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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일상)'에 해당하는 글들

  1. 2007/12/18  사표(死票)는 없다.
  2. 2007/11/18  ...어린왕자... (2)
  3. 2007/11/16  반성 (2)
  4. 2007/11/13  나는 이상주의자다. (4)
  5. 2007/11/12  농업 경쟁력을 높여라!
  6. 2007/10/10  경제대통령??
  7. 2007/09/28  오옷.....베리베리 좋은 글이다..
  8. 2007/07/02  '배려가 있는 주장'?? (11)
  9. 2007/03/21  진보넷 블로그 (2)
  10. 2007/02/28  자서전 대신에...

사회구성원의 의견 수렴 과정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에서는 사표도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 선거는 누군가에게 독재할 수 있는 권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니다.

최다 득표로 당선이 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의견을 개진한 나머지 구성원의 뜻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따라서 사회구성원은 유력 당선자가 누구이든지 상관 없이

투표에 참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신의 의사를 최대한 표출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의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오늘 행동하면 내일은 희망의 세상에서 살 수 있다.

 

12월 19일,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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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8 10:23 2007/12/1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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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귀는 댐처럼 막혀버리고

한 입은 대포처럼 거침없는 건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래서 나는

장미와 마흔 세 번의 노을을 보는

지금이 좋다.

 

 

 

 

 

2007년 11월 18일 새벽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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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8 01:41 2007/11/1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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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시를 써야겠다.

술기운을 가득 태운 버스안에서 문득

생각했다.

 

잊혀진 줄 알았던 그이가

아직 가수란 걸

힘겹게 매달린 포스터를 보고 알았다.

 

큰길 옆 환풍기에 매달려

마지막 비상을 꿈꾸는 낙엽 뒤로

 

저만치 달아가는 버스의 뒤꽁무니만

맥없이 쳐다본다.

 

 

 

 

 

 

 

 

2007년 11월 13일 처음 쓰고

2007년 11월 16일 고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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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6 00:33 2007/11/1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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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 2007/11/16 00:33 세상보기(일상)

지금 TV의 어느 채널에서 일본 자위대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있다.

내용 중에 자위대에 자원한 여러 대학생들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그걸 보고 생각나서 몇 자 적는다.


자원입대한 젊은 청년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국가수호에 이바지하기 위해 입대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밥풀과 함께 한마디가 새어나왔다.

"아~ 불쌍한 청춘이여."


나와 같은 내용을 보면서,

혹자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군 기피 현상을 비판하며

일본 청년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역성을 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방금 내가 뱉은 말을 들으면 아마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군장병에 대한 모독이라며

강력한 비난의 화살을 던질 것이다.


이에 대비해 우선 한 가지만 분명히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난 군인들 욕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그 젊은이들을 불쌍하게 생각한 것은(사실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 좋은 머리를 왜 '사람을 죽이는 방법'으로만 사용하려고 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누구는 침략에 맞서 싸우는 것이 무슨 사람을 죽이는 것이냐며,

적에게 가족이 죽어도 좋다고 따질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조금만 더 머리를 굴려보자.

국가 침략은 누가하는가? 군대 아닌가?

방어만을 주된 임무로 하는 군대는 이 세상에 없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사람 안 죽이는 군대는 이 세상에 있어 본 적이 없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군대를 해체하고 모든 무기를 없애야 한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이상주의자라며 꿈에서 깨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군대 존재의 당위성을 바탕으로 군사력 증대를 주장하는 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우리를 둘러싼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할 수 있는 한 최강의 전투력을 보유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최강의 전투력'

이는 상대적 개념이다. 즉, 우리의 적들과 비교하여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적들도 똑같이 한다.

고로 이러한 군비경쟁은 다람쥐 쳇바퀴돌 듯 영원히 계속된다.

(다람쥐는 지치기라도 하지. 이 놈의 인간들은 지치질 않아.)

결국 군사력 우위에 의한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 무기를 없애는 것도 이상(理想)이고, 군비경쟁도 이상이면

인간 삶에 좀 더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 아닐까?

밑빠진 독에 물 붓기도 아니고, 쓰나 마나한 국고를 언제까지 쏟아 부어야 하는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이상주의자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난 절대신을 믿고,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는 가톨릭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나와 비슷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교인이

남을 '이상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행위인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늘나라가 이 세상에 오는 것보다,

군축을 통한 평화 정착이 더 빠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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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3 00:28 2007/11/1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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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100분 토론에서 나왔던 이야기이다.

그 날은 사회적 약자 보호를 표방하는 정당의 대선 후보가 등장했고

그의 정책에 대한 찬반 공방이 오고갔다.

여러 논쟁 중, 어느 한 시민논객이 이런 질문을 하였다.


"농민은 보호하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한국 농업이 근본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것 아닌가요?"


그는 농업을 보호하는 것이 문제라며 농업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이는 그 사람만의 의견은 아니다.

이와 비슷한 주장이 주요일간지를 통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품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표면적인 것만 보면 시민논객이 내세운 주장은 참이다.


그런데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은 있을까?

만약 이러한 주장을 따르게 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생각해보자.


먼저 현재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구의 평균연령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느 집단이든지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계층이 있어야 전면적인 쇄신이 가능하다.

현재 농촌은 평균연령이 65세~75세인 농민들이 70~80%를 차지하고 있다.

쉽게 말해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의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이 분들께 새로운 방식의 농사 기술과 판로를 모색하여,

농업 경쟁력을 높여야 된다고 주장하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 수 있을까?


한발 양보해서 그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다음의 문제는

'어떻게'의 문제 즉, 경쟁력 제고의 방법 모색이다.

시장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첫째,  질보다는 양,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을 내린다.

둘째, 양보다는 질, 품질을 월등히 높히고 소량을 생산하되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


우리나라는 이번 한미FTA 늑약을 통해 미국과 경쟁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미국의 농업 전략을 알아보자.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배웠듯이,

미국은 광활한 농토를 이용하여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되는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첫 번째 방법은 탈락! 자연히 우리의 선택은 두 번째 방법!


그들의 주장처럼 농업 부분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살아남은 농가에게는 특산물 또는 고가의 상품을 생산케 하도록 하자.

요즘 트랜드가 명품이니 우리도 명품쌀, 명품배추를 생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가격이 지금보다 오르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왜? 생산자가 줄었고, 품질도 향상되었으니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로서 10kg 쌀 한 포대가 10만원, 유기농 명품 배추는 한 포기에 2만원이 되었다.


이제 공은 소비자에게 넘어온다.

우리집은 부자가 아니라 매일 명품 식품을 먹지 못한다.

그래서 선택하는 상품은 첫 번째 방법으로 나온 저렴한 미국산 농산물.

우리집의 경제 수준이 중간정도라고 봤을 때,

인구 절반은 미국산(혹은 중국산) 농산물에 의지하게 된다.

어느 날 미국의 농업정책 변화로 인하여 농산물 가격이 오르게 된다.


그럼 이제 우리는 뭐 먹고 살아야하지?


다시 이야기의 앞으로 돌아가서,

"농민은 보호하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한국 농업이 근본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것 아닌가요?"


당신의 말대로 경쟁력을 높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의 말에 책임질 때가 되었다.



"젠장....왜 그랬을까??!!"


후회하기 싫으면 생각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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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2 00:06 2007/11/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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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노조가 10일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측의 요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연봉제 및 팀제 도입 금지,

구조조정 전문회사와의 계약 철회 등등이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연봉제나 팀제 등 구조조정을 하지 말 것을

문서로 확약해달라는 요구는

병원의 고유 권한인 경영권에 대한 문제인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밑줄 친 부분에 주목!!


기업의 구성원은 크게

소수의 사용자와 다수의 피사용자(혹은 사용자와 근로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둘 중에 하나만 있다면 그것은 기업이 아니다.

또 둘 중 하나라도 직무태만을 보이면 그 기업은 망한다.

따라서 두 구성원 모두 기업의 경영에 책임을 진다.

허나 서울대병원 파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 기업의 사용자는 기업 경영을 자기 고유의 권한으로 '착각'한다.

(파업해서 손실이 발생하면 노조탓을 하면서 말이다.

기업경영이 사용자만의 고유권한이라면

손실발생에 대한 책임 역시 사용자만의 것이어야 한다.)


이를 보면서 우리나라 정치와 관련된 걱정 하나 등장!


간혹 국가를 기업에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경제를 국가 경영의 최고 목표로 상정한다.

때문에 경제에 능통한 사람을 국가대표로 세우기를 주장한다.


문제는 경제에 능통한 사람은 거의 대부분, 아니 100% 모두 사용자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기업의 근로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대다수의 국민은

국가 경영에 참여할 수 없게 될 것이 뻔하다.

왜?? 국가경영은 철저히 경영자의 고유권한으로만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 걱정이 현실이 되면 이거 정말 덴장할 노릇이다....


경제! 경제! 하지 말아라....그러다가 비졍규국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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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0 21:31 2007/10/1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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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님의 [p이면 q이다] 에 관련된 글.


요즘들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말을 절실히 느낀다..


서점에 무수히 깔린 '무슨무슨 법칙', '인생의 중요한 무엇', '무슨 원리' 등등의 

처세술 관련 서적을 보면서 떠오르는, 그리고 느껴지는 것들이


이제는 명확하게 저 위의 문장으로 정리된다.


다 아는 내용이다. 인생의 법칙, 진리, 원리라는 것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천이다. 삶에 적용하는 거...

그걸 못해서 맨날 똑같은 얘기 되풀이 하는 것이다.


오늘 끌어다 놓은 무위님의 글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 배운 사람들이 왜 저거 하나 기억 못해서 헛소리들을 하시는지....참나!!



쓸모 있는 사족>

진보넷 블로그는 이래서 좋다......^^ 요런거 어디 가서 공짜로 배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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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8 23:02 2007/09/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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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을 먹으면서 TV를 보다가 어처구니 없는 공익광고를 보고 글을 올린다.


  최근 다양한 시도와 형식으로 시청자에게 신선함을 주고 있는 공익광고가

이번에는 상식을 넘어서는(그래서 상식 이하의) 광고를 제작, 방영하고 있다.

  아래 그림이 바로 그 광고의 한 장면이다.

        

 
  이 광고에는 모두 네 가지의 문구가 오버랩된다.

  ' 질서가 있는 주장, 존중이 있는 주장, 절제가 있는 주장, 배려가 있는 주장' 이 그것이다.

 얼핏 문구만 보면 정의적인 측면에서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하나씩 따져보자, 과연 맞는 말인지.

 

  우선 장면들을 보자.

  광고에서는 각 문구마다 그에 어울리는 시위대의 모습이 연출되어 나온다.

 ('존중'은 시위대가 아니라 각 대표 종교인의 모습이라 논의에서 제외한다.)

  질서⇒촛불시위(사실 장면만 보면 촛불 들고 노래하는 합창단 같다.)

  절제⇒삼보일배(전체화면은 실제화면인 듯 하고, 클로즈업되는 모습은 연출인 것 같다.

                               물론 이 연출, 어색하다.)

  배려⇒물 건네는 시위자(전경에게 한 시위자가 물통을 건네고 전경은 웃으며 받는다.)

  그리고 나오는 멘트, '배려가 있는 주장은 아름답습니다.'

   
  각 장면의 시위대에서 절박함을 읽을 수 없다. 마치 문화행사(퍼포먼스)를 하는 듯한 모습이

다.  즉, 실제의 시위 이유에 한참 모자른다. 실제에서의 시위는 대부분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그렇게  여유롭게 행동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방송에서는 '이래야 착한 어린이지~!' 하는

식으로 모범적인(?)  시위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그런 시위대가 존재하는 양 말이다.

   
  다음은 '배려'라는 단어에 대한 딴지이다.

  적어도 상식선에서 생각할 때 배려라는 것은 강자가 약자에게, 또는 서로 동등한 입장일 때

베풀 수 있는 미덕이다. 사전적 의미도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다. 즉, 상대를

도와주거나 보살펴 줄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할 수 있는 것이 배려라는 것이다. 바꿔 생각하면,

약자는 강자에게 '배려'라는 것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뜻이 된다. 약자는 강자를

도와줄 수도, 보살필 수도 없다. 만약 그와 비슷한 행위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순종' 내지는

'복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이 사회에서 국가는 개인 또는 시민에게 절대 우위의

강자이다. 헌법에는 '민주 공화국'이라고 떡하니 명시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국가가

절대권력이다.(혹자는 대기업이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이런 역학관계에서 어떻게 우리가 국가에게 '배려'있는 주장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또, 만약 일반 시민이 광고의 주장대로 질서있게 절제하며 배려하는 주장을 내세우면, 과연

국가가 들어줄까? 분신을 해도 안 들어주는 판국에 무슨.....

  
  암튼 결론은,

지금 방영되고 있는 공익광고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공익보다는 소수의 기득권의 이익을 위한

 내용을 그럴싸한 도덕률에 버무려서 싼 값에 '어린 백셩(훈민정음)'을 유혹하는 불량식품일 뿐이다.

   불량 식품 잘못 먹으면 탈난다. 가려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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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2 20:51 2007/07/0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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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홈피를 제공하던 psy(가수아님)가 싸워월드2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한다.

(아직 정식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고 맛보기 수준이다.)


간만에 시간이 나서 찬찬히 둘러보니 '오호' 새롭다...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들의 계정을 들어가보니 '오호' 이쁘다.....

순간 나도 바꿔볼까??? 했다.....



밧트 그러나,

이내 미니홈에서 여기로 온 이유가

새포도주를 새부대에 담기 위함이었음을 기억했다.


콘텐츠는 그 내용에 따라 각기 다른 매체를 필요로 한다.

둘의 궁합이 안 맞을 경우

수신자는 그 정보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싸워월드에서 제아무리 진보를 외쳐봤자 방문자들은 하나의 감성코드로 소비해 버릴 뿐이고,

진보넷에서 도박하라고, 누드 사진 보라고 쥐알발광을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수많은 인간들이 지나치는 감성 영역에서 진보를 외치는 것도

불모지에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이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장 지오노 감독의 <나무를 심는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처럼 느림족은 그런 일을 하기에 너무 벅차다.

나무도 꾸준히 심어야 숲이 되지, 여기처럼 가뭄에 콩 나듯 심으면 소용없다.

나말고 고쪽으로 침투해서 지보를 외칠 부지런한 분 계시면 함 시도해 보시길~!!

다른 건 못하더라도 방문자 수는 올려주겠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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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1 23:26 2007/03/2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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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 미니홈피부터 찾는구나....

방문자수로 인간관계를 알아보고,

방명록으로 근황을 파악하고,

최근게시물로 그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는구나...




이제 힘들여 자서전 쓸일은 없겠네.

클릭! 클릭! 몇번이면 그 사람의 일생이 주루룩 쏟아지니...




아이쿠....

그런데 난 어쩌지???

나 죽은 다음에 내 홈피가 방송타믄

온통 빨갱이라 하것네......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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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8 00:30 2007/02/2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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