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파농의 현재성을 폭력과 정체성의 정치가 지닌 유효성과 한계, (확장된) 계급투쟁 개념의 유용성과 관련해 검토한 월러스틴의 비교적 짧은 글.

 

5년도 더 전쯤인가, <진보평론>에서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라는 분이 파농을 재조명한 글을 읽었는데, 기억하기로 대미종속적 분단현실이란 "특수성"으로부터 민족의식의 유효성을 보자면서도, 이러한 가운데 진정한 탈식민화에 필요한 정치-사회의식도 예각화하자는 식으로 독해했던 것 같다. 불가능한 독해는 아니지만 헐거워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고, 이래서야 뭉툭한 절충론 아니냐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던 게 사실.

 

근데 내가 보기에, 아래의 글은 이런 절충론을 해답이 아니라 '딜레마'로, 즉 우리가 (새로운) 반체제 운동들을 통해 넘어서야 할 막다른 골목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것 같다.

 

다른 한편 어느 온라인 독자는, 월러스틴의 텍스트 자체는 별 나무랄 데 없는지 몰라도, 이 텍스트가 <뉴레프트리뷰>에 실린 맥락에 대한 평가가 월러스틴의 글에서도 그렇고, 리뷰 편집진에게서 안 보인다고 꼬집어놨다. 1960년대에 뉴레프트리뷰 편집진에선 파농의 사상(과 파농은 훌륭하다고 했던 사르트르의 서문)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파농이 경계했던 정체성의 정치 논리를 따르는 (그리하야 일테면 분단 현실을 "특수성" 범주에 가둬 인식론적-실천적으로 특권화해버리기 십상인) 제3세계주의에 대해서도 무비판적인 지지를 보냈는데, 이랬던 과거에 대한 자기비판 없이 월러스틴의 글이 그냥 실리는 건 문제라는 거다.

 

이에 관한 토론/논쟁의 장이 필요하다면서도, 자신의 과거를 곧잘 망각하는 뉴레프트리뷰의 속성상 그리 할지는 회의적이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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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과 21세기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폭력과 정체성, 계급투쟁

 

 

이매뉴얼 월러스틴

 

 

 

 

“난 어쩔수없이 내가 사는 시대에 속해 있다.” 프란츠 파농은 그의 첫 저작인『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이렇게 썼다. 그 시대란 물론, 반反식민지(주의) 투쟁이 벌어지던 때였다. 1925년 당시 프랑스령 식민지였던 마르띠니끄에서 태어난 파농은 에이미 세제르의 제자로,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 소속으로 참전한 뒤 리옹에서 내과의 겸 정신의 수련을 받았다. 1952년 출간된 그의 주목할 만한 저작『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당시 프랑스 지식계에 의미심장한 충격을 일으켰다.1

 

그 책은 “백인 세계로 내던져진 어느 흑인의 경험”으로, 심중의 파문 속에서 솟구쳐오른 열정적 외침이었다. 알제리 독립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1년 전인 1953년, 파농은 알제리의 블리다 정신병원에 부임했다. 그는 알제리 환자들이 자신한테 털어놓은 (프랑스 식민당국의) 고문관련 이야기들을 접하며 금새 분노에 휩싸였다. 알제리 독립이란 대의에 이미 공감하고 있던 그는, 병원을 그만 둔 뒤 튀니지로 가서 알제리공화국 임시정부 활동에 전력했고, 임시정부 기관지 <엘 무자히드>의 필자로도 참여했다.

 

1960년 알제리공화국 임시정부는 파농을 그 당시 아프리카 통일운동에서 사실상 중심지 역할을 하던 가나 주재 대사로 임명했다. 임시정부에선 그가 가나뿐만이 아니라 (가나 수도인) 아크라에 지도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여전히 독립 투쟁을 전개중이던 다양한 아프리카 민족주의 운동들과의 연계도 굳건히 하기를 원했다. 내가 1960년에 파농을 처음 만난 것도 그곳이었는데, 거기서 우린 세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오랜 시간 토론을 벌였다. 그는 민족해방 운동들이 지구 전역을 휩쓴다는 데 대해 굉장히 고무돼 있었으면서도 이들 운동 다수에서 이미 보았던 바, 리더십의 한계로부터 나타난 징후들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는데, 이런 불편함에 대해선 자신의 마지막 저작에서 길게 다뤄질 것이었다. 그리고선 얼마 있지 않아 그는 백혈병에 걸렸다. 치료차 먼저 소련에 갔다가 나중에 미국으로 옮겼지만, 성과는 없었다. 나는 워싱턴에 있던 그에게 병문안을 갈 수 있었는데, 미국에서 갓 생성된 것으로서 그를 매혹했던 블랙파워 운동에 관해 토론을 나눴다. 그는 세계에서 미국이 펼치고 있는 여러 대외정책들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미국인들은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독백을 읊고 있다”고 했다. 생애 마지막 무렵, 그는 사후 출판된『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집필하는 데 맹렬히 몰두했다.2

 

파농은 죽기 전에 장 폴 사르트르가 쓴 서문을 읽었는데, 그의 생각으로는 훌륭한 것이었다. 책 제목은 물론, 세계 노동운동가인 ‘인터내셔널’의 첫 소절 가사를 딴 것이었다. 1961년, 너무나도 일찍, 그는 세상을 떠났다.

 

 

파농을 세계적으로, 물론 미국까지 포함해 널리 알린 건,『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아니라『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1968년 세계혁명 당시 최고조였던 다수의 다양한 운동들에 관여한 모든 이들에게 성경과도 같았다. 타오르던 68의 불꽃이 꺼지고 난 뒤,『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한층 더 으슥한 구석으로 밀려났다. 1980년대 후반, 다양한 정체성 및 포스트식민주의 운동들에서 파농의 첫 책을 (재)발견하면서 이 책에 대한 관심이 한껏 부풀었지만, 그 중 대부분은 파농의 요점을 놓치고 있었다.『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흑인이 겪어온 소외를 극복하는 데는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에서 보여준 것 이상이 필요하리라고 파농은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계통발생적인 설명을 넘어서 개체발생적인 설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파농한테 필요한 것은 사회발생적인 전환이었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세상에 선보인 지 30년이 지난 후 포스트모던 계열에서 중심적 지위를 누리는 텍스트로 재조명받았다곤 해도, 이 책은 어느 모로 보나 정체성의 정치를 요청한 게 아니었다. 이 책 결론부에서 파농이 말하고 있듯이, 외려 그 반대다.

 

유색인의 재앙은 그가 한때 노예로 부려졌다는 데 있다.

백인의 재앙과 비인간성은 그가 한때 어디선가 인간을 살육했다는 데 있다.

심지어 오늘날조차 그들은 존속하면서, 이러한 비인간화를 합리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유색인으로서 나에겐 권리가 없다. 내 실존을 절대적으로 누릴 수 있는 한, 이토록 반동적으로 수선되고 있는 세계에 나 자신을 가둘 권리가 말이다.

유색인인 내가 원하는 건 이것뿐이다.

도구가 사람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 인간이 인간을 노예화하는 일, 다시 말해 어느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노예화하는 일은 영원히 종식돼야 한다는 것,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내가 그를 발견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흑인은 그렇지가 못하다. 백인이 그렇지 못한 것 이상으로 말이다.3

 

 

 

파농은, 그가 뭐였든 간에,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일정 부분 맑스풍의 프로이트주의자로, 일정 부분은 프로이트풍의 맑스주의자로, 대부분은 혁명적 해방 운동들에 헌신했다고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살던 시대에 속했다 하더라도, 그의 작업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작업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마지막으로 기도하노니. 오,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바로 이처럼 물음표를 던지는 정신이야말로, 파농의 생각이 21세기에 지니는 유용성에 대해 내가 성찰하고자 하는 바다.

 

그가 남긴 저작들을 다시 읽다가 놀라웠던 건 첫째, 그의 책들이 특히 다른 이들에 대해 비판적일 때일수록, 스스로 확신에 가득 찬 듯한 강도 높은 선언들로 구성돼 있더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놀랐던 건 이같은 선언들이 구성된 방식인데, 상황을 어떻게 진척시키고 완수해야 할 바는 어떻게 이룰지에 관한 불확실성을 상세히 설명하는 작업이 선언들을 뒤따르는 식이다. 사르트르가 그랬듯, 또 하나 놀랐던 건, 유작들에 담긴 그의 목소리가 결코 지구상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외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농으로선 “유색인들”과 크게 겹치는 범주가 되겠다. 파농은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 다시 말해 잔인하면서도 시혜적인 태도로 오만을 떠는 자들에 대해 언제나 분노를 표한다. 그런 그지만, 불평등과 (인종주의적·성차별주의적) 모욕으로 굴러가는 세계가 존속하는 데 보탬이 될 행동과 태도를 보이고, 기껏해야 떡고물을 챙겨먹겠다고 그런 행태를 보이는 유색인들에 대해선 그 강도가 훨씬 더하다. 이후에 다룰 내용에서 나는, 내 생각에 파농이 씨름했던 것으로 보이는 세 가지 딜레마를 놓고서 스스로 성찰해온 바를 펼쳐보일 참이다. 그 세 가지 딜레마란 각각 폭력의 쓸모와 정체성에 대한 호소, 그리고 계급투쟁에 관한 것이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아주 많이 두들겨 맞고, 존경어린 쪽이든 비난어린 쪽이든 아주 많은 관심을 끈 대목은 이 책 1장인 <폭력에 대하여>의 첫 문장이었다.

 

민족해방, 민족 부흥, 인민에의 국가 반환, 연방 등등 어떤 이름을 갖다 붙이든, 아니면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붙이든, 탈식민화는 언제나 폭력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다.4

 

이 진술은 분석적 관찰일까, 아니면 정책적 제언일까? 둘 다를 뜻한다는 게 답일 수 있겠다. 아마 파농 자신은 둘 중 어느 쪽에 우선성이 있는지 확언하지 못했을 텐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회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란 힘/완력을 쓰지 않고선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발상은 새로운 게 아니었다. 19세기의 모든 급진적 해방(사상/운동)의 전통에선, 특권화된 세력이 실질적인 권력을 자발적으로 물리는 일은 결코 없다고 믿었다. 권력의 양도란 언제나 특권세력의 손모가지를 비틀어야 하는 셈이다. 이같은 믿음은 사회적 변화를 둘러싼 ‘혁명적’인 경로와 ‘개혁적’인 경로라는, 선험적으로 가정된 경로상의 차이를 규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1945년 이후 시기를 거치면서 ‘혁명’과 ‘개혁’이란 구분의 유효성은 차츰 옅어져 가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은 (현존하는 체제에 대해) 가장 못견뎌하고 분노에 차 있으며 비타협적인 운동들 중 매우 전투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따라, 사회학적 분석이 아닌 정책적 제언으로서 폭력이 가진 쓸모는 의문에 부쳐지고 있었다.

 

일단 권력을 잡은 ‘혁명적’ 운동들이 이룬 건 당초 내걸었던 약속에 훨씬 못 미쳤지만, ‘개혁주의’ 운동들로서도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나을 게 없었다. 폭력에 대한 방침을 놓고 양가적인 태도가 나타나는 건 바로 그래서다. 알제리 민족주의자들은 자신의 생애 경험 속에서 (폭력에 대한 지지와 반대를 오가는) 이같은 주기를 이미 겪은 바 있다. 알제리공화국 임시정부가 창설된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정부 수반을 지낸 페르하 압바스는 정치에 발을 들인 이후 30년 동안 개혁주의자로 살면서, 자신과 자기가 속한 운동이 결국 표류하게 됐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알제리가 언제까지고 식민지로, “노예화된” 상태에 머물고 싶지 않다면 오로지 폭력적 봉기만이 의미 있는 전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정치적 전술로서 폭력이 지닌 유용성에 대해 파농이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논점은 세 가지다. 무엇보다도 “마니교적인” (이원론적 분할이 제도화·일상화한) 식민주의 세계에서, 폭력의 시원始原은 식민주의자(내지 식민화 기제)의 계속되는 폭력 행위들에 있다.

 

그들은 늘 원주민이 알아듣는 유일한 언어는 무력의 언어라고 말했는데, 이제 그가 무력을 통해 발언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실 이주민은 원주민이 자유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원주민이 택한 논거는 이주민이 제공한 것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어 식민주의자가 오로지 무력만 알아듣는다고 말하는 측은 원주민이다.5 

 

 

 

두 번째 논점은 이와 같은 폭력이 식민화된 사람들의 사회심리적 상태와 정치적 문화를 공히 변형시킨다는 점이다.

 

그러나 식민지 민중으로서는 폭력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폭력에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성격을 부여하게 된다. 폭력의 행사는 그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주며, 각 개인은 폭력이라는 커다란 사슬의 고리들이 된다. 이 거대한 폭력의 유기체는 이주민이 처음에 행사한 폭력이 클수록 덩치가 커진다. 집단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미래의 통합된 민족이 싹을 드러낸다. 무장투쟁은 민중을 동원시키며, 한쪽 방향을 취하도록 몰아간다.6

 

그러나 세 번째 논점은 낙관적 색조를 띠었던 두 번째 논점, 그러니까 1장에서 환기했던 민족적·인간적 해방을 향한 돌이킬 수 없는 경로와 상충하는 듯하다. 알제리 민족해방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던 시기에 씌어진 이 책의 2장과 3장은, 1장인 <폭력에 관하여>에 빛나는 통찰을 던지고 있어서 특히나 매혹적이다. 둘째 장인 <자발성의 강점과 약점>은 민족해방 운동들에 대한 일반화된 비판이다. 이들 운동의 “내재적인 결함”은, 파농에 따르면 “정치적 의식이 가장 강력한 요소들, 즉 도시의 노동계급, 숙련 노동자, 공무원”한테, 다시 말해 인구의 1퍼센트도 안 되는 소수 세력한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있다.

 

민족주의 정당의 대다수는 농민에 대해 뿌리깊은 불신을 보인다. … 서구화된 세력은 농민 대중과 관련하여 산업국의 도시 노동자들한테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감정을 경험한다.7

 

이같은 내재적 결함으로 인해 민족주의 정당은 혁명적 운동이 될 수 없는데, 서구화된 프롤레타리아트에 바탕할 순 없지만 도시 중심부의 가장자리에서 가로막힌 채 뿌리가 뽑혀버린 농민들을 기반으로 삼아야 하는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중에게서, 이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핵심 중에서 반란의 도시 선봉대가 나오는 것이다. 자기 부족이나 씨족으로부터 배제된 이 굶주린 룸펜 프롤레타리아는 식민지 민중 가운데 가장 자발적이고 가장 급진적인 혁명 세력을 형성한다.8 

 

파농은 이제 탈부족화한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찬가에서, 권력을 잡은 민족주의 운동의 본질에 대한 분석으로 논점을 옮긴다. 그는 분노가 서린 가차없는 태도를 취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으로 이들 운동을 비판한다. “단일 정당은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고, 파렴치하고, 냉소적인 부르주아 독재의 근대적 형태다.” 그는 선언하길, 저발전된 국가들의 “민족 부르주아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나라의 총체적이고 조화로운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그 이유는 말 그대로 그들이 아무런 쓸모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파농은 솔직하고 명쾌하게,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 수순을 밟는다.

 

민족주의는 정강이나 정책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기 조국이 퇴보하거나 정체되거나 불확실성에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면, 민족의식에서 정치·사회의식으로 신속하게 전진해야 한다. … 대중에게 민족주의만을 메뉴로 제시하는 부르주아지는 실패하여 총체적 난국에 처하게 된다.9  

 

 

파농이 나의 두 번째 주제인 정체성 문제로 방향을 돌리는 건 바로 이 지점에서다. 파농은 자랑스런 고대 문명들이 오늘날 어느 누구도 먹여살리지 못하는 건 물론임을 언급하면서 논의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처럼 고대 문명들의 재조명 작업은 서구 문화와 거리를 둔다는 정당한 목표와 맞아떨어진다. 문화의 인종화는 원래 식민주의자들, 즉 “다른 문화들의 부재로 생겨난 틈을 언제나 백인 문화로 메우려 하는” 유럽인들의 책임이었다. 파농의 주장에 따르면, ‘네그리튀드(흑인정신)’라는 발상은 “백인이 인간성에 가하는 모욕에 대해 보이는 (논리적이진 않더라도) 감정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아프리카의 문화인은 그들의 요구를 인종화 … 해야 하는 역사적 책무 탓에 막다른 골목에 봉착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파농은 민족해방에 필요한 정치적 투쟁 속에 자리하지 못하고, 그로부터 고립된 문화적 정체성에 호소하려는 그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 네 번째 장인 <민족문화에 관하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흑인 문화라는 것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검둥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잊은 탓이다. … 흑인 문화 같은 것은 결코 없을 것이다. 흑인 공화국을 탄생시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는 정치인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국민들에게 주려는 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종류의 사회관계를 수립하고자 하는지,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리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고, 다른 모든 것은 속임수이거나 무의미하다.10

4장 말미에서 그가 던지는 일갈은 정체성의 정치와는 정반대를 지향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 알려진다면, 오늘날 지식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수립이 올바르다면, 다시 말해 민중의 의지를 담아내고 아프리카 민족들의 열의를 반영한 것이라면, 국가를 수립한 뒤에는 필연적으로 보편적 가치를 발견하고 장려하는 일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민족해방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민족이 역사의 무대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이끈다. 국제적 의식이 살아나고 자라나는 곳도 바로 이 민족의식의 한복판에서다. 이 이중의 생성은 궁극적으로 모든 문화의 유일한 원천이다.11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결론에서 파농은 그러나, 마치 아프리카가 취해야 할 다른 경로, 즉 비유럽적 경로가 가진 이점을 이해하는 데서 너무 나간 면이 있었다는 듯이, 미국을 사례로 들고 있다. 유럽 따라잡기를 목표로 삼고 이에 크게 성공한 결과 “유럽의 오점, 병, 비인간성을 엄청나게 증폭시킨 괴물이 되”어버린 미합중국을 말이다. 파농으로선, 아프리카는 (북반구의 중심부 국가들에 대한) ‘따라잡기’를 시도해서도, 제3의 유럽이 돼서도 안 된다. 외려 그 반대다.

 

인류는 우리에게서 그와 같은 추잡하고 역겨운 모방 이외의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또 다른 유럽으로 만들고 싶다면, 아메리카를 또 다른 유럽으로 만들고 싶다면, 우리의 운명을 유럽인들에게 맡겨도 좋다. 그들은 우리 중 가장 뛰어난 사람들보다도 그 일에 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류를 한 걸음 전진하게 하고 싶다면, 인류를 유럽이 보여준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이끌고 싶다면, 우리는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이루어야 한다.

… 동지들이여, 유럽을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인류를 위해 우리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새로운 발상을 만들고, 새로운 인간을 정립해야 한다.12

 

두 책『검은 피부, 하얀 가면과『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문화적·민족적 정체성 문제를 하나로 엮어내는 파농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은 물론 앞으로도 모든 반체제 사상에 골칫거리를 안겨줄 근본적인 딜레마를 볼 수가 있다. 아니발 뀌하노Aníbal Quijano가 권력의 식민성이라고 부르는 바, 근대 세계체제라는 구조 속에서 이뤄지는 범유럽권의 지배와 이 지배 권력의 수사학을 거부하는 데 관건이 되는 건 유럽적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평등주의적인 세계를 위한 투쟁이나 역사적으로 구현됐던 사회주의적 열망에 헌신해온 이들은, 파농이 “민족의식의 함정”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아주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파농이 했던 엮어내기 작업을 지속해야 하는데, 그리 하는 게 파농의 표현대로라면 인류가 “한 걸음 전진하는” 미래로 다가가는 유일한 길일 듯 싶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이라는 나의 세 번째 주제는 파농의 저작들 어디에서도 위와 같이 다뤄진 적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세계사적 시각과 분석들에서 중심적인 위상을 갖는다. 이는 물론 파농이 마르띠니끄와 프랑스, 알제리에서 맑스주의 문화를 접하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가 알고 있었고 자신의 저술 작업에서 구사했던 어법에는 맑스주의적인 가정들과 어휘들이 배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파농과 그와 함께 활동했던 이들은 동시대 공산주의 운동들이 보여준 경화된 맑스주의에 맞서 힘찬 (분석적·이론적) 반란을 꾀했다. 세제르의『식민주의에 관한 담론은 식민지 세계의 지식인들이 (이들만은 물론 아니었지만) 왜 공산당에 대한 투신을 철회하고 계급투쟁의 수정된 판본에 호소하는가 하는 물음을 다룬 고전으로 남아 있다. 이들 논쟁에서 핵심 쟁점은 ‘투쟁하고 있는 건 어느 쪽 계급인가?’라는 질문에 압축돼 있다. 오랜 동안 토론을 지배했던 건, 독일 사회민주당과 소련 공산당에서 상정한 범주들이었다. 이 범주들에 근거한 기본 논지는 이러했다. 즉, 근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근본적인 갈등을 이루며 전체적 구도를 지배하는 두 계급은 도시에 근거지를 둔 산업 부르주아지와 도시에 근거지를 둔 산업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것이다. 다른 모든 집단(적 주체)들은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구조들의 잔존물로, 모두가 자신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규정하며 이 두 계급으로 녹아들게 됨에 따라 곧 사라질 운명이었다.

 

파농이 원고를 쓰고 있던 당시, 앞서 설명한 논지가 실제 상황에 대한 적절하다거나 신뢰할 만한 요약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어디서 봐도 도시 산업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 인구의 대다수가 아니었고, 쇠사슬 말고 잃을 거라곤 아무 것도 없는 집단이 아닌 듯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운동들과 지식인들은 사회(과)학적 분석상 더 적절하고 급진적 정치의 기초로 좀더 유효한 다른 계급투쟁의 틀 짜기에 나섰다. 혁명적 활동의 “선봉”으로 나설 역사적 주체라고 할 만한 후보들이 많이 거론됐다. 파농은 이런 후보들을 탈부족화한 도시화된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자발성의 함정”에 관해 다루면서 당초 했던 생각에 의구심이 든다는 점을 인정했다.

 

 

결국, 우리가 파농에게서 얻은 것은 열정과 정치적 행동에 대한 청사진 그 이상이다. 그는 우리가 집단적으로 겪고 있는 딜레마들의 윤곽을 탁월하게 잡아내고 있다. 폭력 없이,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폭력은, 아무리 치유 효과와 유효성을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 범유럽적 문화의 지배로부터 빠져나오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논리적 필연에 따라 특수성에 호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계급투쟁은 우리가 진정으로 투쟁중인 계급들이 어떤 이들인지 알고 있는 한 중심적인 위상을 갖는다. 그러나 룸펜-계급들은 조직화된 구조 없이 그 자체만으론 스스로 소진되기 십상이다.

 

파농이 내다봤던 것처럼, 우리는 현존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 다른 무언가로 이행중인 정세에 있다. 그것은 그 결과가 전적으로 불확정적인 투쟁이다. 파농이 이런 식으로 말하지야 않았겠지만, 그의 유작은 그가 이를 감지했다는 증거다. 우리가 이같은 투쟁으로부터 보다 더 나은 세계체제의 생성에 집단적 창발성을 발휘할지 여부는 대체로 파농이 다뤘던 세 가지 딜레마들과 대결할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이 딜레마들과 대결하는 동시에 분석적으로 명료하며, 도덕적으로는 파농이 열망했던 “탈소외”에 중점을 둔, 정치적으로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에 적합한 방식으로 이들 딜레마를 다룰 우리의 능력 말이다.

 

 

 

 출처: <뉴레프트리뷰> 2권 57호, 117~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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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석호 옮김, 인간사랑, 1998).텍스트로 돌아가기
  2.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남경태 옮김, 그린비, 2008).텍스트로 돌아가기
  3.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석호 옮김, 인간사랑, 1998), 290~291쪽(일부 내용 수정).텍스트로 돌아가기
  4.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남경태 옮김, 그린비, 2008), 55쪽.텍스트로 돌아가기
  5.    같은 책, 107쪽.텍스트로 돌아가기
  6.    같은 책, 117쪽.텍스트로 돌아가기
  7.    같은 책, 134~136쪽. 텍스트로 돌아가기
  8.    같은 책, 154쪽.텍스트로 돌아가기
  9.    같은 책, 192, 202, 229~230쪽.텍스트로 돌아가기
  10.    같은 책, 243, 265쪽.텍스트로 돌아가기
  11.    같은 책, 278쪽.텍스트로 돌아가기
  12.    같은 책, 357~358쪽.텍스트로 돌아가기
2010/03/01 06:47 2010/03/01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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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승한 2010/03/02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농을 좋아해서 담아갈게요.

  2. 감사 2010/04/10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퍼갈께여

  3. bomsan 2010/10/05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퍼갑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