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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31
    [독서]두보杜甫시선(1)
    겨울철쭉

[독서]두보杜甫시선


두보시선
두보 지음, 이원섭 옮김 / 현암사


 
봄 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

좋은 비는 그 때를 알고 내리니
봄이 되어 내리네
이 밤 바람 따라 몰래 들어와
소리없이 만물을 적시고 있네
들길에는 구름이 드리워 어둑하고
강위에는 조각배 등불만 외로이 떠 있네
새벽이 되어 붉게 반짝이는 곳을 보니
금관성(청두)이 온통 꽃으로 물들어 있구나

春夜喜雨

好雨知時節 /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 潤物細無聲
野徑雲俱黑 / 江船火燭明
曉看紅濕處 / 花重錦官城


두보를 읽을 생각을 한 건, 영화 <호우시절>, 그리고 영화에 소개된 그의 시 春夜喜雨(춘야희우) 때문이다. (위 시의 번역은 영화의 것이다.)

이백과 함께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꼽힌 다는 것, 당나라 때 사람이라는 것 정도밖에 알지 못하고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1300년 전의 감성이 지금과 닿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好雨知時節, 좋은 비는 그 때를 알고 내린다"는 단 한 구절에 그런 생각을 모두 접게 되었다.
 
※ 아래의 번역은 모두 이원섭 역해 <두보 시선>(현암사)의 것을 기본으로 하되, 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표현을 다소 바꾸고 그 일부분만 인용한 것이다.

一片花飛減却春 / 風飄萬點正愁人
꽃잎 한 조각 날아도 봄이 움추리는 데
우수수 바람에 지는 걸 어떻게 볼까
[후략]
- 曲江(1) 중

香霧雲鬟濕 / 淸輝玉臂寒
何時倚虛幌  / 雙照淚痕乾
[전략] 밤 안개에 그대의 머리는 젖고
달빛 아래 구슬 같은 팔은 차가와라
언제쯤 빈 창가에서
달빛에 마른 눈물로 마주볼까

- 月夜 중

花徑不曾緣客掃 / 蓬門今始為君開
[전략] 꽃잎이 길을 묻어도 쓴 적이 없었더니
그대로 두어, 사립문을 그대 맞아 처음 열었다
[후략]
- 客至(손님 오시다) 중

시를 인용하는 데 부분만 가져오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너무나 감칠맛 나는 구절들이라 조심스레 떠냈다. 현대적인 느낌에서 보더라도, 구체적인 대상에 시상을 담는 이런 방법이 있구나, 놀라게 된다. 꽃잎이 날려 쌓은 사립문 앞 길과 봄을, 그려보자.

알려진 것처럼, 두보의 삶은 여유있지 않았다. 안록산의 난 등 당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살았고, 최고의 문장가(시인)이었지만 제대로 된 관직을 가져보지도 못했다. 아마도 문장은 뛰어났지만 정치에는 소질이 없었던 것 같다.(문장력이 뛰어나면 관료적인 기질도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과거제도의 단점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늘그막에는 가족과 떨어져 고생하고, 결국 객지에서 삶을 마무리한다.

두보의 젊은 시절의 유랑과 중년, 노년의 유량은 성격은 다르지만 여튼 많은 풍경을 그의 시에 담아내게 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의 시대, 그의 고난은 시에 독특한 감성을 부여한다. 어려운 시대와 자신, 그리고 민중을 노래하기 때문에 가장 사실적이지만, 또한 가장 감성적이다. (그 둘이 조화를 이룬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눈을 바라보며

싸움터 새 귀신의 슬픈 노래
슬퍼 읊조리는 늙은이 하나
구름 자욱한 저녁 어스름,
회오리바람 타고 눈발 날린다
버려진 표주박엔 술 떨어지고
화로에선 불이 꺼져 가는 날
몇 개 고을 싸움 소식은 알 수 없어
앉아서 허공에만 글을 쓴다

對雪

戰哭多新鬼 / 愁吟獨老翁
亂雲低薄暮 / 急雪舞廻風
瓢棄樽無綠 / 爐存火似紅
數州消息斷 / 愁坐正書空

이런 고통에 대한 노래는, 단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 함께 고통을 겪는 민중의 것이 된다. 그의 충군우국(忠君憂國)이라는 것은 유교적인 어법을 따르고 있지만, 무조건적인 제왕에 대한 충성보다는 전쟁의 고통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나라 걱정”으로만 보기는 무리다. 그럼 점에서 두보의 시는 개인적인 감상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의 생생한 표현에서 번지는 감성은 여전하다. 그 이중성이 주는 독특한 효과.

그래서 두보의 시는, 사회와 개인을, 그리고 삶의 고통과 봄의 기쁨을 함께 담고 있다. 그래서 그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쉬운 시대, 쉬운 감성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시를 써냈다. 시인 두보가, 그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好雨知時節,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빗물들이 떨어지면서 우연히 만나고, 다시 없을 그의 시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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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의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이라는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비가 온다.
그러니 우선 이 책이 그저 비에 관한 책이 되기를.
(『철학과 맑스주의』,알튀세르, 35쪽)

클리나멘이 일으키는 편의(기울어짐) 따라 원자들의 마주침을 만든다. 그 마주침은 “원자들에, 편의와 마주침이 없었다면 밀도도 실존도 없는 추상적인 요소들에 불과했을 바로 그 원자들에, 그것들의 현실성을 부여한다.(같은 책, 39쪽)”

그러니 우연한 마주침에 관한 영화로서, <호우시절> 허진호 감독의 '비'라는 소재는 재미있는 선택이다.(물론 그 '비'의 목적론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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