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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핑퐁


핑퐁
박민규 지음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깔깔 웃으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박민규의 이번 책은 읽는 내내 깔깔 웃게 만드는 책은 아니지만 좀 더 대담하고, 황당무개하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더 짜임새있게 느껴진다.

 

왕따에 얻어맞고 다니는 중학생 두 주인공인 모아이와 못(이건 둘다 '별명'이지만, 사실 '본명'이라는 것이 더 의미없는 상황에서 그런 구별은 이상하다)이 던지는 질문들은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있지만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럼 점에서 박민규는 대담하다.

 

둘이 던지는 질문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당신은 폭력을 당하는 것에 익숙해서, 오히려 그것을 즐긴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은 없는지, 왕따가 될까봐 남을 '선제공격'한 적은 없는지, 그러면서도 그 남들이 무서워진 적은 없는지, 그리고(혹은 게다가) 그런 고통을 박민규처럼 '가상적으로' 해결한 적은 없는지 말이다.

 

확실히 박민규는 모든 문제의 가상적 해결방법을 찾아내고 소설에서 현실화시킨다.(어차피 소설이 가상인 바에야 자기 소설에 뭘 하든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세계를 그냥 간단하게 <언인스톨>시키는 것이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보면서 엔딩이 참 황당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문제를 전개시켜나가다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때, 감독은 두 명의 주인공을 절벽 위로 날려버린다. 이번 경우에는 두 명의 주인공 대신 세계를 날려버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더 대담하긴 하지.

(나중에 찾아본 신문의 한 작품평에서도 비슷한 점을 지적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한겨레]'인류운명'걸고 탁구 한판?)

 

그렇지만 소설 전체에는 상상력이 넘친다. 그런 점에서 박민규가 만들어낸 존 메이슨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더 흥미롭다. 소설 중간 중간에 삽입한 존 메이슨이라는 작가의 작품들은 60~70년대 미국의 SF 작가의 단편을 닮았다. 세상이 주인공을 <깜빡>한다는 <여기, 저기, 그리고 거기>라는 이야기는 마치 필립.k.딕의 단편 <작은 도시>을 연상하게 한다. 하긴 존 메이슨이라는 이름도 리처드 매드슨을 또 올리게 하지 않는가. (리처드 매드슨은 좀비 영화들의 원형이라고 할 [나는 전설이다]와 같은 작품을 써낸 작가.)

 

여튼, 결론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존 메이슨을 통해 들려주는 세상이 우리는 <깜빡>한다는 아이디어가 더 맘에 들기는 하지만, 과로사로 마감하는 핑퐁 게임 끝에 세상을 <언인스톨>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쁘지는 않다. 이따위로 돌아가는 세상이라면 깨끗하게 <언인스톨>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솔직히 안해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건 어려운 사람들이 '전쟁이라도 나서 뒤집어 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단 훨씬 인도적이잖아?)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이런 해결방법이 현실의 문제의 상징적 해결책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가상적 해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 <인스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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