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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노동과 투쟁의 현장들

3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5/14
    2009 학생포럼- 대학, 비정규 노동을 말하다(1)
    겨울철쭉
  2. 2008/07/15
    촛불에 대한 까질한 그러나 흥미로운 인용
    겨울철쭉
  3. 2008/05/29
    긴박한 정세가 공공노조에 요구하는 것들을 합시다!(1)
    겨울철쭉
  4. 2008/03/09
    3.8, "행사"와 "투쟁"사이(4)
    겨울철쭉
  5. 2008/03/07
    노동자운동사, 몇가지 교훈(2)
    겨울철쭉
  6. 2008/02/27
    현장으로부터, 거리.(2)
    겨울철쭉
  7. 2007/12/24
    [교안]비정규직조직화 전략세우기
    겨울철쭉
  8. 2007/12/07
    사직하면서;부치지 못한 편지(5)
    겨울철쭉
  9. 2007/11/14
    [교안]노동자운동,역사와 미래
    겨울철쭉
  10. 2007/11/07
    [교안]자본주의란 무엇인가
    겨울철쭉

2009 학생포럼- 대학, 비정규 노동을 말하다


"2009 학생포럼- 대학, 비정규 노동을 말하다"
라는 행사가 열립니다.

소개를 보니 이렇군요 ^^;
- 학교비정규직, 보육, 시설관리, 예술종사직, 미화 등 여러 업종을 초월해 하나의 조직으로서 서울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공공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가 [대학 비정규직과 함께 하는 학생 네트워크]와 함께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 여러 동지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대학생이 주된 대상이기에 직접적으로 홍보해주시기 바라며, 대학생 이외 여러 사회운동 단위들에서도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받아보신 동지들께서도 함께 적극적인 홍보를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혹시 블로그를 보시는 대학생 분들이 계시면 관심갖고 참여하셔도 좋을 것같아요.
오랜만에 블로그에 남기는 포스트가 광고가 되어 버렸군요.

부활좀 해야겠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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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 대한 까질한 그러나 흥미로운 인용

촛불집회에 대해서 아래 남긴 글의 맥락에서, 촛불집회의 긍정성과 함께 다른 면, 양면성을 보아야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사고와 정치적 행동이 전진할 수 있지요.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글이 떠올라서 일부를 인용해봅니다.
문화연구 시월의 신병현 교수님이 쓴 <“새로운 자본주의” 담론구성체>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자율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글입니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촛불에 대한 자율주의자들의 시각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해당 논문은 문화연구 시월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siwall.net/main/openDB_1.htm   게시판의 28번 글입니다.)

특히 신자유주의로 전향한 NGO들에 대한 언급은 2기 범국민 대책회의를 "주도"하고 있는 일부 NGO들을 상기하도록 합니다. 아울러 Netwar에 대한 부분은 현재의 촛불집회를 직접 지칭하는 듯하지요.

인용을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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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담론들에서 NGO들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조응하면서 ‘유능한 통치’(good governance)의 수단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Netwar에 대한 미군 협력 연구소인 Rand Arroyo 센터의 관심이 매우 흥미롭다. ‘정보화 시대’에 동조된 “네트워크적 조직형태, 신조, 전략, 기술에 의거한 범죄 및 갈등”으로서 Netwar는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통신기술을 사용한다는 점뿐 아니라, NGO와 같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동원하는 것에 의해 특징지어지며, 이런 운동들에서 NGO는 “변혁운동의 낡은 위계구조를 대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아로요 센터의 보고서에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운동체들의 초국적 운동들은 그렇게 위협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회 및 정치적 개혁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는 긍정적인 결과도 갖고 있으며”, “미국은 심지어 Netwar를 조장하거나 그로부터 이득을 취할 수도 있고” NGO와의 관계 조율을 통해 Netwar의 경로와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조언한다.((Morris-Suzuki, 2000, 63-4)

 이 예는 “정보화 시대‘에 변화의 핵심적인 행위자들이 유연하고 네트워크화 되고 초국적인 사회운동체들이라는 이미지가 광범하게 수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NGO나 네트워크화된 사회운동체들이 더 이상 전 세계적 자본운동의 힘에 저항하는 해방적 잠재력을 가진 진보세력으로 보는데 의구심을 갖도록 한다. 그 뿐 아니라, 기금공여자들에 의한 감사 기준이나 성과 표준을 충족시킴으로서 지속적인 기금수혜자로 남기 위해 더욱 공식화되고 소수 엘리트의 역량에 의존해 가야하는 NGO 활동에 대한 실천가들의 많은 고민이 표출되고 있기도 하다.(Wallace, 2004; Hawkesworth,2002)

 이러한 담론들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기 전 세계적 범위에서 통치 기법에 대한 탐색과 적용이 일반화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원격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통제를 위한 기법을 찾으려는 공명하는 담론 계열들에 관한 푸코주의적 논의를 생각하게 한다.(Barry et al,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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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war는 위키에서는 이렇게 설명하네요.

Netwar
is a term developed by RAND researchers John Arquilla and David Ronfeldt to describe an emergent form of low intensity conflict, crime, and activism waged by networked actors. Typical netwar actors might include transnational terrorists, criminal organizations, activist groups and social movements that employ decentralized, flexible network structures.

테러리즘만이 아니라 최근의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특히 탈중회되고 유연화 네트워크 구조라는 언급은 이번 촛불과도 닮았습니다. 문제는 본문의 지적처럼, 이것이 권력에 의해서 통제될 수도 있다는 것, 그 매개는 신자유주의적인 NGO들이라는 점입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netwar에 개입할 수도 있죠. 그리고 그것이 사회운동의 방식으로는 위협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관련해서는 <네트워크 전쟁>이라는 책이 여기서 지적하는 랜드 연구소의 보고서인 것같군요, 주문했는데 오면 읽어볼 생각)


네트워크 전쟁 - 테러범죄 사회적 갈등의 미래
존 아퀼라 (지은이), 한세희 (옮긴이)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11월

여튼, 이런 점에서 현재의 촛불집회에 의미있게 결합하면서도 그 양면성을 사고할 수 있어야 우리가 과연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폭발하는 대중운동 속에서 지성에게도 모종의 역할이 있다면 그런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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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한 정세가 공공노조에 요구하는 것들을 합시다!

이 상황에 대한 책임있는 결합논의가 하도 지지부진하여 답답한 마음에 새벽에 써서 임원 사무처 동지들에게 메일로 뿌린 글입니다.

각급 대중조직 단위가 굼뜨기 그지 없는 상황에서 모든 방면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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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투쟁 정세에 대한 대응과 관련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공공노조 임원 사무처 동지들에게 드립니다.

그 저 사무처 한명으로서 발언에 무게도 없고, 내부 조직화의 실력도 없고, 다음 사무처 전체 회의는 담주나 되는데, 정세는 너무나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소 염치 불구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하다가 동지들에게 메일을 한 통 띄웁니다.

운동권 앞에 멀찍이 앞서가는 대중들 : 공공성으로, 이명박 반대로 확산되는 쟁점

오늘도 촛불집회와 거리 행진을 다녀와서 집에오는 새벽 세시입니다. 오늘도 경찰의 집회 완전봉쇄를 뚧고 거리로 진출, 가두시위를 진행했습니다.
며칠동안 계속 매일의 야간 집회, 가두행진에 참석하면서, 매일 점점 달라지는 하나의 추세를 느낍니다.
광 장에 갇혀있던 시민들이 거리로 나가기 시작한 지난 토요일 이후, 대중들은 더더욱 운동권들보다 멀리 나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 정세에서 가장 주도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정파인 '다함께'에 대해서 조차 대중들이 더 나갈 것을 요구하고, 통제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오마이뉴스 기사 참고 : 촛불들을 '지도'하지 마세요 촛불시위 참가자가 운동그룹 '다함께'에 보내는 공개편지)

대 중들은 이제 광우병 쇠고기를 넘어 이명박의 퇴진/탄핵/하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반대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서명운동을 선전하면서 그냥 "가스 민영화,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서명입니다"가 아니라 앞에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이라는 한 구절만 더 들어가면 대중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냥 지나쳤을 시민들입니다. 이 시민들이 서명을 하면서 "의료 민영화는 절대 안되", "가스도 팔아먹어?" 라고 혼잣 말을 하면서 서명합니다.

자, 이제 대중들은 파편적으로만 느끼고 있던 삶의 불만들---의료 민영화에 대한 불안, 물가인상, 교육문제, 광우병 쇠고기와 식품안전.. 등과 같은 문제를 그 본질 "이명박 정권"의 문제로 연결해서 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명박에 대한 반대와 공공부문 사유화/시장화에 대한 반대가 굳건히 결합한 만큼, 이명박 반대 투쟁의 성패는 공공성 투쟁의 성패와 직결됩니다. 이것이 우리노조가 특히 인식해야할 핵심적인 정세의 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까지 그렇게 평상시에 선전하고 알리려고 했던 것들,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 민영화/시장화의 문제점에 대해서 대중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의 문제이자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기업 투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걱정하던 때는 갑자기 너무나 오래전으로 느껴집니다.

조합원의 분신항거, 그러나 다른 3년의 차이 : 이용석과 이병렬 사이

그리고 우리 조합원 동지가 분신했습니다. 지난 이용석 열사 분신 때를 생각합니다. 불과 3년여 전입니다.
당 시 연맹은 신속하게 비상중집, 단위노조 대표자 회의를 신속하게 소집하고 투쟁방침을 결의하고 매일 집회를 조직하고 투쟁했습니다.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관심이 이제 막 형성되던 어려운 시기였지만 우리는 이 투쟁을 민주노총 전체의 투쟁으로 만들어갔습니다.

지금, 우리의 대응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쟁점인 쇠고기 수입반대, 이명박 반대 투쟁의 요구로 분신한 이병렬 조합원의 분신항거에 대해서 우리 조직이 가지는 긴장감이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조직적인 긴장을 걸고 조직하는 노력도 저 스스로도 너무나 부족합니다. 조직동원, 문안동원 등 모든 측면에서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 집행되고 있지 못합니다. (물론 분신조합원의 진정한 "뜻"에 따르는 조직동원은 청계광장 집회 조직화일 것입니다.)

이제 조합원을 조직해야할 시기

비 상한 시기입니다. 대중들이 공공서비스의 문제를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고, 정세를 운동권들보다 더 정확하게 "총체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 멀리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청계광장에 주저앉아 '재협상'을 외치는 순간에, 대중은 청계광장을 박차고 거리고 나가서 "이명박 탄핵/퇴진"을 외치고 있습니다. 전체 운동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노조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 시기가 바로 투쟁해야할 시기이고 이명박의 공공부문 사유화 시장화를 막을 수 있는 동맹군을 거리에서 직접, "공짜로" 찾을 수 있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정세에서 노조가 보다 주도적으로 조합원들을 집회에 조직하고 투쟁이 더 강력하게 더 길게 전개될 수 있도록 결합해야합니다. 집회에 나가서 거리를 행진한 동지들은 말합니다. 마치 87년이다!라고 말입니다. "민주시민 함께 해요"라는 구호에 시민들이 동참하고 순식간에 수배로 행진 대오가 불어납니다. 그러나 장관 고시가 이루어진 이후에 상황은 장담할 수 없고, 거리에서 행진은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보다 안정적인 대오가 일종의 "코어"를 형성하고 대중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30일 장관고시 이후 이명박이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무기로 하여 반격하지 못하도록, 현재의 이명박 반대 정세를 계속 밀고 가야합니다.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신뢰성을 완전히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아예 공공부문 사유화/시장화는 말도 꺼낼 수 없게 쐐기를 박아나가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새 정세는 (특히 우리 공공부문 노조운동에 매우 불리하게) 역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직된 기본대오가 투쟁에 결합해야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집회 참여를 통해서 조합원들도 관성화된 동원식 집회가 아니라 직접 나서는 "민주시민"의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에게 놀라운 정치적 경험의 공간을 열어줍시다.

물론 어렵습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 사유화, 시장화에 대한 현장의 긴장이 아직도 충분치 않습니다. 노조의 활동시간도 부족하고 조직력도 취약합니다.
그 러나 그 때문에 오히려 노조 중앙으로부터 적극적인 결의와 조직화가 필요합니다. 필연적으로 단위사업장의 시야게 갇일 수밖에 없는 기업별지부의 집행부보다 전체 운동과 정세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위치게 있는 것이 산별 중앙입니다. 우리가 먼저 현장을 조직해야합니다.

잊어서는 안될 역사의 교훈 : 1968년과 1987년

어찌 보면 지금의 행진은 철없는 10대, 20대의 냄비현상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실제로 어떤 분은 그런 말씀도 하시더군요.)
그러나 87년 항쟁도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주축이었습니다. 1968년 세계혁명은 10대후반 20대 초반의 대학생의 투쟁이 촉발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운동의 새로운 세대입니다. 그들의 진출을 엄호하고 함께 해야합니다.

지금은 마치 40년전 1968년 혁명을 똑같이 떠올리게 합니다. 좀 장황하지만 역사를 돌아봅시다.
프 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미국, 중국, 동유럽 등에서 벌어진 혁명들말입니다. (프랑스, 독일에서 배워야할 것은 산별조직모형이나 협약적용률 이전에 이러한 투쟁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 그해 5월3일 폭발한 학생반란은 바리케이트를 쌓고 시가전을 벌이면서 빠리에서 1000여명이 부상하고 500명 가까이 연행되는 사태로 발전합니다. "우리의 꿈은 그들의 악몽이다"라는 구호가 현실화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 공산당은 '사이비 혁명가', '젊은 치기'라며 냉소적인 반응으로 일관했고, 노동총연맹CGT도 남의 일로 치부하고 관망했습니다. 뒤늦게 노동총동맹이 항의파업을 선언했을 때, 오히려 지도부의 예상을 넘어 기층의 노동자 80만명이 시위에 참석합니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 공산당과 노조는 끝까지 "공화국 수호"와 "임금인상""만을 요구하면서 거리시위의 대중운동과 자신을 분리시킵니다. 결과는? 불과 며칠 후에 드골은 반격하고 정세는 급변합니다. 우익의 대규모 시위가 조직되고 파업은 경찰의 공격으로 파괴됩니다. 이어진 총선거에서 우익 드골이 압승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광범위하게 후퇴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단지 한 달여 동안의 일입니다. (5월3일의 봉기로부터 5월30일 드골의 반격) 이후 프랑스 노동운동은 갈갈히 분열되어갑니다.

먼 나라 이야긴가요? 집회 행진 대오의 분위기가 87년 같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합니다. 87년 우리 역사는 또 어떻습니까? 비록 6.29 항복 선언 이후 일주일여만에 7월6일 현대엔진 노조결성으로 시작된 7,8,9 노동자 대투쟁. 그러나 6월 항쟁과 분리된 시간 속에서 진행되면서 이 투쟁이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어내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거꾸로 이미 조직된 노동자 대중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87년 6월 항쟁과는 또 다른 결과를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대중들의 진출에 조직된 노동자들이 어떻게 결합하는가는 지금 정세가 어디로 어어질 것인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민주노총이 이제까지 "이익집단"이라는 (상당히 근거있는) 비판을 벗어나 대중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기입니다. "사회공공성"을 말하면서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경제적 요구를 넘어서 사회적 이익을 위해 진심으로 싸우자고 말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 입니다. 지금같은 시기가 아니면 언제가 그 시기겠습니까?

"준비되면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 우리의 요구로 투쟁할 정세

조 직적으로 조합원이 결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 과감한 조직동원도 필요할 것입니다. 다소간의 희생은 감수하고라도 교섭결렬-조정결렬-찬반투표 일정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 연맹, 산별노조 차원의 몇시간 총파업이라도 나중에 "준비되면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조직합시다. 구체적인 조직동원 지침을 매일의 집회에 내립시다. 그리고 특히 30, 31일 집회에는 조직을 총동원해서 결합합시다. 이를 위한 논의공간을 만들고 조직적 결의를 만들어내야합니다. 지금 정세에서 대중들이 패배하면 우리가 싸울 공간은 아예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거리에서 한명 한명의 시민들이 능동적인 역사의 행위자들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단지 노조간부이기 이전에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활동가로서 임무가 있습니다. 아니, 노조간부로서의 역할만으로 "실리적"으로만 보더라도 우리노조의 투쟁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최적의 투쟁시기입니다. 현장의 조합원들도 이런 정세를 느끼고 있습니다. 노조 외부의 사회적 정세가 오히려 조합원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간부들은 조합원들이 진출할 수 있는 "판"을 만들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
보다 과감하게 투쟁을 조직할 것을 호소합니다.

너무 주제넘게 일개 사무처 활동가가 글을 드렸습니다. 주제넘다고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주제'보다는 운동이 중요하니 고민고민 끝에 동지들에게 개인적으로 글을 드립니다. 장황한 글이다보니 오히려 동지들의 시간과 열의만 빼앗은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저보다 이 정세에 대한 고민이 훨씬 더 넓고 깊은 동지들도 많이 계신것을 보기도 했으니 더 그렇습니다.

관심있게 보셨든 아니든, 많이 동의하시든 조금만 동의하시든, 다만 고민의 계기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동지들이 집회 장소에서, 뒤풀이 술자리에서, 삼삼오오 담배피면서, 옆자리 동료들과 이런 쟁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고민들을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실천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함께 할 것을 또한 호소드립니다.

부족하고 산만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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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quot;행사&quot;와 &quot;투쟁&quot;사이

시청광장에서 진행된 3.8 여성대회 본행사는, 엄청난 돈을 들였다고는 하는데, 죄송하게도 도대체 이런 행사에 왜 나와야하는 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사회자가 민주노총 임원"님"들을 공들여 차근차근 소개하는 가운데 시작된 이 행사는 익숙한 대회사와  "성평등상" 시상식이 이어진다. 수상받은 조직들은 여성 비정규투쟁사업장도 있지만 성'희롱'에 대한 법률적이거나 이런저런 대응을 한 사례가 많다. 도대체 그 조직이 조직내에서 어떤 페미니즘적인 실천을 했는지, 심사와 추천기준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잘 알 수 없다. 성희롱, 성폭력 사건 대응이 노조 여성위원회의 특허전담사업이 되어버린 현실도 한편으로 보여준다.

상을 받는다면 오히려 여성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고 치열하게 싸운 조직들이 모두 상을 받아야하는 것 아닐까?

또 하나의 집회

예컨데, 이런 조직들 말이다.
오전에는 기륭, 뉴코아-이랜드 등 여성비정규직투쟁사업장, 민주노총서울본부, 사회진보연대, 노힘여성활동가모임 등의 단체가 주최한  "3.8 세계 여셩의 날 100주년 투쟁 기획단" 집회가 열렸다.


△ 집회 한켠, 인권운동사랑방의 피켓. "우리들이 행진을 계속하기에 위대한 날들이 온다네.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이라는 구절이 마음을 울린다. 영화 "빵과 장미"의 대사라고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투쟁을 이야기한다. 기륭전자. 학교비정규직, 이랜드일반노조, 광주시청비정규직.. 투쟁으로 비정규직으로 빈곤으로 내몰리는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자고, 연대하자고 호소한다. 투쟁 승리하고 내년 3.8은 현장에서 맞자고 말이다.

3.8을 무엇으로 보는가, 3.8, 여성의 힘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자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비교해주는 일들이 계속된다.

총선 들러리?

그렇다면, 민주노총의 시청 앞 행사에서는 이들 투쟁사업장이 등장하지 않았나? 아뇨, 그렇지는 않죠.
투쟁사업장 각각의 생생한 목소리가 있었던 11시 집회의 투쟁단위들 몇몇은 단상에 올라갔다. 함께 올라서 미리 쓰여진 멘트를 깔끔하게 읽고 나자, 이런, 사회자가 민주노동당 총선 여성출마자를 단상으로 함께 불러세운다.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를 위해서라도 민주노동당의 여성 후보를 지지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민주노동당을 통해 총선을 승리하자고 연호를 요구한다. (썰렁한 분위기~)

이 한순간에,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 지지를 위한 엑스트라로 전락해버렸다. 민주노동당이 분당된 후에 상황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장의 투쟁에 대해서, 여성의 비정규직화 빈곤화에 대한 어떤 투쟁의 전망도 없이 너무나 뻔뻔하게 후보들을 단상에 올리고 투쟁사업장 동지들을 "활용"하는 모습이 기가 막힌 것이다. 심지어 자신들이 비례대표 후보를 거부한 뉴코아-이랜드 조합원까지 단상에 올리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라고 하니, 도대체 최소한의 예의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결국 이랜드일반노조 이남신 부위원장이 진보신당 비례대표로 출마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명 가수나 연예인들이 나왔다는 유관순기념관 행사나 정리집회 행사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아마도 "문화적으로 풍성한" 어떤 행사를 원했기 때문에 그런 데 돈을 썼을 것이다.

극단 신명 공연, 광주시청비정규직노동자 해고1년

하지만 정작 그날의 가장 감동적인 문화적인 경험은 집회 직전에 시청 광장 한 귀퉁이에서 진행된 '극단 신명'의 광주시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마당극이었다. 작년 3.8일 일터에서 폭력적으로 쫒겨난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작년 바로 그때 박광태 광주시장은 "세계여성평화포럼"을 유치하고 생색을 내고 있었으며, 주류여성운동은 시청 여성노동자 투쟁현장이 아니라 그 행사에 몰려가 주었던 것이다.)

극단 신명은 이 공연 때문에 예정되었던 공연장 대관도, 지원금도 모두 취소되고 말았다. 그러나 공연은 감동적이고, 잘 짜여졌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중간중간 짠하다. 모두 구체적인 현실이다. 한 동지의 말대로, 이 극에는 "어떤 정해진 결말"이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더 슬프다. 극은 현실에서,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극을 함께 보는 여성비정규직노동자들, 특히 공공노조 서울지역의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분들이 극에 함께 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쁘고 마음 한편이 짠했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삶을 이렇게,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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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청비정규직 동지들은 3월10일(월)부터 상경투쟁을 진행한다. 중간중간 일정은 공공노조 홈페이지에 공지될 예정이다. 관심있는 분들의 연대가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 광주시청비정규직 상경 투쟁일정(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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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운동사, 몇가지 교훈

최근에 이런저런 토론과 교육을 하면서 느낀 것들. 첫번째와 두번째 것은 내가 강의를 진행하면서 생각하게 된 것인데, 역시 생산적인 노동자 교육은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과정이 아니라 서로 배우기의 과정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1. 이주노동자의 눈으로

이주노조 농성단 동지들에게 한국노동자운동사를 세번에 걸쳐 교육할 기회가 있었다. 의사소통이 여전히 어려운 점도 있고(중간 중간 통역도 필요하다) 한국 역사에 대한 배경 이해가 부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적 과정 자체에 기입되어 있는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1. 노동자운동의 탄생과 좌절, 부활
-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기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2. 노동자운동의 폭발적 성장과 제도화
- 1980년대말 호황기 노동자운동의 폭발과 1997년 IMF 구제금융
3.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운동의 도전
- 1998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 사용한 교안(link), 역시 실제 교육은 교안과는 또 다르게 진행된다.

특히 우선 반성하게 되는 것은 내용적으로더 쉽게,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더 쉽게 했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워낙 개념어를 남발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점이기도 한데, 쉬운 일상의 낱말로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것은, 노동자 대중과 교통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신경써야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내가 느낀 것은, "이주노동자의 눈으로" 노동자운동, 운동사를 바라보아야한다는 점이다. 민족국가에 대해서도 세계노동자운동사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는 이미 민족적 시야에 너무나 익숙해져있다는 점, 모든 교육에서도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반복하고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반성하게 된다.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왜 남한에서 1920~30년대 노동자운동이 급진화되었나? 1945년 이후 왜 노동자운동이 폭발하는가?, 1970년대 노동자운동은 왜 부활하는가? 1980년대 후반 노동자대투쟁의 국제적 배경은 무엇인가? 1997년 총파업은, 2000년대의 비정규직확산은 어떤 의미인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민족국가 내부의 논리가 아니라 국제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이런 속에서는 또한 반주변도 아닌 주변부 국가들, 이주노동자들의 모국에서 자본주의 저발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인식해야한다. 그래야, "근면한 한국사람"이라는 식의 민족주의적 정당화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자본주의 역사와 노동자운동사를 결합해서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이 매시기 폭발하고 부활한 것은 민족적 기질이 과격해서라거나 혹은 반대로 민주적인 열망을 "타고나서"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정치정세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 NL은 물론 구제불능이지만--  좌파들의 노동자운동사 교육도 민족주의적인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일제시기부터 1997년까지, 매시기 노동자운동의 부활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낭만화와 근거없는 낙관, "씨알"과 같은 개념도 그렇다. 우익들이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찬양하는 것처럼, 좌익들도 민족적 저항의 로망을 특권화하는 것을 보게 될 때, 당혹스럽다.(물론 해당 지역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 이에 따른 이데올로기적 특수성이 반영될 것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토대로부터만 형성될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특수성을 인식하더라도 "민족적 로망"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런 맥락에서 최근의 노동자운동사를 인식함에 있어서도 이주노동자층의 형성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1993년 이후 이주노동자를 입국시키는 정부와 자본의 논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들어낸 논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특히 이들은 80년대 말 이후 노동자운동의 투쟁 덕분에 급격하게 상승한 임금인상에 대안을 찾기 위해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를 도입했다. 역설적으로 운동의 성공이 노동자들의 분할을 만들어낸 점을 정확하게 반성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19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의 전투적 노동자운동을 아무런 반성없이 이상화하는 논리에도 마냥 동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투적이고 변혁적이라고 했던 당시 운동의 "비사고"의 지점이 2008년 현재 우리 눈앞에 있다.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혹은 눈앞에 보면서도 인식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들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운동사 교육 등에서도 적용되어야한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의 눈으로 자신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고, 또 현실을 돌아볼 수 있어야한다. 그것이 노동자교육의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야한다. 국제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곳에서부터 인종주의적 차별을 박멸해가야하기 때문이다.

2. 역사적 자본주의와 페미니즘

사회진보연대의 사회운동세미나 중 "세계노동자운동사" 부분을 맡아서 몇번째 진행하고 있다.
http://pssp.jinbo.net/bbs/view.php?board=notice&id=1134&page=3

세번째인 이번 세미나(거의 강의─.─;;)까지 진행하면서 특히 생각하게 되는 점은 역사적 자본주의의 맥락에 따른  "역사적 노동자운동"이라 할만한 것의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여기에는 필수적으로 페미니즘적 시각이 결합되어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역사적 자본주의론과 결합되는 역사적 가족형태의 분석이 구체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고, 이런 맥락에서 역사적 노동자운동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비판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비판해준 것은 세미나에 참석한 여성동지였는데, 무척 고마운 일이다.)

물론 역사적 가족형태에 대한 비판에 대한 여러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과 결합되어야하고, 이런 맥락에서 매 시기 노동자운동의 형태와 내용에 대한 비판도 함께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다. 가족임금에 대한 요구는 언제부터 어떻게 노동자운동에 완전히 내재적으로 통합되었는가, 19세기 초반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운동에서 페미니즘적 시각이 발견되는 것은 어떤 맥락인가, 20세기 초 미숙련-반숙련 노동자의 진출과 아메리카에서 "동반자 결혼"의 발명과 유럽에서의 지체와 같은 가족형태의 변화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또 그러한 차이는 전후 자본주의 형태의 차이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19세기 후반 이후 노동자운동의 민족적 통합과 여성배제는 어떤 과정에서 결합되어 이루어지는가, (반)주변에서 자본주의 발전에서 여성의 지위, 그리고 노동자운동의 수용은 어떤가, 이런 과정은 남한의 노동자운동에서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그것은 현재의 노동자운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등등등.. 너무나 많다.

민주노총의 2008년 임금인상요구도 철저하게 가족임금 모델에 근거해서 산출되는 것이 현실인 이상, 이러한 비판과 분석의 중요성은 전혀 무시할 수 없다.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말하면서 이런 것들을 제대로 결합해서 진행하지 못한다면 완전히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고민되는 일이다. (내가 공부를 더 해야할 부분도 많다. 불행히도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운동을 각각 공부하는 사람은 많은데, 이 둘을 모두 공부/연구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같다.)

3. 사소한 것에 비판적일 필요 : 노동자운동의 역사

우연치 않게 다음날 노조의 어떤 교육에 참가하게 되었다.(이번에는 피교육자) 주제는 "독일 산별노조(통합서비스노조 Ver.di)의 교섭구조"다. 강의를 해주신 박장현 교수가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주신 덕분에 산별노조의 교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구체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점을 우선 언급해야겠다.

그런데, 교육 내용중 흥미로운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전날 사회진보연대에서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이야기했던 내용이 다른 방향에서 언급되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산별교섭이 안착화되는 시기는 바로 "1914년"이라는 점이다.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정부가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교섭에 나서고, 다른 산업에서도 기업별교섭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산별노조의 교섭권만 독점적으로 인정된다. 왜? 전쟁(1차 세계대전)에 노동자계급과 노조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바로 제2인터내셔널의 배신.

그러니 말하자면, 지금 남한의 노조관료들이 부러워하는 독일 등 유럽의 산별교섭 구조는 전쟁과 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자계급을 민족국가에 통합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제(양보?)의 일부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실천적 교훈은 무엇일까? 이 날 교육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매우 건조하게 전달되었다.. 역사적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제2인터내셔널의 배신과 역사적으로 노동자운동의 민족국가에 대한 통합과 사민주의적인 합의체제의 성립 등과 연결해서 이해되지 않을 경우에,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결론이 남을까? 역사적 위기의 상황에서 민족국가를 거부하는 투쟁이 아니라, "기회"를 활용해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결론이 남을 수밖에 없다. 교육의 목표가 바로 "산별교섭 실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족국가 사이의 전쟁에 충성하는 게 무엇이 문제지?

이 에피소드가 말해주는 것은 이런 점이다.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것처럼 보이는 노조교육조차도 정치적 맥락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기반해서 진행되지 않을 경우 매우 왜곡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은 특히 남한의 산별노조가 그 모델로 독일/유럽 산별노조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우려되는 점이다. 금속노조는 독일 금속노조IG Metal, 공공노조는 독일 통합서비스노조 Ver.di를 모방하는 데 몰두한다. 민주노총은 독일식 산별노조와 북유럽식 노사정 타협체제 모방에 몰두한다. (중앙파, 좌파가 다를까? 푸훗─, 진보신당은?)

물론,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와 혁명을 배반하고 파시즘으로 결과한 민족주의화된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반복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가능하거나 말거나 아메리카 헤게모니의 황금기에 가능했던 모델을 그 황혼기에도 주장하면서 자신과 조합원을 기만해도 된다고들 생각들하시는 거라면 더 할말은 없다.

4. "현장에서 미래를"? 노동자사회운동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노동운동포럼"은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현장의 실천 속에서 이루어내려는 매우 의미있는 과정이다. 최근 진행되는 어떤 노력보다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오는 3월12일에는 (19시, 총연맹서울본부) 백승욱 선생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맞서는 사회운동"이라는 제목. 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강추)

여튼, 지난번 토론은 "신자유주의와 노동자의 삶"이라는 주제의 토론이었다.(토론 전주에 진행된 강좌는 장시복 선생이 진행했다.)

여기서 미묘한 쟁점이 발견된다.(참가자들이 모두 인식했을지는 모르겠다) 말하자면, (특히 정규직의) 노동현장에서는 더 이상 어떤 사회운동적인 쟁점을 발굴할 수 없으니 외부에서 활동가들이 도입하는 방식으로 노동자사회운동을 형성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 있다. 그리고 이와는 미묘하게 다르게 (이건 나의 입장이라 할 것인데) 정규직 사업장의 경우 측면도 있으나, 비정규직 사업장의 경제투쟁은 여전히 다른 의미일 뿐 아니라, 정규직 사업장이라고 하더라고 현장의 쟁점을 급진화하는 실천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 있다.

이런 미묘한 쟁점은 노동운동포럼에 결합하는 단체들 사이의 쟁점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사실 그보다는 나의 개인적인 쟁점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보기에는 노동자운동은 여전히 자신의 노동현장의 어떤 쟁점들을 급진화된 실천으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고, 그것은 노동자운동에 고유한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더욱 사회운동적 맥락에서 진행되고, 노동현장 바깥의 사회운동과 만나고 변화하는 과정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2~3년 동안 공공노조 사회연대연금지부(구 국민연금공단노조)는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급격히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급진적인 현장활동가들의 노력은 눈부시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동의가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조합원들은 일견 경제적 이해와는 또 다른 국민연금제도의 공공성과 관련된 쟁점을 정치적으로 제기하면서 급진화되었다. 완전히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노동현장에서의 쟁점을 급진적으로 전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래서 노동자운동이 여전히 "노동자"운동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현장 외부의 사회운동적 쟁점이 노동자운동과 결합하는 것이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주장에는 다른 협의를 갖게 된다. 현장의 쟁점에 대한 투쟁을 상대화하기 위한 혹은 현장 쟁점에 대한 운동의 끊임없는 실패를 정당화하는 맥락이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점이다. 전적으로 "현장에서 미래를"을 포기하는 근거로 사회운동이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심지어 노동시장의 이중화/분할로 인해 현장운동이 어려움에 처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것과 싸울 수 있는 어떤 계기를 조직해야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노동자사회운동을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구좌파"적이라고 할, 혹은 고루한 "현장파적"이라고 비아냥받을지도 모르는 쟁점들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오히려 여전히 노동자운동에 근본적인 부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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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으로부터, 거리.

지역지부 동지들을 만나서 술을 늦게까지 마시면서, 이런 화제로 이야기를 한다.

오늘 현장간부들과 진행한 신규조합원 상담. 무엇보다, 상담한 노동자는 억울한 상황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고 한다.
노조의 "미조직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을 지역에서 유사한 부문의 사업장끼리 같이 진행하기 위한 사업단위를 꾸리자는 제안을 한다. 앞으로 업종을 넘어선 지역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다.
한 사업장 안에서 정규직-직접고용/간접고용비정규직을 모두 조직할 수 있는 전략 사업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담당자를 어느 정도 시기 동안 집중적으로 배치하면 할 수 있을 것같은데, 그게 쉽지 않다.
해고 투쟁 중인 분회 동지에게 지부 상근 활동을 제안한다. 어렵다고 발을 빼지만 마음 깊이는 설득하면,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집에 가는 길이 두시간 넘게 걸리는 동지가 술자리 중간에 먼저 간다. 멀다.
내일 한 사업장의 조정회의.  조정회의에서 합의를 만들 것인지, 투쟁을 조직할 것인지 종합적인 판단을 하자는 토론을, 현장의 상황, 활동가들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내일 오후에 지노위 조정회의가 있으니, 오전 중에 다시 이야기해야한다.

그래서, 오후에 있는 한 투쟁 분회 집회 참석 일정을 조정한다.

이런 이야기로 술을 마시고, 새벽 2시, 집에 들어왔다.
이것이 우리 노조, 지역지부 활동의 일상이다.

병가와 휴직 6개월,
그리고 지역본부를 떠나 탁상공론이나 난무하는 노조 정책담당자라는 자리로 복귀한 세달 동안,
이런 조합원들의 삶과, 투쟁에, 불과 몇달 전에 나의 고민이었던 것들과 얼마나 멀어져왔는지,
울컥해지고 말았다.

노조, 노동자운동의 대중조직에서 일한다는 게 뭔지, 생각하다,
나의 상황에 막막해졌다.
 



거의 기적같은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 이어지는, 어쩌면 노동운동의 대세에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중대한 사회적 쟁점으로 보이지도 않고, 깔끔하게 어떤 결과로 해결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리 많은 수의 조합원도 아닌 현장의 하나하나의 쟁점에 매일 부딪히고 끈질기게 싸우는 활동가들이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나만 하더라도, 그런 매일매일의 싸움을 지쳐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열정을 유지하면서 해나간다는 것이 가능할지를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그런 활동가들, 쉽게 찾을 수 없지만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때는 그것이 이 세상의 진짜 "기적"이라고, 신이 있다면 그 축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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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안]비정규직조직화 전략세우기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진행한 "미조직비정규직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서울지역 조직역량강화교육"의 일환으로 진행한 교육 교안.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전략 세우기"라는 주제.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을 각 조직에서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해서 진행한 교육과 실습이다. 보통 노동조합의 사업계획 세우기 교육과 유사하지만 다만 미조직비정규직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이라는 영역에 특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안은 전반적으로 일종의 짜집기다. 앞부분, 노조가 처한 외부적인 조건 도식은 민주노총 교육에서 가져온 것이다. 두번째 부분 노동조합 활동의 일반적인 사업도식은 논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경영학의 조직관리론 쪽에서 비영리기관 조직관리 도식을 가져온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타당성 있는 측면이 있다. (특히 조직자원 영역에서 지속적인 학습을 강조하는 부분 등)

세번째 부분은 이 교육의 첫강의로 진행된 철폐연대 김혜진 집행위원장 강의와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정의에 비추어 고려해야할 사항을 도식에 맞추어 다시 정리한 것이다.

이렇게 짜집기이기는 하지만 몇가지 강조하려고 했던 부분은 있다.
우선, 앞서 말한 것처럼 조직의 자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지속적인 학습과 구성원의 팀웍(단결력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더 있는)이라는 점. 지속적인 학습은 또 하나 강조하려고 한 내용인 '조직의 목표설정'과 관련되어 있다.

조직의 목표설정을 특히 강조하려고 한 부분. 비정규직 조직화를 왜 하냐는 것을 질문하려고 했던 것이다. 단순히 조합원을 몇명 늘리자는 취지라거나 혹은 남들 다 이야기하니까 하는 당위가 아니라 어떤 운동적인 의미가 있는지를 물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다. 그래야만 비정규직 조직화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일환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또한 그런 측면에서 어떻게 사업을 해야할 지 사고할 수 있다. 조직화 사업의 모든 측면에서 그 (운동적이고 정치적인) '목표'가 구체적으로 녹아나야한다.

진행을 하다보니 더 세부적인 사항을 고려해서 보완해야할 지점들이 있다는 생각이다. 시간적으로도 불과 3시간 정도에 진행하기는 힘들다. (조직별 토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진단이나 사업전략세우기와 같은 각종 실습 교육에서도 조직을 어떻게 만들고 운동할 것인가라는 쟁점을 반영해야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교안 파일 링크.
교안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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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하면서;부치지 못한 편지

우여곡절 끝에 노조에 복귀한지 열흘이 지났다.

병가와 휴직이 끝나는 마지막 시기에는 복귀를 하지 않고 다른 활동을 하려고 생각을 했다. 결국, 결국은 복귀하게 되고 말았지만, 그것도 노조 활동을 하는 동안 끝까지 피하려고 했던 정책업무를 하게 되었다. 노조 정책실에서 쓰는 혹은 써야하는 글의 태반이 허구적이라는 점에서, 또는 정치적으로 그릇되거나 그도 아니면 엉터리라는 점에서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최근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거짓말을 덜 하고 활동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안 하고'도 아니고 말이다.)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같은 느낌. 하지만 어떻게 진실을 유능하게 말하고 글로 쓸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의미가 없지는 않은 일이니까.

휴직이 끝나는 마지막 주에, 사직하면서 노조 활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에게 보내기 위한 몇개의 글을 썼다. 아래는 그 중에 하나. 전반적으로 이제까지의 활동을 평가하면서 앞으로는 이렇게해달라라는, 경계선에 있는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누린 글이다. 결국은 보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내가 나의 유언집행자가 되어야할 상황이랄까.

앞 뒤에 인사말과 개인적인 소회(그것도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지만;) 부분을 빼고 운동적 쟁점과 관련된 부분이다. (마지막 가는 인사에 이런 것이 적당하냐고 누가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남는 활동가들에게 가장 최선의 선물은 이런 비판들이 아닐까?)

다만, 이른바 "사회공공성"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노조운동의 어느새 '지배적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전면적이라기 보다는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점 정도는 언급해야할 것이다. 다른 부분은 더 솔직하다.
(더 개인적인 일부분은 조금 수정)

전반적으로 '사회공공성' 투쟁이라는 것의 문제,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에 대한 노조사업이 변해야할  지점에 대한 의견이다.
 


(전략)

말씀드릴 것은 우선 사회공공성 투쟁에 관한 것입니다.
사회공공성 투쟁은 최근에 민주노조 운동 전반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한계에 봉착한 노동자운동이 나가야할 방향으로 제시되곤 합니다. 특히 노조-연맹에서 사회공공성이라는 건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고 있죠. 그런데 죄송하게도 저는 사회공공성이라는 과제가 몇몇 중요한 전제가 빠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하나마나 하거나 혹은 안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현재 제기되는 사회공공성에 대한 여러 측면의 비판이 있지만, 이 슬로건을 인정하더라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이 과제에 비어있는 측면만 언급하고 싶습니다. 현재까지 사회공공성은 노조 안에서는 주로 "사유화반대(국유화)-지배구조민주화"로 이해되고 있고, 노조-연맹 밖에서는 주로 무상교육 무상의료로 이해됩니다. 대선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아마 대선 이후 당선될 이명박이나 이회창의 주된 공세가 다시 사유화로 연결될 것같기도 하니, 사유화 반대 투쟁만 해도 아직 중요하죠.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어야할 네가지 문제 중에 실제 운동과정에서 전혀 논의되지도 못하고 빠진 것이 세 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1) 소유관계 2) 노동자, 민중통제 3) 국가성격, 권력 4) 노동자운동, 노조의 변화

1) 소유관계에 대해서는 사유화 반대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 문제는 있겠지만 이건 일단 넘어가죠.(국가소유라고 그것이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기만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2)는 "지배구조 민주화"라는 식으로 제기되는데 이건 왜곡된 방식이라는 것이고, 여기에 3) 국가성격, 권력 4) 노동자운동, 노조의 변화는 아예 언급도 없다는 겁니다. 공공부문이 사유화되어서는 안된다고 할 때, 대안이 뭐냐는 게 문제이기도 하죠. 그럼 지금처럼 국가의 관료적 지배구조를 온존시키고 공기업노동자들은 IMF위기 이후 불안한 상황의 지대를 지키는데 몰두할거냐는 겁니다. 기득권 지키자, 이렇게 가면 그럼 그게 무슨 운동이냐는 것이구요.

결국, 변혁적인 전망 속에서 공공부문이 사고되어야한다면, 마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의 공공부문 번역판인 "지배구조 민주화"가 맞냐는 것이죠. (Stakeholder Capitalism는 한편으로는 주주자본주의로 번역되기도 하는 말이니, 그 의미는 자명합니다.) 오히려 노동자의 생산과 관리통제(따라서 인사경영참여를 넘어서는 작업장-현장권력의 문제로 접근해야합니다), 그리고 민중통제가 문제입니다. 특히 민중통제는 결국, 기업에 개입할 노동자운동이 어떤 방식으로 민중연대-사회적 연대를 구축할 것인가가 문제겠죠. 그렇게 보면 결국 4) 노동자운동, 노조의 변화라는 것이 동시에 이야기되지 않고서는 사회공공성은 허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 "3)국가성격과 권력" 문제는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넘어가죠. 결국 정치운동에서 노조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문제일텐데, 지금처럼 민주노동당 선거기금 모아주는 방식의 운동으로 그게 되겠냐는 이야기부터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저런 정책대안들은 있지만 사회변혁을 위한 정치적 전망도 함께 갖고 있냐는 질문이죠.)

공기업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해서 '귀족노동자'라고 언론에서는 주장합니다. 이미 비정규직노동자가 '일반화'된 상황인데다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빈곤화라는 것까지 감안하면 반박하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공기업정규직노동자들이 자본주의적 착취에 노출되어있지 않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다소 위험할 수 있는 말이지만) 공기업정규직노동자들에게 임금가이드라인 분쇄라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일까하는 것을 묻고 싶은 겁니다. 오히려 운동의 방향을 전환하기 위한 "조직 내 운동", 노조의 이념과 조직을 혁신하기 위한 운동이 매우 의식적으로 진행되어야할 겁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공공성이라는 것이 국가소유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야한다면, 그것이 지배구조민주화든 노동자, 민중통제이든 소유를 넘어선 관리와 운영에 개입해야한다면, 여기에 개입하는 주체인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노조)에게 사회적 정당성이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노동자통제'가 되기 위해서라도 사내하청을 포함한 비정규직노동자에게 열려있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중통제라는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도 민중연대, 사회적 연대가 결정적일 겁니다. 하다못해 '노조의 경영참가' 정도로 이해된다고 해도, 그 노조가 조합주의, 경제주의에 빠져있다면 결과는 뻔한 것 아닐까요? 조합주의와 경제주의가 지배적인 공기업정규직노조를 내부에서부터 변혁하는 과제가 같은 '사회공공성' 슬로건과 무게로 취급되어야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사회공공성을 이야기하려면 그것을 주장하는 만큼, 동시에 노동자, 민중통제, 정치운동, 노동자운동의 내부적인 변화라는 것이 패키지로 함께 제기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듣기만 좋은 슬로건 몇개 제기하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를 한발짝도 넘어서지도 못하는 국가소유, 관료적 통제를 넘어서지도 못하는 지배구조 개혁을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설사 된다고 해도 만들어지는 것은 결국 퇴행적인 공공부문 판 '노사담합체제'겠죠.) 그게 운동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니 아예 사회공공성 슬로건은 폐기하거나 전면적으로 재구성해야할 것입니다. (그나마 이런 정도로 사회공공성 슬로건에 반성이 가능하고 그것을 주도할 수 있는 조직은 공공노조 정도밖에 없습니다. 사회공공성이라는 것이 이런 모양새인 조건에서 '사회공공성 선전전' 같은 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답답해집니다.)

그래도 공공부문 노조운동에 '주도적인' 슬로건인데 너무 심하게 이야기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뭐 떠나는 마당이지만 애정이 있으니 이렇게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해해주시면 고맙겠네요. 아제 이 다음 이야기는 제가 해왔던 활동과도 연관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비정규직 투쟁과 조직화에 대한 측면입니다.
저 도 조직실-비정규직-지역본부를 거치면서 비정규직관련 사업을 여기저기서 해왔기 때문에, 이것은 더더욱 자기비판의 성격이 강한 이야기입니다.(지금 활동하시는 동지들 비판하고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니 양해해주세요. 그보다는 자기비판.)

제가 하던 시기부터 이제까지 비정규직 사업은 주로 신규조직화와 조직확대, 단위사업장 투쟁, 제도개선 투쟁 등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중심적으로 진행해야할 사업들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 지만, 애초에 왜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이라는 과제가 중요하게 판단되었던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의 주체를 형성한다는 측면이었죠. 그러나 돌아보면 조직확대, 사업장 투쟁을 넘어서 매우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형성"(새로운 운동주체의 형성)이 거의 간과되어왔다는 점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몇년간의 비정규직 운동을 평가하면서 비정규직 노조운동이 정규직 노조운동의 경제주의와 조합주의를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비정규운동을 하는 주체들 사이에서 자주 지적되고 있습니다. 공공노조(연맹) 역시 비정규직노조운동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운동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형식적인 실험(지역지부) 정도가 진행되고 있으나 여전히 한계가 많고 전략적 투자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어려움에 처해있죠. 그것을 넘어서 이들 주체가 지역적 연대를 강화하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사회운동과의 결합, 활동가 육성, 조합원교육 등등등에서 주체를 형성하고 운동의 '질'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당면한 투쟁에 항상 밀려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긴급한' 과제를 진행한 것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과제를 수행했다고 보기는 힘들겠죠.

따라서 이후에 노조의 어떤 부서 혹은 지역본부가 업종본부가 하든, 비정규직 운동주체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특별하게 배치되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없이는 비정규직사업은 '앙꼬없는 찐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면해서는 이런 노력은 몇몇 지역지부 조직들에서 어려운 조건이지만 그나마 진행되고 있습니다.(중앙조직에서 직접 주체형성에 기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지역-현장의 몫일텐데, 그렇다면 중앙조직에서는 이러한 지역-현장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집중적으로 고민되어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00, 00, 00같은 지역에서 이런 측면의 노력들이 의미있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한된 자원의 전략적 투자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이들 지역지부에 대해서는 별도의 더 과감한 가중투자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건 지역지부 간 형평의 문제가 전혀 아니고 전략적 투자라는 측면에서 집행부의 결단이 필요한 측면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본부들도 대승적으로 양보할 필요도 있을 겁니다.) 이들 지역에서 어떤 '전형'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이후 조직의 전체 발전, 공공노조 내 비정규직 사업, 투쟁, 조직화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건, 이제 떠나는 마당에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전혀 없으니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같습니다. 그것들은 소중한 불씨이지만 너무 꺼지기 쉬운 상황입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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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안]노동자운동,역사와 미래

지난 주 교육에 이어서 두 번째로 진행한 노동조합 간부교육의 두 번째 주제는 노동자운동의 역사와 전망. 전체적으로 조직발전 전망을 논의하기 위한 사전단계로 진행되는 교육이기 때문에, 노동자운동이 처한 현재의 조건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공유하기 위한 내용이 요청되는 강의였다.
(지난 교육에 대한 글은 : [교안]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참고)

교안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교안2차] 노동자운동, 역사와 미래

교육의 난점들

지난 번 교육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나 자신에게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쩌면 더욱 그런데, 정리할수록 분량은 방대해지지만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할지는 더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두 시간 가량의 교육으로 노동자운동 200~300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그 전망까지 담는다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도 있다.

몇가지 강조점을 다른 노동운동사, 노동운동 전망 교육과 달리 두려고 했지만 그것들을 상호결합시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꼭 교육기술상의 문제만은 아닌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평의회 운동의 역사와 현재 요청되는 사회운동적(혹은 사회변혁적) 노동자운동을 결합시켜서 이야기하기에 쉽지 않다. 이론적인 연결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지점도 있는 것이다.

한편, 강조점의 문제에 있어서는 실제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 그것을 잡아내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조합원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리고 내가 스스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느 지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단지 교육상의 강조점의 문제만은 아니고, 실제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할 쟁점들을 인식하는 과정인데,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함께 교육된다고 할까. 따라서 교안 자체는 내용이 방만하지만 실제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교안자체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진행하면서 오히려 긴장감과 속도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교육을 준비하고 교안을 작성하면서 애초에 의도했던 것은 올해 여름과 가을에 각각 진행된 사회진보연대의 “사회운동세미나” 중 내가 맡았던 “세계노동자운동의 역사”를 쉽게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손을 대기 시작하자 완전히 새로 쓰지 않으면 노조의 기초간부교육 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급하게 새로 쓰다 보니 내용적으로 부실하거나 심지어 틀린 부분도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이런 주제의 교육은 좀 더 교육 시간을 여유있게 잡을 필요가 있다. 물론 애초 교육기획처럼 역사와 전망을 결합해서 진행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제의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경우에는) 90분짜리 교육을 이어서 두 강의를 배치하는 방법인 것같다. 이번에 내가 진행한 강의는 총 2시간10분이 소요되었다.(앉아있는 조합원동지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

강조되어야할 것

교안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몇가지가 있다.

일단,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교육하는 데서는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경험이라도) 사건들의 나열을 넘어서야한다는 것이다. 사건들이 처하는 역사적 맥락을 당시의 자본주의 구조, 운동의 발전과 함께 제시하고 따라서 그것이 현재에 갖는 의미를 공유해야한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실버의 <노동의 힘>을 참고하는 것이 유리한데, 역사적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세기적인 노동자운동의 형태를 단지 ‘덜 발전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 속에서 인식하고 현재적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노동자운동사의 많은 교재, 교안들은 노동자운동의 발전을 직선적인 것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조적 인식이 취약하다.)

운동사 부분에서는 교안의 구성방식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강조되어야할 것들도 있다.
시간상 관계 때문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지만 여성노동자운동과 노동자운동의 젠더편향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반영되어야한다. 전망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적 시각을 결합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또한 국제주의가 강조되어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민족주의와 결합한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해야한다. 이 부분도 시간적인 문제 때문에 충분히 강조하지 못해 아쉬운 내용. 이러한 비판을 위해서는 전쟁들을 겪으면서 노동자들이 쟁취한 “민족국가의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약이자 독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제시해야하는데 기술적으로도 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평의회 성격의 노동자운동의 역사에 대한 제시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교안은 노조-당을 중심으로 운동사를 제시하는 데, 이 속에서 평의회 운동의 경험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가 어떤 식으로 대안세계를 만드는 역량을 갖고 있는지를--따라서 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평의회운동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강조될 필요가 있는 사건들은 파리코뮌-러시아소비에트-1919~20년 독일?이탈리아의 혁명적 경험-해방이후 전평과 자주관리?인민위원회-중국의 문화대혁명 등이다. (파리코뮌이나 전평의 경험을 평의회운동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은데, 검토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이번에는 일단 교육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설명한 것이기는 하지만.)

전망의 부분에서는 사회운동적 노동자운동, 대안세계화운동의 일부로서 노동자운동, 지역을 중심으로, 비정규직노동자 등 새로운 운동주체를 형성하는 것의 중요성, 페미니즘과 국제주의 등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인만큼 핵심은, 새로운 운동주체가 과거의 운동관행(기업별 경제주의)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열어가야한다는 것. 그것을 위한 운동의 요소들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교육의 문제점

교육을 준비하면서 기존의 노동운동사 교안과 '노동운동의 전망‘을 주제로 한 교안들을 검토했다. 몇가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노동자운동사에 있어서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사건들의 직선적인 나열인 경우가 많다. 민주노총의 교육비디오 중에 유명한 “승리의 역사 진군의 역사”라는 것이 있는데, 간단한 조합원 교육을 위해서는 좋은 방법이지만 간부, 활동가 교육으로 넘어가면 적절치 않다. 그런데 간부 정도를 대상으로 하는 교안도 그런 식이 많다. 이제까지 단계적으로 발전해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식의 제시는, 글쎄, 미신적인 경험주의라고 할까, 의지주의라고 할까. 오히려 현재 우리의 노동자운동이 어떤 위기에 빠져있다면 그 원인을 역사적으로 인식하고 또한 대안도 역사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역사적 경험 속에서 ‘감동’을 느끼도록 하고 결의를 주는 교육이 있다. 박준성 선생의 ‘슬라이드로 보는 노동운동사’와 같은 것이 그런데, 그런 교육은 나름의 고유한 목표가 따로 있는 것으로 그 자체가 매우 훌륭한 교육이다. 그에 비해서 내가 진행하고자 한 것은 보다 전략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역사를 제시하는 것이라 목표상에 차이가 있다. 양자가 비교 대상은 아닌 것.)

또한 많은 경우에 “노동자운동”이라기보다는 “노동운동”에 대한 설명. 따라서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이 싸워왔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운동에 주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노동’을 쟁점으로 하는 운동만이 아니라, 노동자가 해왔던 투쟁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전망에 대한 교육들을 보자. 많은 노조에서 ‘관성적으로’ 진행하는 교육이기도 하다. 특히 노조의 공식교육들은 연초에 만든 노조의 연간 사업계획(+정세분석)을 적당히 짜깁기 한 것들이 많은 데, 노조의 사업계획을 집행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될 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교안은 나열적인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가 위기라고 하면서 이런저런 지표를 제시하다가 비정규직 확산 등 노동자의 위기를 말할 때에는 연결고리가 없이 그냥 언급. 그러다가 노동운동의 과제로는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 철폐, 전쟁반대.. 대체 이런 식의 투쟁과제를 나열하는 데 이것들이 현재의 자본주의로서의 신자유주의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혹은 각자의 운동과제끼리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가 제시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식의 교육은 개별의 투쟁과제를 소개하는 것일 수는 있지만, 그들이 과연 “어떤 방향”인지를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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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성한 교안도 한계가 분명하다. 특히 강의에서 강조한 내용이나 설명한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교안에 담은 것도 아니고, 내가 비판한 ‘역사적 사건들의 나열’이 나의 교안에서도 반복된다. (시간이 없어서 부분적으로 다른 사람의 교안의 내용을 카피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추후에 다른 기회가 있다면 보완되고 수정될 필요가 있는 것들. 필요한 동지들이 있다면 직접 해주어도 좋을 것 같다. 노동자 교육을 내용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토론을 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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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안]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노동조합 현장간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집중 교육 프로그램 중 “우리가 사는 사회,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교안. 전체 교육 중에서 내가 맡은 것은 두 개의 강의인데, 이것과 함께 다음 강의는 “노동운동의 역사와 전망”이라는 주제.

참고삼아 필요한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다운받을 수 있다.
교안1차자본주의란무엇인가.hwp

사실 한계가 많은데, 게으르다보니 시간을 두고 준비하지 못한 것도 문제고 교육을 마치고 나니 초점을 정확히 맞추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의 강의에서 전달해야할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다소 복잡하게 구성된 것도 원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교안의 개요

교안은 자본주의의 역사와 구조를 비정규직노조 현장간부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교안이 포함하는 내용은 이에 따라서 : △ 자본주의의 역사(아메리카 헤게모니 이전까지) △ 자본주의의 구조(자본의 증식과 착취) △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의 정치 △ 20세기 자본주의의 역사와 신자유주의(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본 남한자본주의의 발전과 정치) △ 신자유주의의 특성 △ 자본주의의의 미래 등에 대한 주제를 포괄한다.

특히 이러한 내용들을 설명하면서 각 주제가 구조적으로 관련되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와 함께 계급투쟁을 필연적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설명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의 파괴성과 함께 붕괴의 필연성을 제시하면서, 노동자계급이 경제적인 방어투쟁만이 아니라 대안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으로 나가야한다는 점까지 제시하는 것이 목표.(그것을 위한 운동의 내용은 다음 주 강의의 주제다.)

교육의 난점들

강의를 진행하면서 주로 어려웠던 점이 몇가지 있다.

첫째, 역사적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역사와 자본축적의 일반적 법칙을 통합해서 설명하는 것. 자본주의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시종일관 결합하는 것은 별로 가능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특히 자본주의의 출현과 초기의 상업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동역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런 점이 있다. 이런 측면은 역사적 자본주의론을 비판하는 논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역사와 계급투쟁을 “선명하게” 연결시키는 데 난점이 있다는 측면과도 관계가 있다. (여기서는 “교육적인 효과” 때문에 무리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아니면 아예 별개의 주제로 진행해야하는 것일까?

둘째, 노동가치론과 이에 따라 잉여가치의 추출매커니즘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교육을 함께한 간부조합원들이 제조업 사업장이 아니기 때문에 설명의 난점이 있었던 측면도 있겠지만, “노동자의 상식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동만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교육의 방식, 논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안을 작성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실제로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조합원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설득력의 공백이 어느 지점에서 발생하는 지 당장 느껴진다.)

특히, 잉여가치에 대한 회계적인 설명을 지양하려다보니, 보통 잉여가치 추출의 도식으로 설명하는 “노동일 안에서 몇시간은 지불된 노동이고, 몇시간은 부불노동이다”라는 식의 설명을 진행하지는 않으려고 했던 측면이 있었다. 잉여가치를 양적인 측면으로 환원하는 회계적인 설명은 교육적인 목적에서 쉽게 설명할 수 있기는 한데, 별로 내용적으로 옳지는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무엇보다 잉여가치 추출은 계급투쟁이며 ‘생산관계’의 문제.)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교육적인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설명방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하게 된다.

셋째, 강의의 시간이나 분량 상 이데올로기 비판은 넣지 않았는데, 이것이 없이 계급투쟁에 대해서 특히 국가장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한된 시간, 분량 안에 결합할 수 있을까가 문제가 된다. 자칫 대중교육에는 적합하지 않게 한없이 학술적이 되거나 긴 시간을 요구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보니, 이제까지 마르크스주의를 도식화하는 이론과 설명방법들이 괜히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다. 스탈린주의 교과서의 도식들은 매우 깔끔한 설명이 가능하게 한다. 문제는 그것이 교육적인 목적을 넘어서 (물론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론 자체를 도식화하고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이론적으로 올바르면서도 설득력있게 대중 교육이 가능한--이 말은 이론이 이를 통해 대중이데올로기로 전화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방식이 있을 것인가가 문제. 그것이 계속 연구되어야한다.

유사한 주제의 기존 교안들에 문제점

이런 점은 교안을 작성하면서 검토한 기존의 교안들을 보면서도 느낀 것이다. 교안들은 자본과 잉여가치에 대한 회계적인 설명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다소 도식적으로 자본주의 역사를 설명하기도 한다.(예를 들어 공황을 설명하면서, “과잉생산 때문에 이윤율 저하가 나타나고 그래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식의 설명하다가 생산부문간의 불비례까지 언급하고 “공황의 극복을 위해 자본주의는 전쟁, 탈노동정책(???)을 취한다”는 부분도 있는데, 답답해질 지경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에서는 부정확한 개념들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고, 특히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빈곤화(혹은 양극화), 실업과 비정규직 확대 등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 한 채 단지 나열한다. 따라서 투쟁에 있어서도 결과에 대한 투쟁까지를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제시하지만 정작 금융세계화(현시기의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서 대안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적인 전망을 제기하지도 못한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그렇게 강조하지만 정작 그것이 “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인지,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 이후를 준비하기 위한 투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공백으로 남게 된다.

보완되면 더 의미있을 부분들

한편, 강의를 진행하면서 좀 더 보강하면 의미가 있겠다고 느낀 측면들도 있다.(조합원들이 관심을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용 중에는 20세기 자본주의 역사와 함께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도래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에서 세계자본주의의 역사와 함께 남한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해서도 결합해서 강의를 진행했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동학과 정치를 함께 설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의 등장과 경제발전, 한일수교나 유신, 전태일 열사의 분신, 부마항쟁-10/26-광주항쟁과 같은 정치적 사건, 전두환의 집권과 80년대 경제위기와 85년 이후의 3저 호황과 87년 대투쟁, IMF 구제금융위기, 대선 등까지 조합원들이 살아가면서 직면한 중요한 정치, 사회적 사건들의 원인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의 결론은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세력화(민주노동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와 계급재형성, 대안사회 건설을 위한 투쟁 등) 조합원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연령대가 높은 조합원들이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좀 더 보완되면 재미있을 부분.

자본주의 사회 계급투쟁의 동역학을 통해서 계급적 단결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교육을 함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자신의 운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할 수 있다는 점도 풍부하게 보완하면 좋을 부분으로 생각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계급으로 나누어져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설명을 넘어서, 프롤레타리아의 분할과 그 반경향, 자본주의의 변화와 함께 형성되는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대표성과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에 대한 설명 등.

이렇게 몇 가지 난점을 보완하고, 긍정적인 부분을 다듬는다면 더 좋은 교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난점들은 더 있을 것이고, 몇몇 부분에 이론적으로 정확치 않은 부분들도 있을 텐데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게을러서 언제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 아마 언젠가 다른 교육을 할 기회가 있으면.)

조합원, 간부교육은 할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특히 매번 실제로 진행하면서 보완해야할 지점이 어디인지 등을 느낄 수 있다. 또 조합원들의 유언의 혹은 무언의 반응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번 교육에서도 (교육주제와 무관하기는 한 내용까지도 포함해서) 광주시청 비정규직 조합원동지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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