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정신현상학 서설 §25

 

진리가 실재적인 것이[1] 되려면 체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2], 또는 실체의 참모습은[3] 주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은 정신이라고[4] 실토하는[5] 표상에 표현되어 있다. 최근 들어서는 정신이 가장 숭고한 개념으로 취급되고 또 종교에서와 같이 숭배되는 관념이 되었다. [이런 최근 유행사조에서 이야기되는 것을 보면] 오직 정신적인 것만이 실재적인 것이며, 본질, 달리 표현하면 [다른 것과의 관계밖에 있는] ‘물자체적으로존재하는[6] 것이다. 그러나 정신은 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것이란 [타자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있는 물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존재와 관계하는 가운데 자신의 규정성을 자각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것은 이와 같은 규성성 안에서, 달리 표현하면 [타자와 관계하는 가운데 자기 규정성을 부여 받기 때문에 자신을 벗어난 외부에 달려 존재하는 상태지만] 자신을 벗어난 타자존재양식에서도 [자신을 상실하는 법이 없이 자기가 애당초 펼쳐놓은 본질로서의 테두리인] 자기 안에 머무르면서 [애당초의 본질을] 자각하는 가운데 그것을 온전히 실현해 나가는 존재다[7]. 그러나 [정신이 출현하는 단계에서는][8] 이와 같은  ürsichsein>[정신의 운동을 관조하는] 우리만 꿰뚫어 보고 있는 것으로서[9] 정신은 아직 자기자신을 [정신으로] 자각하지 못하는[10] 실체일 뿐이다. 이러한 정신적인 실체는 [운동을 통해서] 자각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한 지와 함께 자기자신이 정신이라는 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 말은 정신이 자기 자신에게 대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인데 이때 대상은 [아무런 실천적인 매개작용이 없는 듯이 보이는] 자기 안으로 직접 반성된 형태로 지양된 대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 또한 [정신의 운동을 관조하는] 우리만 꿰뚫어 보고 [정신은 이런 대상과의 관계에서 자기자신과 관계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정신의 ür sich> 형태가 된다. 우리만 꿰뚫어 보고 있는 이러한 정신의 형태는 정신의 내용이 위와 같은 대상을 통해서 스스로 산출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그런데 정신이 이런 대상과의 관계에서 자기자신과 관계한다고 자각하기에 이르면 정신이 산출하는 것이 순수한 개념이 되며, 이 순수한 개념이 바로 정신이 현존하는 대상적인 터전이 된다. 이때 정신은 대상으로 존재하면서 자신이 바로 자기 안으로 반성된 [자기 규정성을 갖는] 대상이 됨을 자각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발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정신자기자신이 정신임을 알아차리는데, 이 정신이 바로 학문이다. 학문은 이렇게 정신의 실재이며 정신이 자신의 고유한 터전 위에 쌓아올린 왕국이다.



[1] 원문

[2]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체계적인 것이 진리라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체계적으로 되어야 비로서 실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3] 원문 . <본질적으로>. 여기서 역자는 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으로서의 본질>이란 의미로 번역하였다.

[4] 정신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5] 원문

[6] 원문 . 칸트가 이야기한 를 찾아 나서는 당시의 유행을 꼬집는 것 같다. 헤겔은 여기서 이런 유행이 <정신>, 더 정확이 말하자면 데카르트의 의 연장선에서 <자아의식/Selbstbewusstein>로 하는 것을 비판하고, <정신>이 의미하는 것을 전개하고 있다.

[7] 원문 ür sich>. <즉자대자적> 혹은 <완전무결>로 번역되는데, 역자는 프로세스에 초점을 맞춰 <본질과 그것을 자작하는 가운데 실현해 나가는 존재>라는 의미로 번역하였다.

[8] 원문

[9] 원문 ür uns>

[10] 원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