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313, September 15, 2011
 


사회민주주의라는 환상
("The Social-Democratic Illusion")


 

 



사회민주주의가 상종가를 친 건 1945년~1960년대 후반에 걸친 시절이었다. 그 당시, 사회민주주의는 국가 차원의 자원들을 여러 방식을 통해 인구 대다수한테 상당 규모로 재분배하는 데 활용한다는 입장을 지지·표방하는 특정 이데올로기이자 하나의 운동이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교육과 보건 관련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임노동자”가 아닌 집단들, 특히 애들과 노인층의 필요를 지지해줄 프로그램들로 평생수입 수준을 보장하며, 실업을 최소화할 프로그램들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사회민주주의는 미래 세대들한테 계속해서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약속했는데, 말하자면 전 국민 수준 및 가족 단위에서 항구적으로 소득 수준의 상승이 이뤄지리라고 한 셈이었다. 이를 일컬어 복지국가라고들 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개혁”가능하며 좀더 인간적인 면모를 띨 수 있다는 견해를 담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였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서유럽, 영국,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다른 곳과 달리 뉴딜 민주주의자라고 불렸던) 미국 같은 데서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했는데 요컨대 세계체제상의 부유한 국가들, 다시 말해 범유럽 세계라 불러도 될 동네를 이루는 나라들에서였다. 이들이 거둔 성공은 굉장한 것이라, 중도우익 성향인 그들의 반대파들 또한 그 추진 비용과 정도를 줄이려 했다 뿐이지 복지국가 개념을 받아들였을 정도였다. 그 외 나머지 세계에서, 국가들은 제각기 전국 규모의 “발전” 프로젝트들을 통해 이 대열에 뒤따라 올라타려 애썼다.  

사회민주주의는 이 시기에 걸쳐 아주 성공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 상황이 지탱된 건 두 가지 현실 덕택이었다. 즉,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재분배를 실현시킬 자원들을 창출하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팽창했던 현실, 그리고 미국 헤게모니로 인해 세계체제가 상대적인 안정을 누렸던, 특히 이 체제의 부유한 지대에선 심각한 폭력이 빚어지지 않았던 현실 덕택이었다.  

이러한 장밋빛 구도는 지속되지 못했다. 앞서 말한 두 현실이 종언을 고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팽창을 멈추고서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섰는데, 우리는 여전히 이 국면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헤게모니 권력을 누려온 미국은 완만할지언정 장기적으로 펼쳐질 쇠퇴를 맞이했다. 이렇듯 새로워진 현실은 어느 쪽 할것없이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상당히 가속이 붙었다.

1970년대 와중에 시작된 그 새로운 시대를 맞아, 복지국가와 국가통제형 “발전”의 미덕에 대해 세계적으로 이뤄진 중도주의적 합의는 끝이 났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 신자유주의 아니면 워싱턴 합의라고도 불리는, 모종의 새롭고 좀더 우파적인 이데올로기로 대체됐는데, 정부보다는 차라리 시장에 기대는 게 가진 장점들에 관한 설교를 늘어놨다. 이 프로그램은 “대안 따위 들먹일 여지가 없었던”, 가정컨대 “세계화”라는 새로운 현실에 바탕해 있다고들 했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들의 추진으로 주식 시장의 “성장”은 상승세를 유지하는 듯했지만 그와 동시에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채무율과 실업률, 실질소득 격차의 상승을 광범하게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좌파적인 사회민주주의 프로그램들의 대들보 격이던 정당들은 꾸준히 오른쪽으로 자신의 입지를 옮겨갔다. 복지국가에 필요한 지원을 삼가거나 홀대하고 개혁주의적인 정부의 역할은 상당 부분 줄여야 한다는 데 수긍하면서 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그램이 인구 대다수에 끼친 부정적 효과가 부유한 범유럽 세계에서마저 감지될 동안, 이는 나머지 세계에서 훨씬 더 격심했다. 각국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건 뭐였을까? 각국 정부에선 자기네들 나름의 국가“발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미국(과 좀더 광범위하게는 범유럽 권역)이 상대적으로 겪고 있는 경제적·지정학적 쇠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나라가 되고자, 국가장치들이 발휘하는 권력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국의 생산비용을 활용했다. 그네들의 말투가, 심지어 정치적인 방침까지 “좌파적” 색채를 띨수록 그네들은 더더욱 “발전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이게 1945년 이후 한때 범유럽 세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들 국가한테도 먹힐까? 이들 국가 중 상당수, 특히나 소위 BRICs로 묶이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같은 나라에서 지난 5~10년 새 보여준 괄목할 만한 “성장” 수치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을진 몹시 불투명하다. 세계체제의 현 상태와 1945년 이후하고 맞닿은 시기 사이에는 상당히 심장한 차이들이 있어서다.

첫째, 생산비를 줄이려는 신자유주의 계열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실질 생산비 수준은 사실 1945년 이후 시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고, 자본축적이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선 자본가/자본주의자들한테 덜 매력적이게 됐는데, 걔중 이런 상황에 아주 민감한 자본가들은 자신의 특권을 보장받는 데 필요한 대안적 경로들 탐색중에 있다.

둘째, 떠오르는 나라들이 부의 획득분을 단기에 늘릴 수 있게 되면서, 이들 국가의 필요를 충당할 자원들의 가용치엔 커다란 긴장이 생겼다. 이에 따라 토지취득, 물, 식량, 에너지자원을 둘러싼 경쟁 압박은 항정 없이 가중될 참이다. 이는 험악한 아귀다툼을 유발할 뿐 아니라 달리 말해 전 세계에 포진한 자본가들의 자본축적 능력 또한 갉아먹는다.

셋째, 자본주의적 생산의 엄청난 팽창은 급기야 오늘날 세계가 기후 위기에 들어섰다고 할 만큼 지구생태에 심각한 긴장을 불러일으켜버렸다. 이 위기로 말미암아 삶의 질은 전지구적으로 위태로워진 상태다. 이는 경제적 목표치로서 “성장”과 “발전”이 지녔다던 미덕을 근본적으로 재고케 하는 특정한 운동을 촉발했다. 이렇듯 기존과는 다른 “문명적”인 시야에 대한 점증하는 요구를,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살 만한 세상buen vivir”을 향한 운동이라고들 하는 중이다.

넷째, 현존 세계에서 이뤄지는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예속 집단들이 내거는 실질적인 참여 요구는 “자본가/자본주의자”뿐만이 아니라 국가“발전”을 부추기겠노라고 하는 “왼쪽” 정부들도 겨냥하기에 이르렀다.

다섯째, 왕년의 헤게모니 권력한테서 빤히 보이는 쇠퇴와 더불어 이 모든 요인들이 뒤섞이는 통에 세계경제와 지정학적 상황 둘 다 항구적이고 급격하게 출렁이는 분위기가 조성됐는데, 그 결과 세계 각지에 자리한 기업가와 행정부의 손발은 마비된 상태다. 불확실성의 정도는 장기적으로뿐만이 아니라 아주 단기적으로도 두드러질 만큼 치솟았고, 이와 함께 실질적인 폭력의 수준도 마찬가지로 치솟는 중이다.

사회민주주의적 해법은 일종의 환상이 됐다. 문제는 세계 인구의 대다수에게 이를 대체할 선택지가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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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0 02:25 2011/09/20 02:25

Commentary No. 312, September 1, 2011
 


자코뱅주의의 종말? 소수자와 국가, 그리고 폭력
(The End of Jacobinism? Minorities, States, and Violence)
 

 

 


근대 세계에서 굴러가는 국가 치고 “소수자들”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또는 다르게 말하자면, 모든 국가에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규정되는 모종의 집단이 있다. 이 집단(성)은 인종이나 종교, 언어, 종족성, 아니면 이들 속성들의 여러 조합에 따라 규정되곤 한다. 그리고 이들 속성을 공유하지 못하는 타자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소수자들”은 거의 항상 경제적·정치적·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접근이 상대적으로 가로막혀 있다. 이런 기초적인 측면에서 이들은 억압돼 있고, 자신들이 억압돼 있다고 느낀다. 이들은 보통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그들 스스로 해당 국가의 시민으로 불리게 됐다고 여길 만한, 그런 동등한 지위를 얻으려 애쓴다. 소수자(혹은 소수성이)라고 하는 건 수량적인 개념이 아니다. 시민이란 이름 아래 구성된 다수성은 모종의 “소수자/소수성들”에 기초해 있는 셈이다.

세계의 언론을 접하는 독자들이라면 유명한 사례들을 알고 있을 게다. 터키의 쿠르드족, 얼스터(잉글랜드 식민통치기에 유입된 개신교도들이 밀집해 있는 아일랜드 북부지역)의 가톨릭계 주민들, 스페인의 바스크족, 안데스 권역 국가들에 속한 선주민들, 미국의 아프리카계 주민들, 인도의 불가촉(천)민들, 중국의 티벳족, 수단의 남수단인들, 모로코의 사하라인(베르베르족). 목록은 끝나지 않는다.

아주 빈번히, 특히 지난 40년에 걸쳐 더 많은 권리, 그러니까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고, 자기네 언어를 쓰거나 종교를 누리며, 자율·자치적인 여러 제도를 갖추거나 입법기구 내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적절히 대의할 권리를 획득하는 데 좌절을 겪으면서, 이들 소수자는 폭력에 기대왔다. 이렇게 좌절을 겪은 소수자 집단이 지리적으로 특정 지대에 비교적 몰려 있을 경우, 그들은 분리·독립을 꾀하곤 해왔다.

각국 정부에선 일반적으로 “소수자” 집단들한테 집합적인 권리를 부여한다는 발상에 반발하기 마련이다. 대다수 국가는 그 기질상 자코뱅의 화신이다. 자코뱅주의 국가에선 도덕적으로, 개별성원 각각을, 매개하는 집단이나 제도를 거치지 않고서 직접 다룰 권리를 주창한다. 문제는 이 국가가, 폭력적인 봉기를 통해 자기네 목표를 이루고자 정치적으로 조직된 “소수자들”과 마주했을 때 그 국가는 무엇을 하겠냐는 거다.

당장 본능적으로 이뤄지는 대응은 보통 들고일어난 집단을 찍어누르고자 국가의 물리력을 사용하는 일이겠다. 그리고 이게 처음엔 곧잘 먹힌다. 국가들한텐 대체로 제 맘대로 써먹을 다량의 물리력이 있고, 이 힘을 국가“질서”의 유지 차 써먹는 데 좀체로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상당수 사례에서 볼 수 있다시피, 일단 봉기에 나선 집단은 지속 가능할 만큼 충분한 응집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아주 오랜 기간 이어질 수 있는 내전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궁극적으로, (내전으로 가냐 마냐를 둘러싼) 선택의 향방은 국가 쪽의 대응 여하에 달려 있다. 국가는 관련 갈등을 정치적으로 풀고자 애쓰거나, 그러지 않을 수 있다. 갈등을 정치적으로 푼다는 건, 본질적으로 모종의 타협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즉, 소수자들이 내건 분리독립이라는 발상을 그들 스스로 접게 하는 대신, 그들이 요구한 권리들을 종종 지역 자치(권)까지 포함해 충분할 정도로 부여하는 타협 말이다.

이와 같은 “타협”에 이르는 데는 몇몇 변수들의 조합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군사적 분쟁의 소지가 비교적 사그라들고, 지정학적으로 문제의 “소수자”한테 상당 정도 외부 지원이 이뤄지면서, 양측 모두가 비교적 진이 빠진 상태여야 한다. 얼스터의 상황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하는 듯싶다. 터키와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수단에선 수단 정부는 자신의 패를 과신했고 그래서 남수단 지역(의 소수자들)은 분리독립할 수 있었다. 이 일을 놓고 중국 정부는 결연히 다짐하기를, 자기네 나라에선 생기지 않을 일이라고 한다.

정치적 상황은 어디고 간에 저마다 중요한 방식으로 차이를 보인다고 하지만, 더 많은 집합적 권리를 앞세운 “소수자” 집단들의 요구가 현존 세계체제의 지정문화[geoculture,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곧잘 가정·전제되곤 하는 지배적 담화양식] 속에서 전지구적으로 그 힘을 계속 불려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자코뱅주의는 이제 끝물이다. 국가들로선 이들 쟁점을 둘러싼 정치적 “타협”에 이를 수 있는 틀거리는 뭘지 숙고하는 쪽이 현명한 일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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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0 02:23 2011/09/20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