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애국자'의 사면이란 제목으로 이택광씨가 포스팅한 글을 봤다.

거기에 인용된 문답이 있는데, 아래와 같다.

 
  질문자: 샌드위치론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화두를 많이 던졌는데 우리 사회에 던지고 싶은 화두는?

  이건희: 각 분야가 정신을 좀 차려라.

 

 

두둥..


 


다시, 각 분야가 정신 좀 차리란다.


용산참사 영결식이 엄수됐던 1월 9일. 공교롭게도 당신의 생일이라는 이 날,

과연 글로벌 자본주의 기업가답게 멀리 미국 라이스베거스에서 겸사겸사 치러지던 생일찬치 와중

대한민국 주민들을 상대로 이건희씨가 교시하셨다는 신년 화두 되시겠다.
 

'와우!'라고 해야 하나, 아님 '올레!'라고 해야 하나.
 


(관련 사진 보니까, 년놈 할것없이 지 애새끼들 손잡고서, 히딩크한텐 미안하지만
히딩크식으로 말하자면 삼성전자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도 했던데.
하여간, 삼성이씨 문중에 들려 있는 걸신의 스케일과 게걸스러움을 새삼 짐작케 한다.
그리고 단독사면의 명분으로 알려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건에 대해서도 그는,
솔직히 생각해 둔 건 없다고도 했다. 알량해도 자기 때메 그렇게 붙여준 알리바이이건만 참,

장단 한 번 기가 막히다. 아님, 그냥 대놓고 그러거나 말거나인 걸까.)


그런데 말이다, 그는 당신이 하시옵는 일을 알지 못하시는 걸까.
이 소식을 접하고서 나는, 차려야 한다는 정신머린 온데간데 없이,
순간 머릿 속에 탑재돼 있는 줄만 알았던 모든 개념이
무척 한산해 보이는 그의 머릿 속처럼 텅 비어버리는 느낌였더랬다.
이게 바로 이건희 스스로 뻑 하면 강조하고,
여타 글로벌 CEO들께옵서 맞장구 치기 바쁜 천재적 역발상과 혁신의 효과인가.


저 신년 훈수를 보며 들었던 감정을 그저 분노라고만 하기엔 웬지 불충분하다.
차라리, 한없는 모멸감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다.
얼마 전 미국 CIA 아프가니스탄 지부를 상대로 자살폭탄 테러를 했다는
알제리 출신 의사의 행보를 비롯해 수많은 이런 사람들의 죽음이 상징하는 정치란 것도,
가만 따지고 보면 이런 모멸감의 발로 아녔을까 싶다.

자뻑스럽고, 그래서 비유럽권 사람들에겐 심히 모멸어린 폭력으로 다가오게 마련였던
유럽문명권 권력자들의 온갖 훈수와 처방에 대한 해법은,
문명 간 대화를 통한 개선이 아니라 그런 대화 자체를 면피용 볼거리쯤으로나 여길 뿐인
유럽문명의 절멸로 불가피하게 치달았던 게 아니냔 건데.
이런 해법이 테러 당사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얼마나 적절하며 또 자기파괴적인지는,
골백 번 타당한 의문이더라도 여기선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건 그런데도 왜 이런 부적절해 보이는 해법이 꽤나 "합리적인" 선택지로

호응을 얻고 있느냐일 테니까. 

보아 하니, 이건희씨로선 반주변부 기업가로서 아마 유럽권,
다시 말해 중심부 자본주의 기업들과의 축적경쟁에 대한 압력 때메라도
대한민국 주민들을 상대로 한 훈수의 유혹 자체를 피하기 힘든 모양이다.

그 함량의 높낮이를 떠나서 말이다. 확실히, 이런 점에서라도

이런 훈수 자체를 실수라고 볼 순 없겠다. 차라리 궁금해해야 할 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한국 각 분야에서 차려야 할 정신의 밑그림은 당최 뭐냐는 거면 모를까.

어쩌면 여전히 그(아니, 실은 그/녀들)에게 부족한 건

그저 이윤욕으로 빚어진 스펙터클의 축적만이 아니라,
사실 그간 각 분야별로 뿌려대고 발라댄 돈다발 덕에

그네들로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해도 모자랄, 정신적 헐벗음의 축적인 걸까?

프란츠 파농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 실린

"민족의식의 함정"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근대 식민지 사회구성체를 태반으로 '독립'한 (반)주변부 국가들에서는

"단지 탐욕스럽고 게걸스러운 신분, 옛 식민지 권력이 베풀어주는 몫을 받는 데만 혈안이 된

비열한 계층만이 있을 따름이"며, "이 졸부 중간층은 위대한 이념을 만들어낼 능력도 없고

창의성도 없"이, 누가 엘리트 아니랄까봐 "유럽의 교과서에서 읽은 내용을 기억하지만,

유럽의 모작이 되기보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유럽의 희화가 되고 있다"고 말이다.

글쎄, 명실상부 대한민국 글로벌기업계의 수령이라는 이건희씨도 지구적 규모에서 보자면
대한민국 같은 반주변부 겸 포스트식민지 국가산 졸부 중간층 계급으로서,
유럽의 모작조차 될 능력이 없는 민족 부르주아지여서일까?

신년 화두랍시고 던진 말이 어쩜 저리 저렴하단 말도 아까울 정돈지 원.

이미 모멸스럽다 했지만, 에지간하면 블랙 개그거리로 추린다 해도,
정말 맹독성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어쨌거나 앞으로 두고 볼 일은, 오랫동안 같잖은 자부심 만땅으루다 늘어논 자뻑성 훈수 덕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역풍 속에 있는 유럽문명권(의 권력자들)처럼,
비록 직접 듣진 못했으나 모종의 언짢음마저 풍기는 그의 신년 훈수가

어떤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가져오겠냐는 점일 것 같다.

물론 이게 그저 "지켜보자"는 뜻은 분명 아니겠다. 다만, 이건희씨의 블랙코미디 같은 뻘소리 하나로
대한민국 주민들이 일거에 정신을 차릴 리야 없고, 무엇보다 죄다 그럴 수도 없겠지만,
적어도 나를 포함하는 상당수 주민들로선 되려, 정말이지 정신 바짝 차려야겠구나 싶어질 터라 그렇다.
이쯤 되면 본의 아닌 반어를 구사한 이건희씨의 한 마디에, 본의 아니게 반색해야 하는 건가.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단독사면으로 스스로도 제 정신이 아닌지,
엄하게 우리의 정신까지 굳이 챙겨주시는 이건희씨.
 

 

 

 

 

 

 

 

 


그가 정말 존나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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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1 02:49 2010/01/11 02:49

 

 

 

에밀리오님은 이 웹포스터 올린 포스트에다 장례식명을 왜 "국민장"이라고 해야 하냐셨죠.

 

이에 대해 magister님께선, 제가 이해하기론, 한국서 "국민" 호칭을 쓰는 덴

(다른 나라 국민이라고 안 그런 건 물론 아니지만) 거기에 반공주의적 감성이 "깊게" 새겨져 있는 만큼

일정하게 불가피하면서, 바로 그렇기 때메 전략적 의도가 담긴 거라고 보신 것 같고요.

 

(실은 국민장이란 위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랄하는 데 대해 쓴 글이라고 해서,

저 같은 사람도 해당되는 건지 순간 뜨끔했더랬슴다. 전혀 아니랄 수도 없겠더군요.ㅋ;;)

 

사실 따지고 보면 작년 이맘때 일어난 참사도,

그저 재개발이윤만 좆을 뿐인 삼성물산 소속 "국민"들,

이들과 함께 자산불리기에 패를 걸고 자신의 재산권 행사에 나선 "국민"들을 보호하는 데

(역시나 국민의 일원인) 경찰이 그야말로 서비스 정신을 불사르다 일어난 일이거니와,,

 

에밀리오님께 이미 댓글로 얘기했지만 장례식 명칭도

마치 장례식에 참가한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이란 뉘앙스를 깔고 있지요.

 

소위 국민적인 정서, 요구, 분노, 염원, 열망 등등의 표현들이

일견 거창해 보여도 당최 누굴 가리키는 건지 알 수가 없고,

그래서 실은 소통을 가장한 자폐성 독백의 용도로나 쓰일 수밖에 없는 건 이래서일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갈등하는 '두 국민'이 있단 걸 드러내려면 국민 호칭을 전략적으로 써야한다는 데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어요. 물론 어느 정도라고 한 건,

이런 전략이 '프레임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냐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진정한 국민"이 많아지면 저런 참사가 정말 안 일어날 건지,

아님 거꾸로 그래서 자꾸 저런 참사가 일어날 참인 건지에 대한 질문이 그 프레임 안에서 가능하겠냐는 거죠.

게다가 지금 국민이란 말은 명목상으로조차 '일단 대한민국 주민 전체'가 아니라

'선민' 개념에 가까워져가는 마당에 말이죠.

 

근까 국민을 새로운 집단주체의 형성, 세력화에 필요한

상징적 숙주로 삼는 거라 쳐도 그럴 만한 영양가가 있겠냐는 얘긴데요.

 

결국, 이런 잡설을 풀고 있는 "나"는 그럼 뭐냐.

근까,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라며 국민은커녕 시민이란 호칭조차

(물론 그 호칭에 걸맞는 부단한 '사회화 과정'을 동반하지만) 그저 법률상의 명목일 뿐

별 쓸모 없다고 여기는 저 같은 국민들한테, 장례식에 참석하고픈 욕망은 어떻게 설명돼야 하나.

앞으론 국민으로 회수될 수 없는 대중을 아우를 다른 명칭이 붙거나,

그런 명칭을 붙여야 할 텐데. 그게 현존하는 특정한 "국민대중"을 진정 아우르는 길이지 싶고..

뭐, 그렇다는 거죠.

 

 


그나저나 이번 주 내내 몹시 추울 거라던데, 이 날은 어느 정도일지 은근히 걱정이네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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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5 18:15 2010/01/05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