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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너무 놀았던것같네요.

이번 챕터도 나눠서 올립니다.  너무 길어서 몇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수는 사랑의 설교자가 아니다


「기도」에 관한 예수의 발언중의 하나를 이야기한 것은, 그것이 예수라는 사나이가 유대교에 대하여 어떠한 반항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보여준 하나의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예수는 카디쉬를 공격대상에 올렸다. 그러한 방식으로 예수는 유대교의 기본적인 교조(敎條)의 하나를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유대교의 다른 기본적인 교조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비판을 퍼부었다. 쉐마앙고백에 대해서도, 모세의 십계에 대해서도 그랬던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인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또 내 몸같이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이 말은 예수가 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말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 말이야 말로 예수의 가르침의 근본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 말은 예수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논적(論敵)의 한 사람인 율법학자가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라는 사나이는, 이러한 종교적인 교조를 화려하게 입에 올리고 그것으로 다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단순한 사나이가 아니다. 본시 예수는 현대의 휴머니즘을 좋아하는 그리스도교도와 같이 무턱대고 사랑, 사랑하면서 그것을 내세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예수의 언동의 본질을 잘 추상하여 포착해 보면 사랑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지만, 예수 자신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알아 두는 게 좋겠다. 중학이나 고교의 시험에서 예수의 종교는 곧 사랑의 가르침이라고 연결하면 ○를 준다는 따위의 일은 이제는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본시 「예수의 종교」 따위는 없으며, 예수는 종교지배의 사회에 대해 반항한 사나이였다.

복음서에서 「사랑」 또는 「사랑한다」는 단어가 나오는 경우에 「귀여워한다」든가 「좋아한다」든가 하는 가벼운 뜻으로 사용된 두세 가지의 경우는 별도로 하고, 말하자면 방금의 예와, 그의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구절의 전후부분만이 예수의 발언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태오나 루가가 그 자료에다 덧붙여 쓴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사랑」종교라는 교의적(敎義的) 측면에서 예수의 말들이 해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 자신은 이와 같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두 군데만 하더라도 둘 다 당시의 유대교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논평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때 한 사람의 율법학자가 예수에게 와서 물었다.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마르코 12:28, 루가 10:25)

하나의 가치의 체계가 만들어졌을 때, 그 합리성의 기준을 지탱하는 기초적인 척도를 사람들은 반드시 구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모든 합리주의에 자연적으로 따라다니는 발상이다. 그리하여 고대사회에 있어서 합리주의의 전형의 하나인 유대교 법체계에 봉사하는 율법학자 사이에서는 율법의 계율 중에서 가치수준을 정리하여 「큰 계율」과 「작은 계율」로 분류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되어 있었다. 어느 것을 어떻게 세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의 유대교회당에서는 율법전체에는 613개의 계율이 있다는 식으로 배우고 있었다. 그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계율인가 하는 물음은 그들 사이에서는 종종 논의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그리고 결론도 어느 정도까지 공통적으로 되어 있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예수보다 2, 30년 전의 랍비에 관해서 전해지고 있다.

어느 이방인이 랍비 ․ 샴마이에게 와서 자기가 한쪽다리로 서 있을 동안에 율법전체를 얘기해준다면 유대교로 개종하겠다고 조롱하듯이 말했다. 샴마이는 몽둥이로 이자를 쫓아버렸다. 그래서 그는, 샴마이와 대립하는 또 한 사람의 랍비 ․ 히렐에게 가서 똑같이 물었다. 히렐은 대답했다. “자기가 싫어하는 일은 이웃에 대해서도 안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며, 다른 것은 모두가 그 해석에 불과하다. 가서 이것을 배워라”라고.

또 기원 후 2세기 초의 제 2차 유대독립전쟁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랍비 ․ 아키바도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자기 몸처럼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이야 말로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포괄적인 기본계율이다”

이와 같은 것이 말하자면 상식화되어 있는 세계에서 율법학자 한 사람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계율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예수가 아니더라도 그런 것은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고 싶을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때 율법학자가 예수에게 질문했을 때에는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계율인지 너 나름대로의 견식을 가지고 있겠지하는, 아니꼬운 생각이 이면에 감추어져 있었을 것이다. 루가 복음서의 저자는 율법학자가 「예수를 시험하여 말했다」고 되어있지만, 그 말이 맞지는 않더라도 동떨어지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질문에 방심하고 대답하게 되면, 개개의 율법조문에 대해서 아무리 비판해 보아도 유대교 법체계의 기초구조는 승인하고, 그 전제 위에서 사물을 생각하는 꼴이 되고 만다. 예수가 비판하려고 한 것은 바로 이 기초구조인 것이다.

그런 것은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을 듣고 율법학자는 옳다구나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자기가 선생에게서 배운 것을 늘어놓는다.


「그것은 물론,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앞에 말한 히렐이나 아키바의 발상과 닮은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여기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나란히 되어있는 점이 다르다고 생각된다. 히렐이나 아키바의 경우, 물론 그들도 당연히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강조하나, 이와 같이 이웃에의 사랑과 동시에 가지런히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를 들면, 예수당시의 유대교문학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색채가 있는 「12족장의 유언」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가운데 「잇사칼의 유언」이라는 장에서 “아들들아,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주와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식으로 율법을 중심으로 하여 이 두 가지를 나란히 하고 있고, 또 “나는 마음을 다하여 주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 왔다. 아들들아, 너희도 그와 같이 하라”라든가, 「단의 유언」에는 “생명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고, 또 성심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뒤에 기술하겠지만, 원시 그리스도교단 중에는 율법학자와 같은 수련을 겪은 자도 상당히 존재하고 있었고, 이런 자들이 교단의 이론가가 되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들이 사상적 계보의 하나로서 계승하고 있었던 것이 「12족장의 유언」이다. 여기서도 예수와 상관없이 유대교로부터 그리스도교로 계승되어 가는 요소의 하나가 있다. 이런 종류의 말투가 종교적 상식으로서 퍼져 있는 세계에 비판적인 쐐기를 박아간 예수인데도 그리스도교는 이와 같은 말을 자기들의 간판으로 채용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율법학자가 예수에게 답하면서 자기들의 유대교 신앙의 상식을 표현한데 불과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전승되는 동안에 어느새 질문한 자와 답한 자의 관계가 바뀌어버렸다. 즉, 율법학자에게 무엇이 중요한 계율인가라고 물은 예수가 자진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말한 것이 되어버렸다.(마르코 12:28 이하, 마태오도 같다. 이 점에서는 루가가 원래의 문답을 잘 전하고 있다.) 거기에다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토양을 떠나서 세계 종교로서의 독자적인 전통을 가지면서부터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의 사랑이야 말로 예수의 독특한 주장이고,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근본정신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사랑을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물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랑의 정신을 남에게서 배웠다면, 너무 자랑스럽게 이것이 우리의 독자적인 본질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말한다면 유대교도가 의외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들이 오랫동안 걸려 공통의 인식으로 만들어 낸 자세를 그리스도교도가 차용해 갔을 뿐 아니라, 마치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교의 전매특허인 것처럼 선전하니, 이렇게 되면 불평 한 두 마디는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예수는 어떠했는가. “당신이 그런 것쯤은 알지 않소”라는 말을 듣고 율법학자가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을 늘어놓은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좋지요. 당신같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구태여 나에게 질문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을 진심으로 실천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말을 한 예수는 복잡한 웃음을 뱃속에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대개 체제내적인 규범의 원칙은 그것을 진심으로 실행할 수 없을 때에만 무난한 간판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어떠한 대학에도 「영원한 진리를 탐구하며」 따위의 상투문구를 장식해 놓고 있는 것이며, 경찰은, 시민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고 법 앞에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좋지 않은가. 진심으로 실천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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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복음서 개개의 전승에서 그려진 장면은 전승자나 편집자의 주관이 그려낸 상(像)일뿐더러 대개의 경우(후술하는 바와 같이 마르코의 경우는 별도지만) 그들의 호교론적 의도에서 만들어 낸 상이니까, 그대로 신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발언이 역사적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행해졌을 리는 없는 일이니까, 개개의 장면이 정확하게 전해졌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삼는다면, 그러한 예수의 발언들이 역사적 상황속에서 이야기되었다고 하는 것은 확실하다. 어떠한 장면에서 이야기 되었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장면이 존재하지 않은 가운데 이야기된 것이라고 간주해 버린다면, 그것은 더욱 큰 잘못이 된다. 자그마한 장면들 즉 개개의 말이 누구를 상대로, 어느 도시에서, 또는 마을에서, 어떤 억양을 머금고 이야기한 것인가 등등은 대개의 경우 확실히 파악할 수 없다-단 상당히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해둘까-. 그러나 좀 큰 장면, 즉 전체의 역사적인 상황에 관해서는 우리가 또렷하게 알고 있다. 이른바 역사적 대상황은 물론이요, 좀 더 작은 상황도-예를 들면 앞서 거론한 「기도」에 관한 예수의 발언에 대해서 말한다면, 「기도」가 당시의 유대교사회에서 어떻게 올려지고, 어떠한 사회적 위치를 지니고 있었는가-하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다.

교회적인 설교속에서 이른바 주기도문이라는 데 대한 해설의 방식에 귀가 익은 사람이라면, 앞서 전개한 나의 설명에는 놀랄 것이 틀림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예컨대 카디쉬의 기도가, 아니 카디쉬만이 아니라 그것보다 몇 배 몇 십배 복잡기괴한 기도의 체계가 시민들의 생활을 짓누르고 있었던 1세기 당시 팔레스티나의 종교적 상황등은 거의 모르거나 무시해 버리고, 「주기도문」을 보편타당한 기도의 모범으로 해설해 버린다. 그러나 1972년 5월 현재 오끼나와 해방, 복귀반대를 외치면 누구도 이것이 역사적 조건을 모두 빼버린 오끼나와와 일본의 관계에 관한 발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므로, 당연히 일본 자민당 정부의 「오끼나와 반환」과 현재 오끼나와 지사인 야라(屋良)정권을 중심으로한 「오끼나와 복귀」의 흐름에 대한 자각적인 비판과 반격인 것으로 인식된다-1세기경 팔레스티나의 유대인이 그 말을 들었다면 당연히 예수는 카디쉬를 의식적으로 바꾸어 말하며 전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때문에 예수는 항상 경건하고 완고한 유대교도의 분격을 산 것이지, 보편타당한 기도의 모범만을 말한 정도라면 살해되기까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의 말이 나오게 된 개개의 장면을 엄밀하게 환원해서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더라도 그 말이 나오게 된 전체적인 상황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알 수가 있다면 개개의 장면에 대해서도 그것이 비꼬는 것이었는가, 분노를 폭발시킨 것인가, 분노를 참고한 것인가 등등을, 상상한 정도까지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을 향해서 튀어 나왔을 때는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행동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그리고 예수의 말을 행동의 한 단면으로서 포착하는 사람은 한 걸음 나아가 예수의 활동 전체도 그 역사적 상황에 대결하는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예수가 왜 살해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권력에 의해 체포되어 살해된 반역자였던 것이다. 권력자들 측에서 말한다면 아무래도 붙잡아서 죽여버리지 않으면 안 될 사나이였던 것이다. 그 삶과 활동은 부드럽게 설교하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에 관한 개개의 전승을 역사의 장에 되돌리면서 파악해 가야한다. 고기를 물에 되돌리는 것과 같이, 그것은 역사적 상상력의 문제이다. 그리고 명백하게 말해두지만, 역사적 상상력은 결코 역사가가 멋대로 주관을 도입하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역시 주관,객관이란 축으로는 건드릴 수 없는 과제, 곧 역사적 진실에 어떻게 육박 할 수 있는가 하는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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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챞터는 길어서 두개로 나누어 올립니다.

   

예수의 서술 방법


나는 여기에서 「주기도문」의 전승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예수가 「기도」라는 것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가를 해설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러한 곳에 예수의 발상의 하나의 특색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하고 소개했을 따름이다. 예수의 사상과 삶의 모습을 파악하려면 이와 같이 그가 살고 있는 장(場)에 뒤얽혀 있던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서 그를 파악하는 이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역사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귀착된다. 예를 들면 추상적인 말이라고 할지라도,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의 말을 포착하려고 하면 역사란 무엇이냐고 하는 물음에 귀착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예수의 그와 같은 활동을 그리려고 할 때 이 물음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 물음을 빼놓은 상태로 그린다면 존재의 극히 표층부분의 나열에 그칠 뿐이다. 그리고 표층을 나열하는데 만족할 수 있는 자는, 실제에 있어서 역사적 소재를 사용하여 그리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존재에서 스며나온 의식을 무자각적으로 과거에 투영했을 뿐인 것이다. 예수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그리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의 체제내적 의식을 나열할 뿐이며, 자기 자신의 의식은 어떤가 하면, 당초 역사를 묻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자신의 의식과 자기의 현재를 역사의 한 단계로서 파악할 수 있는 안목도 없다.

여기에 여태까지의 예수 연구의 애로가 있었다. 근대적인 문헌문학으로서는 성서학, 특히 복음서연구는 뛰어나게 정밀화 되어 있다. 사본도 많이 있고, 또 예수를 알기 위한 소재로서 세 가지의 복음서(마르코, 마태오, 루가)가 존재하니까, 비교연구도 여러 가지로 가능하다. (요한복음서는 간접적으로는 고려될 수 있겠지만 예수를 알기 위한 직접적인 자료로서는 곤란하다. 복음서라는 형식을 빌려서 저자가 자신의 상당히 특수한 종교사상을 전개한 책이기 때문이다.)거기에다 또 그것밖에 안 되는 좁은 영역에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많은 신약학자가 모여 일문일구마다 여러 개의 연구논문이 있을 정도로 파헤쳤으니까 정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근대성서학이 성취해온 복음서 전승의 비판은 현재에 있어서는 대단히 정밀도가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거기에 한해서는 상당히 신용할 만하다.

대강 요약한다면 예수의 사후, 아니 생전부터 예수에 관해 전해진 이야기는 구전전승으로서, 혹은 소문으로서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부분적으로 크게 개찬된 곳도 있고 전설적으로 창작된 부분도 많다. 그것이 예수의 사후 20년쯤 되어서 두 가지의 문서로 정리되었다. 하나는 마르코복음서인데, 이것은 한 사람의 저자가 의도적으로 만든 저작이다. 또 하나는 현재는 전해지고 있지 않지만 마태오와 루가가 공통으로 이용한 자료인데, 논어(論語)와 같은 형식으로 예수의 말만을 나열해 간 어록(통상 Q자료라고 부르고 있다. Q는 독일어의 「자료」라는 단어의 첫 글자)으로, 이것은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한 작품이 아니며 당초 하나의 완결된 문서라기보다는 차차 정비되어간 것인데, 문서가 되고 나서도 잇따라 예수의 「말씀」(로기아)이 첨가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것은 원시 그리스도교단의 교단체제가 만들어낸 문자 그대로 자료집이다.

마르코와 Q가 나온 후 다시 3,40년 뒤, 즉 1세기 말경에 마태오와 루가가 각각 복음서를 썼다. 둘 다 마르코와 Q를 자료로 입수하여 이 두 가지를 종합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 두 가지 자료 이외에도 상당한 양의 전승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것을 정리하여 발표하고 싶었던 것이 복음서를 쓰게 된 동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동기는 그 때까지 유일하게 정리된 예수에 관한 기록인 마르코복음서가 원시 그리스도교의 주류에 대하여 명백하게 비판적 관점을 드러내 놓고 있으므로, 그러한 복음서만으로는 정통적 교회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점이 많으니까 마태오와 루가가 각각 나름대로 좀 더 정통적인 권위를 가진 복음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데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중 루가쪽은 한 사람의 저자의 저술활동으로 된 것인데 바울로의 에피고넨(추종자, 아마 바울로 만년의 제자인 의사 루가)이 그 평범한 종교 의식(意識)의 관점에서 자료를 정리하여 이루어 놓은 작품이고, 마태오쪽은 한 사람이 쓴 작품이라기보다는 저자 마태오(예수의 제자라고 되어 있는 마태오와는 다른 사람)가 속해있던 그리스어를 말할 수 있는 유대인의 교회(아마 시리아지방인 듯) 지식인 그리스도교도가 일종의 학파적 작업으로서 자기를 교회의 정전(正典)적인 복음서를 만들려고 한 노력을 최후의 한 사람이 정리 편찬한 것이다.

복음서라는 것이 이상과 같은 것이니, 그것을 자료로 하여 예수를 묘사하려고 할 경우에는 하기 싫어도 전승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생긴다. 우선 복음서의 최후의 저자 단계에서의 윤색(潤色)을 제거하고, 다음으로 오랜 구전전승의 단계에서 이루어진 많은 윤색을 제거한다. 이런 식으로 소급에 소급을 거듭해서 걸러내고 신빙성이 있는 전승을 남겨두는 것이다. 이 작업은 방금 기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에는 비교적 확실하게 해낼 수 있다. 객관적으로 꽤 확실하게 예수의 발언을 확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선별방법에만 의존하고 있으면 객관성에 대한 맹신에 빠져 크게 실패한다. 대체로 역사 연구에 있어서의 객관성이란 하나의 한정된 방법론상의 문제인데, 객관적 정확성이라는 기준에만 의존하여 대상을 그리려고 하면 객관적이기는 커녕 극도로 왜소한 대상을 포착하는 것에 그치고 말게 된다. 여기서는 방법론의 문제를 상세하게 논하고 있을 여유는 없으나, 현대 신학자가 그리는 예수가 어느 것이나 극도로 추상적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선별연구방법이 지닌 최대 결점의 하나는 결국 예수가 발언 한 자구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실히 복음서의 전승 가운데는 상당히 정확한 것도 있으니까 일자일구(一字一句) 예수는 이와 같이 말했다라고 추정할 수는 있는 것도 있으며, 혹은 거기까지는 안 가더라도 상당정도 확실성을 가지고 추정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위에서 말한 「아버지의 이름을……」이라는 기도의 대사는 그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발언이 어떠한 장면에서 행해졌는가, 또는 발언의 기록이 아닌 경우에는 예수가 어떤 행동을 했는가라는 문제에 이르게 되면 전승자나 편집자가 자기의 주관을 불어 놓아서 그린 상(像)이지 객관적인 예수상은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확실히 그렇지만 「객관적」인 정확성에만 의존하게 되면, 말을 한 장면, 역사적 상황이 배제된 「예수의 말」만이 확실한 소재로서 남게 된다. 그 결과, 예수의 발언은 그 일체가 역사적 상황을 뺀 추상적인 가르침으로 환원되고 만다.

그렇다면 거기에서는 역사적 장면에서 추상화된 대사의 나열을 어떻게 하여 이론적으로 정리․통합하느냐, 거기에다 다시 추상에 추상을 거듭하여 예수의 가르침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을 어떻게 뽑아내느냐하는 작업이 된다. 이 경우 출발점의 소재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확실한 소재라고 할지라도 이미 추상화된 소재이다. 따라서 그것을 정리, 종합하는 이론은 신학자들 각자의 관념론적 전제에 불과하다. 가장 객관적인 예수상이라고 하는 것이 기만이 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현재 학자가 그리는 「예수」는 비교적 훌륭한 학자의 경우라도 어느 것이나 예수의 삶과 활동을 그리거나 예수의 사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역사적 인물의 사상을 그린다는 것은 곧 그 사상을 상황속에서 이해한다는 뜻이 되니까), 예수의 「가르침」의 해설에, 특히 추상적이고 신학론적인 해설에 그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인 것이다.《예-불트만, 야기 세이이찌(八木減一)》. 처음부터 예수를 영원불변의 진리의 권화로 만들어 놓고 있으니까, 그가 살고 간 역사적 상황속에서 예수를 파악한다는 의식은 털끝만치도 없다. 이른바 객관성으로는 역사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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