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 혹시, 조난구호? 땡, 아니다. 올해로 121주년을 맞이하는 ‘국제 노동자의 날’을 달리 부르는 말. 사연은 1886년 5월 4일, 미국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비롯한다. 사흘 전인 5월 1일 미국-캐나다 노동조합연맹과 국제노동자협회의 주도로 하루 8시간 노동을 핵심요구로 내건 총파업이 벌어졌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미국 각지에서 고된 노동을 거부하고 총파업에 참여한 와중에, 노동자 4명이 경찰의 발포로 사망한다. 그 다음날인 5월 4일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선 약 8만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경찰 발포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 해산 도중 폭탄이 터지면서, 이날도 노동자에게 총을 쏜 경찰 7명을 비롯해 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항의집회 주동자로 지목된 독일계 이주노동자들 중 4명은 졸속 진행된 재판에서 결국 사형을 언도받았다. 피고 중 하나인 파슨스는 사형 언도 전 다음과 같은 최후진술을 남겼다. “내가 원했다면 자본가가 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나는 노예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리기도 원치 않는다. 그게 내가 이 길을 가는 이유이며, 또한 그것이 나의 유일한 죄다.” 교수대로 끌려가는 동안 노동자들이 함께 부른 건 미국의 애국가인 ‘별이 빛나는 깃발’이 아니라, 그 당시만 해도 국제주의적 계급연대를 상징하던 노래 ‘라 마르세예즈’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매년 5월 1일은 자본주의 세계 각지의 노동자들의 끝간 줄 모르는 자긍심을 새삼 확인하고 자본제 특유의 쥐어짜기 본능에 맞서 싸워 이뤄온 일정한 성취를 기리는 날이 됐다. 물론, 과거를 그저 추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과는 판이하면서도 좀더 나은 세계를 앞당겨 경축하는 날로서 말이다.

 

이번 달 마지막 날인 4월 30일에 열릴 서부비정규노동센터 빈털터리 포럼에서는, 이같은 국제 노동절/메이데이의 취지를 한껏 되새김해 볼 예정이다. 그러니까, 진정 글로벌하거나 인터내셔널한 노동자연대의 중요성과 의의를 오늘에 되살려 보자는 거다. 오로지 대기업 CEO 내지 초국적 자본가들만 그러고 놀란 법, 당연히 없을 테니까.

 

해서 일단은, 일본 불안정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프리타일반노조의 조합원을 초청해, 각자의 처지에 관해 함께 듣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질 참이다. 국경을 가로질러 그려가야 할 공통된 실천과 변화의 전망은 어떤 것일지 모두어보는 자리가 되겠다. 가히 지구적 규모로 사회적 양극화 추세가 나아지긴 커녕 한층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이는 지금, 한국과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불안정·파견·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마주해온 상황을 짚고, 특히 이번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누출 사고가 불안정노동자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의 실상을 확인하려 한다. 이번 사고가 우리, 불안정노동자 대중에게 정치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쪽바리 또는 조센진 VS. 울트라닛뽄 또는 대~한민국. 사실, 반도와 열도 사이에서 그간 반복돼온 실속없는 드잡이질의 뿌리는 그 두께로나 너비로나 만만치가 않다. 물론 이 지루한 반목의 장막이 웬만큼 얄팍해졌다곤 하나, 마치 같은 태반에서 자란 쌍생아처럼 태극기와 일장기 휘날려가며 벌이는 한-일 합동 드잡이 퍼포먼스 선동은 아직도 곧잘 먹힌다. 근데 이 선동이 그럭저럭 잘 먹힌 덕에 우리, 깃발 없는 이들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을까? 글쎄, 되돌이켜 보면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었다고 하기에 충분한 정황만 흐드러지잖나 싶다. 프리타일반노조는 이번 ‘후쿠시마 재앙’을 놓고 ‘정보 피폭’의 덫에 걸리지 말자고 호소한 바 있다. 조국과 ‘민족’의 이름으로 펄럭이는 태극기와 일장기 물결에 휩싸인 나머지, 정작 국경을 가로질러 함께 싸워야 할 ‘자본주의의 개’들이 어디서 뭘하는지 눈멀어선 곤란하다는 얘기겠다. 그럼 우린 어떻게 글로벌한 정보 피폭의 장막을 찢고, 저마다 고르고 자유롭게 꿈꾸고 누릴 ‘좋은 삶’에 눈뜰 수 있을까? 4월 30일, 서비 빈털터리 포럼에 와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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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비 상임활동가의 대타로 <은평시민신문>에 보냈던 4.30 빈털터리 포럼 소개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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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1 01:33 2011/05/01 01:33

 

이택광, [현대자동차 노조의 조직이기주의]에 관하여.

 

 

철수:  윗글 내용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다만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이번 단협안 속 문제의 내용들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이런 식으로 한국 사회의 구조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은 결국 뻔한 결론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노조가 역으로 가장 이기적일 수 있는 선택을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분위기가 이들의 이기적 선택에 여러 모로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지만, 그런 사회적 흐름을 노조 차원에서 어떻게 깰지 전혀 고민하는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것이 현대차 노조뿐 아니라 한국의 힘 있는 노조 전반의 분위기와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조들 역시 무언가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는 힘이 세면 셀수록 그런 고민을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죠.

 

 

영희: 제 생각엔, 가장 강력하다고들 알려진 그 힘을, 자본축적의 매트릭스에서 노동자들이 맺어야 하는 "계급적 힘관계" 속에서 보지 않고선, 말씀하신 타당한 지적도 결국 자족적 훈계에 그치잖을까 걱정이네요. 비록 현대차 노조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광의의 노동자조직" 내지 결사체들이 사회정치적으로 그렇게나 강력한 힘 내지 응집력을 가지고 또 발휘할 수 있었다면, "우리 애들만이라도 어떻게든 끼워달라"는 옹색하기 짝이 없는 요구안 따위가 과연 나왔겠는지 '우리 모두' 자문해 보잔 거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강력한 힘이란 뭐, 가령 재능교육이나 삼성반도체,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롯데손해보험 출신 내지 소속인 산재+해고+불안정 노동자들을 둘러싼 상황을 중지, 타파, 봉인할 수 있는 상호부조적 연대와 "계급 형성"의 능력을 뜻한다고 해야 할 텐데요.. 근데 가만 보면, 이런 능력을 키울 궁리들은 안 하고 이런 능력이 고르게 커지는 덴 깽판을 놓는 권력의 매트릭스 안에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려 용쓰고 있죠. 가령 자유민주주의의 '브랜드가치'를 복원하기 위해, 둥글고 무난한 '대연합'의 정치로 2011/12년을 '승리의 해'로 만들겠다면서들 말예요. 현대차 노조를 위시한 이른바 대(혹은 이른바 상급)단위 노조 지도부도, 사실상 정파 불문하고, 이렇게 해야 자신들이 "힘"이 커질 수 있다는 착각 속에 꽤 오래 전부터 헤맸다고 해야잖을지.

전, 현대차 이경훈 류가 내는 (따지고 보면 애국애족적 지향과 동심원 관계에 있을) 이른바 실용적이고 "애사적"인 목소리가, 흔한 비유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개 같은 상황과 엇비슷하다고 해얄 것 같거든요. 얼핏 사납게 개소릴 내니 쟤들 힘 좀 깨나 쓰나보다 하겠으나, 실은 정 반대로 두려운 나머지 일단 뭔 소리라도 짖고 봐야 하는 상황. 저마다 "긍정의 힘"을 신앙하며 슈퍼맨이라 자부 혹은 자위하나, 실상은 우루사를, 컨디션을 먹어도 피곤은 가실 줄 모르는 상황, 혹은 우리. 그런 의미에선 이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걸 테죠 사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더 긴장하고 정말 두려워해야 할 대목은, 실은 우리 모두 잠재적으론 이런 자기파괴적인 덫에 스스로 갇히고, 심지어 서로 덫을 칠 수 있다는 점이겠다고 할까요. 언제부턴가 "민주화" 혹은 민주개혁적 진보 좀 됐답시고 죽은 개 취급이나 받던, 상호부조적 연대와 계급적 주체형성 능력을 확장, 강화하지 않는 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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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3 21:07 2011/04/23 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