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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1
    교육 직선제의 양면(트랙백)(2)
    겨울철쭉
  2. 2008/07/15
    [펌-김원]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 + 덧붙여 (1)
    겨울철쭉
  3. 2008/03/16
    Working Class Hero, Greenday버전
    겨울철쭉
  4. 2007/11/23
    [펌]노사 형평성 ‘OECD 꼴찌’
    겨울철쭉
  5. 2007/08/16
    [펌]윤상원씨를 등장시키려면.....(2)
    겨울철쭉
  6. 2007/07/27
    정교분리와 보편주의(인용)(6)
    겨울철쭉
  7. 2007/07/04
    트랙백/[정신질환자가진단표] 에 관련된 글. (4)
    겨울철쭉
  8. 2007/06/06
    고양이 놀이,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겨울철쭉
  9. 2007/05/12
    나의 &quot;육군수첩&quot;에 대한 트랙백(7)
    겨울철쭉
  10. 2006/12/14
    김정환, 순금의 기억, 별
    겨울철쭉

교육 직선제의 양면(트랙백)

새벽길님의 [교육감 직선제는 '盧명박'의 독사과 - 교육 분권화에 놀아날 때가 아니다 (하재근, 08-07-22)] 에 관련된 글.

교육감 선거에 어떻게 하면 이길지만 생각하다보니, 이런 점은 생각을 하지 못했군요, 교육감 직선제가 결국은 교육분권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인데,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중에도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신자유주의 하에서 "현직의 위기"가 교육감에서도 발생할 것이라는 점에서도 동감하는데, 주경복 후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교육의제가 (학부모와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매우 실리적인 쟁점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부터도 만족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예상할 수 있겠죠.

이번 교육감 선거는 (교육운동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명박 심판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한나라당에서 좌파들까지 모든 정파가 염두에 두고 있었고 저도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씁쓸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강남의 계급투표라는 게 대중적으로 확연하게 확인되었다는 점 정도는 의미가 있을 것같군요.

그나저나, 선거가 끝나자 마자 청와대에서는 공공부문 민영화 등 정책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말이 바로 나오는군요. 교육감 선거에서도 어정쩡했던 공공부문 노동조합들 중 하나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다시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한치앞의 정세에 대해서 너무들 둔감하죠.

한편, 글에서도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직선제가 만능은 아니라는 겁니다.
산별노조를 만들다보니, 노조 안에서도 직선제 선거는 넘치는데, 정작 민주주의는 실종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선거간 분별력도 없고, 후보간에도 마찬가지죠. 그런 조건에서 직선제 선거의 과잉은 오히려 조직의 진정한 민주적 운영을 상대화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얼마후에는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도 예정되어 있는데, 고민되는 지점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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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김원]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 + 덧붙여

김원 선생의 인터뷰가 오마이뉴스에 실렸군요.
 
 
문제의식에 많이 공감합니다. 마침 지난 주말에 김원 선생 등이 신병현 선생 등과 작업해서 발간했던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상황에서 반갑기도 합니다.(오랜만이 리뷰라도 써야할 것같다는;;)
 
 
 
글을 읽고 나서 찾아보니, <지행네트워크>라는 곳에 관련된 글을 이미 쓰신 적이 있군요.
 
http://jihaeng.net/blog/111 (촛불은 계속 타오를 것인가)
 
 
 
한달 넘은 글이긴 하지만, "긴박한" 정세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사점이 생생한 글입니다.
 
 
한편, 아래 제가 쓴 참세상 기고와 관련해서 사회진보연대 게시판에 이런 글을 썼었습니다. 또 보니, 김원 선생의 글을 보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군요.
 
 
다만 저는 여전히 활동가입장인지라, 현재 정세에 사회운동이 어떻게 "전술적으로" 개입해야하는지가 더 고민이긴 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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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자연스럽게 참세상에 올라온 다른 기고문들과 모종의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영수(노힘)씨의 글
그리고
 
김강기명 씨의 글
과 그렇습니다.
 
후자는 자율주의에 가까운 입장이라면 전자는 (원영수씨의 원래 포지션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신좌파적 입장일텐데,  둘다 촛불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촛불 안에 있는 모순적 요소를 봐야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이 자신의 역할을 가진다는 입장입니다. 역설적으로 좌파들이 완전히 무관심하거나 혹은 이런 방식으로 열광하거나하는 사이에 가장 영리한 대응을 하는 것은 여연 등의 NGO들입니다. 자신들이 어느 지점에 개입해야하는지 알고 있지요.
 
그래서, 이번 촛불국면에서 충분히 배워야하고 싸움에 최선을 다해야하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이어선 안될 것이고, 무엇보다 사태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열광보다는 과학적 분석과 이해)
 
이런 식으로 말하면 뻔하게 "좌파 먹물들 운운"하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겠군요. ㅋㅋ
하지만, 참여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참여"가 더 중요하게되는 시점이니, 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ㅎ
 
여튼간에 자율주의자들의 반응은 뻔하다고 치고, 다소 놀라운 것은 (이미 리보위츠의 글[21세기 사회주의]을 번역할 때부터 그랬던 것같기는 하지만) 원영수씨의 이런 입장은 좀 놀랍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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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좀 긴 사설.
 
 
 
아래는 퍼온 글입니다.
 
 


  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
  [촛불논쟁-거리정치인가 정당정치인가?⑥] <여공 1970…>의 저자 김원 박사
    
촛불에 상찬을 늘어놓은 다른 지식인들에 비해 그는 차분했다.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2006년)>란 책으로 주목받았던 김원 박사(정치학)는 6월 중순께 발표한 글에서 "아이들의 촛불을 보며 지나치게 부끄러워하거나 환호해서는 안된다"며 침착하고 냉정한 시선을 주문했다.
 
"우리는 이미 2002년 촛불이 어떻게 잦아들었으며, 당시 촛불을 든 아이들이 88만원세대가 되어 고용불안 속에서 '경제를 살려준다'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김 박사는 '촛불이 일상으로 들어왔을 때'를 언급하며 비판적 시각을 이어갔다.
 
"한달 전 뉴타운 건설에 열광했던 집단이 갑자기 촛불 속에 자신을 불태울 수 있을까? 한국정치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거리의 정치가 순간 잦아들면서 일상으로 대중들이 돌아갈 때, 시민사회의 '풀뿌리 보수주의'는 다시 강력한 흡인력을 보이며 대중을 빨아들였다. 이 점에서 촛불로 한국 시민사회의 풀뿌리 보수주의가 변화했다고 판단한 것은 경솔한 판단이다."
 
심지어 김 박사는 "(2002년 촛불에 이어) 2008년 촛불에도 '민족주의'는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힘을 발휘하고 있다"며 이를 "민족적 자존심에 기초한 멘탈리티의 재생"이라고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촛불 독자성은 강화되고, 사회운동 영향력은 약해져"
 
그동안 미시사의 관점에서 사회운동을 연구해온 김원 박사는 1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나서도 "촛불시위를 주도한 중고생들을 '촛불세대'로 규정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촛불시위의 양상·분위기·아우라가 과거 거리정치와는 분별되는 측면이 있다. 가족단위로 촛불시위에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전선을 쳐놓고 미느냐 밀리느냐는 문제로 치환되지 않고 잔치 혹은 페스티벌 성격이 상당부분 더해졌다.
 
중고생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초기에 주도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더 두고 봐야 한다. 세대라기보다는 광우병 문제와 자신의 교육현실이 겹치고, 문자세대와는 다른 인터넷세대의 감수성이 결합돼 초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박사는 중고생들의 촛불시위 참여 양상이 기성세대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신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교육에 복종하는 애들로만 알았는데 스스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기성세대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사유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성찰한 것이다."
 
이어 김 박사는 민족주의의 재현이라는 '촛불의 낡음'에 대비되는 '촛불의 새로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운동의 영향력이 더욱 더 약해졌다. 2002년 촛불시위 때는 사회운동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8년 촛불시위 현장에는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깃발을 만들어 나왔다. 거리정치에 대한 사회운동의 영향력이 퇴조한 것이다. 2002년과 대비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점이다."
 
즉 "촛불의 독자성은 한층 더 강화되고 사회운동의 무능력함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김 박사는 "이는 2002년 촛불을 경험하면서 운동진영이 학습효과를 가진 결과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더 이상 깃발을 내세워 일방통행적인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대중운동으로 전화하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오히려 대중의 바다에 뛰어 들어가 거기서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 정치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정당 실험할 게 더 남아있나"
  
또한 김 박사는 "사회운동과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 촛불시위로 분출됐다"며 촛불시위가 한국사회에 '두 가지 성찰'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했다.
 
 "하나는 더 이상 한국사회의 변화는 기존의 제도화된 정당이나 정당정치를 통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촛불은 촛불이고 제도정치가 시민사회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앞으로 한국사회의 변화는 촛불시위든 거리정치든 대중지성이든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더 이상 기존의 사회운동 패러다임을 고집했을 때 사회운동이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대중의 호민관'이라는 패러다임으로는 대중을 이해할 수도 없고, 대중이 복무할 수 있는 언어공간도 확보할 수 없고, 그들을 사회적·정치적 변화의 장으로 끌어올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 사회운동은 대중의 호민관으로서 역할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사회운동 활동가들도 이번 촛불시위에서 그런 점을 학습했다고 본다." 
 
이런 분석의 연장선상에서 김 박사는 최근 촛불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최장집 전 고려대 교수의 '대의제 민주주의론'과 관련 "현상 유지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최장집 선생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최대치는 친노동자정당의 집권인 것 같다. 국가권력이나 정부행태의 변화·집권 등을 통해서만 좀더 풍부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노동자정당의 집권을 돕는 시간에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다양한 가능성을 사회 각 부분에서 추진하는 게 (새로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중의 판단과도 부딪친다. 대중들이 투표와 선거에 참여해 자신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느냐?"
 
이 대목에서 김 박사는 "정당정치는 대안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라며 '진보정당 무용론' 혹은 '정당정치 무용론'으로 비칠 수 있는 도전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이미 "촛불집회에 대한 많은 해석들을 보면,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이 필요없는 이론들"(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작년이 87년이 20년 되는 해였다. 좋은 정당, 진보정당의 실험을 더 할 게 남았나? 더 이상 거기에 목을 매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산 선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나? 대중들이 자신들의 일상적 문제를 자기문제로 표출하기에는 정당은 너무 낡았다. 그런 것들이 명백한데 계속 (진보)정당에 목을 매야 하느냐? (진보) 전당이 대안이라고 얘기해야 하느냐?"
 
이어 김 박사는 "대중의 우발성과 예측불가능성이 한국정치를 관통하는 특징이 아닌가 싶다"며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아래로부터 대중투쟁에 근거했을 때 형식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계기가 마련된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대중의 우발성과 예측불가능성을 제도정치로 통제할 때 민주주의가 공고화된다는 주장은 현상유지적이고 보수적"이라며 거듭 '최장집 사단'의 견해를 비판했다. 
 
"대공장 남성 정규직 중심의 진보정당 노선을 재검토해야"
 
김 박사의 도전적인 주장은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핵심사업장인 대공장 노조  조합원들은 이랜드 투쟁은 물론이고 촛불시위에도 관심이 없다. 현재 노동운동의 상태가 이러하기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이 얼마나 생명력을 갖고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공장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은 비정규직·여성·실업 등의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대공장 남성 생산직 노동자를 주요한 조직대상으로 하는 현재의 정당운동의 패러다임을 재검토해야 한다. 노조운동이 지역·산업·계층을 달리하는 소수자와의 연대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
 
김 박사는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생산직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의 지지가 취약하기 그지없다"며 '지지층 외연의 확장'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진보정당 원내 진입) 초기에는 '거대한 소수'를 운운했지만 지금은 지지기반이 얇아졌고 노동자층의 적극 지지도 사라졌다. 그래서 기존 기지층의 외연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촛불에서 제기된 이슈들을 중심으로 지구당 차원이든 지역투쟁 사례를 통해 촛불시위에 참여한 다양한 층들을 지지층으로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밑으로부터 지지층을 확산하고, 정당의 일상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채널과 소통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작업이 사회운동과 진보정당 양쪽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김 박사는 "지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풀뿌리 보수주의를 깨지 않으면 진보정치를 할 수 없다"며 "수도권이든 비수도권이든 아래로부터 풀뿌리 보수주의를 일상에서 깨는 노력과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보수가 주도하는 한국적 정당체제 속에서 진보정당이 장기적인 생존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박사는 "촛불이 잦아들고 다시 일상이 조성됐을 때 촛불을 지지한 사람들은 자기 일상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와 관련, 그는 새로운 대안으로 검토할 만한 사례로 '이랜드 투쟁'을 언급했다.
 
"이랜드 파업이라는 비정규직 파업이 지역을 중심으로 소비자·노조·정당·사회운동과 동시에 결합됐다. 그래서 이랜드 투쟁은 지역화·집중화·전국화될 수 있었다. 이랜드 투쟁을 거치면서 '시민·비정규직·소수자 등의 일상적 정치활동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깨달은 것 같다. 촛불도 그런 활동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박사는 "촛불만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촛불이 던진 변화를 읽으면서 대중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정치활동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게 없는 상태에서 매주 촛불시위 하러 나가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촛불은 대중투쟁의 정형화된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명박 정권이 악수를 두면 촛불시위는 5년 내내 계속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자기 생각을 사회운동과 결합하고 의식을 끌어올릴 때 (촛불시위처럼) 사회운동을 강화시키는 대중투쟁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 기존의 사고를 바꾸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실험을 이명박 정권 내내 계속 한다면 '진지를 갖는 사회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원 박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편집위원,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한국 대학생의 하위문화와 대중정치>,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김진균학술상 수상작)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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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ing Class Hero, Greenday버전

아래 "자본주의의 노동세계"에 대해서 쓰고 나니 생각나는 곡이 있어서 보너스로.

John Lennon이 불렀던
Working Class Hero.
Green Day라는 밴드가 다시 부른 버전이다. 혹자들은 곡을 망쳤다고 뭐라하는 것같은데, 흠흠.. 나름대로 좋은데 왜 그럴까, ^^; 펑크락을 하는 친구들인데, 다른 앨범도 좋다.

중간중간에 흑인노동자들의 인터뷰가 들어가는데 인상적.(사실 리스닝이 약해서 정확히 못알아 듣겠다.;;) 수단의 다르푸르 학살과 관련된 이야기다. 내용적 연관은 잘 모르겠지만, 가사가 전하는 노동자계급의 어떤 이상주의와 평화주의가 공명할 수 있을 것같다.
듣다보면, 남한과는 또 다른 "노동계급문화"라는 것이 있는 사회에서 나올 수 있는 곡이라는 생각도 들고.

요즘은 어쩌면 계속 패배하고, 또 의기소침하지만,
노동자계급이 영웅적인 시기가, 곧 다시 올 것이다.

Working Class Hero - Green Day





As soon as you're born they make you feel small

네가 태어나자마자 그들은 너를 작은 존재라 느껴지도록 했어
By giving you no time instead of it all
너에게 아무 것도 아무 시간도 주지 않고서
Till the pain is so big you feel nothing at all
고통이 커다랗게 남아 있는 한 너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느끼겠지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노동계급의 영웅은 되어볼만한 것이지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노동계급의 영웅은 되어볼만한 것이지
 
They hurt you at home and they hit you at school
저들은 고향에서 너에게 상처를 입히고 학교에서 너를 때렸지
They hate you if you're clever and they despise a fool
저들은 니가 현명하면 증오하고 바보라면 무시하지
Till you're so fucking crazy you can't follow their rules
니가 정말 미치지 않았다면 그들의 룰을 따라선 안돼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노동계급의 영웅은 되어볼만한 것이지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노동계급의 영웅은 되어볼만한 것이지
 
When they've tortured and scared you for twenty odd years
괴롭힘과 박해 속에서 너는 스무 살이 되었지
Then they expect you to pick a career
그때 그들은 너를 일꾼으로 뽑아 쓰리라 기대했지
When you can't really function you're so full of fear
네가 정말 제 기능을 못할 때 너는 굉장히 두려웠지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노동계급의 영웅은 되어볼만한 것이지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노동계급의 영웅은 되어볼만한 것이지
 
Keep you doped with religion and sex and TV
저들은 너를 종교와 섹스와 TV에 중독시키고 있어
And you think you're so clever and classless and free
너는 현명하며 계급도 없고 자유롭다고 생각해
But you're still fucking peasants as far as I can see
그러나 내가 보기엔 아직 너는 농부에 불과해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노동계급의 영웅은 되어볼만한 것이지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노동계급의 영웅은 되어볼만한 것이지
 
There's room at the top they are telling you still
저들이 너를 부려먹는 한 꼭대기에는 밀실이 있지
But first you must learn how to smile as you kill
하지만 너는 쥐죽은 듯 웃음 짓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해
If you want to be like the folks on the hill
니가 언덕 위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면 말이야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노동계급의 영웅은 되어볼만한 것이지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노동계급의 영웅은 되어볼만한 것이지
 
If you want to be a hero well just follow me
만약 너가 영웅이 되길 원하면 나를 따라와
If you want to be a hero well just follow me
만약 너가 영웅이 되길 원하면 나를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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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노사 형평성 ‘OECD 꼴찌’

한겨레신문 기사.
노동관련 법제도, 관행이 이 지경인데, 얼마나 더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노조활동을 제약해야 분이 풀리겠냐.. 그리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를 '열사'로, 산업재해로 죽여야 분이 풀리겠냐..

이런 상황에서도 노동유연화, 기업규제완화, 노조활동제한, 노동자투쟁에 대해 "법와 원칙" 운운하는, 정작 자신들은 범죄자인 놈들이 대선에 보란 듯이 나와서 1,2위를 하고 있으니 나라 꼬라지가 한심하다.
87년은 역사책에만 남고, 이 모양이 되도록 제대로 싸우지 못한 우리  노동운동의 상황이 참담하기도 하고..


한겨레신문(07-11-22)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252111.html

노사 형평성 ‘OECD 꼴찌’
30개국 중 29위…비정규직 비율 2위 등 효율성 항목만 상위권

한국노사관계 지표별 순위   
한국의 노사관계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0개국 가운데 23위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또 ‘효율성’은 높지만 ‘형평성’은 지나치게 낮아 심각한 불균형을 낳고 있으며, 노동기본권 보장 수준 등 형평성 측면에서 노사관계 순위는 꼴찌에 가까운 것으로 지적됐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의 노사관계 평가를 위한 국제세미나’에서 “노사의 조직 특성과 전략, 노사관계의 제도적 틀과 노동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발한 노사관계 평가 지표로 각국 노사관계를 비교해보니, 한국은 효율성과 형평성에서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 나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 교수가 개발한 노사관계 지표에 근거해 2005년 기준으로 한국의 노사관계 순위를 살펴보면, 한국은 집단해고의 자유나 노동운동 통제 정도, 비정규직 비율 등으로 이뤄진 ‘효율성’ 순위에서 7위를 기록한 반면, 노조 조직률이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정도, 정부의 사회보장 지출 수준, 단체협약 적용률 등으로 이뤄진 ‘형평성’ 순위에선 29위에 그쳤다. 종합 순위도 23위에 머물렀다. 비교 대상이 된 30개국 가운데, 덴마크는 효율성과 형평성이 모두 높아 1위를 차지했다.

김 교수는 △국제사회 수준의 단결권 신장 △노동조건 개선 및 고용차별 해소 △사회보장의 확충 등을 통해 노사관계의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노사관계 평가 연구에 함께 참여한 파울라 부스 전 미국노사관계학회장(럿거스대)은 이날 세미나에서 “한국처럼 형평성을 제대로 취하고 있지 못한 나라에선 상대적으로 노사 갈등이 심각하게 야기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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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윤상원씨를 등장시키려면.....

정은교 선생이 프레시안에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한 글을 기고하셨군요.
>> 화려한 휴가' 유감 [독자 기고] 항쟁의 주체와 실상 왜곡

좋은 글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 붙은 덧글이 하나 있습니다. 광주와 지식인에 대한 어떤 분의 짧지만 무거운 언급입니다.
그냥 기사 하나에 댓글로만 묻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글이네요. 퍼왔습니다.



윤상원씨를 등장시키려면.....
원문있는 곳(링크)
무념 / 2007-08-15 오후 2:58:40   
추천 17,    반대 1 

광주항쟁은 소위 먹물이라는 자들의 결정적 치부가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휴가의 제작자들은 이러한 미세한 흐름을 표현하기가 두려워 소위 지식인이라는 계층의 활동가들을 통채로 삭제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 실 윤상원씨는 운동권을 제외한 일반 학생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야학을 열성적으로 해 간 의식있는 청년 정도로 여겼었던 것 같습니다. 항쟁이 마무리되고 그가 도청에서의 저항을 주도하고 최후를 맞았다는 애기를 듣고 멍치끝이 띵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부끄럽다는 느낌, 내가 배신자라는 오욕감,  자신의 삶이 그다지 가치있을 것 같지는 않겠다는 뭐 그런 감정이었지요. 한마디로 광주항쟁은 젊은 우리들의 인생관을 크게 뒤바꾸어버린 경험을 안겨주었지요.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지도부에 속한 인물들의 대다수가 끝까지 싸우겠다는 약속을 뒤로 한채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씨를 들 수 있겠습니다. 그는 군인들의 체포작전이 시작되자 도피하여 서울의 어느 작은 공장 직공으로 들어가 체포될 때까지 숨어 지냈었지요.

박관현씨는 옥중에서 단식항쟁 끝에 운명하게 됩니다. 그가 그리 치열하게 단식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산자로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극심한 자괴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알려지고 전남대 학내에서의 항의데모는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한달여 동안 매일의 데모 끝에 진압경찰들이나 학생들 모두 지쳐서 그저 도로에 앉아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쓴 웃음만 나옵니다. 이렇게 지독하다 할 정도로 데모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학생들 개개인이 느꼈던 그리도 심한 자괴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데모진압의 강도는 훨씬 강해질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정예부대를 투입하여 데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무조건 떼려잡는 그런 것일 거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광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그저 버스를 타려거나 내리는 사람들을 아무 경고도 없이 덤벼들어 검은색 박달나무 곤봉으로 머리통을 내려갈겼습니다. 고시학원으로 난입하여 수업중인 수험생들을 두들겨패고 피흘리는 그들을 질질 끌고 나와 도로에 꿇어앉혀 놓거나 트럭에 태워 어디론가로 데려갔습니다. 충장로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 점원들을 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점원과 함께 항의하는 가게 주인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일부는 어디론가 끌고 갔습니다. 나중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움직이는 것만 보면 덤벼들어 물어뜯는 미친개, 바로 그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상입니다.

집집을 수색하여 사람들을 폭행한 것은 그야말로 집 또한 안전하지 않겠다는 극심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시외로 도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교통은 두절되었고 시외로 빠져나가다가 포위중인 군인들에게 걸려 변을 당했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자자했기 때문이었지요.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상무대에서 교육받는 군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어서 우리 동네까지는 수색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무척 다행스럽게 여겼지요.

이즈 음해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은 거의 모두 잠적해버리고 맙니다. 데모는 즤들이 다해놓고 정작 필요할 때는 한놈도 안보인다. 광주 시내에서 흔히 들렸던 투덜거림들이었습니다. 개학해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니 모두들 나와 똑같이 행동했다는 걸 알고 참 기가 막히더군요. 소위 먹물이라는 작자들은 그렇게 제 한 몸 건사하기 바빴습니다.

영화에 윤상원씨를 등장시키려면 이러한 먹물들의 행동양태가 반드시 묘사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랬으면 이 영화는 또다른 저항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요?

사 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선은 그 당시 나를 무척이나 괴롭혔던 심리상태를 다시 한 번 되새기기가 싫고..... 지금 내 나이 오십하고 하나, 그 영화가 잘됐든 잘못됐든 또 영화감상 시간이 길든 짧든 그 당시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되돌아가기 싫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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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와 보편주의(인용)

정교분리와 보편주의간의 충돌의 문제에 대한 인용. 이슬람 혹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보편주의라는 의미는 아니고 오히려 그 종교들이 가지는 성격의 일부로서 보편성을 제거한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이 쟁점을 상기하는 데는 아프카니스탄 인질납치와 관련된 상황 뿐 아니라 주빌리사우스 물-전력 사유화 노동자 회의에서의 논의도 영향을 주었다. 물 사유화 반대 투쟁 등에 종교적 윤리를 반대 논리로 활용할 수 있는가라는 쟁점. (<무례한자들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포스트) 다만, 다시 생각해보면 종교직 윤리와 논리를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사람이 염두에 둔 것은 일종의 "영성 페미니즘"이었던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편적인 것일 수 있지만, 종교들간의 충돌이 일상적인 곳에서라면, 역시 항상 기존 종교들의 논리에 흡수되거나 동화될 위험에 있는 것이 사실인 것같다.

▒ 원문 :
대안 세계화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하여: 사회운동의 새로운 프로세스로서 시민교육운동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1700 (장진범)
* 강조와 문단나눔은 나

대안세계화 운동을 위해서는 대중운동들 간의 국제주의적 연대를 매개할 수 있는 보편주의적 이념들이 필수적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중 하나일 테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많은 조류가 민족형태에 포섭되면서 여러 사회운동들을 매개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해 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마르크스주의가 보편주의적 이념으로서의 역량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이나 평화주의, 생태주의, 다문화주의 등 다른 보편주의적 이념들과의 대화와 상호개조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가 제기된다. 보편주의 간의 갈등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이 특수주의 간의 갈등이라면 특수주의의 상위에 있는 보편주의가 갈등을 매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가문과 가문의 갈등을 상위에서 매개하는 민족처럼. 그러나 쟁점이 되는 것이 보편주의 간의 갈등이고, 따라서 그 상위에 보편주의를 설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그 상징적 사례 중 하나로 프랑스에서 벌어진 히잡(hijab) 논쟁을 들 수 있다. 당시 쟁점은 ‘정교분리’라는 관점에서 종교적 표식이 금지된 프랑스의 학교 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 프랑스 여성들이 히잡이라는 이슬람 전통 스카프를 쓰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종족적 차별, 문화적 인종주의 등을 문제삼는 문화주의자들은 이를 허용할 것을 주장했고, 여성의 종속과 불평등, 그리고 그녀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두 가지 보편주의적 이념 간의 갈등은 전면적이며, 아마도 이것이 실천적으로 해결되는 데는 매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이 같은 모순을 부정하는 가운데 양자가 (사실상 어느 하나의 절대적 우위 하에) 자연스럽게 수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든지 자신의 이념의 정당성을 근거로 다른 이념의 정당성을 부정하려고 하는 이념은 신뢰하기 어렵다. 우리는 각각의 이념의 정당성을 낳는 복합적이고 불균등한 물질적 조건이 존재하는 한 이 모순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따라서 이 갈등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기예를 익혀야 한다.

 

또한 보편주의에 고유한 위험으로서 자신의 이념에 내재하는 공백과 모순을 부정하려는 경향을 제어하면서, 이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개방함으로써 보편주의 간의 (갈등적) 교통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교육은 ‘보편주의 간의 갈등’을 다루는 ‘갈등적 다원주의’를 조직하고 유지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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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정신질환자가진단표] 에 관련된 글.

imaginaire님의 [정신질환자가진단표] 에 관련된 글.

http://www.psychonews.co.kr/test/self.php3
위의 포스트에 소개된 검사.

http://www.psychonews.co.kr/psytest/psytest0.htm
고려대 임상신경심리센터 홈페이지인데, 테스트가 하나 더 있군요.

병원에서 하는 검사하고도 유사한데 축약된 형태네요. 오랜만(?)에 다시해보니, 역시 아주 좋지 않군요; ㅋ
여러분도 한 번 정신건강 검사해보시길.

첫번째 검사는 정신분열증, 우울증, 조울증, 공황 장애, 공포증, 강박증, 외상후 스트레스, 범불안 장애, 사회 공포증, 신체화 장애, 거식/폭식증, 알콜 중독, 불면증, 스트레스 등 14가지 정신질환에 대한 수치를 보여줍니다. 두번째는 우울증 검사.
제 경우에는 '정밀진단요망' 레벨이 다섯가지에, 특히 두가지가 아주 심하고, '경계경보' 레벨이 다섯가지 나오는군요. 쩝;;. 하지만 '공포증' 항목은 점수 0. 뿌듯. (말하자면 겁대가리 상실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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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놀이,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붉은사랑님의 [연이은 고양이 놀이] 에 관련된 글.

진보넷 블로그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고양이 놀이. 저도 해봤습니다.
내 이름으로 해보니 이런 녀석이 나오는군요.ㅋ



다른 사람들은 더 귀여운 고양이가 나오기도 하는 것같아서 좀 샘도 나지만, 이 정도면 귀엽죠.

고양이와 관련해서, 잘 알려진 단편 애니가 있는데,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彼女と彼女の猫)라는 단편 흑백 애니. 신카이 마코토, 1999년 作.
고양이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여기 나오는 '그녀의 고양이', 비의 향기, 눈의 향기를 아는 매력적인 친구네요.




고양이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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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quot;육군수첩&quot;에 대한 트랙백

자비님의 [일기] 에 관련된 글.

위의 글을 읽다가 오랜만에 군대생각이 났다. 26개월. 논산에서 훈련받고 철원 6사단, 최전방 사단에서 육군, 90미리 무반동총 소대에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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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가장 끔찍한 기억이다. 물론 지금도 만만치는 않지만.
특히,
훈련소는 그렇다. 위의 글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나에게는 낡은 "육군수첩"이 하나 있다. 그런 걸 보관하는 이유는, 내가 첫번째 면회를 하기 전까지,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는 공간인 입소대, 훈련소와 첫배치받은 부대에서 스스로와 대화하기 위해 작성한 글들이, 정말 깨알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혀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나는 매일 밤, 화장실에서 몰래 글을 썼다.민중가요를 잊지 않기 위해서 생각나는 모든 노래를 적었고, 매일 일기를 썼다. 반공교육 교재에 나오는 한총련 출범 선언문을 배껴적었다.('교재'에서 배껴쓴 94년 슬로건; "자주의 시대, 그 길에 빛나는 백만의 영광, 미국반대 김영삼타도의 자랑찬 성전에서, 통일조국 건설로 내달리는 청춘은 승리한다", 이건 아직도 똑똑히 기억난다.)

아마 그것도 없었다면그 공간에서 나는 미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수첩을 "보급"받은 날은 입대 3일째 되는 날부터. 이날의, 며칠의 일기. 어쩌면 유치하지만 가장 솔찍한.

나는 1995년2월28일 육군 논산훈련소, 28교육연대 제5교육중대에 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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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째] 지루하다. 불안하다. (중략) 오늘부터 민가가사를 적기 시작했다. 지금도 몇개씩 틀리는 것이 잊고 기억안나는 것도 있다. 점점 더 잊어먹겠지. 빨리 기억에서 지워지기 전에 써야지. 그래도 오늘은 삼일절이다. 이런 글 쓸 정도의 여유라도 있다. 이런거라도 계속 쓰니까 시간은 간다. 갑자기 앞일이 막막하다. 그래, 오기 전 생각으로 지내야지. 가볍게 생각하자, 겨우 2년이다. 금방 갈거다. 제대해서 웃는 얼굴로 동지들을 다시 만나자! 아, 지금도 검은 창살아래 박노해, 백태웅, 수많은 구속수배 노동자들. 사회와 격리되고 운동과 격리되고 의미없는 하루하루를 소모할 수밖에 없는 동지들.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는 그런 동지들이 있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나은 편이겠지. 돌아가자, 살아서 돌아가자.

[4일째] (중략) 시를 외우기로 했다. 지금 갖고 있는 건 "썩으러 가는 길" 뿐이다. 다음에 편지하면 용운형과 명진이 형한테 시좀 프린트해서 보내달라고 할 생각이다. 일단 있는 것부터 외워야지. '민들레처럼', '강철은 따로 없다', '전사2'가 먼저 보고 싶다. 그 외에도 몇가지. 고 김남주님의 '시의 요람 시의 무덤' 등등등. 빨리 편지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왜 언제나 최상의 조건만을 요구하는 지.. 나보다 고생하는 친구들은 많은데.  (중략) 그리고 오늘 새로온 친구들을 갈궜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그러다니, 고참되어서 남을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이다. 반성하자. (후략)
*가장 치욕스러웠던 순간 : '복무신조'라는 것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개소리 나올 때와 애국가를 부르라는 데 '동해물과~'가 나올 때. 이 치욕.

[일주일후-주특기배치후] '낙관적이라고 해로울 것은 없다. 나중에 실컷 울어도 늦지 않으니까" 리더스다이제스트에 95년2월호에 나온 말이다. 정말 좋은 말 같다. 정말 낙관적이라고 해서 손해볼 일은 없으니까.
군의 정신교육기능 중 하나로, 저들이 말하는 것이 국군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수호하지 않으며 오직 '자유민주주의'만을 수호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자신들 부르조아 이데올로기가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같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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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이후 26개월 동안 어쩔 수 없이 군가 몇곡을 부른 적은 있어지만 한번도 '애국가'와 '멸공의 횟불'같은 것은 부르지 않았다.(물론 지금도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그대신 눈밭 겨울 100km 행군 중에 '녹슬은 해방구', '빨치산의 밤'을 혼자서 불렀다.

그런 시기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어쩌면 더 나약한 지도 모르겠다.
10년도 넘은 수첩을 다시 펼쳐보면서, 오늘의 나를 돌아본다. 오래된 내가 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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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순금의 기억, 별

<김정환 시집 1980~1999>를 읽다가, 말하지 못한 구절들을 위해 싣다.


순금의 기억

온몸이 몇천만 도로 타면 시체의
기억을 태워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아닌, 純金의
기억, 아 기억만을 후대도 아닌,
손닿지 않고 보이기만 하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기만 하는
느껴지지 않고 간직되기만 하는
간직되지 않고, 있는
그런 순금의 보통명사를 남겨줄 수 있을까?

-- 시집 <순금의 기억>, 1996.「 제10부 세기말의 절벽 」중
정념을 잿빛 개념으로 탈색하는 것보다는, 나의 모든 것이 내가 아닌 '純金의 기억'이 된다면 찬란할 것같다. 순금의 보통명사로.




난 요새 별을 보면
뭔가 배경이 있는 것 같아
뭔가 어긋나고 있거든
그게 맞는 것같아
그리고 진실은 항상
참담한 것 이상으로 위안이 되지
어긋난다는 것 그리고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게 의미인 것같아 죽음 앞에서는
빛의 속살이 어둠의 속살이
따스한 기쁨 아닌가

-- 시집 <희망의 나이>, 1992 「제2부 사랑노래」중
시가 쓰여진 1992년, 그때 '장기80년대'는 패배로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대학1학년, '희망의 나이'였다. 지금, 진실은 참담한 것(이기도 하며, 또 그) 이상으로 위안. 때로는 참담한 것들만을 진실로 대면하게 될 때, 그것은 별로 위안이 되지는 못한다.



김정환 시집 - 1980-1999
김정환 (지은이) | 이론과실천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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