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5, 2010, Commentary No.291

아프가니스탄: 어느 누가 부담을 지고 싶어할까?
("Afghanistan: Does Anyone Want the Burden?")

 

 




아프가니스탄을 누가 통치할지를 둘러싸고서 많은 국가들 간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건 전혀 비밀이 아니다. 그리고, 지난 30년에 걸쳐, 많은 나라들에서는 아프간에 저마다 선호하는 통치 형태가 자리잡도록 군병력이나 군사무기 아니면 거액의 돈을 보냈다.

 

이랬던 나라들이 실제로 거둔 성과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원국들의 입장에서 보면 향후 전망도 좋지 못하다. 지원 주체들 사이에선 그간의 적극적 개입을 줄일 수도 있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차츰 두터워지고 있다. 침입(내지 간섭)이란 방식은 크게 수지 맞긴 어려울 듯한 부담을 유발한다.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은 1980년대 내내 아프간에 호되게 데이고선 결국 전군을 철수시켰다. 소련 스스로는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고 판단했던 아프간 대통령은 그같은 호의를 고마워하던 주민들에 의해 공개 처형됐다. 미합중국한테 지원받으며 소련의 개입에 맞섰던 이슬람무장게릴라조직 무자히딘('전사'라는 뜻의 아랍어)은 ‘알 카에다’('기지'란 뜻의 아랍어로, 뉴욕 쌍둥이빌딩=세계무역센터 공격을 주도한 국제 이슬람게릴라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운동을 육성·지원함으로써 미국에 사의를 표했다. 알 카에다는 이제껏 미합중국과 이 나라와 동맹을 맺은 모든 국가/세력을 상대로 지하드("생활 전반의 나아짐"을 향한 분투, 또는 이슬람공동체인 '움마'를 적으로부터 지키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뜻하는 아랍어)를 벌이는 데 온 힘을 쏟아왔다.

 

둘 이상의 세력들 간에 벌어진 아프간 내전이 동일한 시기에 걸쳐 끊임없이 계속됐다. 주요 내전 세력 중 하나인 탈레반은 전쟁 동안 나름의 부침을 겪었다. 탈레반은 지금 다시 상당한 세력을 발휘중인 듯싶다. 파키스탄을 제외하고서 거의 모든 간섭 국가/세력들은 탈레반에 관해 부정적인 견해를 무작정 되풀이하지만, 여지껏 탈레반이 보여온 지속 역량 및 입지확보 능력에 힘입어 모든 관련 개입국가들 사이에선 대놓진 않아도 전향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디가 됐든 “우리가 계속 아프간과 엮여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이 의제로 떠오르는 중이다.

 

아프간 북서부의 인접국가들, 다시 말해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러시아, 그리고 이란은 모두 (러시아의 경우 국경을 맞대고 있진 않아도) 아프간과 관련이 있다. 이들 국가에선, 대체로 파슈툰 족 출신인 전투적 성향의 탈리반이 통치 권력을 장악하길 원하지 않는다. 이들의 우려는, 십중팔구 기우가 아닐 텐데, 탈리반이 아프간 국정을 장악할 경우 자국 영토와 종족적으로 연계돼 있는 지대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압박하게 되리라는 데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 중 어느 쪽도 지상군을 보낼 채비가 안 돼 있는 듯싶다. 이들 국가에서 하나 같이 비중을 두는 건 따라서 아프간을 사이에 둔 정치적 타협으로, 북서부 지대들에 대해 상당 정도의 보호 조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 군병력을 배치해 놓은 상태다. 원칙적으로 이들 병력을 철수시키기로 한 시점은 2011년 7월부터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 행정부가 원칙적으로 희망하는 바는,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이 이끄는 공식 합법정부 치하에서 탈레반 세력의 패배 또는 최소한 포섭이 이뤄지고 아프간 정규군의 힘이 한층 더 강해지는 것이다.

 

미군은 몇몇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서 보낸 나토군의 지원을 받고 있다. 미국이 2011년 중반기까지 군 철수를 기다리는 중인 반면, 나토 회원국 대부분에선 철군 시기를 더 앞당기거나 지금이 바로 철군할 절호의 시기임을 공론화하는 데 열심이다.

 

미국의 경우, 철군은 내부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를 던진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지지가 철군 결정으로 더 떨어질지 아니면 그 반대 결정으로 더 떨어질지 저울질하는 중이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머나먼 곳에 있다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기들이 알기론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신물난 유권자들의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내 예측으로는, 고립주의자들이 내는 목소리가 개입주의자들의 목소리에 대해 정치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제 남아있는 국가는 둘인데, 파키스탄과 인도다. 물론 이들 두 나라는 오랜 동안 지속돼온 정치적(이고 곧잘 군사적) 쟁투에 서로 붙들려 있는 상태다. 그리고 어느 쪽 할것없이 아프간 내부 상황을 그것이 양국간 쟁투에 대해 지니는 함축과 관련시켜 바라본다.

 

파키스탄은 육군정보기구인 ISI를 통해 전 시기에 걸쳐 탈리반을 지원해왔다. 요즘은 이같은 지원 사실이 미국을 열받게 한다는 이유로 그에 대해 부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말에 넘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파키스탄은 아프간의 탈리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며, 카불에서 다시 들어설 탈리반 정권이 인도에 대해 방파제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본다.

 

인도 정부는 지난 10년 간 카르자이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다. 그렇게 하는 게 아프간 내에서 파키스탄계가 지닌 영향력을 근절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이란 및 러시아산 에너지 자원 획득에 필요한 사회기간시설을 갖추는 데도 보탬이 돼줄 길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저마다 취한 선택지를 재고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인도에선, 아프간에서 발을 빼고 파키스탄에게 아프간을 떠넘기면 이로써 파키스탄의 활력과 군사자원들이 말라붙는 독약먹이기 효과가 생길 거라고 판단하는 정부측 분석가들이 상당수 있다. 이 분석가들이 기대고 있는 건 아프간인들, 그중에서도 파슈툰계가 지닌 가공할 독립성인데, 이들은 아프간인들이 소련과 미국의 통제에 대해 그랬다시피 파키스탄의 통제도 용납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럼 파키스탄은 어떨까? 탈리반은 아프간뿐만이 아니라 파키스탄에서도 아프간 쪽과는 일정 정도 별개로 활동중이다. 파키스탄 ISI는 아프간 쪽 탈리반의 가치를 알고 이들을 지원할 수 있겠지만, 아프간 탈리반한테서 지역적 다양성에 대한 열성을 찾아보긴 힘들다. 파키스탄으로선 자국 내 탈리반을 다뤘다가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인도를 다루기 힘들어질 수가 있다. 아프간에 대한 과도한 관여로부터 발을 뺄 경우, 국가 내적인 긴장은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아프간에서 지속중인 내전으로부터 한 가지 상정 가능한 결과로, 한 5년쯤 이내에, 모든 국가에선 아프간 내정 관여에 따른 부담을 버거워 하면서 아프간을 그냥 내버려 두게 될 수 있다. 아프간인들끼리 속된 말로 지지고 볶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모두가 떠나버린 아프간은 어떻게 될까? 그걸 알긴 굉장히 어렵다. 그곳은 제일 밥맛 떨어지는 판본의 샤리아(원래는 꾸란과 무함마드 어록 등에 바탕해 체계화된 이슬람공동체의 율법을 뜻하는 말) 법이 아프간 주민 전체에 끼칠 해악과 더불어, 흉측한 모습을 띨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 모두 깜짝 놀랄 만한 상황과 마주할지도 모르는데, 아프간의 역사에서 상당 기간 그랬다시피, 말하자면 상대적이나마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종류의 형세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간에, 나머지 세계에서 이런 상황에 신경을 쓸까? 향후 5년에서 10년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세계 어디 할것없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혹독한 시절을 겪게 될 게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걱정할 시간이나 정력 같은 건 아예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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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7 08:40 2010/10/17 08:40

 

Commentary No. 290, October 1, 2010

 

사회민주주의에 미래가 있을까?

("Does Social-Democracy Have a Future?")

 

 

 

지난달, 사회민주주의 정당계에서 특기할 만한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다. 지난 9월 19일 스웨덴 사민당은 선거에서 크게 패했다. 지지율은 30.9%로, 1914년 이래 최악이었다. 1932년 이후 지금껏 사민당은 열 번 중 여덟 번 꼴로 집권해왔는데, 중도우파 정당이 선거에서 이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극우 반이민 정당이 스웨덴 국회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이게 왜 그리 극적인 일이냐고? 1936년, 마르키스 차일즈는 유명한 책 <스웨덴: 중도의 길>을 썼다. 이 책에서 차일즈는 사회민주주의 정권하의 스웨덴한테는 미합중국과 소비에트연방이라는 두 극단을 멀리하는 중도의 미덕이 있다고 밝혔다. 스웨덴은 내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와 평등주의적 재분배를 훌륭하게 조합한 국가였다. 적어도 1930년대 이후로 스웨덴은 세계적인 사회민주주의의 총아(혹은 이미지 캐릭터)이자 진정한 성공 사례였고, 이같은 위상은 그래서 최근까지도 지속되는 듯했다. 이제 더는 그렇지 않다.

 

이러는 사이, 9월 25일 영국에서는 에드 밀리반드가 돌연 노동당 대표로 뽑혔다.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가 대표였던 시절 “새로운 노동”이란 이름으로 근본적인 당 재편에 나선 바 있다. 블레어는 또한 당이 중도 노선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사잇길이 아니라, 경제적 핵심 영역들의 국유화라 곧잘 불리던 사회민주주의 프로그램과 속박이라고는 없는 시장 지배의 사잇길 말이다. 이 길은 1930년대와 그 이후로 계속된 스웨덴의 중도 노선과는 꽤나 다른 것이었다.

 

영국과 그 외 다른 곳에서, 에드 밀리반드가 자신의 형으로 토니 블레어의 주요 동반자였던 데이비드 밀리반드를 제치고 내린 선택은 블레어식 노선과 절연하고 무언가 좀더 (스웨덴 같은?) “사회민주주의적” 노동당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해석됐다. 며칠 후 있은 대표 취임 연설에서 구태여 거듭 밝혔다시피, 그는 여전히 “중도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공정(함)”과 “연대”가 지닌 중요성에 대한 호소로 자신의 발언을 치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낡은 생각을 흘려보내고 삶에는 회계상의 손익보다 더 많은 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대변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이 사회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하나의 운동이자 이데올로기로서, 사회민주주의는 통상적으로(그리고 거의 틀림없이)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베른슈타인이 제창한 “수정주의”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베른슈타인이 펼친 주장의 핵심은 이랬다. (그가 뜻한 바로는 성인 남성들한테) 보편적인 선거권을 사람들이 일단 획득만 하면, “노동자들”은 자신을 대변하는 당, 즉 사회민주당 내각을 출범시키고 정부를 접수하는 데 선거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의회 권력만 일단 잡고 나면, 사회민주당은 사회주의를 “법제화”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따라서 그가 내린 결론에 의하면, 권력에 이르는 방도로서 전복(의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불필요하고 실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사회주의에 대한 베른슈타인의 정의는 여러 모로 불명료했지만 그 당시로선 경제적 핵심 영역들의 국유화를 여전히 포함하는 듯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의 운동으로서 사회민주주의는 그 이후로 근본을 다루는 정치에서 매우 중도주의적인 지향으로 완만하면서도 끊임없는 전환을 겪어왔다.

 

1914년,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저마다 속한 정부를 줄지어 지지함으로써 이론상으로 내세웠던 탈국민주의(국제주의)와 결별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로는 소비에트연방에 맞서 미합중국과 손발을 맞췄다. 그리고 1959년, 독일 바트 고데스부르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사민당은 맑스주의와 공식적으로 완전히 연을 끊고 “노동계급의 정당에서 국민의 정당이 됐음”을 천명했다.

 

당시 독일 사민당과 여타 국가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지지했던 건 “복지국가”라고 불리는 사회적 타협이었다. 이 복지국가라는 목표 아래, 1950~60년대에 걸쳐 세계경제가 엄청나게 팽창하던 시기, 그 타협은 아주 성공적인 것이었다. 당시에 이 타협이 여전히 하나의 “운동”일 수 있었던 건, 사민주의 정당들이 자국 주민 대다수를 상대로 적극적인 지지와 충성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세계경제가 기나긴 침체에 빠지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 세계를 들쑤시자,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한 술 더 뜨기 시작했다. 이들 정당은 복지국가에 대해 찍었던 방점을 지우고, 상대적으로 부드러워졌다 뿐이지 근대자본주의 시장의 존엄함에 방점을 찍는 특정 판본(=세계화)의 지지자가 됐다. 블레어가 말한 “새로운 노동”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여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보다 더 오래 버티긴 했지만, 스웨덴 사민당도 결국 이같은 전환에 굴복했다.

 

그러나 그 결과 사회민주주의는 대다수 주민들의 강력한 충성도와 지지를 규합해낼 수 있었던 운동이길 멈췄다. 사회민주주의는 옛시절의 열정을 결여한 선거기계가 됐다.

 

아무리 사회민주주의가 더는 운동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문화적인 선호도는 여전하다. 유권자들은 전과 다름없이 이젠 사라져가는 복지국가의 잇점들을 바란다. 이런 잇점들이 오늘날과 같이 상당한 규칙성을 띠면서 자꾸 더 줄어들 때 유권자들은 어김없이 반발한다.

 

마지막으로 극우 반이민 정당의 스웨덴 국회 진출에 관해 한 마디 하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제껏 이주(노동)자들한텐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종족적이라거나 그외의 다른 “소수자들”의 여러 권리에 대해 열성을 보인 적이 없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어느 나라에서건 종족적 다수자들의 정당으로서, 이들 정당에서 보기엔 지지자들의 임금과 고용을 갉아먹는 다른 노동자들에 맞서 자기네 나와바리/세력권을 지키는 경향을 보여왔다. 연대와 탈국민주의(국제주의)는 그 어떤 경쟁도 시야에 잡히지 않을 때라야 쓸모 있는 슬로건이었다. 최근까지 스웨덴에서 이같은 쟁점과 마주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 쟁점과 마주하게 되자, 사회민주주의 지지자 중 일부는 손쉽게 극우파가 됐다.

 

사회민주주의에 미래가 있을까? 문화적인 선호 대상으로서라면 모를까, 운동으로서는 아니올시다 되겠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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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2 04:05 2010/10/02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