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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떡해

오도엽님의 [파업집회 하지 말고 진탕 술 먹자] 에 관련된 글.

자본가와 저 썩어빠진 국회의원들이 비정규 개악안 통과에 이어 노사관계로드맵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이 답답한 마음 어찌할꼬.

사람들은 희망을 포기한지 오래인건가. 언제까지 패배해야하는걸까.

어제 하이퍼택 나다에서 본 <세번째 시선>의 한 투박한 단편영화가 생각난다.

홍기선 감독, 정진영 주연의 <나 어떡해>

 

대다수 하청노동자들은 그 막막한 삶 속에서 고작, "나 어떡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 말말곤, 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들의 일상의 고통, 답답함, 막막함에의 공감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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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커시리(Mountain patrol)

 

<커커시리>(영어 제목, Mountain patrol)

 

어제 새벽 kbs1에서 본 영화. 장엄하고 차가운 중국 서부의 만년설 쌓인 산으로 둘러쌓인 사막, 커커시리를 배경으로 한다. 2년전 전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영화라는데 난 어제 처음보고 알았다. 황량하지만 티벳인(장족)들의 삶의 터전인 커커시리(몽골어; 아름다운 소녀)는 칭하이성 일대 해발고도 4000~5000미터의 고원지대에 위치해있다. 마치 아메리카 서부의 황량한 사막을 연상하지만, 그보다 더 잔혹하고 공허하며, 황량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차갑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장엄한 익스트림 롱샷과 클로즈샷의 교차 속에서 잔인하고 황량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무기력함을 무한대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어디를가든 거대한 자연은 무한히 멀어져만가고, 끝없이 깊은 곳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사막위의 모래늪, 사막위에 널린 티켓영양들의 무수한 시체들, 거친 밀렵꾼들의 표정들은 그 잔혹함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영화의 영어제목은 mountain patrol. 커커시리에서 밀렵꾼들에 맞서 티벳영양들의 멸종을 막고 밀렵꾼들을 몰아내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생업을 포기하고 몇년째 황량한 벌판을 지키는 90년대말의 산악순찰대(mountain patrol)의 실화를 중국 베이징의 6세대 감독 루추안 감독이 영화화했다. 독립영화 감독인 그는 이 영화 하나로 세계적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모피 수요가 증가하고 티벳영양의 가죽이 귀하게 여겨지는 시절이 오면서 티벳일대에 100여만 마리나 있던 티벳영양들이 1만마리까지 줄어들어 멸종위기에 처하자, 장족 청년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순찰대를 자처했다. 그리고 2년동안 밀렵꾼들과의 쫓고 쫓기는 전쟁을 벌인다. 이 사실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자 당시 티벳영양 모피에 대한 소비를 중단하자는 운동이 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의 한 켠, 그 드넓은 사막에서 총을 들고 싸운 이들에게 현실은 단지 처절할 뿐이다. 영화는 베이징에서 온 장족출신 신문기자의 시선으로, 조금 거리를 둔 체 그 생생한 현장을 기록해나간다.

 

자본주의적 욕망과 그것에 힘겹게 맞서는 사람들

자본주의 사회 지배계급의 자본주의적 욕망의 극단에 '모피 수요'가 있다면, 티벳인들에게 그것은 곧 삶을 건 치열한 전투를 의미했다. 그들은 티벳영양을 지키기 위해 싸웠지만 그것이 곧 영웅적인 삶을 의미하진 않았다. 생존을 위해 자신들이 수거한 티벳영양의 모피들을 되팔기도 했고,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봐야했다. 삶은 아름답지도, 명예롭지도 않다.

 

좌절

영화에서 장족인 산악순찰대는 모두 몰살당한다. 잔인하게. 그보다 더한 좌절이 있을까. 좌절과 절망 가득한 신문기자의 몸부림에서 멀어지면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closing ments를 통해, 기자가 베이징에 돌아가 전세계인의 기억에 남는 기사를 쓰고나서, 티벳영양에 대한 밀렵은 중국 당국에 의해 중단되었다고 짧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게 정말 중요한 걸까? 뿌듯하지만은 않았다.

 

기자, 영화, 흥행

한 기자가 있다. 장족출신이라지만, 그는 베이징의 신문기자이고, 도시인이며, 밀렵꾼들의 적도 아니었다. 영화에서 그는 단지 제3자. 그리고 그는 살아남아 어제 죽은 이들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을 담아 기사를 썼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는 다시 자본주의적 욕망들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 죽어간 이들의 현실에서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돌아갔을지도.

 

그리고 이 영화. 전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흥행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들의 시선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티벳영양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마스코트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제 2년후면 '성대한' 베이징 올림픽이 열릴 것이고, 티벳영양은 세계자본주의, 세계자본, 국가들의 대향연, 올림픽 마스크트로 더 많이, 전세계인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커커시리는 중국의 땅일테고. 티벳 민중은 점점 잊혀져갈지도... 중국 역사의 다른 소수민족 민중들이 그러했듯이. 중국 당국은 소수민족, 소수민족문화를 손쉽게 집어삼키는 가장 유리한 방법을 너무 잘 알고있는 것 같다.

 

티벳의 황량한 사막에서 죽어간 장족인 산악순찰대원들이 올림픽 마스코트를 위해 싸운건 아닐텐데...

산악순찰대는 민중들의 자발적인 고향 수호대였을텐데...

커커시리는 중국 당국에 의해 통제되는 보호구역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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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웨스턴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C'Era Una Volta Il West, 1968)

 

로버트 드니로가 나오는 '긴'영화 를 만든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만든 서부영화. 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무언가 좀 다른 분위기들을 연출한 영화다. 아,, <웨스턴>이 훨씬 먼저 만든건가? 어쨌든 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먼저 봤었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자전거도둑>에도 단역으로 출연했던 이탈리아인 감독이란 걸 알기 때문일까? 이탈리아영화의 사실주의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영화는 '그냥 서부영화'가 아니라, '이탈리아 서부영화'다. 왠지 19세기 서부에서 일어났을 것만 같은 아주 사실적인 묘사들이 이 3시간반짜리 영화 내내 꿈틀꿈틀 살아움직인다.

 

갈등은 한 가족의 몰살과 서부 사막에 놓이는 '철도'에서 시작된다. 가족은 사막에 펼쳐질 '서부로 가는' 기차길 중간에 역 하나 만들어서 우리가족 행복하게 살자는 가장의 꿈으로 부풀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초반부에 프랭크 일당에 의해 무자비하게 몰살당한다. (프랭크 일당은 자본가를 등에 업은 총잡이 일당이다.) 그리고 갈등의 핵심은 '철도 공사'인데 이것이 갈등의 근본임은 나중에야 알 수 있다. 영화 속에는 백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들,(그러나 안타깝게도 중국인들은 '배경'으로만 나온다.) 인디언, 아일랜드인, 아프리카인 등 온갖 이주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서서히 나타나는 자본가와 자본주의, 자본주의와는 어색하지만 그 시대적 배경에 남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서부의 총잡이들, 뉴올리언스에서 온 여성, 복수(서부영화의 전형적 이야기 고리)가 영화의 줄기들을 이룬다.

 

이 영화에서 '자본주의'란, 어쨌든 영화의 주제가 대적하는 상대로 비춰진다. 자본가 모튼은 "새로운 서부에서 총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 말한다. 그러나 그는 총으로 뒈졌고, 철도와 함께 등장하는 서부의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항해 프랭크(헨리 폰다 분)와 샤이런, '찰스 브론슨'(극중 이름 까먹었다-_-)은 '총'으로 대결한다. 허허, '서부영화는 그래도 총'이라고 우기는 식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가면서, 종반부에 갈등은 해소되지만 우울한 기운 감출길 없다. 새로운 기차역을 둘러싼 살육의 싸움은 끝나지만 서부의 '자유로움'은 사라져간다는 느낌이랄까? 찰스 브론슨이 어디론가 가야하는데 갈데가 없는 것이다. 어디론가 멀리 가버려야 어울리는 캐릭터인데... 결국 역 공사현장으로 돌아오는 찰스 브론슨. 어딘지 쓸쓸하다. 이젠 총잡이들은 갈곳이 없는 신세가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인지...

 

뉴올리언스의 여인 질이 물을 떠주려하자, 철도 노동자 수백명이 모여든다. 총잡이들의 로망과 살육으로 지배되던 서부 사막에도 자본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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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


<코어>

 

맨틀이 멈춰서 지구에 멸망의 위기가 찾아온다는 설정의 '소재'만 참신하고 다른건 다 식상하다. 따분한 캐릭터들은 방황하다가 죽는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의 설정이랄까? 쉽게 말해서, 누구와 누구는 사랑에 빠질 것이고, 누구는 죽을 것이고, 누구는 스스로 희생할 것인지 캐릭터가 영화에 등장하자마자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이 이 영화를 보길 권한다. 자신의 할리우드 영화 전형에 대한 파악의 정도를 가늠하고싶은 분이거나 정말 할일없고 영화를 많이 봐서 볼 영화없는데 별 생각없이 영화를 보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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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유희프로젝트퍼즐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

 

니들을 모은건 '작위', 조종하는 자 x는 연기지도 못하는 감독님..

두뇌가 전혀 '유희'를 느끼지 못했다. 문성근 연기 정말 못한다. 홍석천도 너무 오바한다. 대사에 욕이 너무 많다. 오히려 욕이 너무 많아서 악당들의 끕을 떨어뜨린다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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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부스

<폰 부스>(Phone booth, 2002)

 

2003년 여름인가? 신촌 어느 극장에서 봤었고, 작년에 또 한번 봤고, 지난주에 tv에서 세번째 본 영화. 그러나, 2003년엔 그냥 스릴넘치고 재밌다고 생각했고, 작년엔 좀 꺼림찍하다고 생각했고, 얼마전엔 경악했다.

콜린 파렐과 포레스트 휘테커가 나온다.

 

분명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영화가 아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내포되어있다. 콜린 파렐의 연기는 볼만하지만, 그를 폰부스 안에 가두어놓고 얼굴 한번 보이지 않고 오직, '전화통화'만으로 콜린 파렐을 협박하는 숨은 조종자는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는 "착하게, 도덕적으로, 거짓말하지말고!" 살라며 관객을 우롱하고 협박하듯 끝난다. 기분 드러웠다. 마치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자신만의 도덕률을 세계 민중에게 강요하는 미국과 같다고 할까?

 

결말은 이 영화가 단순한 스릴러 영화인지, 아니면 영화의 경계를 넘어선 '경찰'을 자처하는 영화인지 잘 보여준다. 모두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살인자는 죽지 않으며, 히스패닉계 이민자로 보이는 무고한 피자배달부와 클럽 문지기만이 잔인하게 살해되었을 뿐이다. 물론 주인공인 콜린 파렐은 죽지 않았지만, 그는 흐릿해져가는 뿌연 시선 속에 쓴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는 착하게 살라"는 살인자의 실루엣을 본다. 공포 영화가 아닌데도 너무 실감나게 느껴지는 그 살떨리는 공포...

 

영화는 '도덕'하나로 전화통화 저격수의 모든 살인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결말을 만든다. 9.11테러로 인해 개봉이 연기되다가 개봉한 영화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무섭게 '영화로' 관찰자이자 조종자의 말을 듣지 않는 우리들에게 협박할줄이야... 아무리 콜린 파렐이 허세많고 거짓말 잘하는 양아치일 망정! 영화는 잡히지 않은 저격수에게 이 세상 누구든 '심판하고 총살할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영화가 시작될때, 저 우주 어딘가에 있는 인공위성에서 출발한 '그'의 시선, 그리고 마지막도 그곳으로 끝난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했던가. 영화는 지금 이 시간을 파시즘과 감시의 시대로 표현한다.

 

거짓말하지마.

허세부리지마.

외도하지마.

도덕을 지켜.

그렇지 않으면 죽어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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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파티드

 

<디파티드>(The departed)

 

홍콩영화 <무간도>를 마틴 스콜시지 감독이 리메이크했다. 잭 니콜슨, 레오나도르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 등 초호화 출연진이 주연을 맡았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무간도>보다 잘 만든 리메이크작이다. 초점이 다르지만 는 인물묘사, 심리묘사가 보다 세밀하고 스토리도 나름 철학적이다. 리메이크작이지만 <무간도>로부터 넘겨받은것은 영화 스토리에서 경찰에 심어진 '마피아첩자'와 마피아에 심어진 '경찰첩자'의 이야기라는 시나리오의 단초뿐이다.

 

영화는 관계맺음의 문제를 파고든다. 관계맺음을 맺고 있는 누구든 거짓되지 않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후반부에 디카프리오에게 마음이 끌리는 멧 데이먼의 연인 '정신과 의사'조차 엉킨 관계맺음을 맺는데, 영화는 그것도 거짓되었다, 는 식이다. 정신과 의사가 가장 불안해 보인다.

 

욕망은 마치 운명과도 같아서, 이미 한번 내딛으면 돌이킬 수 없는것처럼 느껴진다. 영화에 나오는 모두들 자기 스스로의 욕망으로부터 갈등을 겪고 고통스러워 한다. 영화의 묘사력때문에 쏙 빠져든 나머지 영화를 보는 나조차도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야, 저 포스터를 보라. 포스터만 보아도 불안하다! 저 극도로 긴장된 표정들... 마치 복잡하고 거짓된 관계맺음 속에서 현대를 '살아내는' 도시인들 같다고 해야하나. 포스터 디자이너에게 경의를 표한다. 글자 안에 갇힌 셋의 표정을 절묘하게 잡아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운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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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소년


 

도둑소년 / The Little Thief

 

부산국제영화제, 35분짜리 단편영화.

욕망하는 것조차, 꿈꾸는 것조차, 안정적인 삶, 부모님이 있는 삶을 바라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가난하며, 쇼킹한 방식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소년의 이야기.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가슴이 쓰렸다. 영화음악도 아주 어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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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영화

 

졸업 영화 / Portfolio


이것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한국 단편영화. 영화보면서 대체 뭔 소리? 라는 생각이 막 드는 영화였다. 영화에 경계가 없고, 결론도 없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인가? 아니면 그냥 장난? 리차드 막스(Marx)로 농담한건 좀 심하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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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트렁크를 열어보니

어느 날 트렁크를 열어보니... / One Day, Inside the Trunk...

Korea  2005  18min  35mm  COLOR

 

지난 달에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을때, 본 단편영화 중 하나.

아직 진실이 보이는 '내'가 세상을 만나며, 사람들을 만나며 혼란과 고통을 겪는 과정을 특이한 스토리로 보여준다. 차 트렁크 안의 시체들이 나는 분명히도 보이는데, 내 친구도 옛 연인도 교수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실을 파헤치려 할수록 주인공은 고통스러워 한다.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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