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살짝 뻘쭘했달까요. 그냥 “함 가 보세요”도 아니구, 엄연히 “같이 가요”라며 바람까지 잡은 ## 선배에게 선뜻 맞장구쳤던 저로선, 아예 혼자 가기로 했으면 모를까, 그가 적어도 이 날만큼은 양치기청년이었음을 예감하고서 든 심정이 그랬죠. 참석 여부 확인문자까지 가만히 씹히자, 예감은 이내 실감이 됐고요. 그래서 더 그랬을까요. 누구는 혼자인 게 편하다고도 하는데, 혼자인 건 아무래도 불편하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더만여. 문득,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천신만고 끝에 이병헌이 그렁한 눈망울로 보스인 김영철한테 내뱉던 말이 떠오릅니다.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ㅋ


 

지난 달 20일, 그간 일반노조 운동 차원에서 이뤄져온 중소영세사업장(이하 사업장) 조직화에 관한 토론회가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있었죠.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회의 제안으로요. 저녁 5시 예정이었는데, 이 날 있은 전국일반노조협의회(이하 일반노협) 전체회의에 바로 이어서 진행하기로 했던 모양이예요(토론용 문서를 보니, 네 번째 안건이더군요). 허나 회의가 늦게 끝나는 통에 예정보다 한 20여분 밀렸더랬죠. 일반노협 의장으로, 이날 사회를 본 최만정 동지께서는 마중물로 펌프물 뽑아내듯 착착 붙는 입심으로 토론회에 탄력을 불어넣으시더군요. 와우, 녹록치 않은 관록이구나 싶었습니다.ㅋ

 

이 날 토론의 주된 마디가 뭐였는지에 대해선, 앞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 2기 전략조직화 계획 초안을 파일로 올려놨다고 한 양치기청년 ##의 게시글에 쪽글루다 이미 달았던 바 있죠. 1) ‘당사자’란 말의 외연을 넓혀 공감대와 호소력을 확장시킬 공통된 의제화 움직임이 필요하겠다는 얘기, 2) 당면 투쟁 말고는 당사자들 간 응집력이 생길 만한 일상적 고리들이 ‘여러 이유’로 없어서 고민이라는 얘기였다고요. 여기서는 이런 얘기들이 오가는 와중에(또 그 이후로도) 제 몸에서 움트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토론용 문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회원 여러분들과 공유해볼까 합니다.

 

먼저, ‘당자자’의 외연을 넓히자는 얘기부터. 전비연 정책위에서 개괄한 사업장 현황은 이렇습니다. “50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중이 70% 이상인데 비해 노조 조직률은 3%대에 불과하다.” 왜 그런가. 정규직이라 한들 사실상 비정규직이나 마찬가지인 불안정한 노동조건, 즉 “잦은 휴폐업, 개별 사업주를 상대로 노사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운 조건,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잦은 이직, 노동조건 개선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노조로의 조직화나 유지가 쉽지 않”은 사업장 일반의 속성 탓이죠. 물론, 이에 못잖게 “사업장 단위의 교섭과 조합활동의 관성이 크게 작용”해왔던 탓도 있습니다.

 

그래서 “1980~90년대 전노협 운동이나 지역노조 운동, 2000년대 이후 지역일반노조 운동이나 지역공공서비스노조 운동 등 ‘지역중심 노조 운동’을 강조해온 문제의식에는” 이렇듯 현장 자체의 유동성·불안정성을 감안한 조직과 투쟁, 연대의 공간으로 ‘지역’을 중시하는 조직화 틀거리는 뭐겠느냐는 질문이 담겨 있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평가에 따르면, 이같은 질문에 답하고자 그간 이뤄져온 실천들은 안타깝게도 “지역노동운동을 실물적 흐름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지역에 존재하는 비정규노조의 하나로 머무르고 있”거나 “단위 노동조합의 교섭/투쟁을 넘어서는 지역의 정치사회운동으로 확장되고 있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당사자’라는 범주를 특정 사업장에서 당면 현안을 놓고 싸우는 노동자들로만 한정할 게 아니라, 이들 노동자와 경제·문화적 이해관계나 생활 패턴상 대체로 중첩될 수밖에 없는 지역 주민으로 넓히(거나 느슨하게 정의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건 아마 그래서겠죠. 이랬을 때 지역중심의 노동운동에 걸맞도록 “단체교섭의 의제/방식, 투쟁과 연대의 내용과 방식을 바꾸어내”는 일도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겠냐는 거고요. 바꿔 말하면 이제껏 “노조 조직형태를 지역단위로 만들어내고 그러한 틀로 조직확대를 해내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뿐, 정작 그런 과정이 의제화와 조직화 방법상 어떻게 바뀌어야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에 관해선 논의가 막혔거나 빈곤했다는 얘길 겁니다. 이런 논의가 풍부해질수록, ‘지역정치’가 선제적·예방적 차원에서 좀더 넓은 시야와 긴 호흡으로 펼쳐질 여지도 더 커지잖겠냐는 얘기겠죠? 아예 피할 수야 없다손 쳐도, 일 터질 때마다 뒷꽁무니 좇듯 대처하는 패턴으로부터는 일정 정도 벗어나서 말예요. (전비연 정책위원인 오민규 동지는 이와 관련해 메이데이가 휴일인 곳도 대부분 대형사업장인 현실이라며, 지역 차원의 동맹휴업을 이슈화해 추진해 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더랬어요. 이에 대한 참가자들의 반응은 뭐, 좀 미지근했달까..ㅋ)

 

이같은 평가에 대해선 일반노협에서 제출한 토론용 자료에서도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어요. 크게 보면 (예컨대 경북지역 일반노조 운동의 경우가 그랬듯이) “일반노조 운동이 또 다른 노조가 아니라 민주노총이, 그 지역본부가 일반노조 운동이 되도록” 한다는 실로 야심찬^^ 목표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거죠. 일반노협에 따르면, ‘적어도 지금으로서는’요. 오히려, 이미 형성된 조직·운동의 위상 자체는 “기존 산별에 편제시키기 애매한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담아내는” 것으로들 여겨지거나 “약간의 규모가 되면(?) 기업노조 방식의 기존 산별체계로 편입시키려는 활동가들의 완고한 편견”에 짓눌려 있는 상황이라고 스스로 평가합니다.

 

상황이 이리 된 데는 물론 “규모나 크나 작으나 [조직화에] 들어가는 노력은 비슷”한데도 “일년 내내 교섭과 투쟁”에 진력해야 하는 사업장 자체의 고약한 속성이 단단히 한 몫을 하는데다, 그렇다 보니 연대라고 한들 “부족한 동력에 인원을 보태주는” 정도 이상을 나아가지 못하는 탓도 크다고 해야겠지요. 투쟁 와중이나 조직화 이후 사업장 자체가 사라졌을 때, (더구나 기업별 조직화 방식을 따르는 한) 조직을 유지할 근거와 기반을 확보하기 애매해져버리는 문제도 물론 곧잘 생길 테고요. 정황상, 응집력 있는 조직적 뒷받침은 한층 더 아쉬울 텐데도 말이죠.


 

특정 사업장별로 투쟁 당사자들을 조직화하는 일 못잖게, 이 과정에서 생긴 당사자들 간 응집력을 좀더 포괄적인 (예컨대 지역) 차원에서 지속·발전시킬 만한 일상적 고리들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 건 바로 이래서죠. 이를테면 ‘센터’ 형태로요. 일반노협으로서는, 이게 진척되려면 “일반노조 운동을 조합원 숫자로만 생각하는 부분을 뛰어넘어야” 하고 실무적으로는 민주노총 지역조직이 움직여야 하는데, 현재 “민주노총 활동의 경직성, 업무과중으로 진전시키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보고 있더라구요. 전후 행간을 보건대 이 구절이 꽤나 공식적이고 그래서 무척이나 절제된 진술였겠다는 걸 감안하면, 실제로 겪고 있는 상황은 실로 만만찮겠구나 하는 게 비단 저만의 생각은 아니지 싶어요.^^:


그럼 이상의 진단·평가에 유념하면서, 이후 좀더 진전시켜봤음 좋겠다 싶은 물음들로는 뭐가 있겠는지 몇 가지 덧붙이는 것으로 후기를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먼저, 전체 노동자 중 70%를 차지한다는 사업장에서 노조 조직률이 3%에 불과한 게, 사업장 자체의 속성이나 지랄맞음 못잖게 조직화 방법상의 난점이 작용한 탓은 아녔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예요. 좀더 엄밀히 말해, 사업장의 독특성을 사실상도외시한 채 기존의 조직화 방법을 확대적용하려고만 했던 탓은 아닌지 한 번 되짚어 보는 거랄까요.


난점은 크게 두 측면이겠다 싶은데요. 하나가 조직화의 ‘장소’란 측면이라면, 또 하나는 그렇게 조직화된 조직의 ‘성차/젠더’라는 측면입니다.


첫 번째 측면은 앞서 당사자를 어떻게 (재)정의하고 그에 걸맞게 의제화를 할 거냔 물음하고도 맞물려 있죠. 당사자의 의미를 사업장 소속 노동자는 물론 이해관계와 생활 패턴상 겹치게 될 지역 주민으로까지 확장해 의제화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 조직화에 중장기적으로 유리하다면, 이같은 투쟁의 장소 또한 특정 사업장에 국한하지 말아야겠져. 그러니까, 투쟁의 장소는 특정 사업장들을 '총자본(내지 사회적 축적구조의 일부)'로 다시 봐야 할 "지역"으로 자연히 (재)설정돼야 한달까요. 단기적으로 들여야 할 품이 만만찮아 그렇지, 일단 안착하면 중장기적으론 직무 피로도나 실무상의 여러 측면에서 훨씬 더 효율적인 조직화 경로일 듯도 싶구요.


그런데 개별 사업장별로 각개격파하듯 접근하거나 사업장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의 조직화 문법에 따라 움직이려 하다 보니, 실무적으로 힘은 힘대로 들고 쉽사리 과부하에 시달리면서도 결과적으로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냐.. 뭐,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당사자-노조-센터-지역 주민 같은 기본 성분들이 지역별 차이를 가로지르는 "일반"성을 구현하면서도 지역마다 각양각색의 최적조합을 이룰 새로운 조직화 원리와 방법에 관해 논의가 진전됐으면 좋겠다 싶더라구요.


두 번째로 성차/젠더라는 측면은, 노조가 됐든 단체가 됐든 기존의 조직화 방식 속에서 거의 고려가 안 됐던 측면이지 싶어요. 특히나 중소영세사업장일수록 여성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아주 중요한 측면이지 싶은데요. 그러니까, 사업장에서의 노조 조직율이 극히 낮은 건 기존의 조직화 방법이 성차/젠더의 관점에서 극히 남성중심적이었기 때문은 아닌지 되짚어보자는 거죠.


사실 조직화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대형사업장 노조의 성비를 보면 대체로 남성 비중이 크죠. 이는 소위 대형사업장 자체가 남성 위주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남성중심으로 젠더화돼 있는 기성 노조 형태와 여성들 간의 ‘말 못할 불화’ 탓이 아닐까도 싶거든요. 하물며 여성 노동자 비중이 압도적인 사업장 내지 지역에서야 어떻겠느냐.. 노조의 성차 탓이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저조한 노조 조직율이 기존 조직화 방식에 각인된 남성성과 일정한 상관관계에 있는 건 분명하지 싶다는 거죠(마침, 토론회에 조직활동가로서 참석한 분들도 절대 다수가 남성이던데요..).


이런 난점을 감안한 조직화 과정과 방법은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겠느냐. 이때 기존 조직화 방식은 과연 참조할 만한 것이겠느냐. 일반노협도 지적했듯이 노동자들을 그저 ‘조합원’으로 만드는 ‘쪽수 늘리기’가, 또는 얼마 전 있은 전교조 조합원의 성폭행 사태로 새삼 불거졌다시피 조합원의 개별성쯤은 조직보위라는 논리 앞에서 뭉개져도 무방하다는 게 조직화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면 더더욱그렇겠죠. 명색이 "반체제" 운동을 지향하는 한, 조직화의 궁극적 목표는, 실은 오히려 그 반대자나요.

 


지금으로선 좋게 말해 ‘의미심장한 징후’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앞서 말한 두 측면(혹은 난점)을 충분히 감안한 조직화 방법을 논의하는 가운데, 지난 10여 년 새 온건화해버린 ‘운동에 반反하는 운동’으로서 일반노조 운동이 지닌 잠재력은 비로소 만개할 수 있잖겠나 싶더라구요. 이렇게 그 잠재력을 만개시킨 운동(앞서 말한 당사자-노조-센터-지역주민 간의 권역별 최적조합)이 그간의 소위 민주노조 양식과 과연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지는, 글쎄요, 적어도 유연하고도 열린 자세로 토론해 갈 사안이겠지요.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렇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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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7 01:30 2009/11/17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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