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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크? - 살아남은 자와 사라진 자

베르벨 볼라이(Bärbel Bohley)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베르벨 누구?

구동독에서 반전반핵평화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조직하고 일선에 섰던 사람들의 이름이 기억에서 사라졌다. 내 자신, 베르벨 외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얼른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단 하나 분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반공주의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그 사람들은 엄연한 사회주의자로서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되는 것을 반대하고 1국가 - 2체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동독이 서독에 팔려가는, 동독 것은 다 잘못되었다는 식의 ‚전환’(Wende)과 이런 ‚전환’의 시기에 줄타기 바쁜 기회주의자들과 대조적으로 사회주의의 개혁을 외쳤던 크리스타 볼프 등의 서명문 „우리 나라를 위해서“가 분명히 기억된다.

가우크는 어떤 사람인가?

동독에서 민주화 운동을 지도했던 사람이란다. 로스톡에서? 동독 민주화 운동의  본거지는 라이프찌히-베를린으로 알고 있는데? 반전반핵평화운동을 조직한 사람들로 알고 있는데? 로스톡에서 동독 민주화를 지도하는 선생노릇을 했다?

어? 동독 민주화 운동의 일선에 가우크가 있었나? 본적이 없는데?

타쯔(taz)지 컬럼니스트 데니츠 위첼(Deniz Yücel)은 동독에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목사 가우크가 동독 민주화 운동에 대한 제재가 사라지자 비로서 목소리를 높였고, 전환 후에는 뒤질세랴 더 열심을 내서 동독체제를 고발했다고 한다. ‚나 동독 싫어’.  

가우크를 반공주의에 눈이 어두어 나찌만행을 상대화하는 사람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가우크가 기자의 도움을 받아서 쓴 책  „여름에 맞이라는 겨울 – 가을에 스며있는 봄. 회고“ 을 서평하는 자리에서 크리스토프 플라이쉬만(Christoph Fleischmann)은 이렇게 말한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가우크는 종종 적색테러와 나찌테러를 동일시하기에 적합한, 말도 안되는 비교를 즐겨 한다. […] (가우크: „국가에 대한 충성의 일부로서의 배반을 문제시하지 않은 사회가 아직까지 [동독 이전에] 없었던 것 같다. […] 나찌시대에서조차 비밀경찰 게스타포와 은밀히 협력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공산주의 불법(Unrecht)를 나찌 불법과 같은 선상에 놓거나 아니면 그 위에 놓으려는 경향은 그의 생을 보면 이해가 된다. 가우크의 아버지는 1951년 „끌려갔다”. (…) 서독에서는 나찌시대 때 한 일에 놓고 부모와 자식간 격렬한 말싸움이 벌어졌지만 가우크가 처한 상황에서는 나찌에 대한 그런 말싸움이 일어나기 힘든 것이었다.   불법은 우선 틀림없이 사라진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점령된 폴란드에서 해군장교로 주둔해 있을 당시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진 않았나 독자들이 알 길이 없다.”

나찌에 대한 입장관련 더 심각한 비판도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2003.6.1 나찌 만행에 참여한 이유로 1950-1953간 Forst-Zinna수용소에 사형되거나 생을 마친 사람들의  유해가 동독공산주의의 희생자가 되어 „전쟁과 폭력 희생자를 기념하는 (würdig/존귀에 합당한) 묘지“로 이장되고 이듬해 5월 9일 이들을 기념하고 전시하는 해프닝(?)이 작센 토그가우(Torgau)에서 벌어졌다. 이렇게 기념된 117명  대다수가 나찌만행에 참여한 사라들이었다. 부분적으로는 러시아 „명예회복위원회“가 번복하거나 형을 감소한 사례는 있지만 59명에 대해서는 전쟁 및 대학살 범죄자로 모든 명예회복신청을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데 가우크가 거기 그런 나찌를 기념하고 전시하고 기리는 자리에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나찌가 기념되었다. 나찌 집단수용소 감금자와 강제징역노동자  1017명을 외딴 창고로 몰고가 불을 지르고 나오는 사람은 다 총살한 만행에 가담한 발터 비어만(Walter Biermann)과 아르노 브라케(Arno Br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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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 희생자 단체들이 가만 있었겠는가? 가우크가 나찌 희생자를 기념하는 행사에 초대되거나 심지어 주연설자로 초빙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다시 한번 타쯔 컬럼니스트의 말을 들어보자.


근 10년동안 슈타지 문서관리청 수장이었던 가우크가 – 수장 권한으로  기지(Gysi) 등 좌익당 소속 옛 동독 인사들의 행보에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도 있음 -    동독을 비난하는 동기는 국가조직, 특히 정보조직를 경계시하는데 있지 않고 오로지 독일정통을 자랑하는 세력의 천하디 천한 반공산주의에 있다는 것.  


헌보청이 좌파당을 감시하는 것을 놓고 가우크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가우크: „헌보청이 좌파당내  특정인과 그룹을 감시하면, 그럴만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헌보청은 우리 법치국가 밖에 존재하면서 좌파를 핍박하는 그런 조직이 아니다.“


타쯔 컬럼리스트 : „<권력의 부처 행세를 하는> 요아힘 가우크가 내놓는 지성, 자유사랑, 그리고 비판정신은 이미 이 두 문장에 다 포함되어 있다.“ [슈타지 문석관리청을 „Gauck-Behörde/가우크청“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Joachim "Behörde" Gauck“이란 표현은„Gauck-Behörde“의 순서를 도치하여 공권력에 자신을 환영하는 가우크의 심리를 까는 표현]


Occupy 운동을 „멍청한 짓“이라고 하고, 독일 내 아랍계 사람들이 교육수준이 낮은 것을 유전적으로 뒷받침하려고 책을 쓰고 떠들고 돌아다니던 사민당소속(!) 자라찐 (Sarazzin)을 용감하다고 평하고 [독일 정통보수가 말은 하지 못하고 근질근질했던 모양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이민자가 너무 많고 정통독일인(Altdeutsche)은 소수뿐인 지역이 없어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유태인 학살을 사상 예가 없었던 것으로 만들지 말자고 내놓고 사회보장제도가 사람을 느슨하게 만든데 기여한다는 발언하는 등 언제 가우크에 대한 환상이 깨질까?


보수진영의 정치적 계산 속에서 후보로 추대된 그가 그런 계산을 꿰뚫어 보지 못한단 말인가. 정말 참신한 사람이라면 기분잡쳐서라도 두번째 추대에는 엿 먹으라고 „No“ 했을 것이다. 멍청한 사람인가? 아니면 명예욕에 사로잡힌 사람인가? 암튼 줄타기 잘하는 사람이다. 언제 무슨 말을 해야 줄에서 떨어지지 않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 줄이 신자유주의때문에 갈팡질팡하는 정통보수가 내려준 줄이라는 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참조:

인디메디아 ( http://de.indymedia.org/2012/02/325146.shtml)

http://www.zeit-geschichten.de/th_03d_c5.htm
http://www.christoph-fleischmann.de/pages/de/archiv_zum_lesen/rezensionen/813.htm
http://www.nrw.vvn-bda.de/texte/0130_gauck_do.htm

http://taz.de/Kolumne-Besser/!88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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