 요청하면 이를 적절한 한도 내에서 받아들일 용의는 있지만, 그와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서로 동등한 타인 사이의 관계 형태로 건설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그에 대한 소유 욕망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또 그래야 그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노후에 자식으로부터 "부양"이나 "효도"를 받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남에게 글 등으로 도움 주지 못하고 도리어 남의 도움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태가 되기 전에 제발 저를 황천으로 보내달라고 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방법으로 자식과의 관계를 설정하자면 부자 양쪽이 내면적으로 좀 강해야 하는데, 일단 아동의 자립심을 키우는 것은 "국, 영, 수"보다 더 중요한 교육의 목적이지요.
 
남녀 사랑 같으면, 독점욕이라는 독약이 제일 퍼지기 쉬운 영역입니다. 더군다나 이 미쳐버린 세상의 가장 악질적인 억압장치 중의 하나인 배타적인 일부일처제가 이와 같은 독점욕을 법제화까지 시키니 더더욱도 소유욕을 사랑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제게 (프롬의 정의에 맞는) 진정한 남녀 사랑의 모범은 로서아 혁명시인 마야코브스키와 문학연구자/혁명가 요십 브릭의 부인 릴랴 브릭 (http://en.wikipedia.org/wiki/Lily_Brik)의 사랑입니다. 1915년, 부인 릴랴가 청년 시인 마야코브스키와의 사랑에 빠졌을 때에 그 남편 요십 브릭은 그저 기뻐했을 뿐이고, 마야코브스키를 초청해 셋이서 하나의 호구를 이루어 같이 살게 됐습니다. 요십 브릭과 마야코브스키는, 질투를 느끼기는커녕 아주 절친한 친구가 된 것이죠. 1923년 이후에 마야코브스키와 릴랴가 더이상 육체적 관계를 거의 갖지 않았지만, 역시 아주 가까운 동무로 지냈으며, 거기에다가 릴랴가 마야코브스키와 새롭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또 다른 여러 여성들과 가까운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십 브릭과 릴랴 브릭, 그리고 마야코브스키 사이에 각종의 "시련"은 있어도, 한 가지 절대 없었던 것은 질투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소유"라는 게 없어지게끔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혁명가들이라서 그런 것인이었던가요? 꼭 혁명가만이 진정한 (비소유적인) 사랑을 할 줄 아는 게 아니지만, 대체로 공산주의적 혁명과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동질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란 사유와 이윤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고, 진정한 사랑은 소유욕과 독점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공산주의자만이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게 아니지만, 공산주의자라면 적어도 자신의 소유욕에 대한 "거리 두기", 상대화, 궁극적으로 소멸 작업을 해야 할 듯합니다.
 
아아, 오랫동안 생각해온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니 치통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좌우간, 약속시간에 맞추어서 인제 치과에 다녀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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