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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개

제목을 쓰고 보니 좀 미안해지기도 한다.

 

집에서 같이 사는 개 한마리.

공부 좀 할라지면 책상 밑으로 기어와서는 안아달라고 내 다리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벅벅 긁고, 누워서 책을 보려하면 책 위에 벌러덩 누워서는 봐달라고 나름의 애교를 떠는 그런 개가 한 마리 있다. 제가 사람인 줄 아는.

 

한 3주 전인가 개가 힘아리가 없이 누워서 낑낑 대더니만 급기야는 화장실에 누워서는 나오려고 하지 않기에 또 정에 굶주려 그런가하다가 좀 이상해서 병원에 데려갔다.

병명은 자궁충녹증. 나이가 조금 있음에도 불구하고 짝짓기를 하지 않아서 호르몬 이상으로 자궁에 병이 생겼다고 한다. 몸에 이상이 있으니 열이 많아지고, 개는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제 몸의 열을 식히기 위해 시원한 곳에 누워 나오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하기에, 처음엔 내과치료로 버텨보려 했던 것도 소용없이 돈을 급히 마련해 수술을 시켰다. 마취주사가 몸에 맞는지 결과를 볼 틈도 없이 너무 급하게 수술이 필요하던 상황.

수술이 끝나고 난 뒤 마취가 덜 풀려서 바들바들 떠는 개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 지켜보고 쓰다듬어 주고, 그렇게 지냈다.

 

수술자국이 아물 즈음 몇 일을 개만 보고 있을 수가 없기에, 소흘히 했던 결과.

실이 조금 풀려 다시 봉합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말에 병원에 개를 맡기고 온 사이.

개가 상처가 아물 즈음 가려움을 견디지 못해 핥는 것도 모자라 삐져나온 장을 여기 저기 깨물었다. 아무 생각없이 봉합을 위해 재수술한다는 개를 데리러 병원에 간 순간.

 의사가 난감한 얼굴로 손가락 중지보다 좀 긴 새빨간 내장을 보여주면서 장을 여기저기 물은데다 장 사이 막까지 물어놔서 할 수 없이 15센티미터의 장을 잘라냈다고 말해줬다.

순간 내려다본 개는 이전보다 더 바들바들 떨다가 자빠져서 벌러덩 누워버렸다.

더 이상 통원치료도 불가능하기에 몇 일 입원을 시키며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몇 일 후 개가 연이은 마취와 수술에 장이 제대로 붙지 못해 피를 토했다는 말과

수혈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말에 어머니는 거의 말을 하지 못하고 울기까지 하셨다.

 

정이란게 참 무서운 것 같다.

어머니는 안하던 기도까지 하면서 개의 쾌유를 빌었고, 개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주인만 쳐다봤다. 울지도 않고 눈빛만 제 주인을 쫓던 개가 참 측은해보였다.

 

의사는 정확한 원인을 알려면 검진이 필요하고, 현재로서는 딱히 다른 방도가 없다며 입원조차 거부하던 개는 수혈을 하고 영양제도 맞고. 돈 들인 만큼 다행히 살아났다.

신기하게 안먹은 만큼 살이 빠져 홀쭉해진 개.

앞으로 경과는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여도 걷고 소리도 낸다.

 

밥을 많이 먹던 놈이 홀쭉해져서는 먹을 것만 찾으러 돌아다니는 요즘.

하도 집 구석구석을 훑고 다니길래 밥그릇에 밥을 넣는 것을 확인시켜 준 뒤 높은 곳에 그릇을 올려놓았더니 하루종일 이상한 소리만 내며 고개를 내릴 줄 모른다.

 

그러더니 지금은 급기야 악에 바친 듯 신경질을 내며 짖는다.

정말...동물에게 본능을 억제하란 건 말도 안되는 일인 건 아는데...

지금은 정말 미친개같다. 조금만 더 짖으면 눈도 튀어나올 것 같은게....

 

이놈아...지금은 새벽 두시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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