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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4
    윤선애씨 어디가세요 2 (3)
    겨울철쭉
  2. 2007/05/10
    김성만, 삶의 노래, 노동의 구체성
    겨울철쭉

윤선애씨 어디가세요 2

18년만에, 두 번째 공연

지난 3월13일, 조계사 안에 있는 한국불교문화역사문화회관에서 <윤선애씨 어디가세요 2> 공연이 열렸다. 몇몇 동지들과 공연장을 찾았다.

윤선애는 말한다. 18년 전, 1992년 <윤선애씨 어디가세요> 공연 이후, 다음 공연을 언제 할 수 있을지, 혹은 할 수 있을련지도 알 수 없었다고. <소녀의 꿈>으로 시작한 윤선애의 목소리는 맑았다. 천상의 목소리, 역시 윤선애다.

윤선애의 이름을 최근에 다시 듣게 된 것은, 2005년에 나온 앨범 <하산>부터였다. 그리고 재작년에는, 언제였나, 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절정이던 습한 그해 여름, 서울시청광장에서 무대에 섰다. 그녀의 등장에 나는 무척 놀랐지만, 주변에 있는 활동가들 대부분이 그녀를 잘 알지(혹은 기억하지) 못했다.


*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서 화질은 영 좋지 못하다.


성장에서 현재까지


노래공연은 1부, 2부로 나뉘었다. 1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곡을 배치했다. 2부에서는 현재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 중간에 나온 <윤선애 팬 까페> 중창단 공연까지 감안하자면 그녀의 표현대로 ‘가족’들의 모임같은 분위기도 있다. ‘새벽’ 멤버들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 중창단은 ‘중년시대’라는 이름이다.

대학 1학년 때, 아크로폴리스, 총학생회 출범식에서 불렀다는 <민주>부터(그녀는 84학번이다), <낭만 아줌마>까지, 그게 26년이다. 벌써.

<저 평등의 땅에>,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 이 구절에서는 눈시울이 불거졌다. 세상을 변혁할 자신감은커녕, 갈갈이 찢겨지고 뭉개지고 비난받고, 노동자의 이름마저 다시 빼앗기고 잊혀가는 것이 지금의 우리 노동자. 하지만 “우리의 긍지 우리의 눈물 평등의 땅에 맘껏 뿌리리”,

그것이 우리 노동자 계급.

나이들어 간다는 것

공연을 함께 추진하고 준비한 이들이나, 윤선애나 40대 중반이 넘어가는 이들이다. 공연을 보면서 그/녀들이 나이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 스스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녹여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낭만 아줌마>같은 곡까지는 아니라도, 시간의 흐름과 그 변화를 삶의 일부로 소화해간다는 것을 말이다. 그 시간에 너무 조바심내지 않게 되는 여유랄까, 아직 철이 덜든 30대 후반의 나로서는 아직 생소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사람은 나이먹어가고, 또 그렇게 살아가니까.
 


PD들의 20년 후

같이 간 동지들의 표현에 따르면 그 공연(3시)에 유일한 “현직 운동권” 집단이었던 것 같은 우리는 인사동에서 간단히 뒤풀이를 했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기대했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사회운동과는 너무 멀어졌다는 이유로 실망스럽다는 이도 있었다. 나는 그냥 윤선애의 노래가 훌륭했다는 이야기만 했다. 사실, <저 평등의 땅에>로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한명이 나에게 물었다. “선배는 왜 윤선애 공연에 왔는”지.
PD들의 20년 후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땠을까?
나는 조금 슬퍼졌다.

그것은 그들이 사회운동에 가까이 있지 않다거나, 혹은 함께 공연한 <윤선애 팬 까페>의 중창단 멤버들이 현직 대기업 회사원, 자영업자, 학원강사, 컨설턴트, 교수..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적어도 NL들은 그랬다. 마음놓고 김대중을 지지할 수 있었고, 노빠가 될 수도 있었고, 청춘의 야망을 어쩌면 막 실현하는 듯도 했고, 또 결국은 그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오히려 자신을 애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PD들은, 적어도 한 때 진실했다면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적응하지도, 애도하지도 못했다. 노동자의 이데올로기로 전화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진보신당의 좌충우돌, NL을 비판하고 탈당했으면서도 다른 정치를 시도하지 못하는 현실도 그 일부일지 모르겠다. 혹은 18년을 그저 시계침을 멈추어버린 (더 이상은 PD가 아닌) '좌파' 정파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윤선애의 공연은, 1992년과 2010년, 긴 시간이 비어있다. 소련이 망하고, 새벽의 마지막 공연 93년, <러시아에 관한 명상>으로부터 지금 그/녀들이 만난 것은 무엇일까. NL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20년을 기억하고 살아온 PD들에게도 이제 애도가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그 뒤에 남은 PD였거나 PD의 후배들인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 2006년 <새벽> 공연에 대해서 <월간 사회운동>에 실린 박준도의 글을 함께 소개한다.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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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 삶의 노래, 노동의 구체성

연영석.

 

김성만을 제목으로 한 글 머리에 왜 연영석이 등장하는가? 나는 연영석을 잘 모른다. 그러나 예전에 사회진보연대 기관지에 실렸던 인터뷰 하나를 보고 팬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제 노래고 불안정한 삶을 사는 노동자의 노래입니다)  노동현장의 문화운동, 노래운동이 노조에서도 단지 '선동'이 아니라 하나의 지적인 공간, 창작으로 발전 되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절되고 좌절하는, 젊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을 표현하는 방식의 노래를 제기하는 것에서 놀라웠다. (그것도 대공장집회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포장된) '단결투쟁'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 젊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구체성을 어떻게 제기할 것인가.

(아래 연영석 동지 이미지 출처는 네이버블로그 eticform)

 

비정규직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복수다. "노동자는 하나다"라고 외치지만(나는 이 구호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사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조차도 모두 다양한 조건에서 자기 문화를 가진다.(앞서 연영석이 인터뷰에서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내가 최근에 만나는 비정규직 동지들은 어떤가. 오늘 조합원 모임을 진행한 도시철도공사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중년의 여성노동자들이다. 엊그제 모임을 진행한 노동부비정규직노동자들은 30대 초중반, 낼모레 함께 투쟁선포기자회견이 예정된 노사발전재단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마트한' 20대 후반의 청년노동자들. 430집회에서 만난 고려대 미화 조합원들은 중년이라기보다는 노년의 여성노동자, 오늘 노동조합을 결성하겠다고 상담차 찾아오신 환경미화원은 중년의 남성.

 

이들을 모두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묶는 만큼, 이들 각자가 가진 삶의 구체성을 존중하면서, 우리는 각자를 주체화하고 연대를 조직할 수 있을까.

 

자본의 추상화, 노동의 구체성

 

사실 이 개념(자본의 추상화, 노동의 구체성)은 정치경제학 비판의 것이다. 자본의 운동이 추상노동이 생산하는 가치와 잉여가치로 표현되는 반면, 노동자가 노동력을 지출하는 과정은 유일하게 현실적인 노동, 즉 구체노동으로서 나타난다.

 

이 속에서 우리는 현실에서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을 떠 올릴 수 있다. 자본은 언제나 추상적인 어떤 힘, 기껏해야 자본의 대리인에 불과한 사장과 같은 '것'(자본가의 본질은 인간이 아니라 추상적 사물이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언제나 구체적인 삶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의 집단이다. 물론, 그들이 '반역'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문화'의 일부이자 효과, 결과로서 이데올로기.

 

 

김성만, 삶의 노래

 

김성만은 거칠다. 그가 만든 노래도, (죄송하지만) 그의 노래 실력도 역시 그렇다. 연영석과 마찬가지로 김성만도 투쟁사업장에 공연보다는 '연대'하러 다닌다. 그래서 가난하다. 삐까번적한 큰 무대에는 부르지 않는다. 맥빠진 민주노총 집회에 섭외가 안될 때 불러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는 곳에서 소리를 지른다.

 

나는 오늘 도시철도공사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교육을 하는 김성만 동지를 보고, 또 한명의 동지에게 반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어쩌면 하층문화, 그 속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삶의 진실을 길어올리는 모습을, 불과 몇십분 동안에 노래교육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연영석이 젊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삶의 분절성을 노래한다면, 김성만은 나이든 노동자들이 팍팍한 삶과 그 속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그가 직접 쓰고 오늘 노래한 "까대기"라는 곡. 악보 밑에는 "까대기란 여성의 유통노동자들이 박스에 들어 있는 물건을 풀어 진열대에 차곡차곡 쌓아 정리하는 것을 뜻함"이라고 씌여있다. 유통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만든 곡이라고 한다. "경괘한 뽕짝"이다.

 

세상에 포장을 뜯어  널 부러져 흩어진 것들 / 높은 곳에 차곡차곡 낮은 곳에 가지런하게

날 때부터 비정규직 울 때부터 차별을 받는 / 정해져서 바꿀 수 없는 그런 노동이 아냐

우리가 차곡차곡 우리가 하는 거야 / 노동이 아름답게 다시 쌓아야 해

우리가 하는 거야 우리가 힘을 모아 / 세상을 다시 한 번 까대기 하는 거야

다시금 사랑으로 다시금 희망으로 / 우리가 힘을 모아 함께 가는 거야

땅위에 하늘아래 차별이 없는 거야 / 사람이 사람답게 아 살맛나는 세상 (가사전체)

 

오늘 함께 한 도시철도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신나게 불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구체적인 노동 속에서 대안세계를 노래한다.

 

지금 투쟁하고 있는 울산과학대와 광주시청의 여성비정규직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만든 곡, "청소아줌마"라는 곡도 있다.

 

..쓰레기를 치우다 내가 쓰레기가 되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너무 울어서 눈물이 말라버렸다... 청소만하다가 내가 청소되었다...내가 살아서 알몸뚱이로 분노에 벌벌 떨었다...(가사 일부)

 

울산과학대, 광주시청의 투쟁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노래의 가사가 어떤 울림을 갖는지 알 것이다. 김성만은 그 울림을 노래로 공유하자고 한다. 아프지만, 조합원들이 같은 장소에서 함께 노래하고 하나되는 것처럼 먼 곳의 투쟁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과 공유할 수 있게, 노래로. 그 이야기를 이제 처음듣는 수천리밖에 있는 노동자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게. 노래로.

 

김성만은 겸손하게도 자신이 만든 '비정규직철폐연대가'가 '비정규직의 아픔을 그때까지는 잘 몰라서' 책이나 문서를 읽고 썼다고 했다. 그래서 다소 추상적이기도 한 '비정규직철폐연대가'는, '청소아줌마', '까대기' 때문에 더 빛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집회에서는 잘 포장된 '비정규직철폐연대가'만 연신 방송된다. 맥빠진 민주노총 메이데이 집회서 조차. 그것이 맥빠진 이유는 '청소아줌마'와 '까대기'의 삶의 구체성을 폄하하고 결코 노동절에 부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노래 : 대중의 반역을 위해서.

 

대중은 착취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의 반역이 결합될 때 혁명에 나선다. 착취의 모순이 자동적으로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신자유주의 최근10년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데올로기의 반역을?

 

김성만과 연영석은 대중의 구체적 삶을 노래로 서로 교통하자고 제안한다. 서로 주목하는 세대는 다르지만 말이다. 서로 다른 비정규직 대중들이, 서로의 구체적인 삶의 고통을 노래를 통해서 교통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경험이 가지는 보편성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새로운 주체화의 시작이 아닐까. 하나의 대공장에 모여있는 노동자들과는 달리 분절되고 흩어진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는 삶의 구체성을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적 매개가 필요하다.

 

연영석이 인터뷰 말미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저는 다른 민중가요 가수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음반은 대공장 남성노동자들을 위한 음반이다. 네가 주로 가는 현장에서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말이죠."

 

삶의 구체성, 운동의 구체성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최근에 그 동안 활동하던 노조에서 활동을 곧 그만두고, 쉬고,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동지들과 많은 이야기를 더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렇게 결론을 낼 것같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아주 잠깐씩 이런 계기를 통해서 돌아보게 된다. 나는 현재의 활동에서 얼마나 노동자들의 삶의 구체성에 접근하는 운동을 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삶의 구체성에 어떻게 다가가고 인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지금처럼, sur le quai, 길이 끝난 곳에 서있을 때, 혹은 어디에 서있는지조차 혼란스러운 거리 한복판*에서 길을 잃을 때, 그것을 다시 생각한다.

 

 

[보너스 이미지]

==== * 아래는 언급한 그 "혼란스러운 거리 한복판"

*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거의 마지막 부분의 장면. 시간이 정지한 거리 한 복판. 치아키가 남겨지고 마코토는 인파 속에 사라진다.

 

 * 윗 장면이 나오기 직전. 예정된 사고를 결국 막지 못하고 "기진맥진 상처입은" 치아키. 다 소진한 줄 알았던 마지막 타입리프 단 하나,가 남아있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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