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8/01 09:56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1.

 

사진에 감정을 담고 싶다. 어디로 흐르는지 모르는 또는 어디에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감정을 담고 싶다. 그림이면 더 좋겠지만 시간 관계상 사진으로 만족.

 

#2.

 

드디어 대전으로 간다. 서른 둘에 처음으로 독립을 하고, 철 들고 처음으로 서울 밖에서 살아보게 되고, 처음으로 정규직이 된다. 반갑게 맞아주는 대전 동지들이 고맙기도 하고 집 구하고 돈 들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복잡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들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공존한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밖에 안되는 곳이고 이미 일주일에 한두번은 내려가던 지역인데도 설레는 것을 보면 떠남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있는 것이겠지.

 

#3.

 

과거의 아련함과 설레임. 지금의 아련함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7월. 조금은 기다려보기도 하고 조금은 잊기도 하고. 그래도 여전히 안정적인 내 자신을 바라보며 기특해진다. 괜찮아. 토닥토닥.

 

#4.

 

요즘 간혹 집으로 D모 결혼 정보회사에서 전화가 자꾸 온다. 스펙도 다양하다. 36살의 정형외과 전문의. 단점은 키가 작다. 34살의 외과 전문의. 외과라는 사실 자체가 단점이다. 38살의 내과 전문의. 나이가 좀 많다. 35살 국내 유명 로펌의 변호사, 36살 검사라나 뭐라나, 36살 모 건설회사 둘째 아들로 청담동에 본인 소유 빌딩이 두 채란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전부 우리 엄마가 받아서 알아서 처리하시기 때문에 나에게 직접적 스트레스는 안 되지만 가입한 적도 없는 결혼 정보회사에서 전화를 거는게 상당히 기분 나쁘다. 심지어는 몇 년전에는 전화해도 한번에 한명만 이야기해줬는데 요즘은 3-4명씩 한꺼번에 이야기해주는 모양이고, 엄마가 전화번호도 받아놨단다. ㅠㅠ

 

왕 짜증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은 뭔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지, 어떤 문제에 관심이 많은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하는지 따위는 묻지도 않고 알려주지도 않는다. 나이와 의사, 검사, 변호사라는 직업과 재산뿐이라니... 인간의 존재가 참 하찮다.

 

#5.

 

그래도 최소한 스승으로서  제자에 대한 애정은 있는 줄 알았다. 마지막 순간이니 만큼 제자의 편에서 최대한 배려해주고 인정해줄 줄 알았다. 떠나는 순간까지 자기는 털끝만큼도 책임지기 싫어서 몸을 사리고, 합리적으로 설득이 안 되니까 규정이나 들먹이고 마음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 줄 알았다. '제가 선생님이라면 그렇게 하진 않겠어요.'라는 이야기에 '그럼 규정대로 처리해!'라고 윽박지를줄은 몰랐다.

 

그래 좋다. 그 까짓거 10년 가까이 져줄수 밖에 없는 위치고 인간이 불쌍해서 져주기도 하고 받아주기도 했는데 한번 더 못할것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오만정이 떨어진다. 어디가서 내 스승이라고 이야기나 하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6.

 

마음은 안정적인데 머리속에 얽혀 있는 신경다발중에 자그마한 하나가 튀어 나와있는 느낌이다. 그 가느다란 신경다발 하나가 살랑살랑 움직이면서 두부 같은 뇌를 아주 미세하게 흔들고 있는 느낌. 이 자그마한 다발 하나가 계기가 되서 머리속이 전부 풀려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이럴때 가장 좋은 약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큰 소리로 수다도 떨고 남들의 얘기에 오버액션도 해 주는 것인데 타이밍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날이 많아 좋지 않다. 후딱 후딱 컴터 앞에서의 시간을 보내버리고 다시 관계의 바다로 풍덩~

 

#7.

 

아~~~아! 완전 초 수퍼 울트라 대박이다. 8년간의 모든 자료가 담겨있는 외장하드를 KTX 안에서 분실했다. 이틀간 열심히 여기저기 전화도 해보고 찾아봤지만 결국 찾지를 못했다. 그 동안 가지고 있던 각종 연구 및 설문지의 자료들이 한순간에 날아간것이다. 이사 준비와 노트북의 말썽이 겹치면서 발생한 거의 재앙에 가까운 사태다. 게다가 하필이면 한참 바쁜 바로, 지금이라니...

 

8년간의 자료가 담겨있는 외장하드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8년간의 세월을 모두 잃어버린 느낌이다. 신경다발 하나가 살짝 살짝 걸리는 것 같더니만, 기어이 이런 사단이 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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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1 09:56 2008/08/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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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zrael 2008/08/01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 어디로 가시나요? 지금 있는데 보단 맘편한곳으로 가겠지요?
    4. 캬캬캬 내 옆에는 그런 전화 못 받아서 안달인 사람 하나 있는데...
    5. 뜨악...어찌 그런...
    7. 으아, 완전대박이네요.. 나라면 머리속이 텅비어버렸을듯...정신줄 놓았을겨..

  2. 해미 2008/08/02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즈/ 맘이 편해질지 몸이 불편해질지 모르죠. 일단 가고 보는 거에요. ㅋㅋ 정신줄 놓기 일보직전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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