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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7/16
    아침부터 한바탕
    너나나나
  2. 2006/07/16
    티격태격
    너나나나
  3. 2006/07/16
    건망증(1)
    너나나나
  4. 2006/07/16
    산모 건강 신경 쓰기
    너나나나
  5. 2006/07/16
    주부의 증거
    너나나나
  6. 2006/07/16
    밥 맛 없는 날
    너나나나
  7. 2006/07/16
    1502호 목장
    너나나나
  8. 2006/07/16
    변화 혹은 발전 2
    너나나나
  9. 2006/07/16
    변화 혹은 발전
    너나나나
  10. 2006/07/16
    추억을 되살리며
    너나나나

아침부터 한바탕

싸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전 자고 있었습니다. 주선생님께서 저를 깨웁니다.

 

"지금 몇 시야?"

"응..6시 거의 다 됐어.."

"어..그래"

"있잖아...나, 짜증이 나 죽겠어.."

"..왜?"

 

젖량이 많은 데다,

밤새 생긴 젖 때문에 가슴이 퉁퉁 불은 주선생님은

 

한달만 더 지나면 일도 나가야 하고 하니까

미리부터 유축기로 젖을 짜놓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유축기랑 젖병이랑 소독을 해놓고

새벽에 저 잘 때 일어나서 젖을 짤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유축기 중 가슴에 닿는 깔대기 부분에 기름이 잔뜩 묻어 있었나 봅니다.

닭백숙을 했었는데, 그때 썼던 집게를 제대로 안 닦아 놨었고 그 집게 그대로,

젖병이랑 깔대기를 끓는 물에서 꺼냈던 것입니다.

 

...

 

주선생님은 충격으로 쇼파에 누워 계셨습니다.

 

주선생님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제가 기름 때문에 받은 충격이 있었나 가만히 떠올려 봤습니다.

있었습니다.

 

두 달 전 쯤에 장인어른이 식사시간이 다 끝난 시간에 느닷없이 집에 찾아오시더니

삼겹살을 마구 구워드셨었습니다. 기름이 무지하게 튀었죠.

 

저는 그때 속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오전에 스팀 청소기로 평소 잘 안하던 바닥 청소를 다 해놔서,

하루 내내 그 깔끔함에 뿌듯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발바닥에 느껴졌던 삼겹살 기름은 지금도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주선생님은 발바닥도 아니고, 가슴에  

닭기름이 묻었습니다.

 

멀쩡하게 잘 있는 사람한테 누가 기름으로 범벅된 닭껍질을 턱 하니 올려놓은 거랑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것도 아침부터, 그것도 애한테 젖먹일 생각을 하며 가슴 벅차하는 순간에...

 

주선생님은 여전히 쇼파에 누워 계십니다.

아무래도...정신적 충격이 심한 모양입니다.

 

불러도 안 일어납니다. 

 

전 주선생님이 누워 계시는 동안 젖병 소독 다시 다 해놓고

이번 사태의 원인이었던 집게는 그야말로 후회없이 씻고 또 씻었습니다.

빨래 돌리고, 밥 앉히고, 어제 밤에 미루 깬다고 미뤄놨던 설거지까지 다 했습니다.

 

그래도 안 일어납니다. 

 

깨우니까, "으..." 하고

신음 소리만 냅니다.

 

계속 깨우니까, " 나...20분만.."합니다.

 

평소에 더 자고 싶을 때는 주로 "10분만..."혹은 "5분만.."을 외치거나

좀 많이 자고 싶으면 "30분만.."을 외치는 데

특이하게 '20분'을 요구하는 걸 보니, 

정신적 충격의 강도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소독, 위생...이거 아이들 키우는 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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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격태격

주선생님과 저는 아주 가끔 싸웁니다.

 

그래도 원칙이 있습니다. '5분 안에 화해하기'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이 원칙을 잘 지켜왔습니다. 

 

싸우는 거 말고, 평소에 우리는 자주 '티격태격'합니다.

 

이걸 싸운다고 하기엔 좀 그렇고

아무튼 이 '티격태격'에서 이기면 나름대로 꽤 뿌듯해집니다.

 

낮에 쇼파에 누워 있는 주선생님이 지쳐 보여서

제가 다리 안마를 해주었습니다.

 

다리에 손톱의 압박이 좀 세게 느껴졌나 봅니다.

 

 

"어? 손톱 자를 때 됐네?"

 

"아니"

 

"그럼?"

 

"자를 때 지났지, 나를 이렇게 방치하다니..."

 

 

티격태격 1회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집에서는 제 손톱을 주선생님이 자릅니다.

 

손톱이 다른 사람 보다 밉다면서,

자기가 잘라주면 이뻐질거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주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안마를 하도 안 해줘서 몰랐지..."

 

"......"

 

1회전은 시작하자마자 주선생님이 승리했습니다. 

 

 

곧 이어서 주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루 손톱, 이거 봐.. 어떤 건 자르고, 어떤 건 안 잘랐잖아"

 

2회전이 시작됐습니다.

 

전날 미루 손톱을 제가 깎았는데

애가 움직이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이유로

손톱 몇 개를 안 잘랐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분명히 주선생님한테 얘기했었습니다.

 

2회전의 승리를 예감한 저는 기세 좋게 힘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거 왜 이래. 내가 어제 얘기했잖아. 어떤 건 안 잘랐으니까 니가 보라고...난 분명히 얘기했어~!!"

 

주선생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조용히 좀 해...애 자잖아.."

 

"......"

 

2회전도 주선생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나 조금 미안했던지 솔직히 고백할 게 있다면서 얘기합니다.

 

"나 저번에 미루 손톱 깎아 주다가 살 쪼끔 짤랐다~"

 

미루가 불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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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저희 집에는 특이하게도

가스렌지, 전자렌지, 압력밥솥, 그리고 세탁기가 한 데 모여 있습니다.

 

직접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배치지만 암튼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히히히~"

 

제가 밥그릇을 들고 압력밥솥 옆의 가스렌지로 가더니

밥그릇에 국을 퍼담고 있는 걸 보고

주선생님께서 날려주신 웃음입니다.

 

'오늘도 한 건 했군' 정도의 뜻입니다.

 

요즘들어 가뜩이나 건망증이 심해져서,

주선생님은 저를 '덤앤더머'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결국 한 건 한 겁니다.

 

저는 '뭘 이런 걸 가지고'란 의미를 담아서

살짝 미소를 날려줬습니다.

 

주선생님께서 한 마디 더 하십니다. "후라이팬 불 좀 끄지"

 

몇 분 전에 계란 후라이를 해서 접시에 담았었는데,

가스렌지 불을 안 껐던 모양입니다.

재빨리 불을 껐습니다.

 

주선생님, '그것까지 포함해서 한 건으로 쳐주지'라는 미소를 다시 보냅니다.

 

식사를 하다가 보니까

된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서 배추를 씻어놨는데,

그걸 도마 옆에 그냥 놔뒀습니다.

 

식탁으로 배추를 가져오는 걸 보고 주선생님이 또 묻습니다.

 

"된장은 어딨는데?"

"여기 있잖아.."

"이거...고추장 아냐?"

 

아...'한 건'으로 치기엔 너무 많은 플레이를 해버렸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지,

아니면 이게 말로만 듣던 주부건망증인지

암튼, 제가 어떤 짓을 할 지 한 치 앞이 예측 불가능입니다.

 

사실, 그 동안 참 많은 일을 했었습니다.

 

밥을 앉히기 위해 쌀을 씻은 다음

솥을 드럼세탁기를 열고 넣기도 했고, 

 

국 뎁혀 먹을려고 냄비를

세탁기 안에 넣기도 했었습니다.

 

쌀 씻어 놓은 솥을 압력 밥솥에 안 넣고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고 5분 넘게 불을 켜놓기도 했었습니다.

 

샤워하다가 샤워기 꽂는 데다가 칫솔을 꽂으려고도 했고

 

장보고 온 물건들은 남겨두고

그 물건 넣어 온 비닐만 냉장고에 넣기도 했습니다. 

 

...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안되니까

건망증이라도 있어야지..이게 제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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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 건강 신경 쓰기

"나, 바베큐 폭립이 먹고 싶어~~"

 

주선생님께서 쇼파에 앉아

갑자기 양손으로 자기 얼굴을 뭉개면서 이야기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싶어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에 나오는 인물을 닮았습니다.

 

바베큐 폭립!

 

일단, 폭립인지 폭맆인지부터가 헷갈리는 음식입니다.

 

36년 평생 동안 먹어본 횟수를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음식입니다.

 

사실 33살 이전에는 그런 게 있는 줄 알지도 못했던 음식입니다.

 

"그거 먹고 싶어? 그럼 외식해야 되잖아~"

"아니"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오븐이 필요해~"

"오븐?..우리 집에 없잖아.."

"그럼, 전자렌지에다 넣어서 어떻게 하는 방법 없을까?"

 

주선생님, 얼마나 그게 먹고 싶었으면

전자렌지에게 오븐의 임무를 맡기려고 합니다.

 

"그건 안돼지~"

"그럼, 가스렌지 생선 굽는 데다 하면 안될까?"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 저는 그냥 대답했습니다.

"방법을 찾아보자. 일단 마트 가서 사와볼께"

 

이 정도로 마무리가 됐다 싶어서 저는

쇼파에서 일어나 쓰레기를 치웠고

주선생님은 컴퓨터 앞으로 갔습니다.

 

한참 쓰레기를 치우다 뒤돌아보았습니다.

주선생님의 뒷모습 넘어로 보이는 컴퓨터 화면에는

 

아...

바베큐 폭립의 사진이 떠 있었습니다.

집요했습니다. 아까 제 대답이 무심했던 것을 알았나 봅니다.

 

결국 주선생님은

바베큐 폭립에, 한우 사골, 한우 도가니, 그리고 이름이 잘 안 외워지는 소시지까지

화끈하게 지르셨습니다.

 

이제 주선생님의 결정에 순응하고, 먹을 거리들이 택배로 오면 요리만 하면 됩니다.

 

산모의 건강이 최고라면서 계속 신경 쓰지 못했었는데

이제 자의반 타의반으로 신경 좀 쓰게 생겼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평소 같으면 못 먹을 것들이지만  이럴 때 돈 써야지 언제 쓰나 싶습니다.

 

근데, 요새 계속 드는 생각이지만

도대체 다른 산모들은 자기 몸을 어떻게 돌보는지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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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증거

아침에 미루가 자는 틈을 타서

교양있게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어~강서방인가? 나네.."

 

장인어른이셨습니다.

 

"아, 네 아버님, 웬일이세요?"

 

"오늘 애 보고 싶어서 갈 건데, 괜찮지?"

 

"네, 오세요..."

 

"오전 중에 일찍 가볼려고"

 

"네, 그러십시오"

 

오전이 다 갈 때쯤 전화가 다시 오셨습니다.

 

"거기 가서 점심 먹어도 되지?"

 

"...아, 네....저기, 지금 현숙이가 자고 있어서 저희들은 아침 겸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요..."

 

"어, 알았어"

 

"그래서 지금 저희들은 밥 먹을 건데, 지금 출발하시면 1시간 쯤 걸리시잖아요, 그럼 저희들하고 식사 하시기가.."

 

"괜찮아, 그래도 거기 가서 먹지, 뭐"

 

 

아, 진짜...밀려오는 그 괴로움을 알만한 사람은 알겠죠?

 

 

아침에 반찬 없어서 조기 두마리 구워놓고, 콩나물 무침 해놓은 게 다였습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두 분이 오시면 뭐라도 드실 걸 더 해놔야 하는데, 아, 정말...

 

이 때 마침 주선생님

충분히 주무셔서 만족스럽게 부은 얼굴로 나오십니다.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어쩌고, 저쩌고~투덜 투덜 투덜~~

그냥 식사하시고 오시면 안되나? 드시고 오시면 좋을텐데..

지난 번에 우리 고모는 저녁 먹고 왔잖아. 얼마나 좋아.."

 

주선생님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우하하하하~"

 

"왜 웃어~~??"

 

"너, 인제 주부가 다 됐구나. 그런 거 여자들이 고민하는 건데...히히히"

 

...

 

다행히 두 분은 오실 때 닭을 한 마리 사 오셨고,

계시는 동안 미루도 봐주셔서

제가 좀 편했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장인'어른'이시자 가끔은 장인'양반'으로도 불리는 분은 편히 쉬다 가셨고

장모'님'은 오셔서 계속 일만 하다 가셨습니다.

제가 편했던 건 이 분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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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맛 없는 날

"이거 중국산이다"

 

아침에 시장 가서 오징어 젓갈을 사왔었습니다.

 

밑반찬도 떨어지고, 반찬할 시간은 없고 해서

'하나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주는 반찬 없나..'생각 하다가

새빨갛게 잘 담궈진 오징어 젓갈을 사왔었습니다.

 

이 젓갈을 맛 보더니

주선생님께서 딱 한마디 하신 겁니다.

 

"어떻게 알어?"

"여기 들어간 고추가루, 이거 첫 맛이 톡 쏘잖아...?"

"응" "

"그러면 중국산이야~"

 

아...갑자기 확 열받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 내가 즐겨 사먹던 시장의 반찬들..

그거 상당수가 중국산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옛날에 중국산 고춧가루 빨갛게 만들려고

먹으면 죽는다는 공업용 색소 넣은 일이 있었는데

이게 또 시간 맞춰서 제 머릿 속에 떠오릅니다.

 

안 그래도 베란다에다 심혈을 기울여서 키우던 고추가

벌레 먹어서 다 죽게 생겨가지고 우울해 하던 참인데..

 

 

갑자기 미루가 학교 다닐 때쯤엔 학교 급식이 좀 나아지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상급식, 직영급식, 좋은 우리 농산물...이게 아마 학교급식 고치자는 뜻있는 사람들의 요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중에 직영급식 하나만 이번에 법 통과 됐죠.

 

그 동안

 

3일 전쯤이면 맛있게 먹었을만한 각종 재료로 음식 만들어서

학교 급식으로 내놓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얘기를 학교에 있는 친구들한테서 들었습니다.

 

가끔씩은 철사와 바퀴벌레 같은 것으로 맛의 포인트를 살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이것 말고도 재료는 다양했겠죠.  

 

철사 같은 것은 주로 차력사들이 드시는 건데

애들한테 먹이는 걸 보면

정부가 애들을 아주 강하게 키우려고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반면에 반찬이랑 밥하고 같이 나오는 국은

대부분 가을하늘 보다도 맑은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대학 때 식당에서 설렁탕에다 우유 붓는 장면을 목격했었는데

요즘 학교에서는 그런 짓도 안 했나 봅니다.

 

애들 먹는 국이 하늘 보다는 맑아야지...

 

암튼, 여러모로 밥 맛 없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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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호 목장

저희 집은 아파트 1402호이고 바로 위층은 1502호입니다. 그 위층은 옥상입니다.

 

1502호는 목장입니다.

평소 우리집 천장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로 미루어 보건데 말 목장입니다.

 

최근에 밤 9시면 미루를 재우는 데 성공하는 우리를 위해

1502호는 이런 소리를 들려줍니다.

 

"쿵! 쿠쿠쿠쿠쿠쿠쿵쿵쿵쿵!!!"

 

"두두두두둥...쿵쿵쿵쿵쿵~!!"

 

"쿵쿵쿵..쿵쾅쿵쾅..쿵쿵쿵"

 

 

말들이 넓은 목장을 뛰어다니는 소리입니다.

얘네들은 아주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걷고 평소에는 뜁니다.

 

언젠가 한번 찾아갔습니다.

얼굴은 알고 있어야겠다 싶었습니다.

 

1502호 문이 열리자.

 

자기 들이 더 애처로운 얼굴을 한 엄마, 아빠가 현관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 얼굴에는,

"당신들의 고통을 충분히 알아요. 하지만~"이라고 써있었습니다.

 

그 엄마, 아빠 사이를

말 한마리가 화다다닥 비집고 나와서는

 

"아저씨~!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습니다.

 

"푸~!푸~! 히힝~히히힝" 이렇게 들렸습니다.

 

눈망울은 천진난만한 말의 눈망울 그대로였습니다.

 

"11시 이후에는 아이들이 잘까요?"

저는 아무 실효성 없는 요구를 하고 내려왔었습니다.

 

 

아까 주선생님과 의논했습니다.

말들 때문에 요새 점점 더 예민의 강도를 더해가고 계신 주선생님이십니다.

 

 

"정말 너무하지 않어? 쟤네들 어떻게 할까?"

 

"그러게...애들인데 어떡해..."

 

"그래도 대책을 세워야지..."

 

"뭐, 좋은 수라도 있어?"

 

 

이 말에 주선생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도 옥상 가서 뛸까?"

 

.

.

.

 

언제나 제 상상 밖에서 노시는 주선생님이십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작전입니다. 깔끔합니다.

 

혼자 옥상 올라가서는 외로울테고

둘이 올라가야 할텐데

 

미루는 집에 두고 가야할 지가 고민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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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혹은 발전 2

나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선생님도 발전하고 계십니다.

 

"인제 발톱도 깎을 수 있어~!!"

 

오늘 주선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임신 하고 배가 한참 불렀을 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자기 발톱을 자기가 못 깎는다는 것이었는데

인제 그게 됩니다. 발전입니다.

 

조금씩 예전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주선생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아..그리고

생각난 김에 저의 발전에 대해서 몇 가지 더 써야겠습니다.

 

 

1. 밥 짓는 양

 

-아주 어릴 때: 내가 밥 안 지었다

 

-초딩 때: 역시 나는 밥을 안 지었다

 

-중딩 이후 꽤 오랫동안: 집에 가면 언제나 밥이 있었다

 

-대학  때 잠시: 밥을 지었다. 한 달에 두 번 쯤

 

-30살  넘어서: 다시 아예 밥을 안 지었다. 나가서 사 먹으니까

 

-결혼 후: 밥을 지었다. 한 번에 며칠씩 먹을 수 있는 양을.

밥 지어진 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표시하는 우리집 밥통은 '99'까지 표시되는데 가끔씩 다시 '1'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둘다 너무 바빴다

 

-임신 후: 임산부한테 오래된 밥 먹일 수 없어서 한 이삼일 먹을 분량만 지었다

 

-요새: 새 밥이 좋아서 한번 할 때 많이 안 한다

 

 

 

2. 밥 먹는 곳

 

-아주 어릴 때: 이 나이에 집에서 안 먹을 수 없다

 

-초딩 때: '아주 어릴 때'나 똑같다. 학교에선 도시락을 먹었다

 

-중딩 이후 꽤 오랫동안: 집 밥 아니면 도시락

 

-대학  때: 학교에서 사 먹고, 밖에서 사 먹었다. 하숙할 때는 물론 하숙집에서 먹기도 했었다. 

 

-30살  넘어서: 사무실 근처 식당 중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다녔다

 

-결혼 후: 집에서 하는 밥이 깔끔하고 맛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임신 후: 한 푼이라도 아낄려면 웬만하면 집에서 밥 해 먹어야 한다

 

-요새: 밖에 나갈 수가 없다. 외식하는 게 소원이 되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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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혹은 발전

어젯밤엔 미루가 유난히 많이 보챘습니다.

재우는 데 좀 고생했죠

 

며칠간의 훈련으로 재우는 데 이제 좀 자신이 붙었었는데

자신감 100%에서 70%쯤으로 떨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미루는, 간밤에 과음한 아저씨 폼으로 널부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어젯밤엔 보챈 게 아니라 꼬장을 부린거였습니다.

 

어쨌거나 애를 재우는 우리의 실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것 말고 제 개인적으로 발전하고 있는게 꽤 됩니다.

 

남들은 그냥 변한 거라고 할 지도 모르겠는데

저한테는 발전입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봤습니다.

 

 

1. 반찬 먹는 기준

 

-아주 어릴 때: 엄마가 주는 반찬

 

-초딩 때: 새 반찬, 맛있는 반찬

 

-중딩 이후 꽤 오랫동안: 눈 앞에 보이는 모든 반찬

 

-대학 때 잠시: 그런 거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30살 넘어서: 몸에 좋아 보이는 반찬,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음식점에서 주는 반찬

 

-요새: 남으면 귀찮은 반찬, 상에 몇번 올라와서 빨리 해치워야 하는 반찬

 

 

 

2. 밥 먹는 양

 

-아주 어릴 때: 주는 대로 받아 먹었다

 

-초딩 때: 어른이 더 먹으라면 더 먹었다

 

-중딩 이후 꽤 오랫동안: 실컷 닥치는 대로 먹다

 

-대학  때 잠시: 인생을 아름답게 가꿔볼 요량으로 소식이 몸에 좋다고 해서 조금씩 먹기도 했다

 

-30살  넘어서: 먹는 게 밥 밖에 없어서 끼니 때만 되면 열심히 먹다

 

-그 후 한동안: 다시 소식을 하다. 오래 산다고 해서.

 

-요새: 남은 밥 처리하기 귀찮으니까 다 먹는다. 밥통에 남은 밥이 다음 끼니에 두 사람 먹을 양이 안되면 다 꺼내서 먹는다. 혹은 저번 끼니에 남겨놓은 찬밥도 있으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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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되살리며

집안 일 중에 가장 정이 가는 일 중 하나는

쓰레기 치우는 일입니다.

 

미루가 쏟아내는 기저귀 때문에

매일 매일 쓰레기 봉투 10리터 짜리가 하나씩 나갑니다.

 

이왕이면 쓰레기 봉투에 쓰레기를 꽉꽉 채워서 내놓으려고

저는 아주 드물게 제 두꺼운 다리의 덕을 봅니다.

 

쓰레기를 다리로 꽉꽉 누르면

방 하나 가득 늘어놓아도 남을 기저귀가 그 작은 봉투에 다 들어갑니다.

 

요즘엔 봉투에 쓰레기를 좀 더 담아볼까 하는 욕심에

쓰레기 봉투 중 빈곳에 쓰레기를 몰아넣는 정교한 작업은

비닐 장갑을 끼고 손으로 합니다.

 

그러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구로구청 청소과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생활을 대신하던

그 가슴시리던 시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이른바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디 몰래 숨어 있다가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느닷없이 나타나서 목에 힘주고 잡아내는 그런 게 아니라

 

규격봉투에 안 넣고 쓰레기를 버린 사람을 찾아내서

과태료를 물리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규격봉투에 안 넣고 버린 쓰레기는 대부분

골목 구석에 검은 비닐 봉지에 싸인 채 버려져 있었고

우리는 '증거'를 찾기 위해

바로 그 비닐장갑을 양손에 끼고 쓰레기를 뒤졌습니다.

 

주소, 이름 같은 게 적힌 편지 봉투, 각종 고지서 같은 걸 찾아내기 위해서였죠.

 

혹시 지금도 길 가다가

짙은 초록색의 제복을 입고

쪼그리고 앉아서 쓰레기 뒤지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쓰레기 공익'입니다.

 

옷도 꼭 소방관 아저씨들 옷하고 똑같아서

한번은 역시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쓰레기 뒤지는 데

길가던 꼬마애가 엄마한테 이렇게 물어보는 걸 들었었습니다.

 

"엄마, 왜 소방관 아저씨가 쓰레기를 뒤져?"

"응, 재네들은 공익이야.."

 

그때 같이 있던 동료 공익들 모두 한데 부둥켜 안고 울뻔 했습니다.

 

엄마가 '너는 저렇게 되면 안된다'는 식으로

애한테 말했기 때문입니다.

많이 당해본 사람은 압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는 구로구 일대의 쓰레기를 뒤지면서 다녔습니다.

 

때로는 서초구 쓰레기 공익은 월급이 18만원인데

우리는 가난해서 10만원이라더라는 소식을 듣고

더 비참해하면서

 

때로는 우리를 주차단속 공익으로 오해하고

불법주차했던 아저씨들이 급히 차를 빼면

 

그 옆에 버려져 있던 쓰레기를 뒤졌습니다.

 

그 때 맡았던 쓰레기 냄새는

특이하게도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치우는 일이 집안 일 중에서도

특히 정이 갑니다. 기분은 찝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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