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례 감독님이 <외박> 상영 건으로 대만에서 초청을 받아 대만에 다녀오실 거라고 하죠. 상임활동가 겸 감독님의 로드매니저인 빨간거북 선배도 함께 머물다 오기로 했고요.

아래는 미례 감독님을 초청한 쪽에서 보내온 기사 두 꼭지를 번역한 겁니다. 지난 10여 년 간, 대만에서도 파견노동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잠복해 왔던 모양인데, 함 읽어보시면 좋겠군요.

번역을 해 보니 참, 이윤 쥐어짜낼 데가 자꾸만 말라붙어 가는 자본이 저 살자고, 갑갑한 상황 좀 반전시키겠답시고 일으키는 분란은 정말 어디서나 '보편적인' 양상을 띄는구나 싶네요.

이 따위 보편성을 못 보게 만들거나 되려 "아직도 갈 길이 먼" 이유로 둔갑시키는 국민국가-시민사회 차원의 '문화정치적 사보타지'는 뭔지 씨름하는 게, 어쩌면 자본의 흉물스러움을 새삼스레 성토하는 일보다 정치적으로 더 중요해지겠다는 생각이 새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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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사회적 우환, 파견노동 시스템

[타이완투데이 2010년 7월 30일자, 기사원문보기]

차이 준



지난 한 해 동안, 파견노동자들의 악화된 노동조건이 대만 노동계의 껄끄러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으면, 파견노동제가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불만의 주된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만의 파견사업은 최근 몇 년 새 급격이 성장했다. 예산 및 회계·통계 감독국에 따르면, 인력 대행업체 수는 2009년 5월 현재 1400개가 넘고, (정규 전일제로 분류 불가한 모든 노동자를 지칭하는) 비정규 피고용자 수는 51만 7천명의 임시·파견 노동자들을 포함, 68만 7천명을 상회하고 있다. 이 규모는 대만 전체 노동력의 5%로, 2006년 11만 4천 명에서 5배가 늘어났다. 수치로 봤을 때 파견노동자 수가 전체 노동력의 3분의 1인 일본보다 높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인권 전문가들은 대만이 수치증가가 경고하는 바를 잘 새겨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에서 파견노동자들 중 다수는, 제조업 전반이 최근 진행중인 지구적 경기후퇴로 타격을 입으면서 직업을 잃고 노숙자가 된 상태다.

노동인권이 전공인 리우 메이춘 대만 국립정치대학 교수는 지난 7월 16일 “그간 대만의 수출지향형 제조업 분야는 다수 업종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인해 강세를 보였다. ODM 방식을 못 벗어난다는 말인즉슨, 지구적 경쟁과 맞닥뜨렸을 때 노동비용(압박)에 취약해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비정규 형태의 고용”은 노동자들한테 종종 낮은 보수, 노동표준의 박탈과 직무의 불안정성을 뜻한다. 그들은 경제 침체의 여파에 가장 먼저 휩쓸린다. 문자 쓰는 상당수 사람들은 파견노동자들이 겪는 처우를 묘사할 때 이들을 “워킹푸어”라 부르면서, “일회용 젓가락”이란 말을 쓴다.

인적자원은행에서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임시직 노동자들은 그 특징상 비숙련자들로, 가방끈이 짧고 사회적인 지위도 낮지만, 경제 발전이 더뎌지는 가운데 대졸자와 신규 구직자들도 정규직이 되는 데 필요한 징검다리로 임시직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대만에서 인력배치 사업이 법제화된 건 1998년으로, 노동표준법의 규제 아래 노동사무국의 행정명령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파견 업체의 법적 지위는 여지껏 분명하지가 못했다.

파견업체가 굴러가는 방식에 따르면, 파견 노동자들은 특정 사업체와 계약을 맺은 인력 대행사에서 고용된 자들이다. 법적으로 이들 노동자는 표준화된 보험 적용과 휴가, 그 외 다른 수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파견 업체의 파견 노동자 채용은, 파견 업체들 간에 인적 자원 비용을 낮추는 경쟁이 벌어지면서 채용자가 노동자들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하나의 경로가 됐다.

인력수급 업체들은 사업비용을 낮추는 데 법률상의 허점을 최대한 활용하기도 한다. 파견 노동자들은 매년 갱신돼야 하는 계약에 매여 있는 경우가 잦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거나 더 나은 노동조건을 협상하게 될 때 불리한 처지에 놓이고, 일자리의 안정성과 하는 일에 대한 전망, 기회까지 박탈당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이 독특한 (파견노동)시스템은 직무를 외주화하는 정부 기구들 사이에서 차츰 인기를 얻는 중이기도 하다. 정부 기구에서는 엄격한 채용구조상, 그간 인력상의 필요를 충족하고자 파견 노동자들을 활용해야 했다. 파견 노동자들도 최근 추진된 정부의 고용촉진 프로그램들을 통해 취직이 돼왔다. 가장 최근에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파견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기업 영역에선 7%인 반면, 공공/정부 영역에서는 4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파견노동 시스템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충격적인 방식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2009년 7월 대만 국립공예박물관 소속 안내원들이 박물관으로 그들을 파견한 보안서비스업체의 불법 행위를 폭로하고자 들고 일어났을 때였다. 안내원들은 보안요원이라는 직함을 갖고 일을 해야 했고, 그들이 맺은 고용 계약은 3개월마다 갱신돼야 했다. 이런 조건 아래서 5년 동안이나 일한 이들도 상당수였다. 안내원들이 결성한 자조 모임의 대표 챠이휘웬의 말에 따르면, 안내원들이 맺은 계약 조항은 시간외 수당, 휴가 및 여타 혜택을 포함해 노동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박탈한 것이었다. 그녀는 “월급은 1천 31달러(미국 달러 기준, 120~30만 원 정도?)를 받기로 돼 있지만, 내가 받는 건 겨우 90~100만이었고 나머지는 보안 회사의 몫”이라고 했다. 챠이는 박물관과 파견회사가 함께 저지른 불법 처우에 맞서 항의하다가 해고됐다.

노동법을 위반하는 건 보안회사만이 아니다. 2009년 5월에 노동사무국에서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고용중개 업체 중 80%가 노동표준법을 위반하면서 운영중이며. 40% 이상의 업체에선 노동보장법에 따른 적절한 보장 조치가 파견 노동자들에게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1월에 이뤄진 또다른 조사에선 정부와 계약을 맺은 60개 파견회사 중 51개 업체가 노동표준법 위반을 거의 관행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상황을 제어하고자, (노동 주무부처인) 노공위원회에서는 파견규제 법안을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노동조합들의 반발을 불렀다. 이들은 그같은 규제 조치가 인력수급 업체들의 지속적 활동을 용인함으로써 불법활동을 정당화해줄 뿐이며, 전반적인 노동조건의 악화를 초래할 거라고 주장했다.

일종의 타협안으로, 노공위에서는 파견 노동과 관련 조항을 기존의 노동표준법에 추가해 손질하기로 했다. 노공위 노동관계국장 리우촨민에 따르면, 개정법안은 파견 노동자들을 파견회사의 피고용자로 명확히 정의하면서 노동자들과 용역업체, 용역서비스 이용 회사들이 저마다 권리를 누리고 책임을 지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노공위는 파견업체들이 고용된 사람들과 단기계약을 체결하지 못 하도록 하자고 했다. 이같은 계약 방식은 파견회사가 정부의 외주 업무를 놓치지 않으려 계약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관행의 일부로, 외주 업무가 일단 종료되면 해고가 쉽게 이뤄지게 한 것이었다.  

이 제안에는 파견 노동자의 상한선을 회사 당 전체 노동력의 3%로 하고, 특정한 조건 아래서는 20%로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법 개정안에서는 6대 주요 분야, 즉 간병, 경비, 항공, 해운, 공공운수, 광산업종에 대해 파견노동을 금지할 참으로도 있다. 그러나 노동인권 단체와 노조들 입장에서 그같은 법제화 작업은 파견회사들한테만 득이 될 뿐인데, 노동자들이 겪는 착취를 줄이는 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지난 7월 14일 발표된 성명서에서, 비정부기구인 노동인권협회는 공공 영역에선 파견 노동을 전면 금지하는 한편, 2년 내로 파견업 자체가 사라지도록 하는 조항까지 넣으라고 요구했다. 이와 같은 주장의 일부로서, 협회는 노동표준법 6항을 인용했는데, 이 조항에 따르면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이들의 노동 계약에 간섭하여 불법한 이득을 취해선 안 된다.”

“우리는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노동인권협회 대변인 탕슈는 말한다. “직접 고용 없이, 노동 인권을 지킨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 이에 대해선 메이 교수도 동의했다. 그녀는 “임시직 노동력은 정의상 보완과 대체의 성격을 갖는다. 표준 직무에 파견 노동자들을 쓰는 건 정규직, 비정규직 여부에 관계 없이 피고용자에게 해로울 뿐”이라고 했다. 국립대만대 청 치유 교수는 전화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파견노동 시스템이 글로벌한 도전과 마주한 대기업들한테는 마치 필요악인 듯 여겨졌던 동안 이 시스템은 피고용자들이 겪어온 평균임금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돼왔다고 말했다. 그는 “(파견노동·용역)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사들에 대한 엄격한 제약이 이뤄져야 하고, 파견 기간은 12~18개월로 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교수 모두, 노동인권협회에서 파견업체들의 법률위반을 감시하거나 파견사업을 전면 불법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리우 교수는 “정부 기구들부터 제일 먼저 파견 노동자를 안 쓰면서 파견회사들에게는 법을 따르라는 요구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견노동에 맞서 법개정 반대에 나선 노동자 단체들

[차이나포스트 2010년 7월 15일자(목), 기사원문보기]
 



[타이페이] - 일군의 노동자조직 소속 성원들이 노동위원회 본관 앞에 모였다. 파견노동 규제를 골자로 한 법 개정안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정상적인 일이지, 파견노동이 아니다.” 항의차 모인 이들은 이렇게 구호를 외쳤다. “파견노동의 여왕이 되느니, 차라리 하찮지만 평범한 노동자가 되겠다”고도 했다.

대만노조연맹 사무국장 유안 쿵치는 “수년 동안 파견노동을 저지하려 애를 썼지만, 노공위는 이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파견노동자들에 관한 특별 장’을 노동표준법에 추가해 공식적으로 파견노동을 합법적인 관행으로 바꾸려고까지 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유안 사무국장은 개정 법률안이 고용에 따르는 제약을 약화시켜 고용자들이 저임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만들 거라고 역설했다. 그는 “개정 법률안으로 인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만노련 위원장인 치앙 완칭은 “현행 법률에는 파견노동을 관리하고 명확히 규제하는 내용이 전혀 없는 반면, 행정 및 사법 당국에선 오랜 동안 파견 노동을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해왔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새로 개정된 법률안이 표면적으로는 파견 노동을 보호하자고 만들어졌다지만, 실제로는 인력파견회사의 설립에 관해 “아주 느슨한” 제약을 둠으로써 파견노동의 문호를 전면 개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치앙 위원장은 이 때문에 노공위의 법률개정안은 파견회사들에게만 득이 될 것뿐이라면서, 이같은 법개정 추진은 “노동자들을 노예로 취급하는 관행을 합법화”하려는 행보라고 설명했다.

항의집회가 열리는 동안, 국립공예박물관에서 해외여행객 담당 가이드로 일했던 차이가 발언에 나섰다. 그녀는 안내원으로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공식 직함은 경비원이었다면서, 그 이유인즉슨 보안서비스회사에서 파견된 노동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박물관 측과 치른 면접에서 통과된 후 안내원으로 일할 수 있었다. 받기로 한 월급은 120만 원 남짓이었다. 하지만 그녀 말로는, 박물관에선 이 중 4분의 1 가량을 떼어 보안회사에게 넘겨줬다. 그녀와 몇몇 동료들은 지난 해 불합리한 관행을 폭로하고자 항의 모임을 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에서는 올해 보안회사를 통해 새 안내원을 다시 뽑았다”고 차이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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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4 03:19 2011/03/14 03:19

 

Commentary No. 300, Mar. 1, 2011

변화의 바람 - 아랍 세계와 그 너머
("The Wind of Change - in the Arab World and Beyond")

 

 



 
51년 전인 1960년 2월 3일, 당시 영국 총리였던 보수당 소속 해롤드 맥밀런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회에서 연설했다. 아파르트헤이트(제도화·정책화된 인종주의)를 통치의 기초로 삼던 정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던 곳에서였다. 그가 한 연설은 훗날 “변화의 바람”이라 불리게 된 것이었다. 연설에서 그가 했던 말은 충분히 되새김해볼 만하다. “변화의 바람이 이 대륙에 불고 있으며, 그게 좋든 싫든 간에, 민족/국민의식의 성장은 정치적으로 기정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정치적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일련의 국내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 수상이던 헨드릭 버워드는 이 이야기에 화답하지 않았고 그 이야기에 담긴 전제들과 제언을 거부했다. 1960년이란 해는 이제껏 아프리카의 해로 불려왔는데, 이 한 해 동안 16개의 식민지가 독립 국가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맥밀란의 연설은 사실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절반을 차지하는 이들 국가에 주요 백인 정착민 집단(과 엄청난 광물 자원)이 자리해 있다는 점을 쟁점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들 백인 정착민 집단한테는, 흑인들이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게 될 보편적 선거권이란 발상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다.

 

맥밀런은 급진정치 쪽관 무관하다시피한 인물이었다. 그가 펼친 기본 논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주민들을 냉전 구도 아래서 서방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었다. 그의 연설은 의미심장한 것이었는데, 영국(을 나중에 뒤따르게 된 미국) 통치자들에게 백인의 지배라는 대의에 맞춤한 남아공 선거 제도는 이에 우호적인 백인들과 나란히 서방을 주저앉혀버릴지 모를 만큼 파국적임을 환기하는 신호란 점에서였다. 바람은 계속해서 불었고,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보편적 선거권(에 대한 대중적 요구)에 굴복하고 넬슨 만델라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기까지, 아프리카 대중은 각국별로 자기들 나름의 성취를 이뤄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영국과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어떻게 해서든 유지됐다.

 

이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다. 먼저, 변화의 바람은 아주 강해서 이에 저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둘째로, 폭정의 상징들이 그 바람으로 일단 날라가버린 다음에 어떤 일이 뒤따를지는 매우 불확정적이라는 점이다. 상징들이 일단 쓰러지고 나면, 그같은 상징들은 어느 누구 할것없이 사후적으로 비난받는다. 그러나 기존에 누려온 이해관계 역시 새롭게 부상하는 구조들 속에서 어느 누구 할것없이 지키고 싶어 한다.

 

(1916년 첫 번째 봉기 이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촉발된 두 번째 아랍 민중 봉기의 물결은 지금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을 휩쓸고 있는데, 더 많은 폭정의 상징들이 몰락을 맞거나 국가구조 내적인 변동을 대대적으로 겪으리라는 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러고 난 다음엔 누가 그렇게 몰락하거나 재편된 권력을 유지할까? 우리는 이미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이전 정권/체제의 핵심인물이던 이들이 새 총리가 되는 정황을 목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두 나라 군부에서는 봉기에 가담한 주민들에게 저항을 멈추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두 나라에선, (대외 종속 강화의) 축대 역할을 하면서 이전 정권/체제를 떠받치던 바로 그 서유럽과 북미 지역 국가들과의 연계를 지속하고, 심지어 확장하려는 추방자들의 귀환이 벌어지는 중이다. 확실히, 대중적 세력들은 이에 반격을 가하고 있고, 이 글을 쓰기 바로 전에 그들은 총리의 사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프랑스혁명 와중에, 당통은 “대담무쌍하고, 더 대담무쌍하며, 언제나 대담무쌍“해질 것을 권고했다. 좋은 충고였던 것 같은데, 그러나 당통은 그후 오래잖아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그리고 다음 번엔 당통의 목을 쳤던 이들의 목이 잘렸다. 그 뒤로 우린 나폴레옹을 맞이했고, 그 다음엔 왕정복고가 되더니만, 그리고선 1848(세계혁명)이, 그리고는 파리코뮌을 경험했다. 1989년에, 그러니까 200년이 지나고서야 사람들은 사실상 어느 누구 할것없이 프랑스혁명을 사후적으로 긍정하게 됐지만, 우리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에서 3위일체를 이뤘던 가치인 자유와 평등, 우애가 실제로 실현됐느냐고 말이다.

 

오늘날 정황은 이전과는 상당히 다르다. 지금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진정으로 전지구적이다. 현 시점상 변화의 진앙지는 아랍 세계이고, 이곳에서 바람은 여전히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중이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지역의 지정학은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예의주시해야 할 결정적인 장소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팔레스타인이다. 사우디 왕정이 심각한 도전을 맞이할 경우 (아무리 못해도 이런 도전과 마주할 가능성은 있을 텐데) 아랍 세계 내의 어떤 정권/체제도 안전하다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에 팔레스타인에서 정치적으로 주요한 두 세력이 손을 맞잡게 될 경우, 해롤드 맥밀란 전 총리가 한 표현을 이 대목에서 써먹자면, 이스라엘마저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민족의식을 고려해야 하는 정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과 서유럽은 이같은 변화의 바람에 대해 김을 빼고, 제한을 가하며, 그 방향을 틀고자 권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부리는 권력은 예전만 못하다. 그리고 변화의 바람은 그네들 국가의 영토 내부에서 일고 있는 중이다. 바람이 이는 방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들 바람의 방향과 동력은 한결 같지도 않고, 따라서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 이는 바람은 굉장히 강력하다. 이 바람을 엿먹이고 제한하며 재정위하기가 이제 더는 그렇게 쉽진 않을지도 모른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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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04:03 2011/03/04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