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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인류의 미래사 -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


인류의 미래사 -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
W. 워런 와거 지음, 이순호 옮김 / 교양인
 
 
예전 어느 신문에 " 미리 예측해 본 한국과학 2030년"이라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기사의 부제가 '우주관광 인기―무병장수 활짝'이라고 붙었다. 대부분의 미래 예측이라는 것이 이렇듯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예상하기는 하지만 예측 자체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얘기들이다. 더구나 이 예상을 발표한 기관은 정부 산하기관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 기술예측위원회. 위원장으로는 그 이름 찬란한 황우석 교주님이 얼마전까지 활동하신 곳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예측이 왜 과학과는 동떨어졌는고하니, 이런 예측에는 '사회'가 전적으로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도 사회적 필요에 따라 구성되고 그러한 사회적 필요라는 것이 사회구조에 의해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면, 결국 사회구조의 변화를 예상하지 않고서는 모든 예측은 말장난에 불과하게 된다. 사회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변화를 추동하는 사회적 모순을 밝혀내는 것이 관건일 텐데, 결국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 사고하지 않는 미래 예상이란 대부분 헛소리에 불과하게 되기 쉽상이다.
 
이 책, <인류의 미래사>는 사회적 변화와 과학의 발전까지 포괄하는 전반적인 미래를 예상하고자 한다. 저자는 겸손이라는 미덕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쓰는 것들이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상당한 공을 들여 가능한 미래상을 찾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저자가 그리는 미래는 거칠게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다.
- 2010년대, '세계무역컨소시엄'이라는 자본가들의 초국적 연합기구가 세계를 실질적으로 장악
- 2040년대, 세계무억컨소시엄과 빈곤국들의 핵전쟁으로 인류의 상당수 사망
- 2060년대 , '세계당' 주도의 '세계화'로 사회주의적인 국제정부인 '세계연방' 출범
- 2110년대, '세계연방'을 통해 세계적인 사회주의적 이상이 완숙하게 현실화
- 2130~40년대, 지역적인 수준의 공동체주의를 옹호하는 '작은당'에 의한 '세계연방' 해체
 
말하자면 자본의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세계적인 자본독재가 성립되고, 이어서 자본동맹과 빈곤국들의 연합의 세계대전, 국제적인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과 보다 공산주의적(?)인 사회로의 이행과 같은 것이 시나리오다.
 


저자가 그리는 각각의 사회의 상은 흥미롭다. 사회주의의 이상이(이어 공산주의적 이상) 세계당의 '세계화'라는 식으로, 현재의 사회주의 이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현실화된다는 예상은 가장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미래의 사회주의 이상은 과거의 것을 어떤 식으로든 계승하겠지만 전혀 다른 형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재로 차베스는 아직 모호하지만(또한 이념에는 아직 한참 미달하는 것이지만) '신사회주의'를 슬로건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 시대의 (발리바르_「공산주의 이후에 어떤 공산주의가 오는가」/『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소련사회주의』 수록_에 의하면 네번째) 공산주의 이념은 첫번째 공산주의의 형태라고 할만한 중세말  프란체스코회-청빈형제회의 그것과는 상이하다. 마찬가지로 포스트마르크스적(다섯번째?) 공산주의는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 (발리바르는 그것을 국제주의와 페미니즘을 예상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점에서는 저자와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세계당'의 이념이란 오히려 볼세비키에 가까워보이고 이것은 공산주의의 변화가 오히려 과거로 역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주의적 이상의 가치를 긍정하면서도 그것이 '개인적 소유의 재건'이라는 공산주의 이념과 보다 친화성을 가지는 작은 생산 공동체들로 분할된다는 것도 흥미로운 예측이다.(작은당의 집권과 세계연합의 해소) 물론 작은당이 허용한다는 자치 공동체에 따른 자유로운 정체체제의 선택이라는 것은 마르크스적인 '생산자 연합'과는 상이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이것은 공산주의-코뮤니즘communism 보다는 공동체주의-코뮤날리즘communalism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상이한 역사적-이념적 맥락을 가진다.
 
하지만 저자의 탁월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몇몇 부분에는 선뜻 그 예측에 동의하지 못할 내용들이 있다.
 
우선 자본주의 세계체제 동학. 저자는 민족국가의 약화가 자본가들의 국제적 연합인 '세계무역컨소시엄'을 구성하게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발리바르와 브뤼노프의 지적대로 모든 부르조아지들은 국가 부르조아지이다. 국가는 약화되기는 커녕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선택적으로 자신의 기능을 강화시키고 약화시킨다. 물론 주변-반주변에서 민족국가가 실패하기는 하지만 금융자본이 집중된 중심부 국가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세계무역 컨소시엄'의 지배를 예상하는 것은 섣부르다. 이러한 예상은 미국이 빈국의 대열에 합류하여 연합하고 급기여 '세계무역 컨소시엄'과 전쟁을 벌이게 될것이라고 예상하는 데 이른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세계 헤게모니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 게다가 헤게모니를 넘겨준 국가가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한) 불과 일이십년만에 빈국으로 몰락한 경우는 없다는 점(마찬가지로 더 긴 기간을 본다고 해도 각각의 민족국가가 주변에서 반주변으로, 반주변에서 중심으로 이동한 사례도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한다. 그렇다면 미국이 비록 헤게모니를 상실한다고 하더라도 빈국연합에 포함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저자는 미국 헤게모니의 소멸 이후에 '순수한' 자본의 지배를 상정하는데, 이는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가능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상이다. 자본주의는 민족국가와 그 세계체계를 전제하지 않고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묘사하고자한 '세계무역 컨소시엄'의 지배가 미국 헤게모니 이후의 자본주의를 대신하는 또 다른 세계체계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닐 수 있겠지만.) 미국헤게모니 이후는 자본의 '순수한' 지배라기 보다는 자본주의 자체의 몰락이든 새로운 헤게모니의 구성이든 양자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세계연합을 해체하고 지역공동체로 분할하는 운동을 펼치는 운동조직은 '작은당'이라는, '당'형태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자. 왜냐하면 모든 운동조직의 이데올로기는 조직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즉, '작은당'이 중앙집권적인 조직을 해소하고 분권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중앙집권화된 당형태를 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가능하려면 여러 지역에서 유사한 이념을 가지는 지역운동-사회운동들의 네트워크가 출현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사회주의가 '세계당'이라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 등 현재의 대안세계화 운동은 중앙집권화된 당형태 보다는  '운동들의 연합'이라는 형태로 출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자의 관념은 모든 정치운동은 당형태를 취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저자의 정치관념이 20세기말 미국의 것에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드러나고 저자의 미래예측이 일정한 스펙트럼 안에 갇히게 만든다. 사회주의 이후에 공산주의communism보다는 공동체주의communalism을 예상하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 시야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이 빈국들의 연합에 속할 수 있다는 예상에서도 드러난다. (비록 먼 미래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국가가 자본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을만큼 자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놀랍다.
 
http://member.jinbo.net/maybbs/pds/rudnf/pds/realth_15_m.jpg또한 저자는 미국 헤게모니 시대의 유산인 발전주의, 생산력의 무한한 발전이라는관념을 전 역사에 관통하는 것으로 적용시킨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가 파멸적인 전쟁과 이후 급격한 사회-정치 체제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을 꾸준히 발전시킨다고 예상한다. 그 결과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고 소행성을 개발하며, 유전자 조작으로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고, 인간의 정신을 이식하는 기술로,  항성간 탐사까지 나간다고 예상한다. 마치 '문명'(Cid Meier's CIVIZATION)이라는 게임에서 알파-센타우리星에 우주선을 발사하는 것으로 엔딩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결말이다. (나도 이 게임에서 여러번 우주선을 발사해본 적이 있지만, 아무래도 항성간 우주선이라는 것은 미국인의 민족적 로망인 것같다. 우주공간에서 실현되는 새로운 변경frontier.)

그러나 20세기 과학기술-생산력의 급격한 발전은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에 의존하였고, 이에 적합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음을 기억해야한다. 사회적 필요가 달라진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양상도 달라질 것이다. (혹은 인간지성의 발전이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형태를 취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완전히 분권화된 지역 공동체들의 세계에서 성간탐사로켓은 왜 어렵게 자신들이 거부한 세계적인 연합형태를 구성하여 발사하는지 알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저자가 미국식 과학기술관을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미래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예측하려하지만, 그것이 과학기술에 대해 가지는 연관을 사고하지 않음으로서, 결국 대한민국 국과위 황우석 교주님 것을 연상하게 하는 예측이 전개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체 역사의 구도를 한눈에 바라보자. 그러면 이 구도가 20세기 초반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한 미래 역사의 반복이라는 것을 곧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최고 최후 단계로서 제국주의와 그 전쟁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붕괴, 군사적 규율을 가진 국제적 당에 의한 (필요하다면 무력을 이용한) 세계혁명의 완수, 완전한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 이러한 20세기 초(혹은 후반까지도) 사회주의자들의 미래상은 이 책에서 변주되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사회주의자들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역사는 전개되었다. 그것은 사회주의자들이 최대한 과학적으로 사고했고 부르조아보다 수천배는 탁월하게 역사의 전개방향을 인식했더라도 예측할 수 없었던 역사적 변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독일이 아닌 제3의 자본주의 대안으로서 미국 헤게모니의 등장은 전쟁 이후 자본주의의 몰락이 아니라 냉전체제를 낳았고 국제적인 사회주의 혁명은 무산되었다.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로 이행하지 못했으며 끝내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몰락했다.

20세기의 역사가 예상되는 달리 진행된 상황에서 우리가 21세기를 예상할 때는 어떤 입장이 필요할까? 그것은 20세기의 실패한 예상을 그대로 21세기에 대입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미래는 20세기 초 사회주의자들의 예상과는 더욱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구체적인 분석에 근거한 미래상보다는 이미 예상할 수 있었던 방향을 미래적 규모로 확장할 뿐인 것으로 보인다. 불확정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는 그것이 그렇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과학적인 입장일 것이다. 마치 양자역학에서 소립자의 위치와 궤적이 불확정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따라서 예측불가능하며 확률로만 존재한다는 것자체가 과학적 인식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저자가 단지 소설가였다면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상상하면 되고 그것은 무한히 열려있기 때문에. 그러나 미래학자가 쓴 이 책에는 월러스틴의 추천사까지 붙어있다.)
 
그런 점에서 비록 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곧 다가올 미국 헤게모니 이후, 장기20세기의 종결 이후에 대해서 현실에 근거한 예상이 필요하다.(문학적 상상력이라면 SF소설에 맡겨두면 될 것을!) 이 책은 탁월하게 역사적 요소들을 분석에 활용하여 먼 미래를 예상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단기적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적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에 입각한 보다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다. 
 

 
최근에 발간된 아래의 책은 그런 점에서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에 입각해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미래, 그리고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사회운동의 미래)에 관해서 더 유용한 사고를 개방시켜준다.


자본주의 역사 강의
백승욱 (지은이) | 그린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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