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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담배 이야기 말고,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 보아요

깰뱅이님의 [담배가 문제는 문제야!!!] 에 관련된 글.

 

담배 이야기는 말씀하신 바와 일치하는 면도 있고,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담배 외 이야기만 이야기 하자면,

 

과거의 급진적, 전투적 노조운동(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운동)과 최근 운동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고, 이에 대해 현재 운동의 장점에 급진적, 전투적 운동성을 접목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문제의 포스팅을 쓰신 노동자혁명당의 당원 분께서는 댓글을 통해서 하시고자 했던 말씀의 핵심은 용역 깡패 등에 의해서 저항조차 힘든 상황에서 이에 대항할 대오를 조직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뉘앙스로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와 현재를 단절하는 방식 등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저는 집회 참가자들의 자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만, 마찬가지로 폐해들도 여럿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민인 건, 전투적/비타협적 운동성이라는 것이 소위 말하는 철의 규율을 가진 노동자의 군대라든지, 블랙코드 등을 뜻하는 거라면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흔히 아는 예로 노동해방포 등을 사용했던 예만 보더라도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공권력을 상대로 물리력으로 대항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이 정당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대항력을 갖추려고 해도 결국 물리력으로는 이기기 어렵다는 점이 맹점이지 않는가? 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물리력을 통한 투쟁의 우위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말씀하신 바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87년 체제 성립 전후에 갖추어졌던 급진적인 분위기와 조직력을 이야기 하시는 거라면 (실제로 통계? 등에 따르면 87년 이후 노조 조직력이 강해진 건 3년 정도라는 연구자료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만서도...) 그 또한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전투적 현장성을 보존한채로 권위주의적인 속성을 해체하고 보다 민주적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하셨습니다만, 그 전투적 현장성이 바로 적과 싸우기 위한 강고한 노동자 군대가 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수직적 구조를 가진 유사군대의 형태를 벗어나면 실현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안은 보다 다른 방식들, 보다 다양한 시도들, 다른 논의들과의 조화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혁명당 당원께서 댓글로 말씀하신 방식이나, 깔뱅이 님께서 말씀하시는 전투적 현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가부장적, 혹은 비민주적 80년대식 운동방식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고의 회로판이 가져다주는 운동방식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노동자혁명당 당원께서 쓰신 글이 내포하는 가부장성에 많은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남사회의 운동세력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것과는 달리 (선배 세대의 노력과 투쟁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한국의 전투적 운동성은 그렇게 전투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외국의 경우 총을 들고 싸우는 일이 태반입니다.
 
노조운동이 강성이었다는 시기에도, 또 학생대오가 전투조직을 운영하는 시기에도 우리 믿음과는 달리 그다지 급진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그 방식이라는 것이 그다지 민주적이지 않았고, 그 유산은 21세기 운동세력이 많은 부분 여전히 떠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말씀하신 바대로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보려고 하는가?" 라는 말씀은, 노동자혁명당의 당원께서 올리신 포스팅에 댓글을 단 많은 분들과, 트랙백을 날렸던 분들 또한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문제는 '전투적 운동성의 계승 및 구현'이 아니라 '전투적 운동성이라는 개념은 문제가 없는 개념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바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제가 특별히 "지랄하거나 낙인 찍으려고 하거나 빈정거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표현하기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 큰 따옴표로 인용한 말씀이 문제제기를 했던 많은 분들이 소통의 의사는 없고, 지랄하거나, 낙인 찍는다고 보시거나, 빈정거리는 것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받아들이시고 논지를 이어가시는 거라면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 번 고민을 해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반드시 목표를 향해 통일된 행동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적 다원주의에 의해서 (소위 말하는 주요모순/부차모순의 구분 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인 목소리를 내는 방향을 고민해볼 수는 없는 것인지 고민이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소통과 고민을 모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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