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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녹색당 역사

사진1: 루디 두치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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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지지데모에서 연설하는 68운동의 상징 및 독일사회주의대학생연맹 대표이자 학생운동지도자였던 루디 두치케(Rudi Dutschke). 독일 보수매체, 특히 “빌드짜이퉁”으로 선동된 피격사건의 후유증으로 1979년에 사망. 사망직적 녹생당에 입당. 녹색당은 70년대 후반에 반핵운동을 주축으로 하여 환경보호운동, 평화운동, 인권운동, 여성해방운동, 두리반과 같은 거주공간을 사수하는 농성운동, 제3세계운동 등 다양한 신사회운동의 결합체로 결성됨. 당시 독일의 상황은 “독일의 가을”로 역사에 기록되는데, 반제투쟁을 주요이념으로 하여 정.경의 핵심인물을 납치.저격하는 방식으로 제국주의 중심부에서 전투를 전개한다는 적군파의 도시게릴라전으로 어지러운 상황. 당시 헬무트 슈미트 사민/자민 연정은 적군파를 색출하고 고립한다는 목적아래  “그믈망 수사(Rasterfandung)”, 적군파 수감자를 완전 고립시키는 조치(“Kontaktsperre”) 등 인권을 침해하는 조치를 도입.

 

사진2: 녹색당 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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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색깔이 강한 신사회운동은 1980년 1월 칼스루헤에 모여 창당대회를 갖고 전국정당으로 결성됨.

위 사진의 초대 녹색당 지도부. 로테이션제도로 지금은 공론장의 기억에서 사라진 인사들(August Haussleitner, Norbert Mann, Herbert Gruhl, Gisela Schüttler, Dietrich Wilhelm Plagemann, Karl Kerschgens, Alfred Vordermeier). 제도권 밖의 투쟁을 바탕으로 하여 결성된 녹색당은 루디 두치케가 요구한 제도권내에서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점진적으로 장악한다는 전술채택.

 

사진3: 본(Bonn) <호프가르텐/Hofgarten>에서 반전시위하는 군인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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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총선에서 연방하원에 진출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사민/자민 연정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소위 “나토이중결정”에 의한 중거리핵미사일의 독일배치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 확산. 1981.10.10 약30만 명이 당시 서독의 수도였던 본 대학의 캠퍼스 <호프가르텐>에서 반전반핵시위. 이런 반전반핵시위는 군인들에게까지도 확산.

 

사진4: <바커스도르프/Wackersdorf>핵원료 재처리공장 건립을 저지하기 위해서 경찰과 몸싸움하는 반핵시위대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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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의 주축을 이루는 반핵운동은 “벤드란트 자유공화국”(Republik Freies Wendland)을 선포하고 자체 라디오방송을 운영하고 원전건립지역에 촌을 만들어 거주하는 등 강력한 투쟁전개.

 

사진5: 1983년 조기총선에서5.6%를 득표하여 연방하원에 진출한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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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반전평화운동의 상징 페트라 켈리. 그 옆은 마리루이제 벡  

 

사진6: 1987년 전당대회에서 뜨개질 하는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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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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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헷쎈주 사민/녹색연정의 환경부장관으로 선서하는 요쉬카 피셔. 신고 있는 운동화가 겉차림을 중시하는 수구꼴통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는지 물의를 일으킴. 저 운동화는 지금 오펜바흐(Offenbach) 가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

 

사진8: 1990년 통독후 실시된 총선에서 연방하원에 진출한<동맹 90>. <동맹 90>의 게르드 포페(Gerd Poppe)와 동독사회통일당 최후 총리 한스 모드로우(Hans Mod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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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통일독일에서 실시된 총선에서 서독 녹색당은5%이하 득표로 연방하원에서 탈락. 대신 동독의 <동맹 90>는 동서독지역에 상이한 선거법을 적용하여 연방하원에 진출. 1993년 서독의 녹색당과<동맹90>이 동맹90/녹색당으로 합당.

 

사진9: “너는 나 외 신을 둘 수 없다.” 로테이션제도에도 불구하고 녹색당의 당권을 장악한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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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 1998년 총선에서 녹색당이 정권에 참여하면 소위 “생태계세금”으로 자동차 휘발유 값이 5마르크(2.5 유로)까지 올라갈 거라고 공략하는 기민당 사무총장 페터 힌쩨(Peter Hin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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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1: 6.7%을 득표하여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게 된 녹생당 피셔, 당시 사민당 당수 오스카 라폰테인, 사민당 총리후부 니더작센주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 3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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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라폰테인은 독일 재무부를 통해서 국제금융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슈뢰더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사민당에서 탈당하고, 종업원평의회에 기반한 독일노조의 간부들이 주축이 되어 창당된 <취업안정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Wahlalternative Arbeit und soziale Gerechtigkeit>에 참여. WASG는 이후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예인 민주사회주의당(PDS)가 좌파당(Die Linke)으로 합당.

 

사진12: 피셔의 변신과 함께 유고전을 놓고 녹색당내부의 갈등을 상징하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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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소보전 개입을 앞두고1999년 5월 소집된 임신전당대회에서 „유럽에서 아우슈비츠를 허용할 수 없다“라면서 독일연방군 유고전 개입지지를 당원에게 호소하는 피셔가 „피세례“를 받았다.

 

사진13: 녹색당 노선을 놓고 피셔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근본주의자/Fundis“ 대표 유타 디트푸르트(Jutta Ditfurt). 당권을 피셔가 이끄는 소위 „현실주의자/Realos“에게 내주고 탈당. 이후 <생태계민주당/Ökologisch-Demokratische Partei>를 창당하고, 프랑크푸르트 시의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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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의 유고전개입 논거를 „아우스슈비츠를 빙자한 거짓말“이라고 비판.  

 

사진14: 적.녹연정이 원전을 가동하는 전력회사와 합의하여 달성한 <핵하차/Atomaustieg> 정책에 반발하는 녹색당 당원. “엄청나게 좋다는 정부의 핵하차는 임금님이 입은 새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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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하차는 더욱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비판.

 

그림15: 70년대부터 무정부주의자와 거주공간사수 농성의 본거지인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에서 2002년 총선에서 녹색당후보로 처음으로 직선된 하원의원 크리스티안 스트뢰벨레(Christian Ströbele). (오토 쉴리와 함께) 적군파 멤버들을 변호했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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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드 자이프리드(Gerhard Seyfried)의 그림. 녹색당이 대도시에선 대중정당으로 부상한 것을 보여주고 있음. 프라이부르크, 튀빙엔 등의 대학도시의 시장은 이미 녹색당이 차지하게 되었고, 2011.3.27일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라인란트-팔츠 주총선과 함께 실시된 헷쎈주 기초단체선거에서 시장을 사민당이 예약해 놓은 것과 마찬가지인 다름슈타트(Darmstadt)에서 녹색당 후보가 시장에 당선.

 

사진16: <슈트트가르트21> 중앙역 신축사업에 반대하는 주민을 무력 진압한 주정부와 경찰. (2010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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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총선에서 기민당/자민당이 참패하게 된 첫째 원인. 녹색당은 어정쩡한 사민당과 달리 처음부터 주민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주민요구의 대변자가 됨.

 

사진17: 왼쪽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총선 녹색당 후부 빈프리드 크레치만(Winfried Kretschmann)과 터키인 2세 녹색당 공동당수 쳄 외즈데미르 (Cem Özdem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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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sueddeutsche.de/politik/erfolgsgeschichte-einer-partei-gruen-ist-die-zukunft-1.1077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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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집권보수연정 기민당과 자민당 본거지 주총선에서 참패

“원전가동기간을 연장하는 자는 자기 정치생명을 단축할 것이다.”

 

이걸 단지 수사학적인 표현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떵떵거리며 원전가동을 연장하였던 기민당/자민당 보수진영의 정치생명이 단축되었다.

 

오늘 주총선결과로 근 60년 동안 줄곧 집권하여온 기민당/자민당이 녹색당주도하 녹.적연정에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

 

 

관련 몇 가지 메모

 

1. 민주주의 문제

 

– 녹색당 후부 빈프리드 크레치만(Winfried Kretschmann) 인터뷰: 이번 선거결과로 “시민사회(Buergergeschaft)가 강화되었다.” “슈트트가르트21” 사업을 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한 전 주정권. 소위 “절차민주주의”에 대한 반발. “Wutbuerger”(화난 시민)– 직접민주주의 문제

 

2. 생태계/환경보호운동

 

 – 약30년 동안 반핵을 변함없이 주장하여온 녹색당의 대대적인 승리

 

3. 사민당의 “주변화”(?)

 

4. 좌파당의 저조한 득표(약2.5%).

 

5. 생활환경(“땅”)에 애착을 갖는 “참신한 보수”의 정치세력화

 

6. 독일 기독교 경건주의(Quietismus)의 본거지. 생태계보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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