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의 반격

월옹논평 2009/07/29 13:19

Commentary No. 261, July 15, 2009


우파의 반격

("The Right Strikes Back!")




조지 W. 부시가 재임하던 시기, 라틴 아메리카 중도 좌파는 지난 2백 년 이래로 가장 큰 세력화를 이뤘다. 버락 오바마가 재임하는 동안에는 라틴 아메리카 우파의 복수가 벌어질 모양이다.

 

두 말할 것 없이 그 이유는 동일하다. 세계 정치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헤게모니 쇠퇴를 겪고 있는 미합중국의 복합적 위상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미국은 주제넘게 나설 수 없어졌는데도 동시에 모든 세력에게 자기네가 벌인 놀음판에 자기네 편에 서서 개입해주길 바라는 나라가 됐다.

 

온두라스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온두라스는 거만하고 완고한 지배계급이 오랜 동안 미국과의 긴밀한 연계 아래 주요 미 주둔군 기지를 두고서 라틴 아메리카 과두 체제를 확고히 떠받쳐온 기둥 중 하나였다. 자체 군사력의 신규충원은 신중하게 이뤄졌는데, 대중추수적인populist 감수성을 가진 장교들이 행여 오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대선에서는 마뉴엘 젤라야가 당선됐다. 지배계급의 지지로 당선된 그는, 역대 대통령들이 했던 대로 직무를 수행할 것으로 기대받았다. 이런 기대와 달리, 그는 좌편향 정책을 펼쳤다. 외딴 농촌에 학교를 세우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보건소를 설치하는 등 자국 인구 대다수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갈 만한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취임 초기 그는 미국과의 FTA를 지지했다. 하지만 2년 뒤, 그는 우고 차베스가 창설한 조직인 아메리카볼리바르대안(ALBA)에 참여했고, 그 결과 온두라스는 베네수엘라 산 석유를 저가에 공급받았다.

 

그러고서 젤라야는 개헌 추진단위 조성에 대한 찬반을 묻고자 자문형 국민투표 실시를 제안했다. 과두 세력들은 젤라야가 이 제안으로 재임을 노리는 것이라며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국민투표는 그의 후임이 뽑히고 난 다음날 치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군부는 왜, 대법원과, 입법부, 가톨릭 지도부의 지지로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여기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젤라야에 대한, 그리고 미국에 대한 그들의 시각이다. 1930년대, 미국 우파 진영에선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계급의 배신자”라고 공격했다. 온두라스 과두 세력에게 “계급의 배신자”는 바로 젤라야다. 본보기로 처단해야 마땅한 인물인 셈이다.

 

미국에 대해선 어떨까?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상당수 좌파 논평가들은 블로그에서 요란스레 그것을 “오바마의 쿠데타”라 명명했다. 이런 규정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젤라야도, 거리로 나선 그의 지지자들도, 심지어 우고 차베스나 피델 카스트로조차 이번 사건을 그렇게 단순화해서 보진 않는다. 이들은 모두 오바마와 미국 우파(정치지도자들 내지 군 인사들) 간의 차이에 주목하는 가운데, 훨씬 더 미묘한 뉘앙스가 담긴 분석을 거듭 내비쳤다.

 

이번 쿠데타를 가장 원치 않는 게 오바마 행정부라는 건 꽤나 분명해 보인다. 쿠데타는 오바마의 (대온두라스) 지원을 강제하려는 시도였다. 쿠바계 미국인으로 부시의 자문역이기도 했던 공화당산하 국제공화연구원 소속 오토 라이히처럼, 미국 우파의 핵심 인물들이 이를 부추겼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는 그루지야 대통령 사카쉬빌리가 지난 2008년 여름 남 오세티아를 침공했을 때 미국의 지원을 압박하려 한 경우와 유사했다. 그루지야의 남 오세티아 침공 역시 미국 우파와의 공모 아래 이뤄졌는데, 러시아의 군사 개입으로 재미를 보진 못했다.

 

온두라스 쿠데타 이후, 오바마는 계속 부대껴해왔다. 그리고 온두라스와 미국 우파들로선 현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며 만족을 표할 상황이 전혀 아니다. 그들의 분노에 찬 발언들을 보라. 쿠데타 집권세력의 외무장관 엔리케 오르테즈는 오바마더러 “un negrito que sabe nada de nada”라고 했다. 스페인어 “negrito”가 얼마나 경멸적인 의미를 지녔는지에 대해선 상당한 논란이 있다. 나라면 “쥐뿔도 모르는 깜둥이”라고 번역할 텐데, 어떻든 주온두라스 미 대사는 그런 모욕적 발언을 두고 날카롭게 항의했다. 오르테즈는 자신이 “불행한 표현”을 한 데 대해 사과했고, 타 부처로 전직됐다. 그는 온두라스 방송국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종적인 편견 같은 건 없어요. 전 미국 대통령이 된 그 제당공장 깜둥이를 좋아합니다.”

 

미국 우파의 경우 의심할 바 없이 (오르테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정중했어도 비난은 훨씬 더 거셌다. 공화당 상원의원 짐 드민트와 쿠바계 미국인인 공화당 대표 일레나 로스레흐티넨, 보수파 변호사 마누엘 에스트라다는 한결 같이 저 쿠데타가 그저 온두라스 헌법을 수호하려는 것일 뿐 쿠데타가 아니며, 따라서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우익 블로거 제니퍼 루빈은 지난 7월 13일 “온두라스: 오바마는 틀리고, 틀리고 또 틀렸다”는 제목의 포스트를 올렸다. 온두라스의 루빈이라 할 만한 인물인 라몬 빌레다는 7월 11일 오바마를 상대로 공개 서한을 띄웠는데, 거기서 그는 “미국에서 중대한 순간에 실수로 동맹국이자 우방을 버린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했다. 이러는 사이, 우고 차베스는 국무부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해놓은 상태다.

 

온두라스 우파는 젤라야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까지 이렇게 벌려놓은 판을 지속하려 들 것이다. 목표를 달성한다면, 그들로선 이기는 게임이 될 거다. 그리고 과테말라, 살바도르, 니카라과 우파들은 더 이상 우파가 아닌 자기네 나라 정권을 엎고자 온몸이 근질거려하는 가운데, 날개를 펴기에 앞서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온두라스 쿠데타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좀더 커다란 상황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우루과이도 그렇고, 특히나 칠레의 경우, 올해나 내년 선거에서 우파가 승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아르헨티나, 칠레, 파라과이, 우루과이를 기본으로 브라질, 볼리비아, 페루까지 아우르는) 대륙 남부 출신의 걸출한 세 분석가들이 책을 냈는데, 이 중 가장 덜 비관적인 아르헨티나 정치학자 아틸리오 보론은 “쿠데타의 무익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브라질의 사회학자 에미르 사데르는 라틴 아메리카가 “반反신자유주의의 심화냐, 보수적 회귀냐”라는 선택과 마주한 상태라고 말한다. 우루과이의 저널리스트인 라울 지베치는 자신의 글 제목을 “돌이킬 수 없는 진보주의의 타락decaence”으로 잡았다. 사데르 식 대안이 너무 때늦은 것이라는 생각을, 그는 효과적으로 피력한다. 각각 브라질과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대통령인 룰라와 바스케스, 페르난데스, 바첼렛이 펼친 취약한 경제정책들은 (그가 보건대 이탈리아 총리 베를루스코니의 스타일을 따르는) 우파를 강화해온 한편으로 좌파는 분열시켰다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좀더 단도직입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좌파가 집권한 건 미국이 처한 혼돈과 경제적으로 좋았던 시절이 맞물린 덕분이었다. 지금 라틴 아메리카 좌파는 미국의 혼돈과 여전히 마주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반대 상황에 처해 있다. 그리고 현 집권세력이라는 이유로 이들에 대한 비난은 거세지는 중이다. 사실, (공황에 들어선) 세계경제에 대해 중도좌파 정부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거의 아무것도 없건마는 말이다.

 

온두라스 쿠데타에 대해 미국은 추가로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글쎄, 물론 할 수야 있다. 무엇보다, 저 쿠데타를 쿠데타라고 공식 천명할 수가 있다. 이럴 경우, 미국 법률에 따라 온두라스에 대한 모든 지원은 중단될 것이다. 펜타곤이 지속적으로 온두라스 군부와 맺어온 관계를 단절시킬 수도 있다. 주온두라스 대사를 소환할 수도 있으며, 젤라야 집권 세력과 쿠데타 지도부 간 “중재”에 나서는 대신 그 어떤 협상도 없다고 못박을 수도 있다.

 

오바마는 왜 이런 일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그 이유 또한 정말이지 간단하다. 그에겐 이 사안 외에 엄청나게 긴급하다 할 만한 현안이 적어도 네 가지다. 소냐 소토마요르의 대법원 판사 임명 건에, 계속해서 골치를 썩이고 있는 중동 건이 있으며, 연내에(8월 아니면 늦어도 12월까지) 통과시켜야 하는 의료개혁법안 건, 공개 조사 압력이 갑작스레 엄청 치솟는 중인 부시 행정부 당시의 (인권 및 고문 관련) 불법 행위 건이 있다. 유감스럽지만, 온두라스 쿠데타 건은 오바마에게 다섯 번째 현안이다.

 

오바마가 부대껴하는 건 이래서다. 이러면 아무도 웃지 못할 것이다. 젤라야가 대통령직에 복귀할 수 있을진 몰라도, 그렇다 한들 지금부터 (11월 27일로 예정된 대선까지) 고작해야 석 달이다. 너무 늦는 셈이다. (온두라스 북서부에 인접한) 과테말라를 눈여겨 보라.



이매뉴얼 월러스틴

 

 

 

원문보기: http://fbc.binghamton.edu/261en.ht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7/29 13:19 2009/07/29 13:19

  EM님의 [마르크스에게... 역사란?] 에 관련된 글

 

알바 마감하고도 이런저런 일로 뮝기적대다, 한 일주일 전에야 (제가 달았던 댓글에 대한 나름의 입장인 것으로 보이는) EM님 글을 읽었습니다. “마르크스에게.. 역사란?”이란 포스트하고 “이론이란,, 그리고 지식이란” 포스트요.

 

포스트를 포함해, 그와 관련해 오고간 댓글들까지 읽으면서 솔직히 여러 모로 좀 심난해졌습니다만.. (게다가 아래에 댓거리 격으로 글을 써놓고 보니 스크롤 압박까지ㅠ;)


**


거두절미하고, 폴라니 아저씨 얘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제 말’ 대신 이른바 대가라 불리는 아저씨의 말로 글머리 여는 게 별로지만, 뭐 어쩔 수 없죠. EM님의 관련 글을 읽다가 문득, (아마 익히 읽어보셨을 듯도 합니다만) 폴라니가 1933년 무렵에 썼다는 미간행 유고 “마르크스 철학에 대한 강의교안”의 내용이 떠올랐거든요(폴라니, 홍기빈 옮김, 2002).

 

그래서 다시 함 찾아봤어요. 이 교안에서 폴라니는 맑스주의 철학이 “진보적”이며 “본질적으로 혁명적인 철학”인 건 “오늘날 우리가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을 우리 시대에 국한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고 합니다. “현재의 사회를 넘어선다면 새로운 지식의 시야가 열릴 것”이라고 덧붙이면서요.

 

폴라니에게 맑스주의란 “따라서.. 하나의 체계라기보다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맑스주의 사상, 혹은 방법으로서의 맑스(주의)란 “우리에게 어떻게 진실되고 적절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지 그러한 지식의 항목들을 쌓아놓은 더미가 아니”라는 거죠.

 

(맑스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은근히 맑스와 ‘척을 지우려는’ 최근 낌새와는 달리) <거대한 변환>을 읽고서 폴라니를 맑스의 대체재가 아닌 훈늉한 자양강장제로서 받아들였던 저로선, 이 구절을 보고는 폴라니에 대한 호감지수가 더 상승했더랬죠. 저 정도 통찰이면 그를 통해 맑스(주의)가 냈던 목소리들이 ‘문헌학적 복기’를 넘어 한층 더 풍요로워질 수 있겠다 싶어서요.

 

특히 폴라니가 (사실 개인적으론 ‘반反철학적’ 사상이라 하는 게 더 적절하다 봅니다만, 어쨌거나) 맑스(주의) 철학이 “우리가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을 우리 시대에 국한된 것으로 간주”하는 고로, 실은 방법에 가깝다고 한 대목은 적어도 제겐 ‘두텁게’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만. 왜 그런지 EM님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되짚어보면서 밝혀 보죠.

 

님은 맑스의 이론 자체가 “타인의 "이론"이 "역사"를 올바르게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결과”인 만큼, 맑스의 “"이론"을 "역사"와 대비시키는 것은 헛된 짓”이라셨어요. 이를테면 월러스틴 옹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얘길 텐데, 과연 그럴까요? 맑스 텍스트에서 ‘이론(화 작업)’과 ‘역사’가, 폴라니가 말한 맑스(주의)적 “방법”의 내적 성분으로, 마치 뫼비우스의 띠마냥 ‘표리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한’ 상호되먹임 관계라는 걸 월러스틴 옹이 몰랐겠냐는 겁니다. ‘이론’과 ‘실제’를, 무슨 제 꼬리를 못 물어 안달난 강아지 새끼마냥 뺑뺑이 돌리기 일쑤인 과학적 부르주아 지식의 생산자들(=소위 주류 사회과학자들)처럼 말이죠.

 

직접 안 물어봐서 단언까진 못 하겠지만, 최소한 월러스틴 옹이 부르주아 사회과학 진영에서 곧잘 들이대는 (실증-경험주의적) ‘검증’의 잣대 따위로 맑스의 이론(화 작업)에 토단 게 아닌 건 분명하지 싶네요.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EM님께서야 곧바로 “그래, 아는 놈이 그렇단 말야?”라고 대꾸하시겠죠?^^ 그럴 줄 알면서도 굳이 이렇게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제가 보기엔 EM님이야말로 맑스의 위대한 성취라 할 저 “방법”, 즉 이론(화 작업)과 역사(적 개입)의 부단한 상호되먹임 속에서 ‘비판의 무기’를 벼려내는 일과 관련해 월러스틴이 던진 질문을 제대로 “속류화”하잖았나 싶어서요(사족일진 몰라도 뭐 제가 수도원의 사제도 아니고, 속류화란 표현이 적절한진 꽤나 의문인데, 차라리 ‘희화화’라는 표현이 더 낫잖나 싶네요).

 

님의 월러스틴 비판 자체에 반발하는 게 아녜요. 월러스틴 스스로 자신의 입론이 흔히들 지칭하듯 ‘론’이 아니라 분석이며 차라리 이론(화)에 대한 요청이라고 하는 마당에, 게다가 자신의 분석 작업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도 미지수라고 스스로 밝히는 마당에, 날릴 게 있음 날려줘야죠. 다만 날릴 땐 날리더라도, 스스로 세운 허수아비 쓰러뜨리듯 하진 말았음 싶슴다. ‘실체’는 정작 의연한데 허수아비 쓰러뜨려 뭐할 거냔 거죠.

 

전 월러스틴이 EM님 말씀처럼 “맑스(주의자들)의 논의를 “프롤레타리화”로 단순화한 뒤”, ““실제 자본주의 현실”에서는 그런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보지 않아요. 아니, 그렇게 볼 순 없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월러스틴이 프롤레타리아화 자체를 부정했던가요? 그렇지 않죠. 그게 맑스의 “단순무식한 주장”이라 한 적은 더더군다나 없고요. 외려 그게 장기적 추세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행되는 과정임은 월러스틴도 수긍합니다. 다만, 근대 자본주의 세계가 역사적으로 굴러먹어온 궤적을 보건대 그 과정이 (임금노동 말고는 토지나 여타 생활수단이 부재하다는 식의) 통상적 정의처럼 이뤄지진 않더라는 겁니다. 월러스틴의 요지는, 프롤레타리아화한 노동력의 판매자들이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주요 제도 중 하나인 (‘가족’으로 한정되지 않는) 가계구조의 일부로 연결돼 있다 보니,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화 추세의 상쇄 요인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는 노동력 비용 압력을 낮춘다는 의미에서 자본가들로선 외려 축적상의 부담을 덜(=노동자들한테 전가할) 수 있었다는 거죠.

 

중요한 건 이런 주장으로 소위 ‘좌파’들이 무슨 덕을 볼 수 있겠냔 점일 겁니다. EM님께선 맑스가 공들여 쌓은 탑을 허무는 헛짓이라고 하지만, 저는 외려 월러스틴이 “방법”으로서의 맑스를 자칭 맑스주의자들은 얼마나 충분히 밀고 나갔던 건지 자문해보자는 쪽이었다고 봐요. 즉, 역사적 자본주의에 독특한 장기 추세인 프롤레타리아화 과정을, (반)프롤레타리아라 불릴 만한 주체들이 좀더 효과적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할 “투쟁의 장소”(들)로서 바라보면 어떻겠냐고 했다는 거죠. (대체로 구미권, 혹은 중심부/반주변부 지역) 산업(남성)노동자들한테 사실상 “특권적 지위”를 부여해온 ‘경화된’ 개념적 구성물로서가 아니라요.

 

이렇듯 프롤레타리아화 과정을 (사실상 이론적으로) 특권화된 노동자상을 도출하는 논리적 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극복을 겨냥한 현실적 운동이 잠재하는 “투쟁의 장소”들로 바라보면, 가변자본화 혹은 잉여인구화 압력(혹은 폭력)에 노출돼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투쟁 방법과 전략상의 이유로 빚어온 불필요한 (심지어 적대로도 치달았던) 반목과 분할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완화하는 ‘정치적 효과’가 있잖겠냐는 겁니다.

 

월러스틴이 이같은 주장을 하게 된 데 아프리카 대륙의 근대(적 식민)화 연구(와 일정 정도 관여하기도 한 이곳의 사회주의, 아프리카주의 운동) 경험이 크게 개재돼 있음은 잘 알려져 있죠. 아리기도 이 지역 노동인구의 형성과 이동, 이주노동 양상에 대한 “현장조사”로 세계경제 내에서의 임노동자화가 가계구조와 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걸 밝힌 바 있고요. 노동력 공급자의 임노동자화가 자체 논리에 따라 근대 자본주의의 장기 추세를 보인다 해도, (통시적으로뿐 아니라 공시적으로도) 역사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임노동자 형태가 가장 일반적인 노동통제 방식이라는 건 사실이 아니며 외려 ‘플렌테이션’ 노동이라고 통칭되는 강제노동 내지 근대적인 노예-소작노동이 가치화 과정에 아주 쏠쏠하게 기여했음을 강조했던 것도 그래서구요.

 

요컨대 역사적 자본주의의 성립조건이자 그 발전의 산물이기도 한 근대 식민지 창출과 더불어 제도화된 광의의 플렌테이션 노동통제양식이 자본축적(과 그에 따른 내적 모순의 ‘해결’)에 기여한 바는, 흔히 알려져 있다시피 ‘해외시장’으로서 기여한 바보다 더 크다고 하는 것만으론 부족할 만큼 압도적이었다는 건데요. 예컨대 ‘캘리포니아학파’ 중에 가장 발군으로 알려진 케네스 포메란츠의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이 월러스틴/아리기 식의 세계체제 분석틀, 그 중에서도 프롤레타리아화 과정을 상이한 유형의 노동자 주체가 만들어지고 정치적 연합이 펼쳐질 ‘투쟁 장소’로서 이해하자는 제안에 일정하게 기대고 있음은 부인하기 힘들 겁니다. (16세기 유럽 자본주의 세계의 발흥이 근대식민지에서의 노동력/자원 착취와, 당시 압도적 위상을 가졌던 중화권 세계-경제가 마침 인도양 언저리에서 발을 빼는 바람에 생긴 '운빨', 이 두 요소의 찰떡결합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거대한 분기> 같은 경우는 제가 보건대 맑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 개념과 세계체제 분석틀을 지적 씨줄과 날줄로 엮어 짜낸 매력적인 피륙이랄 수 있지 싶고요.

 

이런 일련의 ‘성취’ 덕분에, 근대 자본주의 세계가 (포메란츠에 따르면) ‘우연찮게’, 그리고 오롯이 식민지화 덕분에 하나의 체제로 자리잡고선 어떻게 굴러왔다곤 하나 그게 영구불변의 유토피아라며 설레발쳐온 것관 달리 실은 꽤나 희한하고, 월러스틴 같은 경우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진보적’이긴커녕 ‘전지구적인 도덕적 붕괴 과정’이라고 혹평할 정도로 엽기적이기까지 했다는 걸 ‘좀더 체계적으로’ 알 수 있게도 됐달까요.

 

어제 서점에서 박준성씨가 쓴 신간 <노동자 역사 이야기>를 봤습니다. ‘좌파적’ 시각에서 한반도 노동운동사를 개괄하는 책이더군요. 근데 목차를 보니 ‘근대일본령 조선기’를 전후한 시기에 등장하는 노동자는 ‘공장’노동자였던 강주룡씨 정도가 다더라구요. “잃어버린 노다지 구한말 노동운동”이라는 장이 따로 있긴 하지만, 이 역시 ‘산업노동자’의 원형을 과거로 소급해 투사하는 느낌이 강하구요. 개인적으로, 한국 상황에서 나름대로 좌파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이 정도 역사적 접근이라도 시도한 게 어디냐 하고 말기엔 뭔가 씁쓸함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근대일본령 조선기의 ‘노동자’를 그저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로만 한정짓는 게, 바꿔 말해 당시 일본령 조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소(작)농 형태로 노동력을 투하(즉, 착취당)했던 농업 인구는 임노동자가 아니(거나 그에 ‘미치지’ 못하)니 사실상 논외로 취급하는 게 과연 타당한 걸까 싶더란 거죠.

 

이와 관련, 김준보라는 원로 농업경제(사)학자는 그래서 근대일본령 조선이란 식민주의 지배연합 국가의 탄생을, “지대의 이윤화”라는 테제를 통해 농업자본주의적 생산의 제도화 과정으로 설명하려 하죠. 물론 이 테제가 함의하는 바는 소작농들이 근대적 식민지화 과정 속에서 미성숙한 노동자 내지 산업노동자의 전사前史 따위로 그저 ‘온존’하는 게 아니라 (상층지주들의 근대적 농업자본가로의 변신 과정과 표리를 이루는) 엄연한 농업‘노동자’로 질적인 변환, 즉 자본주의적 포섭을 겪는다는 겁니다.

 

결국 외견상으론  예전과 형태적으로 별다를 게 없어 뵈는 일본령 조선인들의 노동/생산 과정이 어떻게 가치화 체제의 내부로 ‘양식화’하는지 해명하는 게 중요하겠죠. EM님 논증 방식대로면, 이때 (아마도 반-프롤레타리아가 대다수였을) 일본령 조선기 농업노동자들의 현존은 단순히 틀렸거나 적어도 진위 판별이 불가한 “현실”이 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말 그런가요? 근대일본령 조선기 소작농 내지 농업노동자들이 농업자본가들의 이윤추구 행위에 체계적으로 포섭돼 있었음을 규명하는 작업이 아예 틀렸거나, 그렇게나 아예 불가능한 일이냔 겁니다.

 

제가 보기엔 안 해서 못 했을 뿐이지, 이런 작업은 예컨대 포메란츠가 한 식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EM님으로선 마뜩찮겠지만, 프롤레타리아화에 관한 월러스틴의 ‘질문’이 근대 식민지란 역사적 시공간에서 이뤄진 노동과정의 자본주의적 재편 양상을 살피는 데 꽤나 쓸모가 있는 것도 분명한 듯싶고요.


***


맑스의 “방법”이 역사적 접근과 관련해 지닌 쏠쏠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맑스가 말하는 ‘역사’가 이른바 “역사 없는 역사성”에 머문 거 아니냔 지적은 EM님도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이를테면 맑스가 자본주의가 역사적 체제로서 등장했다고 한 16세기부터 맑스가 한창 활동하던 19세기까지 자본주의는 실제로 어떻게 굴러갔는지, 또 20세기 이후 자본주의는 19세기까지의 자본주의와는 어떻게 다르면서도 같은지 하나로 꿰어볼 수 있었냐는 거죠. 엄밀히 말해 이에 관해 어떤 이론화를 시도했다기보다는, 가치형태론 같은 이론화 작업을 중심으로 그같은 이론화의 (중요한) 단초를 마련했을 뿐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나 해요.

 

본원적 축적에 관한 이야기가 역사적 자본주의란 어떤 필연의 산물이라기보단 꽤나 억지로 만들어진 것임을, 적어도 노동자가 된 인민들이 스스로 원해서 탄생한 체제는 아님을 아는 데 도움이 됐고,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관한 언급의 경우 19세기 유럽산 부르주아들이 스스로 믿고팠던바, 자본주의가 모든 역사적 체제들이 밟게 마련인 ‘이행’의 종착점이란 따위 랑케식 역사주의(혹은 헤겔식의 ‘세계사적 진보’)를 위태롭게 할 수는 있었다 해도,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했다는 겁니다.

 

이건 사실 ‘19세기’라는 제약조건 아래 계몽사조의 자장 안에 있던 맑스로선 불가피한 게 아녔을까 싶기도 해요. 그 정도까지 밀고 나간 것만도, 그가 발딛고 있던 시대상의 제약을 감안하면 대단했던 거라 할까요? 오히려 문제는 이른바 맑스의 후예라는 이들이 맑스의 방법에 얼마나 충실했냐는 걸 텐데요. 역사 없는 역사성에 관한 질문들이, 맑스의 텍스트를 ‘온전히’ 읽는 걸로만 답이 나올 그런 질문일까요? 맑스에 대한 같잖은 조롱과 폄훼는 차치하고서라도요.

 

글쎄요, 전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맑스문헌학 전문가가 되려는 게 아닌 이상에야, 맑스를 충실히 읽고 난 뒤 그가 애써 구축한 ‘이론’에 이후 제기된 문제를 ‘덧붙이면’ 될 사안일까도 싶고요. 제가 보기에 맑스의 이론(화 작업)은, 아니 맑스의 “방법”은 그런 게 아니니까요. 이론화의 틀을 달라진 물적 조건에 조응해 아예 다시 짤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활짝 열어두는 것이야말로, 맑스 스스로 추구한 '무자비한 비판', 즉 체제가 수호려하려는 지배적 척도의 '무근거성'을 드러내는 필요조건이라면 더더욱 그렇잖나 해요.

 

 이리 보면 예컨대 가치형태론의 분석적 유효성을 둘러싼 문제제기도 맑스의 특정 입론의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달리 보면 맑스의 "방법"에 한층 더 충실해지자는 요청으로 볼 수 있겠죠. 가치형태론이 '위기'라는 얘기가 나온 것 자체가 달리 보면 축적(의 폭력)을 떠받쳐온 가치화 기제가  근본적으로 뻐걱거리고 있다는 어떤 위기의 징후로 볼 수도 있단 겁니다. 이 와중에 그런 건 19세기'에나'; 통하는 거란 식의 조야한 뻘소릴 피하기 어렵더라도, 마냥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란 얘기죠. 바꿔 말해 가치화 기제가 뻐걱거리는 징후라면, 이건 외려 반가운 소식 아니냔 건데요.ㅋ 그렇다면 정작 필요한 건 가치론을 의롭게 '방어'하는 게 아니라, 가치론의 유효성을 고려하면서 이같은 징후에 걸맞는 이론화 작업에 '다시' 나서는 일이 아닐지. 전 방법으로서의 맑스주의가 지닌 상대적 강점 따위가 아닌 '절대적 힘'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해요. 맑스가 이런 방법을 보여줬기에, 이 아저씬 시대의 산물인 동시에 시대를 넘어설 위대한 사상가 반열에 오를 수 잇는 걸 테고요.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님의 진술은 읽고서 솔직히 좀 뜨악했더랬습니다. 위악적 반어인가 싶어도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이게 대체 뭔 소리래 싶었어요. 뭐, 맑스도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며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 타도돼야 한다”고는 했다지만, “그러나 이론도 대중을 사로잡는 순간 물질적 힘이 된다”고 했던데.. 전 이 말이 함의하는 바가 실천우위도, 이론우위도 아닌 실천과 이론의 부단한 되먹임이라는 얘기로 읽히거든요. 이론이 '만능열쇠'야 하냐 마냘 떠나, 전 이게 (이론의 '실천적 유효성'을 포괄하는) 이론의 존재론적 기초라고 봅니다만.

 

저 역시, 이를테면 정성진 선생이 무슨 훈고학 하듯 ‘고전적 맑스주의’야말로 정답인 양, 그래서 여타 논의들은 잠재적인 기각대상인 양 다루는 게 마뜩찮아 그런지, 이론을 중시하는 것 자체에 프리미엄을 부여할 맘은 없어요. 다만 이론과 실천이 별 관계가 없다고까지 하는 건 (물론 이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닐 텐데도 불구하고) 주류 사회과학자들이 현실 내지 역사를 이론의 오염원 내지 이론을 캐낼 원석인 양 취급하는 거하고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님이 말씀하시는 지식생산자로서의 “특권”이 이미 댓글서도 지적됐지만 굳이 스스로 천명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이론도 대중을 사로잡는 순간 물질적 힘이 된다”는 맑스 말마따나 결국 대중‘화’함으로써 사후적으로 ‘조성’되는 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때 말하는 대중화가 단지 머릿수로 환원되는 게 아니라는 건 굳이 상론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요. 어쨌거나 댓글에 달린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 제대로 된 소통엔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몇몇 질문/답변들은 님의 든 비유를 고대로 돌리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미장공이 재즈댄스까지 잘 춰야 하는 건 물론 아니더라도, 재즈댄스의 동선에 걸맞는 작업이 미장일만 잘 안대서 이뤄질 순 없는 것 아니냐. 사정이 이러하다면 미장일 마무리가 미장공 보기에 아무리 깔끔한들 그건 기껏해야 미장공의 에고만 한껏 부풀리고 말 공산이 크다.’


님께서 말씀하시는 특권은 차라리 ‘특별한 능력’이라 하는 게 더 나아 보이는데, 별 영양가 없는 용어 선택으로 의아함 내지 불통의 소지만 키운 건 아닌지도 모르겟습니다. 물론 그 능력이란, 여타의 특별한 능력들과 조성하는 (그럼으로써 ‘필요한 경우’ 스스로 새로워질) 능력까지 이미 포함하고 있는 걸 테고요.


 


음,, 좀더 짜임새 있고 압축적으로 님의 글에 대응하려 했지만, 그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통에 그렇게는 못 했네요.;; 이른바 ‘과소소비론’(에 대해 맑스가 했다는) 비판이나 역사적 사회주의의 위상, “역사적”이란 게 뜻하는 바를 놓고 펼친 님의 나머지 주장들에 대해서도 (여전히ㅋ) 할 말이 많지만, 시간이 되는 대로 나중에 마저 코멘트해야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7/29 13:01 2009/07/29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