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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입니다^^

라빛왕자님의 [에밀리오님 글을 읽고 고민이 생겨서 몇자 적어봅니다.] 에 관련된 글.

 

두 가지 질문해주셨는데, 개별적이든 묶어서든 대답하고 나서 제 주장을 펴면 더 오해 돋을 것 같아서 그냥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지하시다시피 민족주의는 근대의 기획이고, 정치적 견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발전된 산물입니다. 그리고 국민국가는 근대성과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그리고 선발국에서 시작된 (보통은 독일? 프랑스?에서 태동했거나, 정립했다는 의견이 다분합니다.) ‘민족-국민국가-자본’의 삼위일체는 제국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빠르게 후발국과 후후발국 등으로 전파, 수입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말씀하시는 바를 수용하거나, 아니면 서술의 편의를 위해서) 20세기 초에 이 나라에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형태로 민족주의가 수입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국민국가 형태와 민족주의가 강제로 이식 되었고, 근대의 주체가 미처 형성되지 못한 상태로 진행된 근대화 (국민국가와 근대성 형성 과정은 같이 가니까요.) 는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그 근대화의 폐해 중 하나가 National histories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국내 역사학계의 인식은 ‘군부독재시기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역사인식을 만들어냈었던 부분을 경계하고 있고, 그래서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이라는 그룹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역사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역사발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차를 두고 운영되는 정치적 그룹<표현하자면 국가?>인 A와 B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을 통해 ‘연속성’을 가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다시 말해서 여전히 역사의 연속성을 규정하는 근거는 동일한 공간 (혹은 그렇게 믿고 있는 심리적, 추상적 공간)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특정지점 A부터 B까지’ 라는 임의의 공간설정이라는 전제를 지워버린다면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을 이어주는 정치문화경제사회의 영향력과 연속성은 인근의 다른 그룹(논의를 위해 굳이 쉽게 표현하자면, 동일한 시대의 중, 일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말씀하시는 ‘조선왕조’와 ‘대한민국’ 간에 영향을 주고받은 부분(과 그래서 역사성이 이어진다는 주장은)은 오로지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이라는 임의의 폐쇄된공간을 설정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폐쇄된 공간을 ‘내부’로, 그 이외에 타자를 ‘외부’로 전제하여 <내부의 동학을 통한 역사성의 연속>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것은 지극히 지금 이 순간, 국민국가 속에 살아가는 현재의 ‘관찰자’가 과거를 돌아보며, 임의의 폐쇄적인 공간을 설정 (이 경우에는 추상화 되어 있는 영토 - “지금 현재 우리 영토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 중에서 역사라고 할 만 한 것은 우리의 역사이다!” 라는 선언) 하여 “역사의 영속”을 이야기 하는데 이것은 여전히 < 국민국가 / 영토주의 / 민족주의 > 회로판 속에서 사고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국내 역사학계의 인식은 민족주의에 입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사고의 회로판 역시 여전히 National histories의 영역 안에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근대국민국가에서 설정한 ‘자국’의 역사세우기는 지극히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정상국민국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분히 정치적 행위, 혹은 견해입니다.그리고 말씀하시는 역사 설정 또한 이 것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에 대해 이미 대답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여전히 민족주의 회로판에 입각한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사족을 겸해서 말씀드립니다.) 이마뉴엘 월러스틴은 유럽에서만 자본주의 형태가 출현한 이유를 순전히 우연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들고 있는데, 1) 유럽의 도시국가형태, 2)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인한 교류, 3) 원격지 무역 활성화, 4) 몽골족 침략에 의한 (강제적) 교류입니다.

 

그냥 핵심만 말씀드리면, ‘우연히’,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어’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태동했을 뿐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이러한 ‘인과관계’를 역사의 연속성으로 규정하신다고 하더라도 (말씀하신대로 ‘조선왕조’와 ‘대한민국’ 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영향력), 이러한 ‘인과관계’ 때문에 이를 “우리의 것” 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다분히 정치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여전히 민족주의 회로판 속의 사고이며, 영토주의에서 벗어나고 있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문제제기에 답변이 충분히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논의 중 오해 돋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댓글이든, 트랙백이든 다시 이야기 풀어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부득이 회사에서 나가야해서 우선 이렇게 갈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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