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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강신주의 노숙자대하기 7 - 병주고 약주기

후기 자본주의의 상당부분은 아마 “병주고 약주기”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장사가("totsicheres Geschaeft"/죽음이 확실한 것과 같이 확실한 장사) 어디 있겠는가? 장사지내는 일 빼놓고.

 

알다시피 예수님이 지상에 와서 한 일의 상당부분은 치유였다. 치유의 기적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무리를 멀리했다. 예수님이 치유하는 일에만 몰두했다면 아마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예수님은 대려 율법학자들의 독점인 병주고 약주기 장사에 찬물을 끼얹어 망쳐놓았다. 아마 그래서 십자가형을 받게 되었을 거다.

 

마태는 예수님의 이런 행적을 8장 18-22 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치유의 기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에워싼다. 그때 예수는 건너편으로 가자고 명한다. 아예 무리들이 따라올 수 없도록 배를 타고 물 건너편으로 가자는 것이다. 저들이 넘을 수 없는 경계선 저편으로('eis to peran') 가서 저들과 쪼개지자고('apelthein') 명하는 것이다.

 

근데 이때 한 사람이 예수 따르기를 원한다. 율법학자다. 요새말로 하면 책을 많이 읽고 이것저것 조합해서 약을 짓을 줄 아는 인문학자정도 되겠다. 예수를 자기보다 한수 높은 달인정도로 생각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한수 가르쳐 주십시오. 어디든지 따라 가겠습니다’ 한다. 예수를 주님, kyrie, 즉 절대 권력이 있는 군주로 부르지 않고, 선생 혹은 장인(‘didaskale’, 독 Meister/루터번역)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예수 왈: ‘나 갈 곳 없어. 머리 둘 곳도 없는데 가긴 어딜 가.’

 

이 말에 ‘잔머리 굴리지 마’란 야유가 들린다. ‘나는 니들 율법학자처럼 병(=죄)명 카탈로그 만들고 해당 약을 짓는 사람이 아니야’하시는 것 같다.  

 

또 제자 중 한사람이, 그니까 예수를 이미 따르고 예수를 절대 군주로 (‘kyrie’) 모시는 사람이 나와서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사지낼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일은 지도 죽어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죽음을 진단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넌 날 두말말고 따라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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