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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일요일에 아침9시부터 저녁9시까지 약국에서 알바를 한다.

근처병원 3곳이 일요일에도 문을 열어서 오전에는 엄청 바쁘고, 오후에는 조금 한산하다가 저녁에는 다시 바빠진다. 대체로.

 

지난주에 있었던 일인데

오후에 할머니가 무좀약을 사러왔다. 연고를 드렸다. 할머니가 누구를 좀 기다렸다 가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서비스로 드리는(약국에서 손님끌려고 공짜로 매실, 비타민, 쌍화탕 같은 음료를 준다) 쌍화탕을 하나 드렸다. 곧 다른 할머니 한분이 오셨다. 두분은 약간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곧 대화를 시작했다.

할머니가 무좀연고 샀다고 하니 친구할머니가 식초에 정로환을 녹여서 발을 담가보라고 권한다. 그러자 할머니가 해봤는데 소용없다고, 각질이 벗겨지고 깨끗해져서 좋아지는 듯 하더니 나중에는 더 안좋아지더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얘기는 이런 저런 주제로 퍼져갔다. 그러기를 1시간 30분 정도 하셨다.

 

대학병원앞이나 중소병원이상의 규모가 있는 병원앞에 있는 약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초단위로 약을 받아서 가기가 바쁘고 때로는 완전 아수라장 마냥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다보면 복약지도나 환자가 궁금해하는 것을 묻고 답할 시간도 없다. 지금 다니는 곳은 동네약국이다. 시간적 여유가 좀 있고, 오는 환자들이 자기들끼리 아는 경우도 많다.

 

할머니들끼리 나누는 정보공유는 약국에서 혹은 병원에서 듣는 의학, 의약 정보보다 더 유용할 경우가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의 손에 넘겨지면서 저런 정보공유는 비과학적인 혹은 위험한 것으로 취급되어졌던 것 같다. 연달아 드는 생각은 약국은 어떤 공간이면 좋을까란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약국은 '사적 영업소'가 된지 오래된 것 같다. 그리고 굳이 약국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다리가 아파서 잠시 앉았다가거나 아는 사람과 잠시 수다를 떨고 가는 사람, 좀 만만해보이는(?) 약사를 상대로 넉두리를 하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역시 내 경험으로는) 대부분 나이가 좀 있는 여성들이다. 아주머니, 할머니. 그녀들이 돈을 내지않고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돈을 내더라도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약과 약국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왔고 어떤 공간이면 좋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얽히는 하루.....

 

해가 질 무렵

젊은 여성이 왔다. 필요한 약을 사고는 물어볼 게 있단다.

그 전에 '결혼하셨지요?'라고 묻는 게 쫌 그랬다.

그녀는 '태몽은 임신후에 꾸기도 하나요?'라고 물었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결혼을 했어도 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동네어르신들에게 물어보는게 더 나을텐데 왜 나한테 물어보는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처음 듣는 질문이기도 하고 약간 황당함마저 들어서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기분이 들었다.

태몽이란게 있는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우쨌든 태몽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련의 과정에서

존재를 알리는 첫 징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성은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아프고 죽는 과정상의 정신적, 신체적 변화에 관해 문의하기위한 1차적으로 혹은 가장 문턱이 낮은  곳을 약국으로 생각한건가?

약국에 와서 약을 안사가지고 나가면 미안해지고 무안해지는 그런 곳이 아니라....사람이 많이 아파야 약국이나 병원이 잘 되는 지금의 현실과 다른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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